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59)
아카데미가 망했다 59화
제국의 황태자, 그러나 지금은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일개 교사인 카이는 침음을 흘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몬 선배님이 저렇게 실의에 잠겨 있을 줄은…….’
그 시각 아몬은 골드 호라이즌 만년필을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카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교사로 일하는데 교원 자격증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몬 선배님 정도로 능력이 좋다면 그깟 자격증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데 그리 슬퍼하실 줄은…….’
카이는 아몬의 슬픔을 제 슬픔처럼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아니야. 자격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교사로서 그깟 자격증 하나 못 딴 자신에게 실망한 나머지 앓아누우신 게 분명해.’
꿈보다해몽이라고 아몬에 대한 인상이 너무 좋은 카이는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이로선 앓아누운 아몬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교원 자격증 시험은 제국의 정규 시험.
아무리 황위를 계승할 황태자라 한들 그 결과에 개입하는 것은 월권이었다.
‘애초에 그게 가능하다고 한들, 그렇게 합격한다고 아몬 선배님이 기뻐할 리가 없지.’
아니다.
역시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며 크게 기뻐할 것이다.
아카데미의 공원 안, 아몬의 숙소가 올려다 보이는 한적한 자리에 앉은 카이가 안타까움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아, 어르신.”
창천검왕, 라인벨트가 허리를 툭툭 두드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휴, 나도 나이가 나이로군. 빗자루질 그거 조금 했다고 허리가 아프니.”
“아침 일찍부터 하셨잖습니까? 벌써 밤입니다.”
“허허허, 벌써 그리됐나? 하여간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겐가?”
제국의 황태자라고 하더라도 카이는 아직 젊었다. 그런데 이토록 근심 어린 얼굴을 하고 있으니, 어른으로서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던진 물음에 카이가 한숨을 쉬며 답했다.
“휴우, 아몬 선배님께서 상심이 많이 크신가 봅니다. 벌써 며칠째 저렇게 앓고 있으니까요.”
“흠. 그렇긴 하군.”
“그래서 제가 선배님 대신에 역사학 수업을 들어가고 있는데, 학생들이 저를 아주 많이 따르는 걸 보니 제가 선배님의 자리를 빼앗는 건 아닐지 괜히 걱정도 되고요.”
청소를 마친 후 레이몬드에게 카이에 대한 욕을 듣는 게 하루 일과인 라인벨트로선 웬 오크가 성악 하는 소린가 싶었지만, 굳이 황태자의 말에 딴죽을 걸 생각은 없었다.
“……어, 음. 그렇군.”
“아무튼 그래서 고민입니다. 아몬 선배님이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날 방도가 뭐 없을까요?”
“흐음, 나한테 묻는 들…….”
아리송한 얼굴로 수염을 쓰다듬던 라인벨트가 작게 탄성을 지르며 말했다.
“그래, 내게 좋은 생각이 있네.”
“예? 뭡니까?”
“허허허, 들어 보게나.”
라인벨트는 아몬과의 첫 대면을 카이에게 들려주었다.
제자로 들이겠다고 하니 크게 기뻐했다는 점.
“그로 미루어 볼 때, 그는 무인으로서의 욕망이 있는 것 같다네.”
“호오, 선배님이요? 아아, 하긴…….”
예전에 자신을 상대로 싸움을 걸 때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하긴, 선배님은 엄청난 원석이다. 갈고닦진 않았지만, 원석 그 자체의 중량감만으로도 잘 닦인 보석을 압도하는 엄청난 원석. 그런 선배님이 만약 제대로 검술을 배운다면……?’
순간 카이는 오싹 소름이 돋았다.
그야말로 범에게 날개를 달고, 용에게 여의주를 쥐어 주는 격이다.
‘하지만 드레이크 가문의 특성상 제대로 된 명문에게서 검술을 배울 순 없었겠지. 영지도 변방 중의 변방에 있고.’
상념에서 깨어난 카이가 말했다.
“그럼 라인벨트님, 설마…….”
“그래.”
고개를 끄덕인 라인벨트가 말했다.
“자네는 익히고 있는 검술의 가짓수라면 나를 넘지 않은가?”
“음…….”
그 말대로 깊이는 라인벨트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제국의 황태자로서 수많은 검술을 익히고 있다.
그중에는 라인벨트의 검술도, 피드 가문의 검술도 있었다.
이외에도 멸망한 왕국의 검술도, 비밀스럽게 전해지는 것들 역시.
