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54)
아카데미가 망했다 54화
일찍이 예견했던 결과.
킹 와이번의 날갯짓 한 번에 용병단원들이 땅을 구르고, 놈이 괴성을 터뜨리면 오줌을 지리며 달아나는 처참한 광경!
솔직히 아몬조차 킹 와이번과 대등한 엘더 드레이크와 마주한다면, 감자밭을 지키리란 목적이 없다면 줄행랑을 칠 것이다.
‘그 정도로 강한 몬스터를 상대로 무슨 무모한 짓들인지 원.’
다행이라면 이미 배를 잔뜩 채운 것인지 킹 와이번도 무모한 용병단원들을 딱히 죽일 생각은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둘 생각도 없어 보였다.
“으아악! 킹 와이번이 날 굴린다!”
-크께께껙!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것 같은 광경!
일반 와이번들도 우두머리의 장난감을 빼앗을 생각은 없다는 듯 멀찍이 떨어져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아몬도 일찌감치 멀리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저것도 오래가진 않겠지.’
고양이도 쥐를 죽일 생각은 딱히 없을 거다.
하지만 엄청난 체급 차이!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고, 곰이 장난으로 휘두른 앞발에 사람의 머리통이 터지는 것과 같은 이치!
게다가 조만간 질릴 게 분명했다.
‘으음, 저것들을 구해야 하는데 좋은 방법이 있을까?’
당장 떠오르는 해결책은 자신이 킹 와이번의 이목을 끄는 것이다.
영지에서 애용하던 도끼는 없지만, 근처에 굴러다니는 갖가지 병장기가 있으니 그럴싸한 걸 가져다 킹 와이번을 후려치면 킹 와이번의 목표는 자신으로 바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왜? 굳이?’
메이트에게 킹 와이번의 위험성을 몇 번이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그런 경고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게 누구지?
‘난 잘못 없어!’
그렇기에 아몬은 가만히 사태를 관망하기로 했다.
‘킹 와이번도 나쁜 뜻은 없을 거야. 다~ 잘되자고 하는 짓이겠지.’
도리어 킹 와이번을 변호하는 아몬!
‘그나저나 구경하다 보니 입이 좀 심심한데 먹을 거 없나? 아, 부학교장의 배낭에 씹을 거리가 잔뜩 있겠지?’
아직까지 짐마차에 묶여서 축 늘어져 있는 브레슬에게 다가간 아몬이 그녀의 배낭에 슬쩍 손을 댄 순간이었다.
“버리고 가지 마!”
“으헉!”
“흑, 뭐 저리 빠른…… 어?”
흠칫하며 아몬을 본 브레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버리고 간 게 아니었군요!”
“예?”
버리고 갔다.
근데 눈치를 보니 어제 뒤처져 기절하는 시점에서 기억이 끊긴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몬은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앞으로 부학교장을 통제해야 할 텐데 이 기회에 점수를 따 놓으면 일이 수월해지리라 판단했다.
“크흠흠, 제가 부학교장님을 버릴 리가 없죠. 쓰러지신 걸 보고 도로 돌아갔죠. 그럼요, 그럼요.”
“그, 그렇군요.”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쉰 그녀가 문득 자신의 몰골을 살펴봤다.
짐마차에 묶인 채 축 늘어져 있는 몸뚱이!
더구나 잠깐 묶여 있던 게 아니라는 듯 배 부분에 감각이 없었다.
“근데 내가 왜 여기 묶어 있죠?”
“아, 주무시는데 발버둥을 좀 심하게 치시더라고요.”
“나 잠버릇 좋은 편인데…….”
“익숙지 않은 잠자리라 그런 모양이죠.”
“흠…….”
미심쩍었지만, 곧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발을 버둥거렸다.
“그나저나 얼른 내려 주시죠.”
“넵.”
아몬은 브레슬을 내려 주며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배낭에서 육포를 슬쩍했다.
곧이어 짐마차에서 내려와 배를 문지르던 브레슬이 투덜거렸다.
“으으, 살살 좀 묶지. 배가 너무 아프잖습니까.”
“아, 저는 살살 묶어 놨는데 용병 놈들이 좀 더 단단히 묶었나 봅니다. 떨어질까 봐 걱정됐나 보죠.”
반대다.
아몬이 더 세게 묶었다.
아무튼 그 말에 브레슬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흥, 하여간 인간들이란…… 어라?”
따지고 싶다는 듯 용병들을 흘겨보려던 브레슬은 이제야 지금 상황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날갯짓하며 포효하는 킹 와이번!
공처럼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용병들!
