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57)
아카데미가 망했다 57화
학생들은 우선 아몬을 만나러 갔다.
적어도 어떤 선물을 원하는지 취향 정도는 알아야 할 테니까.
물론 대놓고 물을 생각은 없었다.
교사 된 자로서 학생이 선물한답시고 취향을 물을 때 넙죽 말할 리 없을 테니까.
물론 그건 학생들의 생각이었고, 아몬이었다면 ‘크흠, 요즘 그게 좋다더구나.’하며 교사와 학생 간의 정을 우선했을 테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아몬의 숙소로 향했건만, 마주친 것은 아몬의 방에서 쫓겨나듯 떠밀려 나온 마리온이었다.
“어휴. 아몬, 저 녀석도 참…….”
“마리온 선생님?”
“오, 너희들이 여기까지 웬일이냐?”
“아몬 선생님이 편찮으시다 들어서 병문안 왔어요.”
마리온이 손사래를 쳤다.
“어휴, 아직 들어가지 말거라. 녀석이 교원 자격증 시험에 떨어진 걸 가지고 조금 놀렸더니 사람만 보면 난리를 피우는구나.”
한숨을 쉰 마리온이 아몬을 ‘조금 놀렸던 것’을 떠올렸다.
‘으하하! 우리 뒷집 코볼트도 딴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져?’
‘빠드득! 아드드득!’
‘어디 보자…… 어이구! 꼴에 다른 과목은 죄다 합격이로군? 근데 교사 적성 부문에서 완벽하게 떨어졌구먼!’
1번 문제, 학생이 큰 실수를 저질렀을 때 취해야 할 교사의 행동은?
아몬의 답안, 크게 혼쭐을 낸다!
답지를 본 슬로스가 아몬을 점잖게 타일렀다.
‘이럴 땐 입 바른 말로라도 적어 내야지.’
‘하, 하지만…….’
‘나도 시험 칠 때만은 천생 바른 생활 교사였는데.’
본인이 교사로서 영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으니 가능한 행동!
그러나 아몬은 자신의 행동에 한 치의 오점도 없다 믿고 있기에 자기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적어 낸 것이다.
만약 질문대로 학생들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면 아몬은 녀석들의 눈물 콧물을 쏙 빼놓을 것이다.
여태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없으니 그럴 일 없었던 것뿐이지.
‘호, 혼날 일을 저질렀으면, 따끔하게 혼내야죠! 그래야 다신 실수를 안 할 테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시험이잖아. 우선은 놀란 학생들을 진정시키고 상황을 수습한다. 그리고 훗날 학생들의 잘못을 일깨워 준다. 이게 정답이지.’
‘그런 말랑말랑한 걸로 무슨 잘못을 깨닫고 반성한단 말입니까!’
‘……그건 그래.’
어느새 슬로스 역시 설득당하고 있었다.
뭐, 이후로도 마리온과 슬로스는 아몬을 놀리고 또 놀렸다.
하지만 거기까진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참을 수 없었던 것.
‘……부르셨습니까, 학교장님.’
‘네, 아몬 선생님. 그보다 교원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졌다면서요?’
‘……그렇게 됐습니다.’
‘그럼 교무부장 건은…… 없던 이야기가 되겠네요.’
아몬은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교원 자격증을 따는 게 교무부장 직위의 조건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 기회를 노려 보죠…….’
‘흠, 교무부장 자리가 급한 건 아니니까요. 그나저나…….’
학교장이 키득거리며 내뱉은 말.
‘만날 저더러 빡통이라 놀리더니, 이제 누가 빡통이죠?’
그 말에 아몬은 결국 침몰하고 말았다.
여태 빡통이라 여기던 이에게 빡통이라 모욕당하는 굴욕! 분노! 설움!
아무튼 현재의 아몬은 화병으로 앓아누워 있었다.
“그렇게 됐으니 지금 아몬을 만나는 건 관두려무나.”
“아, 네…… 그럼 혹시 아몬 선생님 병문안 선물로 좋은 게 있을까요?”
“응? 병문안 선물?”
마리온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야 당연히 술…….’
아니, 화병 걸린 사람에게 술을 선물했다간 자신 같은 알코올 중독자만 하나 더 늘어날 것이다.
‘학생이 교사에게 술을 선물하는 것도 모양새가 우습고 말이지.’
생각에 잠겨 있던 마리온이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기특하구나. 어린 녀석들이 선생님의 병문안 선물을 고민하다니.”
보리스의 머리를 북북 쓰다듬은 마리온이 말했다.
“내가 아파도 병문안 올 거지?”
“어…… 네, 물론이죠.”
“방금 그 정적은 뭐냐?”
