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53)
아카데미가 망했다 53화
시간을 되돌려, 늦은 밤.
은장검 용병단은 킹 와이번의 둥지로 출발할 채비를 마쳤다.
“의뢰주 두 분도 출발 준비를 마치셨습니까?”
“예.”
“좋습니다. 다만 일정이 그리 넉넉하진 않습니다.”
메이트가 진지한 얼굴로 아몬과 브레슬을 바라보며 충고했다.
“꽤 빠르게 움직일 테니 잘 따라오셔야 합니다. 만약 뒤처지신다 하더라도 기다려 드릴 순 없습니다.”
엄중한 경고에 아몬은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예, 알겠슴다.”
“……잘 알아들으셨는지 원.”
혼잣말을 중얼거린 메이트가 몸을 돌려 용병단원들을 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자! 그럼 은장검 용병단! 출발!”
“와아아아!”
은장검 용병단은 우렁찬 함성을 터뜨리며 아무르의 문을 나섰다.
* * *
아몬이 짜증스런 얼굴로 메이트를 보며 말했다.
“이렇게 느긋하게 가도 되는 겁니까?”
“……예? 느긋하다뇨?”
“빨리 뛰어가면 금세 도착할 걸 이렇게 느긋하게 걷는 이유가 뭔가 해서요.”
메이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킹 와이번의 둥지가 있는 ‘아몰 산맥’은 이곳에서 말을 쉬지 않고 달려도 이틀은 족히 걸릴 거리다.
그만한 거리를 은장검 용병단 특유의 기동력으로 고작 하루 만에 도착한다는 것인데 느리다고 불평이라니.
‘괜한 트집을 잡다니…… 도무지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군. 아까 부학교장을 때릴 때도 수상하긴 했는데, 설마 이 인간…….’
메이트가 눈을 스산하게 빛냈다.
‘아모니스 아카데미 소속이 아닌 게 아닐까? 교무부장이 아니라 아모니스 아카데미를 내부에서 흔들기 위한 외부 인물이라거나…….’
가능성은 많았다.
다른 아카데미의 첩자라거나, 빚쟁이라거나 그런.
‘오랫동안 용병 일을 하며 단련된 눈썰미다. 확실해.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부학교장을 불손하게 대할 리가 없지.’
메이트는 아몬을 향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웃는 낯으로 말했다.
“하하,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음…… 알겠습니다.”
아몬이 도로 행렬의 후미로 돌아가자 메이트가 헛웃음을 지었다.
한편, 후미로 돌아간 아몬이 투덜거렸다.
“거참, 뭘 이렇게 느긋하게 가는지 모르겠네요. 안 그래요? 부학교장님.”
“우물우물, 그러게 말입니다.”
“……또 뭐 먹어요?”
브레슬이 앞에 맨 배낭에서 말린 고기를 꺼내며 말했다.
“보다시피, 육포입니다.”
“……그걸 왜 지금 먹으려는 거죠?”
“어리석은 질문이군요. 배가 고프니 먹는 거겠죠.”
“분명히 용병단장이랑 이야기하러 갈 때도 사람 머리통만한 빵을 먹고 있었는데 또 배가 고프시군요.”
앞뒤로 매고 있는 어린아이만 한 크기의 배낭에서 쉬지 않고 음식을 꺼내 먹는 브레슬!
아몬이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꿀꺽, 오물오물. 냠냠.”
“…….”
“하읍, 음…… 꼴깍!”
“……….”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배가 딱히 고프질 않았는데 살살 배가 고파 오는 것만 같았다.
“저…….”
“우물우물?”
“저도 육포 하나만…….”
순간 뒷걸음질 친 브레슬이 매섭게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으르렁거렸다.
“……아, 예. 됐습니다.”
무슨 동네 개 같은 반응에 식욕이 뚝 떨어진 아몬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얼마를 걸었을까.
식사를 마친 브레슬이 속도를 높여 따라붙었다.
“휴, 잘 먹었다.”
“…….”
“그나저나 확실히 느리긴 합니다. 다크엘프인 저라면 금방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쯧.”
“…….”
묵묵부답, 등만 보이고 걸어가는 아몬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브레슬이 조용히 육포 하나를 아몬의 어깨 너머로 밀어 넣어 줬다.
동시에 입으로 육포를 탁 받아먹은 아몬이 말했다.
“우물우물, 그러게 말입니다. 밤눈이 밝은 와이번을 낮에 공략하겠다는 의도는 알겠는데…… 이럴 거면 그냥 빠르게 가서 최대한 오래 정비하고 휴식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네요.”
“흠…….”
침음을 흘리는 브레슬을 슬쩍 뒤돌아본 아몬이 말했다.
“먼저 갈까요?”
“……그럴까요?”
“근데 따라오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브레슬이 코웃음 쳤다.
“흥! 허여멀겋고 나약한 엘프인 아나르엘이라면 몰라도, 밤의 일족인 저마저 우습게 보는 겁니까?”
“우습게 본 건 아니고요. 아무튼 따라올 수 있다. 이거죠?”
