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56)
아카데미가 망했다 56화
이른 아침.
슬로스는 연무장 구석에 앉은 채 눈을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흐아아암…….”
거하게 하품을 한 슬로스가 손을 만지작거렸다.
밤새 지금까지 검을 휘둘러 온 탓에 손바닥이 욱신거렸다.
‘오늘따라 수련을 너무 늦게까지 해 버렸네…… 갑자기 무언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무 몰두해 버렸어.’
외부로 나온 피드 가문 출신은 전원 소드 마스터 이상의 실력자건만, 이례적이게도 슬로스 혼자 소드 익스퍼트 수준이었다.
‘아버지도, 오빠들도 내 실력에 너무 개의치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덕분에 마음의 부담, 조급함은 조금 덜었다.
하지만 슬로스에게도 자존심이 있다.
그렇기에 가볍더라도 마음의 짐으로 한편에 간직하고 있었건만, 그조차도 오늘 검을 휘두르며 느꼈던 감각이 부담을 희망으로 바꿔 주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 조만간 그 경지에 오를 수 있을지도.’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에 키득거리며 웃은 슬로스가 바닥에 누웠다.
몸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으니 휴식하며 아까 느낀 감각을 머릿속으로 곱씹어 볼 생각이었다.
‘그래, 자는 게 아니라 누워서 생각을 좀 하는…….’
슬로스는 그대로 잠들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꾸아아아아앙-!
돌연 교사의 숙소 건물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굉음.
아카데미는 물론, 도시 아무르 전체를 울리는 것 같은 소리에 슬로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고 말았다.
“뭐, 뭐야!?”
아무래도 잠결에 들은 환청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카데미의 담장 바로 밖에 위치한 민가에서도 ‘무슨 소리야?’ 라거나 ‘천둥인가?’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으니까.
얼마나 큰 소리였냐면, 그 시각 학교장실의 아나르엘은 엘프 특유의 예민한 청력 때문에 놀라 기절할 정도였다.
아무튼 슬로스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바, 방금 그 소리는 숙소 건물에서 들린 것 같았는데?’
잠이 확 달아난 슬로스가 한달음에 숙소 건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웬 소리인가 싶어 숙소에서 튀어나온 다른 교사들이었다.
“슬로스, 자네도 들었는가?”
“아, 응, 마리온 아저씨. 그거 대체 무슨 소리였어?”
“그, 글쎄…… 나도 이제 막 도착한 참이라…….”
마리온과 함께 있던 카이도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 목소리였던 것 같은데 말이죠.”
그 말에 슬로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사람 목소리치곤 너무 컸어.”
“그건 그랬죠…….”
“게다가 너무 기괴했어.”
“그것도 그렇죠.”
카이와 슬로스는 납득한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지만, 마리온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나는 분명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분명 예전에 술 취했을 때 듣고 놀라서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던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마리온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카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데 아몬 선배님은요? 방금 그 소리를 못 들으셨을 리가 없잖아요. 들으셨으면 우리처럼 이렇게 나왔을 테고.”
마리온이 말했다.
“어제 부학교장님과 밤늦게 나가던 것 같던데, 아직 안 돌아온 거 아닌가?”
“음…… 맞네요, 어제 늦게 나가셨지. 아직 안 오신 건가.”
그때 슬로스가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아몬이 부학교장님이랑 밤늦게 둘이 밖에 나갔다고?”
“예? 아, 예. 모르셨어요?”
슬로스는 그때 연무장에서 검술 수련을 하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몰랐다.
“……둘이서 밤늦게 웬 외출이래?”
“뭐, 용병단에 의뢰한 게 있어서 동행한다고 하던데요.”
슬로스가 팔짱을 낀 채 떨떠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럼 아직 안 온 건가…….”
“아니, 그 둘은 아까 전에 도착했네.”
“앗.”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일행들은 라인벨트를 볼 수 있었다.
“조금 전에 부학교장과 함께 복귀했지. 근데 방금 그 소리는 대체 뭐였나?”
마리온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요, 어르신. 저희도 그걸 알고 싶습니다그려.”
“흠, 그런가? 황태…… 아니, 카이 자네는 짐작 가는 게 없나?”
말실수를 할 번한 라인벨트를 가볍게 흘겨본 카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눈을 번뜩인 카이가 중얼거렸다.
“이 소란에도 아몬 선배님이 안 나오신 걸 보면 혹시……?”
그 말에 모두들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사건의 당사자이거나, 혹은 소란에 휘말린 피해자이거나 둘 중에 하나이리라.
때문에 그들은 황급히 아몬의 방으로 향했다.
“아몬, 자네 안에 있는가?”
마리온이 문을 두드려 보며 불러 봐도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니, 인기척조차 없었다.
그 사실에 어깨를 으쓱인 마리온이 말했다.