섭섭함 섞인 헛웃음을 흘린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래. 나랑 같이 나가서 아몬에게 줄 선물을 찾아보자꾸나. 근데 이것 하나는 명심하렴.”
푸근하게 웃은 마리온이 말했다.
“아몬도 비싼 선물은 바라지 않을 거란다.”
아니다.
아몬은 바란다.
“그러니 너희의 마음이 전해질 수 있는 선물을 생각해 보자. 알겠지?”
“네! 선생님!”
* * *
“어…… 얘들아? 내가 분명 꽤 멋진 말을 한 것 같은데…….”
마리온이 눈살을 찌푸린 채 주변을 둘러봤다.
“……왜 이런 곳에 온 거니?”
투기장 술집!
교사로서 학생에게 건넨 따스한 조언의 결과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다.
마리온의 물음에 보리스가 클로에를 가리켰다.
“클로에가 돈 조금 더 불려서 아몬 선생님한테 좀 더 좋은 선물을 사 드리고 싶대요.”
“……그렇구나.”
아무래도 따스한 조언은 클로에에게 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마리온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클로에, 잘 생각해 보렴.”
“네.”
“네가 이런 곳에서 돈을 벌어서 아몬에게 선물한다 한들, 과연 아몬이 마음에 들어 할까?”
클로에는 선물을 받은 아몬을 상상해 봤다.
‘고맙구나! 클로에!’
마리온도 아몬을 상상해 봤다.
‘정말 고맙구나! 클로에!’
클로에와 마리온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하실 것 같아요.”
“그럴 것 같구나.”
쯧 혀를 찬 마리온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하지만 얘들아, 교사로서 이런 행동은 용납…….”
“술 나왔습니다.”
“헛! 아무르의 세 번째 가는 명주인 올 데이 아무르!”
군침이 맺힌 혀를 날름거리는 마리온!
그 광경을 본 클로에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네.’
예전에 이곳에 함께 온 적이 있으니까 마리온도 들어오는 것 자체는 거리낌 없으리라.
하지만 학생이 이런 곳에서 돈을 번다는 행위 자체는 반대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선생님의 입을 막을 셈으로 비싼 돈 들여 주문한 술인데, 다행히 잘 먹혀들었네.’
결국 마리온은 술집에 출입하기 위한 보호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
게걸스레 술병을 핥는 마리온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던 보리스가 클로에를 슬며시 바라봤다.
그런 보리스의 눈에는 클로에를 향한 공포가 진하게 맺혀 있었다.
“흐, 흠흠. 클로에, 그럼 이제 어떻게 하려고?”
“돈 걸고 싸워야지. 지난번에 아몬 선생님이 하는 걸 봤으니까 할 수 있어.”
“……그건 또 언제 봤대?”
아몬이 보리스에게 돈을 걸러 떠날 때 클로에는 아몬에게서 조금도 시선을 떼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그런 게 있어. 아무튼 순서는 어떻게 할까?”
“흐음…….”
보리스가 레이몬드를 슬쩍 바라봤다.
“레이, 한번 해 볼래? 여기는 처음이잖아.”
하지만 레이몬드는 지금 당장은 나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주문한 술과 함께 나온 안주를 허겁지겁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것만 좀 먹고 할래.”
“그래…… 안 뺏어 먹을 테니까 천천히 먹어…….”
라인벨트와 함께 살 땐 산짐승이 배를 곯을 정도로 산나물이란 산나물은 몽땅 다 캐 먹고 살던 레이몬드다.
때문에 녀석은 아카데미로 온 이후로 매 식사마다 입 호강하고 있는 상황!
더구나 술집의 기름진 안주는 레이몬드에겐 한 조각도 놓칠 수 없는 맛 좋은 별미였다.
아무튼 한숨을 쉰 보리스가 말했다.
“휴, 그럼 클로에 네가 먼저 해.”
“……너는 안 해?”
“나, 나는 요즘 검술 훈련도 제대로 안 하잖아…….”
“……하긴, 알았어.”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을 일으킨 클로에가 말했다.
“무섭다고 말을 하지.”
“……뭣!”
발끈한 보리스가 말했다.
“내가 이런 걸 무서워할 줄 알아? 안 무서워!”
“그럼 할래?”
“…….”
“싫음 말고.”
이 시점에서 보리스는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싫으면 하지 말라 말하는 클로에의 눈이 걱정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보리스 역시 어엿한 남자!
“할게!”
“응, 알았어.”
클로에는 접수처로 향하며 생각했다.
‘나중이 걱정되네, 보리스.’
너무나도 쉬운 남자, 보리스!
클로에는 접수처의 직원에게 다가가 돈주머니를 건네며 말했다.
“보리스한테 1골드 걸게요.”