“그야. 물론이죠.”
“알겠습니다. 그럼 가시죠.”
가볍게 발목을 푼 아몬이 몸을 낮췄다.
곧이어 지면을 박찬 순간 아몬의 신형이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질러 쏘아지고, 그 뒤를 따라 브레슬의 한 줄기 검은 신형이 화살처럼 쫓아간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은장검 용병단의 후미의 인원들이 문득 뒤를 돌아봤다.
“……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 따라오고 있던 아몬과 브레슬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가 서둘러 선두의 단장에게 보고하고, 그 보고를 들은 메이트가 한심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흥, 느긋하니 어쩌니 하더니 뒤처졌나 보군.”
“어떡합니까, 단장님?”
“어떡하긴 뭘 어떡해? 뒤처지면 버리고 간다고 미리 말해 뒀으니 불만은 없겠지. 이대로 계속 행군한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응?”
그들은 저만치 앞에 쓰러져 있는 브레슬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몬을 따라가다 낙오한 것이다.
* * *
뒤처진 브레슬을 버리고 아몰 산맥 근처에 도착한 아몬은 아름드리나무 꼭대기에 선 채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몰 산맥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거대한 축조물이었다.
“……저게 킹 와이번의 둥지?”
일반 와이번도 나뭇가지, 나무둥치, 돌조각 등등을 섞어 기둥처럼 생긴 둥지를 짓곤 한다.
그 기둥의 꼭대기에 알을 낳고 보살피는 것이다.
그런데 ‘킹 와이번’의 둥지는 그 크기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높이도, 둘레도 무슨 성채의 탑 수준이잖아?’
근처의 빽빽한 나무들이 기둥의 허리께에도 가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근데 킹 와이번은 우리 영지 근처에서도 가끔 볼 수 있었잖아? 근데 저런 둥지는 아르마 산맥에선 전혀 못 봤던 건데…… 킹 와이번도 지역 따라 습성이 다른가?’
뭐, 몬스터 학자가 아닌 자신이 궁리해 본들 알 수 없는 일.
하여간 킹 와이번의 둥지를 유심히 바라보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다행히 지금은 킹 와이번이 없군. 그렇다면…….’
아몬이 비릿하게 웃었다.
‘이 참에 일반 와이번을 잡아서 손해를 최대한 메운다.’
마침 은장검 용병단도 도착하지 않았으니 남들 시선 개의치 않고 전리품을 독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리 마음먹은 아몬이 훌쩍 몸을 날리고, 아몰 산맥 안으로 들어가 발로 지면을 힘껏 박찬 순간.
콰아아앙-!
느닷없는 굉음에 놀란 와이번들이 나무 틈새에서 산새처럼 일제히 날아오른다.
-꽤애애액!
깜짝 놀라 하늘을 갈팡질팡 날아다니던 와이번들이 밝은 밤눈 덕분에 금세 아몬을 발견하고, 난데없는 먹이에 일제히 지면으로 쏜살같이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가장 먼저 아몬을 향해 달려든 와이번이 크게 한입 하려는 순간!
콰직-!
아몬이 냅다 후려갈긴 주먹이 와이번의 미간에 작렬했다.
-꽥!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지면에 처박히는 와이번!
다른 와이번들은 아몬에게 맞아죽은 와이번을 보며 비웃었다.
-캬캬캬캭!
얼마나 허약해 빠졌기에 고작 인간의 주먹질 따위에 맞고 쓰러진단 말인가?
와이번의 수치 같으니라고!
그리 생각하며 와이번들이 연이어 아몬을 향해 달려들고, 그 옆에 나란히 눕는 와이번 두 마리!
‘흠, 세 마리째.’
벌써 와이번 네 마리분의 불로소득을 올린 아몬의 입가에는 찢어질 것처럼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거, 잘하면 엄청 벌 수 있겠는데?’
하늘을 빽빽하게 가린 채 날고 있는 수많은 와이번들!
와이번의 소재는 어느것 하나 남기지 않고 비싸게 거래된다.
‘우리 영지에서도 와이번을 꽤 잡긴 했지만, 그걸론 우리 영지민이 쓸 장비나 괭이 만드는데 쓰는데도 부족할 지경이니 원.’
튼튼한 와이번 뼈로 만들어도 하루가 멀다 하고 망가지는 장비들!
아르마 산맥은 그 정도로 척박한 땅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잡으면 이야기가 달라! 싹 다 갖다 팔수 있다! 게다가 상회도 많으니 부르는 게 값으로 팔 수 있을걸?’
제국의 월등한 군사력 덕에 도시 근방의 몬스터들은 씨가 마른 상황인지라, 지금이야말로 목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몬이 우렁차게 함성을 질렀다.
“와 봐랏! 와이번들!”
호전적인 와이번이라면 자신의 고함에 반응해 맹렬하게 달려들 터!
하지만 웬걸, 아몬의 고함에 와이번들은 움찔하며 좀 더 높이 날아올랐다.
“……어?”
대체 왜?