“방 안에 없나 봅니다만?”
“흐음…….”
“아니면 애초에 방에 오지 않고 어디로 간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침음을 흘리며 수염을 쓰다듬던 라인벨트가 눈을 번뜩였다.
“아니, 분명 방에 오긴 왔을 걸세.”
“예?”
“내가 녀석에게 온 우편을 문 앞에 놔뒀거든.”
“……아!”
지금은 문 앞에는 우편이 없었다.
즉 우편을 들고 방 안에 들어갔다, 거기까지는 자연스러운 추리였다.
문 앞의 우편만 달랑 가지고 곧바로 다른 곳으로 향했을 가능성은 낮으니까.
“어르신, 추리 실력이 상당하십니다?”
“껄껄껄! 내가 어릴 때부터 머리가 좋다는 말은 숱하게 들었지. 학문에 뜻이 없었을 뿐이지.”
“과연, 과연.”
쑥덕거리는 그들을 보던 슬로스가 퉁명스레 말했다.
“그냥 문 열고 들어가면 되지.”
“음? 하지만 허락도 없이 남의 방을 어찌…….”
“뭐 어때요? 없으면 안 들어간 걸로 치면 되고, 있으면 대답이 없어서 걱정돼서 들어와 봤다고 하면 되죠.”
“……그런가?”
그들도 ‘설마 그 아몬이 무슨 변을 당한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조금은 하고 있었기에 슬로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크흠흠, 아몬? 그럼 들어가겠네!”
그리 말하며 문을 연 마리온이 눈을 부릅떴다.
“허억!?”
대자로 뻗어 쓰러진 아몬을 본 마리온이 황급히 달려들었다.
“아, 아몬! 자네……!”
그의 맥을 짚어 본 마리온이 안도로 한숨을 쉬었다.
“휴, 숨은 붙어 있군.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그때 맥을 짚고 있던 마리온은 아몬이 웬 편지 한 장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까 받았다던 우편인가?’
설마 이 편지 때문에 충격을 받고 쓰러진 것일까?
‘대체 무슨 편지길래?’
남의 편지를 멋대로 훔쳐본다는 죄악감이 먼저 고개를 들었지만, 뒤따라오는 호기심은 고개를 든 죄악감을 단숨에 찍어 눌렀다.
“큼! 커흠흠! 에에, 이 편지 때문에 아몬이 정신을 잃은 것 같으니까, 해결을 위해서라도 편지를 읽어 보는 게 좋겠습니다. 모두들 어찌 생각하십니까?”
책임감을 타인과 함께 공유하려는 마리온의 야비함!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두들 마리온의 의견에 동의했고, 마리온은 얼른 편지를 집어 들고 훑어봤다.
우선 타인에게 공개해도 될 내용인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
‘응? 교원 자격증 시험 결과 통보?’
눈살을 찌푸린 마리온이 첫줄을 훑어봤다.
‘2급 교원 자격증 시험을 응시하신 아몬 드레이크 씨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이어진 글귀.
‘너무나도 아쉽지만, 아몬 드레이크 씨는 이번 시험에 불합격하셨으므로 반년 후 재 응시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거기까지 읽은 마리온이 입을 열었다.
“교원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졌다는 편지인데?”
“……예?”
카이가 눈을 끔뻑거리며 말했다.
“아, 아아. 1급 교원 자격증이요? 그 시험이 좀 어렵긴 하죠.”
“아니, 2급.”
“……예?”
카이가 입을 쩍 벌렸다.
“2급 교원 자격증 시험을…… 떨어졌다고요?”
“……그래.”
슬로스도 눈을 부릅뜬 채 입을 쩍 벌렸다.
“2급이 떠, 떨어지는 게 가능해……?”
“저, 저는 한 번도 못 봤어요.”
“……나도 처음 보네.”
“세상에…… 똥멍청이도 붙는다는 2급을 떨어져?”
라인벨트도 경악에 휩싸인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도 나중에 제자를 가르칠 일이 있을까 싶어 2급 자격증은 따 뒀거늘…….”
그들이 충격에 휩싸여 쑥덕거리는 와중이었다.
“으, 으으으…….”
신음을 흘리며 부스스 몸을 일으킨 아몬이 머리를 짚은 채 끙끙거렸다.
“머, 머리야…… 응? 모두들 제 방에 웬일입니까?”
“……아몬, 자네 괜찮나?”
“예? 아아, 무슨 끔찍한 악몽을 좀 꾸긴 했는데 괜찮습니다.”
“…….”
“응? 마리온 선배님, 그거 저한테 온 편지 아닙니까?”
아몬이 편지를 확 낚아채며 투덜거렸다.
“아니, 남의 편지를 왜 멋대로 읽고 그래요?”
“…….”
“쯧, 그보다 얼른 확인해 볼까. 오늘 교원 자격증 시험 결과 나오는 날이거든요.”