“응?”
이런 곳과 어울리지 않는 소녀가 다가와 돈을 걸자 직원은 적잖이 당황했다.
“호, 혼자 온 거니?”
“아뇨. 저기 있는 테이블인데, 삼촌이 많이 취하셔서 대신 다녀오래요.”
직원은 클로에가 가리킨 테이블을 바라봤다.
그 말대로, 웬 중년인이 술에 떡이 된 채 테이블에 엎어져 있었다.
“그렇구나. 알았다. 보리스한테 1골드.”
클로에가 자리로 돌아가고, 명단에 이름을 기입하던 직원은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보리스? 분명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이름인데…….’
생각에 잠겨 있던 직원이 흠칫하며 한 서류철을 집었다.
[요주의 고객] [보리스-갈색 머리칼의 소년] [클로에 아란-금발의 소녀] [마리온 럼덤-요주의 인물. 주정뱅이.] [돈을 따고 도망침. 재방문 시 필히 보고 바람.]직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 들어 본 것 같더라니…… 아까 그 소녀가 클로에인가?’
히죽 웃은 직원이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 * *
투기장 술집의 2층.
경기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상석에 앉은 채 술잔을 기울이던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호오, 놈들이 또 왔다고?”
“예, 마스터.”
“후후, 한동안 얼씬도 않더니 정신 못 차리고 또 기어 들어온 건가…….”
와인잔을 기울이던 사내가 말했다.
“해결사 덱슨을 불러라.”
“예, 마스터. 하지만 이번 경기는 이미 시작했습니다만…….”
“흥, 상관없다. 지난번에도 보리스와 클로에라는 꼬맹이가 경기에 나섰었지? 오늘도 그 두 녀석이 왔다면 이번에도 두 경기에는 참가하겠지.”
사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음 경기에 처절하게 짓밟아 주면 될 일이지.”
“마스터, 지난번에도 그랬다가 놈들이 떠났습니다만.”
“…….”
사내가 와인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이번엔 못 가게 해.”
“……아, 예.”
“그보다 해결사 덱슨을 불러라.”
“불렀습니다, 불렀어요.”
“…….”
괜히 멋쩍어진 사내가 아래층의 경기장을 내려다봤다.
마침 보리스의 경기가 시작하고 있었다.
* * *
경기장 밖.
얼굴에 큰 흉터가 있는 남자.
해결사 덱슨이 보리스의 경기를 지켜보며 코웃음을 쳤다.
이곳 투기장 술집의 마스터가 처참하게 짓밟아 주라던 꼬마의 실력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었다.
“이, 이얍!”
“하하! 느리구나!”
“에이잇!”
“크하하! 어린놈, 각오는 됐겠…… 꽥!”
보리스에게 남성의 소중한 부분을 맞고 나동그라지는 대전자의 모습에 관객들이 질겁하며 다리를 오므렸다.
그리고 경기를 지켜보던 해결사 덱슨도 다리를 오므린 채 중얼거렸다.
“흥, 기본기는 꽤 탄탄한 것 같지만 그것뿐이군.”
하긴, 어린 꼬마의 실력이 좋아 봐야 얼마나 좋겠는가.
덱슨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말했다.
“해결사 덱슨님, 바로 다음 경기에 나가시면 됩니다.”
“음. 알겠다.”
잠시 후.
호명된 덱슨이 철창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자신의 희생양이 될 꼬마를 향해 말했다.
“어이, 꼬마야.”
“……네?”
“너희들은 너무 설쳤다. 적당히 놀았어야지.”
“……?”
“어른의 일을 방해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깨닫게 해 주마.”
살기어린 얼굴로 히죽 웃은 덱슨이 검을 뽑았다.
그것을 본 꼬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검을 써도 되나요?”
“흐흐흐, 물론. 원래 룰은 맨손이지만, 이번 경기는 특별하거든.”
“아, 그래요?”
“그래.”
차갑게 웃은 덱슨의 검에서 푸른빛이 뿜어졌다.
소드 익스퍼트의 전유물, 소드 오러였다.
“검을 쓰고 싶다면 마음껏 쓰거라.”
“아, 네.”
고개를 끄덕인 꼬마가 손을 뻗은 순간.
휘익-!
어느 누구도 손대지 않았건만, 경기장 바깥에 있던 테이블에서 마치 빨려 들어오듯 날아오른 검이 꼬마의 손에 쥐어진 찰나.
쿠오오오오-!
검에서 소드 마스터의 전유물,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오르고.
후식으로 사과를 와삭 베어 문 꼬마, 레이몬드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얼른 시작하죠.”
오러 블레이드를 본 덱슨은 다리에 힘이 풀려 오줌을 지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