그 광경에 브레슬이 경악했다.
“내 기름!”
“오우.”
이 광경을 보고도 킹 와이번의 기름을 먼저 찾는 건가?
이 정도 집념이라면 ‘너는 내가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던 아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브레슬이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는 듯 배낭을 벗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뭐 하시려고요?”
“용병들에게 한눈팔고 있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 틈에 우리가 킹 와이번을 퇴치하죠!”
“예?”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소리를 들은 아몬이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리라고요?”
언제부터 ‘우리’였지?
그러나 브레슬은 ‘우리’가 같은 편이란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듯 당당한 얼굴로 외쳤다.
“그래요! 우리라면 저 킹 와이번을 쓰러트릴 수 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아뇨, 정말입니다!”
당당한 브레슬의 태도에 아몬은 깨달았다.
“그렇군요. 직접 킹 와이번의 입속으로 들어가려는 거군요.”
1년 365일 배 터지게 먹어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다크엘프라면 제아무리 배부른 킹 와이번이라 하더라도 군침을 흘릴 터!
“좋습니다! 저놈이 부학교장님을 먹어치울 때 제가 기습하겠습니다!”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겁니까!”
빽 소리를 지른 브레슬이 천천히 심호흡을 하더니 회색빛 머리칼을 죽 쓸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밤은 대공의 시간.”
“……예?”
“해 저문 그늘진 땅에 그대가 오리라.”
“……?”
“하나, 하나, 하나, 둘.”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브레슬의 모습에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미쳤군.’
횡설수설! 말로만 듣던 조현병의 증상이 아니던가!
때문에 아몬이 슬그머니 브레슬의 등 뒤로 이동해 자리를 피하려는 순간.
콰하아아악-!
돌연 그녀의 발밑에서 거꾸로 솟는 폭포처럼 솟구치는 그림자.
그 광경에 아몬이 눈을 부릅뜬 찰나 브레슬의 말이 이어졌다.
“간청하노니, 피를 바친 천한 종의 부름에 이 땅을 디디소서.”
그 중얼거림이 끝난 순간, 아몬은 깨달았다.
‘……어둡다.’
해가 저문 밤이라 하더라도 어느새 주변은 지나치게 어두웠다.
그 사실에 아몬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달이 구름에 묻히기라도 한 것인가?
아니, 새카만 밤하늘에 달은 휘영청 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데룩-!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스르르 굴러 간다.
이윽고 깨달은 것은, 그것이 달이 아니라 ‘눈동자’였다는 사실.
그 사실에 경악한 아몬이 입을 쩍 벌린 순간 브레슬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밤의 대공, 그믐밤.”
“이, 이건 설마 정령술입니까? 근데 밤의 정령은 처음 들어 보는데…….”
브레슬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흑마법의 일종입니다.”
“……뭣!?”
“위대한 밤의 대공, 그믐밤의 힘을 일부 불러내는…….”
브레슬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몬이 그녀의 목을 손날로 후려쳤기 때문이다.
“케헹!”
“아카데미 부학교장이라는 엘프가 흑마법을 쓰면 어떡합니까!”
“콜록! 컥, 그, 금지된 것도 아닌데 뭐 어떻습니까!”
“금지만 안 됐지, 흑마법 쓰면 어떤 취급받는지 몰라서 그러시냐고요! 누가 다크엘프 아니랄까 봐 흑마법이라니……!”
맞는 말이다.
그러나 변명하려는 듯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던 브레슬이 고함을 질렀다.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지금 킹 와이번 기름, 아니지. 용병단원들이 몰살당할 처지에 놓였는데!”
인의를 논하는 브레슬! 그러나 아몬은 담담했다.
“그 또한 운명이지요.”
브레슬이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이 자식도 미친놈이구나.’
새삼 그 사실을 깨달은 브레슬이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하면 아몬을 설득할 수 있을까?
‘무사히 킹 와이번의 기름을 손에 넣을 수 있을…… 아!’
눈을 번쩍인 브레슬이 외쳤다.
“이대로 있으면 남은 계약금조차 못 받을 수 있다고요!”
“……예?”
“용병단이 몰살당했으니 위약금은커녕, 남은 잔금조차 위로금으로 지급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계약서에 명시된 건 아니지만, 관례가 그렇다고요!”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죽은 사람들에게, 특히 유족에게 ‘댁내 용병이 의뢰를 망쳤으니 위약금 내놓으쇼.’라고 했다는 게 알려졌다간 여러 사람들한테 욕먹기 십상일 테니까.
더구나 ‘아카데미 교사’라는 인간이 그랬다면 더더욱.