아몬이 편지를 펼치며 피식 웃었다.
“시험에서 떨어지는 되도 않는 악몽을 꿨는데, 내가 떨어질 리가 없…….”
편지를 읽는 아몬의 눈동자는 어느새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일 초, 이 초, 삼 초.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꾸아아아아악!”
귀청을 터뜨리는 것 같은 거대한 괴성을 터뜨린 아몬이 뒤로 벌렁 나자빠지더니 다시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아까 도시 전체를 울린 정체불명의 괴성은 바로 아몬의 비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면전에서 괴성에 직격당한 마리온은 뒤로 나자빠지며 깨달았다.
‘왠지 어디서 들어 본 것 같더라니, 경진대회 때 아몬 녀석이 질렀던 고함이었구나……!’
그리고 그 시각, 학교장실.
엘프의 청력은 인간과 비교할 바가 아니라, 처음 들려왔던 괴성 때문에 깜짝 놀라 기절했었던 아나르엘.
정신을 차린 그녀는 긴 귀를 꼭꼭 접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아, 아까 그 소린 뭐였지? 너무 놀라서 기절했었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녀가 한숨을 쉬며 귀에서 손을 뗐다.
“휴, 깜짝 놀랐네…… 좀 있다 나가서 확인을…….”
-꾸아아아아악!
재차 들려온 굉음에 아나르엘은 눈을 까뒤집은 채 옆으로 쓰러져 또다시 기절하고 말았다.
* * *
그로부터 며칠이 흐른 후.
역사 수업 시간.
클로에, 레이몬드, 보리스. 세 학생은 서로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 삼 일짼데…… 오늘도?”
“글쎄…… 그렇지 않을까?”
“……나, 그 선생님 별로야.”
투덜거리던 레이몬드가 입을 딱 다물었다.
어느새 ‘카이’가 교탁 뒤에 서 있었다.
“하하하, 레이. 별로라 미안하구나!”
“……죄송합니다, 선생님. 농담이었어요.”
“하하, 괜찮다! 앞으로 내가 더 잘하면 되는 것 아니겠니!”
“…….”
저 태도가 별로라는 것이다.
신입의 뒤틀린 열정!
그것이 레이몬드를 거북하게 하고 있었다.
아무튼 카이가 또 수업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클로에가 손을 들며 말했다.
“선생님, 아몬 선생님은요?”
“응? 아아, 선배님은 아직 몸이 좋지 않으시단다.”
교원 자격증 시험에 불합격한 아몬은 그날부로 앓아누워 버렸다.
“휴, 얼른 나으셔야 할 텐데 말이지.”
“……….”
때문에 카이가 대리로 역사 수업을 진행하고 있긴 한데, 아몬의 수업에 익숙해져 있었던 학생들은 카이의 수업이 영 불만이었다.
‘카이 선생님은 과자도 안 주셔.’
‘쉬는 시간도 거의 없어.’
‘자꾸 뭘 열심히 외우라고 닦달하는 게 싫어.’
널널한 아몬의 수업에 길들여져 있기에 카이의 빡빡한 수업이 싫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은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아몬 선생님 병문안 가자. 그럼 선생님도 빨리 기운을 차리실 거야.”
“그러자 그럼 병문안 선물은?”
“음…….”
레이몬드와 보리스가 먼저 주머니를 까뒤집었다. 그리고 나온 것은 동전 세 개!
레이몬드는 라인벨트에게 용돈이라는 것을 받아 본 기억이 없고, 보리스는 돈이 있을 리가 없는 환경.
그때 클로에가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난 돈 있어.”
“응? 무슨 돈…… 아!”
클로에가 꺼낸 주머니에는 경진대회 때 받은 우승 상금이 들어 있었다.
못된 선생들이 조금씩 빌려 가긴 했지만, 이자를 넉넉하게 쳐서 받았으니 클로에의 수중엔 무려 13골드라는 거금이 존재했다.
때문에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던 클로에가 문득 레이몬드를 보며 말했다.
“근데 넌 우승했잖아? 네 상금은?”
레이몬드가 슬픈 얼굴로 고개를 떨어트렸다.
“할아버지가 검사에게 금은 사치라면서 강에 버렸어.”
“…….”
클로에와 보리스는 측은한 얼굴로 레이몬드를 바라봤다.
“클로에, 그럼 이 돈으로 아몬 선생님 병문안 선물 사려고?”
그때 보리스가 의견을 냈으나, 클로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응? 그럼?”
“이걸론 모자라.”
“뭐?”
머릿속으로 가만히 셈을 하던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리스, 너는 기억하지?”
“응? 뭘……?”
“전에 우리가 갔던 투기장.”
“……!”
보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클로에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우리, 돈 한번 불려 보자. 그리고 선생님 병문안 선물을 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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