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58)
아카데미가 망했다 58화
경기가 끝난 후.
클로에 일행은 2층의 마스터룸으로 안내받았다.
그리고 투기장 술집의 주인인 존슨은 손을 삭삭 비비고 있었고, 그 바로 옆에는 덱슨이 얼굴을 푸르뎅뎅하게 물들인 채 쓰러져 있었다.
레이몬드에게 너무 심하게 맞은 것이다.
“헤, 헤헤헤…… 이거야 원,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술집 주인, 존슨이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뭔가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특별 경기라니, 그게 무슨…….”
가차 없는 꼬리 자르기에 쓰러져 있던 덱슨이 몸을 파르르 떨었지만, 존슨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이놈은 제가 책임지고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화를 풀어 주십시오, 소드 마스터님.”
소드 마스터는 국가급 인재다.
어느 나라를 가도 주머니에서 꺼내듯 손쉽게 작위를 얻을 수 있는 실력자!
때문에 레이몬드를 대하는 존슨의 태도는 더없이 공손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레이몬드는 심드렁했다.
애초에 화나지도 않았다는 게 올바른 표현이리라.
“아, 네. 뭐.”
“하하하! 자비로우시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또한 인연!
‘어린 나이에 소드 마스터라니. 이틈에 잘 보여 두는 게 좋겠군.’
존슨이 레이몬드와 사담을 나누려는 찰나 클로에가 끼어들었다.
“아저씨, 계산부터 먼저 끝내죠.”
“……응?”
“레이몬드에게 10골드를 걸었어요. 덱슨이라는 사람은 이곳에서 유명인이라서 배당이 높았고요. 거의 4배 가까이였죠.”
존슨이 눈살을 찌푸렸다.
10골드의 4배.
이곳 투기장 술집의 주인인 자신에겐 큰돈이 아니지만 어린 소녀에게는 거액일 터.
때문에 조급해하는 건 알겠지만, 감히 어른이 이야기하시는데 끼어들다니!
“꼬마 계집애가 어딜 말을 끊느냐!”
존슨의 일갈에 눈썹을 씰룩인 레이몬드가 어느새 검에 손을 얹고 있었지만, 얼른 레이몬드의 손을 검에서 떼어 낸 클로에가 말을 이었다.
“죄송해요. 하지만 마리온 럼덤 자작님께서 명령한 일이라서요.”
“……럼덤 자작이?”
“네. 저는 자작님의 명을 따를 뿐이에요.”
거짓말이다.
마리온은 술에 취해 자고 있을뿐더러 그따위 명령을 내린 적도 없다!
하지만 존슨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클로에가 휘두른 럼덤 자작이라는 이름은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쳇, 럼덤 자작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해결사 덱슨을 내보내지 말걸 그랬군. 소드 마스터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
덱슨은 소드 익스퍼트의 전직 기사.
이런 투기장 술집의 경기 따위에 나설 인물이 아니었다.
때문에 그가 ‘해결사’ 일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간단히 눈치챌 터.
‘물론 나와 덱슨에게는 이렇다 할 연결점은 없지만, 마리온 럼덤이라면 뒤가 구리다는 건 의심하겠지. 그러니 이쯤에 발을 빼는 게…….’
쯧 혀를 찬 존슨이 힐끔 클로에를 바라봤다.
‘그나저나 럼덤 자작. 아모니스 아카데미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더니 이런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이따위 돈벌이나 할 줄은…… 쯧쯧쯧, 대전쟁의 전쟁영웅이라는 이름이 아깝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그가 주머니를 꺼냈다.
결국 마리온이 이쪽을 의심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생긴 이상, 가능한 비위를 맞춰 주는 게 최선이었다.
“자, 받아라. 넉넉하게 넣었다.”
받은 주머니를 열어 본 클로에가 눈을 가늘게 떴다.
족히 50개는 되어 보이는 금화.
그 사실을 깨달은 클로에가 입꼬리를 삭 말아 웃더니 덱슨을 슬쩍 눈짓하며 말했다.
“럼덤 자작님께는 잘 말씀 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그리 말한 클로에가 곧장 보리스를 데리고 나가자 존슨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역시 럼덤 자작…… 이미 다 눈치채고 있었던 건가!’
다시 말하지만 마리온은 자고 있다. 그리고 보리스와 함께 1층으로 내려가던 클로에가 생각했다.
‘뭐,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정도는 예상할 테니까.’
클로에가 그리 생각하는 순간 보리스가 말했다.
“저 아저씨, 왜 돈을 더 준거야?”
“……보리스.”
“응?”
“누나는 네가 걱정이야.”
“뭐래? 나이도 동갑이면서 웬 누나?”