당황한 아몬이 하늘을 나는 와이번들을 향해 돌을 집어던지자 놈들은 꺅꺅대며 하늘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무슨…… 왜 안 덤비지?”
와이번이 아니라 진짜 산새인가?
그 이후로도 한참이나 와이번들을 향해 필사의 도발을 일삼아 봤지만, 놈들은 더 높이 날아오를 뿐 전혀 달려들지 않았다.
그 사실에 아몬은 직감했다.
“설마…….”
옆에 놓여 있는 와이번 세 마리를 본 그가 중얼거렸다.
“달랑 세 마리 먹고 끝이라고……?”
다시 말하지만 아몬은 몬스터 학자가 아니다.
그가 생각했듯 와이번은 확실히 호전적인 몬스터였다.
다만 그것은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독립 와이번이 그럴 뿐, 킹 와이번이라는 우두머리가 존재하는 이상 무리는 가급적 ‘안전’을 도모하게 된다.
즉 와이번 세 마리가 연달아 아몬에게 박살 난 시점에서 킹 와이번을, 우두머리를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겁한 놈들! 도망가지 마! 맞서 싸워!”
-꺄캬캬캭!
“도망가지 마! 맞서 싸워!”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아몬은 연신 와이번들을 향해 악을 쓰고 있었다.
* * *
미리 정해 둔 야영 장소에 도착한 메이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교, 교무부장님 아닙니까?”
더 이상 와이번을 잡을 수 없다는 현실에 망연자실한 채 주저앉아 있던 아몬이 부스스 고개를 돌렸다.
“……이제 왔습니까?”
“어, 어떻게 여기 계신 겁니까? 분명 뒤처진 줄 알았는데…….”
“느리길래 먼저 앞질러 왔습니다.”
“……아, 앞질렀다고요?”
아몬이 앞질러 가는 기색을 전혀 느끼지 못했었다.
‘나도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검사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그렇다고 마법사도 아닌 것 같은데…….’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아몬이 여기에 먼저 와 있다는 것은 의미하는 것이 많았다.
‘게다가 벌써 와이번 세 마리를 잡았어……?’
메이트의 눈이 번쩍였다.
‘이 강함…… 역시 수상하군!’
메이트가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말했다.
“뭐, 그렇군요. 아무튼 그럼 슬슬 야영 준비를 할 테니 물러서시지요. 단원들의 피로도 풀 겸, 어두운 새벽녘이니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날이 밝은 후 공세를 취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근데 부학교장님은요?”
“저기 있습니다.”
메이트가 뒤편의 짐마차를 가리켰다.
브레슬은 짐마차에 묶인 채 축 늘어져 있었다.
‘……내버려 두자.’
아몬은 그들이 준비한 천막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이튿날, 이른 아침.
“치카치카…….”
양치를 하던 아몬이 멀찍이 보이는 킹 와이번의 둥지를 바라봤다.
“퉤, 단장님?”
“……예.”
“아직 킹 와이번이 안 왔는데요?”
“저도 눈 있습니다.”
“어떡하시려고요.”
“……기다려야죠.”
점심 무렵.
아몬이 식사를 하며 킹 와이번의 둥지를 바라봤다.
“아직 안 왔는데요?”
“……꿀꺽! 저도 안다고요.”
해가 떨어질 무렵.
아몬은 조용히 메이트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받은 메이트가 이를 악문 채 뚝뚝 끊기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압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
킹 와이번의 둥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몬이 말했다.
“설마 둥지를 옮긴 건 아니겠죠?”
“거참, 불길한 소리를.”
메이트가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의뢰주님께선 그냥 쉬고 계시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흠.”
침음을 흘린 아몬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산 너머로 모습을 완전히 감추는 태양.
해가 완전히 지고 밤이 도래하는 찰나였다.
구오오오오-!
돌연 들려온 하늘을 가르는 묵직한 파공음.
그 사실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올린 아몬은 볼 수 있었다.
새카만 하늘을 뒤덮은 한층 더 새카만 그림자.
킹 와이번이 나타난 것이다.
“……왔는데요?”
아몬의 말에 메이트가 씩 웃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저도 압니다.”
“…….”
“그럼 슬슬 준비해야겠군요.”
“예? 준비라뇨? 설마 공세 준비요?”
메이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몬이 얼른 뜯어말렸다.
“아니, 저놈들 밤눈 밝은 것 때문에 낮에 공세를 취하려 했던 거였잖아요? 그냥 날 밝고 공세 취하죠?”
아몬의 설득에도 메이트는 대쪽 같았다.
“기다릴 만큼 기다렸습니다. 게다가 놈이 또 떠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이 적기라고 봅니다.”
“하지만…….”
피식 웃은 메이트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우리 은장검 용병단의 실력을 못 믿는 겁니까?”
“…….”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메이트가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우리 은장검 용병단은 제국 제일. 그러니 마음 푹 놓고 계십시오.”
* * *
그리고 현재.
“크아악! 사람 살려!”
“킹 와이번, 너무 강하다앗!”
절규하는 은장검 용병단원들을 본 아몬이 한숨을 푹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