“그러니까…….”
“뭐 하고 계십니까?”
어느새 아몬은 근처에 굴러다니는 용병들의 배특액스를 어깨에 걸친 채 결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른 저 악랄한 킹 와이번을 퇴치하러 가죠.”
“……훗!”
브레슬과 아몬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환장의 임시 동맹 결성!
* * *
“크아악!”
-끼헤헤헤헥!
킹 와이번의 날개에 처참하게 땅을 구른 메이트가 기침을 토했다.
“쿨럭! 이, 이런 젠장…….”
그는 자신의 실력에 상당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필사적으로 휘두른 검은, 킹 와이번의 가장 연약한 부위인 날개 피막조차 찢지 못하고 튕겨질 뿐이었다.
‘아, 아몬 그 인간의 말이 정말이었어.’
킹 와이번은 은장검 용병단이 감당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일찍 해도 늦는 법.
슬슬 노는 게 질린 모양인지 킹 와이번이 슬금슬금 발톱을 세우며 다가오고 있었다.
“헉, 헉…… 쿨럭! 이렇게 죽는 건가…….”
메이트가 참담한 심정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교무부장이라는 인간의 말을 들을 걸…….’
후회하는 한편 원망도 들었다.
‘한 번만 더 설득하지! 그럼 나도 말 들었을 텐데!’
말 같지도 않은 원망을 늘어놓던 메이트가 눈을 스르르 떴다.
그리고 킹 와이번의 발톱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가 도로 눈을 감았다.
‘이렇게 죽는구나.’
그는 다가올 죽음에 각오를 굳혔다.
그리고 일 초, 이 초, 삼 초…….
‘……왜 아직 아무 일도 없지? 아, 벌써 죽은 건가?’
예상한 통증이 느껴지지 않자 스르르 눈을 뜬 메이트가 눈을 부릅떴다.
“뭐, 뭣……!?”
킹 와이번은 시커먼 그림자에 휘감긴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킥, 캬아아……!?
그림자에 입을 단단히 틀어 막힌 킹 와이번이 움찔움찔 경련하는 광경을 본 메이트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이, 이게 무슨…….’
그가 경악에 휩싸여 있는 와중이었다.
부우우우웅-!
돌연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새빨간 섬광.
주마등일까?
그 섬광이 메이트의 눈에 천천히, 느긋하게 각인된다.
‘저건…….’
본인을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교무부장이라 소개한 청년.
아몬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며 휘두르는 배틀액스가 킹 와이번의 정수리를 향해 달려들고 있다.
대체 얼마나 빠른 속도인 건지, 배틀액스가 공기에 달궈져 붉은빛을 자아내며 빛줄기로 보이고 있다.
흡사 한 줄기 운석처럼.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주마등이란,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때나 목격할 수 있는 것.
그 예견, 예상대로 아몬이 휘두른 배틀액스가 킹 와이번의 정수리와 맞닿으며 일어난 막대한 충격은 단숨에 메이트를 집어삼켰다.
“꺽…….”
그 충격에 휘말려 붕 날아오르는 메이트와 다른 용병단원들!
이윽고 붕 떠오른 용병들이 처참하게 바닥에 곤두박질치고, 그와 동시에 지면에 내려선 아몬이 한계까지 멈췄던 숨을 훅 토해 내며 중얼거렸다.
“젠장…….”
완전히 부서져 버린 배틀액스‘였던 것’을 지면에 휙 내던진 그가 투덜거렸다.
“더럽게 튼튼하네.”
현재 자신이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충격을 가했다고 생각했건만, 킹 와이번은 멀쩡했다.
-크르르르르…….
오히려 방금 전의 일격에 크게 분노한 듯 눈을 벌겋게 충혈시킨 채 흉포한 목울음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분노했다는 것은 조금은 먹혔다는 뜻.
자신의 공격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던 엘더 드레이크에 비하면, 조금의 효과는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덜걱-!
땅에 굴러다니는 검 한 자루를 집어든 아몬이 브레슬을 힐끔 바라봤다.
“조금만 더 묶어 놓을 수 있죠?”
그 사이 자신이 킹 와이번의 숨통을 끊어 놓겠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었는데, 브레슬이 창백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뇨.”
“엑.”
그와 동시에.
퍼어어엉-!
자신을 묶고 있던 그림자를 거칠게 떨쳐 낸 킹 와이번이 하늘을 향해 격렬하게 포효했다.
-크와아아아아!
대기를 거세게 흔들고 귀를 찢는 듯한 포효.
그 괴성에 아몬은 직감했다.
‘X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