하여간 클로에와 보리스가 테이블로 돌아와 술에 취해 있는 마리온을 부축해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왜 나는 버려두고 가?”
투덜거리며 쫓아온 레이몬드를 본 클로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왜 벌써 왔어?”
존슨이 레이몬드에게 관심을 보이기에 미끼로 던져 주고 얼른 돈을 챙겨 빠져나왔는데 벌써 돌아오다니?
클로에의 물음에 레이몬드가 도리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써라니?”
“그 아저씨가 안 붙잡았어?”
“할 이야기가 있다고 붙잡긴 했는데, 너희랑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온다고 말하고 나왔어.”
“아, 그렇구나.”
사실 클로에로선 돈도 챙겼으니 더 이상 알 바 아니었다!
이윽고 마리온과 함께 투기장 술집을 나섰을 때, 존슨은 부하들을 분주히 독촉하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님이 곧 돌아오실 테니 연회를 준비해 둬라.”
“예, 알겠습니다.”
존슨이 손을 삭삭 비비며 눈을 번뜩였다.
“후후후…… 이렇게 소드 마스터와 연줄을 댈 기회가 생기다니. 돈은 아낌없이 써도 좋으니 최대한 성대하게 준비해라!”
“예, 마스터.”
그 시각, 밖으로 나온 클로에가 말했다.
“잠깐 이야기 좀 하고 돌아간다더니?”
“안 갈 건데? 그냥 둘러 댄 거야.”
“아.”
“내가 그런 아저씨랑 무슨 이야기를 하겠어?”
“하긴…… 근데 오늘 어땠어? 다음에 또 올래?”
레이몬드가 돈벌이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클로에가 넌지시 떠봤지만, 레이몬드는 시시하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이럴 시간에 검 한 번 더 휘두르는 게 낫겠더라. 너희끼리 와.”
“……아, 그래.”
그리고 그 시각 존슨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후후후, 소드 마스터를 어떻게 잘 끌어들이면 사업을 두 배는, 아니 세 배까지도 확장시킬 수 있겠군.’
존슨이 분주히 움직이는 부하들을 독촉했다.
“극단도 부르고 일류 주방장도 불러라! 소드 마스터님을 위한 연회니 돈을 아끼지 마라!”
“예! 마스터!”
돌아올 리 없는 레이몬드를 기다리며 존슨은 희망찬 꿈 나래를 펼쳤다.
* * *
클로에가 두둑해진 주머니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자, 그럼 얘들아. 이제 돈도 마련했겠다, 아몬 선생님 병문안 선물로 뭐가 좋을지 생각해 보자.”
그 말에 마리온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술!”
“선생님은 빠져 주세요. 보리스, 좋은 생각 있어?”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 있던 보리스가 입을 열었다.
“음, 아몬 선생님은 역사 교사시잖아? 수업에 쓸 수 있는 새로 나온 역사책 같은 걸 드리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보리스의 순수하기 그지없는 발언에 클로에가 한숨을 쉬었다.
아까 마리온의 말마따나 학생이 선생에게 줄 선물으로는 그럭저럭 올바르다고 할 수 있었다.
말마따나 ‘학생과 선생’이라는 입장만 본다면 말이다.
“보리스, 누나는 네가 참 걱정이야.”
“또 누나래.”
“생각해 봐. 네가 감자를 캐는 농사꾼이야. 근데 아파서 앓아누웠어. 그런데 누가 선물이랍시고 감자를 담는 자루를 새 걸로 선물로 주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어?”
보리스는 앓고 있는데 새 감자 자루를 선물로 받은 자신을 상상해 봤다.
‘뭐지? 아파 죽겠는데 얼른 일어나서 감자나 더 캐라는 뜻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깨달음을 얻은 보리스가 입을 열었다.
“아하, 선생님이 아프신데 일할 때 쓸 물건은 드리면 안 되겠구나.”
상황과 입장을 고려하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클로에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게 아니야.”
“어? 아냐?”
확신으로 고개를 끄덕인 클로에가 말했다.
“선물은 무조건 비싸야 해.”
“…….”
“역사책은 안 비싸잖아.”
“…….”
“내가 뭐 하려고 돈을 불렸겠어?”
“아, 그래…….”
밑바닥 서열이었지만 명색이 아란 왕국의 왕족이었던 클로에!
그녀가 왕실에 있을 때 다른 귀족들이 ‘작은 성의’랍시고 가져온 선물들은 하나같이 고가의 물건들이었다.
게다가 하나같이 작은 선물이지만 ‘비싸다’고 덧붙이곤 했었다.
결국 클로에는 어릴 때부터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채고 말았다.
‘어른들에게 선물은 값어치가 중요하구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옆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마리온이 엄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떽! 클로에!”
“……네?”
“선물은 비싼 게 좋다니, 그런 못된 건 어디서 배웠느냐!”
“하지만…….”
“선물은 술이 좋단다! 딸꾹!”
“부탁이니까 마리온 선생님은 좀 빠져 주세요.”
한숨을 쉰 클로에가 이번에는 레이몬드를 바라봤다.
“레이몬드, 너는 병문안 선물로 뭐가 좋을 것 같아?”
“나는…….”
“인형 넣어. 알겠으니까 인형 넣어.”
품속에서 슬금슬금 자신이 만든 인형을 꺼내는 레이몬드를 만류한 클로에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 아카데미, 이대로 괜찮은 걸까……?’
아몬이 수없이 품었던 의문을 되풀이하는 클로에!
“휴, 하는 수 없지…… 다들 따라와.”
클로에가 우민들을 이끌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 * *
학교장이 무심코 건넨 농담 한마디는 아몬의 머릿속에서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이제 누가 빡통이죠?’
“으, 으으으…….”
‘오호호! 이제 누가 빡통이지?’
“크으윽…….”
‘깔깔깔! 멍청하긴! 이 빡통 좀 보게!’
“아나르엘……! 죽여 버리겠어……!”
거의 악몽에 가까운 환상에 시달리며 끙끙거리던 아몬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누, 누구…….”
“선생님, 잠시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만약 찾아온 것이 슬로스, 마리온 같은 다른 교사였다면 당장 꺼지라고 일갈했을 것이다.
아몬은 그들이 놀렸던 것을 절대 잊지 않는다!
게다가 만약 학교장이었다면, 그날 학교장 자리는 공석이 되리라!
하지만 정작 찾아온 이들은 학생들이었다.
“드, 들어오렴.”
“네, 잠시 실례할게요.”
종종종 들어온 학생들이 끙끙 앓고 있는 아몬을 걱정스레 바라봤다.
“선생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애써 미소 지은 아몬이 말했다.
“하, 하하하…… 너희들이 염려해 준 덕에 좀 나아졌단다.”
“얼른 나으세요.”
“그래, 그래. 너희들을 보니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겠구나.”
흐뭇하게 웃은 아몬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큰 실의에 빠진 나머지 지쳐 버린 몸뚱이는 금세 허물어지고 말았다.
“아아아…….”
“괘, 괜찮으세요?”
“하하…… 괘, 괜찮단다.”
안타깝다는 듯 아몬을 부축한 클로에가 조심스레 말했다.
“저, 선생님. 이거 병문안 선물이에요.”
“……병문안 선물?”
아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너희들이 산 거니?”
“네. 돈을 모아서 산 거예요. 제가 좀 많이 내긴 했지만요.”
“그, 그런…….”
“아니지, 제가 거의 다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 그렇구나.”
아몬의 눈빛에 깊은 감동이 떠올랐다.
‘같은 동료 교사라는 양반들은 빈손으로 오던데…….’
아니다.
선물을 가져오긴 했지만 아몬이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대면서 쫓아냈기에 줄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다.
아무튼 아몬이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한번 열어 봐도 될까?”
“네, 물론이죠.”
“그럼…….”
조심스레 포장지를 뜯은 아몬이 눈을 부릅떴다.
‘펜! 만년필!’
아몬의 눈에 감동이 떠올랐다.
제대로 된 만년필은 못해도 몇 골드는 줘야 살 수 있는 귀중품!
싸구려 깃펜 따위나 쓰던 아몬에겐 너무나도 감사한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얼마나 마음이 깃들어 있는 선물이란 말인가…….’
아몬이 감격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끔찍할 정도로 깊은 정신적 충격이 다소 씻겨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말 고맙구나, 얘들아.”
“별말씀을요. 얼른 나으셔야 해요.”
“그럼, 그럼. 너희들을 봐서라도 얼른 나아야지.”
“피곤하실 테니 슬슬 나가 볼게요.”
“그래, 고맙다. 얘들아.”
학생들이 나간 후 털썩 자리에 누운 아몬이 한숨을 쉬었다.
잠깐 앉아 있는 게 이토록 힘들 줄은.
‘후후후…… 하지만 기특한 학생들을 보니 절로 힘이 나는군.’
빙그레 웃은 아몬이 학생들이 준 펜을 바라봤다.
‘응? 잠깐만, 근데 이거…….’
만년필의 가장 상단에 적혀 있는 글귀와 새겨진 문양.
아몬이 눈을 비비적거렸다. 그리고 다시 만년필의 문양을 살펴봤다.
‘골드 호라이즌.’
가장 싼 제품만 해도 한 자루에 30골드는 하는 프리미엄 만년필.
그 사실을 깨달은 아몬이 병상을 냅다 박차고 일어났다.
마음의 상처가 깨끗이 나은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