“그중 적당한 걸 아몬에게 가르쳐 보는 건 어떤가?”
“…….”
“교사도 결국 학자의 일종일세. 새로운 배움에 대한 욕망은 범인을 넘지.”
“확실히…… 그렇지요.”
카이의 긍정에 라인벨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정 안 되면 황실 비전의 검술을 슬쩍 미끼로 걸어 보게. 홀랑 넘어올걸?”
카이가 라인벨트의 농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엉? 황실 검술이 그토록 극비인가? 나도 대강은 익혔거늘.”
“어르신은 제국 4대 기사 중 한분이시니까요. 하지만 아몬 선배님은…….”
카이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라인벨트가 황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한들 드레이크 가문과 엮인 황실의 치부까지 알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으음, 하여간 선배님께 검술을 전수한다라.”
이전에 황제, 아버지와 자신의 신분과 실력을 감출 것이라고 약속했었다.
‘뭐, 요점은 타인에게 황태자라는 신분을 들키지 않는 것. 하지만 실력은 아몬 선배님께 들켰으니 검술을 가르치는 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
결심을 굳힌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한번 선배님께 언질이라도 드려 봐야겠군요.”
“허허허, 좋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 검술도 슬며시 가르쳐 보게. 일전에 보니 내 검술과도 잘 맞는 것 같더군.”
“오오, 어르신의 검술까지요? 괜찮겠습니까?”
“한번 제자로 들이겠다고 말까지 했는데 뭘. 하지만 내 검술이라는 건 알리지 말게나.”
“예? 그건 어째서……?”
라인벨트가 빙그레 웃었다.
얼핏 보기엔 인자한 미소였지만, 흉계와 꿍꿍이가 가득한 검은 미소였다.
“아몬에게 괜한 부담을 주고 싶진 않다네.”
입 발린 말에 카이가 탄성을 질렀다.
“아아, 역시 창천검왕이라 불리실 정도로 청빈한 어르신답군요.”
“크하하하! 과찬일세!”
웃으며 몸을 돌린 라인벨트가 히죽 웃었다.
‘내 검술을 익히면 그걸로 코를 단단히 꿰어 주마.’
내 검술까지 배워 놓고 이제 어쩔 거냐! 너는 영락없는 내 제자다!
그러니 순순히 속세에 미련을 끊고 무인의 길을 걷도록 하여라!
‘후후후, 아몬 놈. 탐나는 인재다. 이렇게 연을 붙여 두면 나중에 요긴하게 쓸 수 있을 테지.’
그런 라인벨트의 속셈은 꿈에도 알지 못한 채 카이는 아몬의 숙소로 향했다.
* * *
사랑스러운 학생들이 선물한 만년필을 손수건으로 정성스럽게 닦던 아몬이 고개를 돌렸다.
별안간 들려온 노크 소리 때문이었다.
“선배님, 카이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노크와 함께 들려온 목소리에 아몬이 눈살을 찌푸렸다.
‘카이? 저놈이 이 늦은 시간에는 왜……?’
만약 마리온, 슬로스, 아나르엘이었다면 썩 꺼지라며 일갈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이는 다르다.
‘저 녀석은 딱히 날 놀리지 않았으니까.’
일단 후배고 하니 자신을 놀릴 생각도 하지 못했으리라.
때문에 슬로스를 비롯한 망나니 동료, 약에 쓸래도 못 쓸 학교장과 비교하면 그나마 인간으로서 대접해 줄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얼른 만년필을 품속에 넣은 아몬이 병상에 드러누웠다.
선물을 받았다고 벌떡 병상을 털고 일어나는 것도 모양새가 우스울 테니까.
“그, 그래. 들어와.”
“예, 들어가겠습니다.”
이윽고 병상에 누운 아몬을 발견한 카이가 탄식을 흘렸다.
어릴 때 감자를 캐기 싫어 수많은 병명을 지어 내 꾀병을 부려 댔던 아몬!
그 능숙함에 홀린 카이는 아몬을 영락없이 중환자로 착각했다.
“서,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으, 으응…… 괜찮아.”
“전혀 괜찮아 보이시지 않는데요.”
안타까움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카이.
아몬이 그의 손을 빠르게 훑어봤다.
‘빈손이군.’
학생도 아는 병문안 예의를 모르다니.
‘올 때는 양손 무겁게, 갈 때는 가볍게라는 격언도 모르는 건가?’
뭐, 하지만 귀족 자제인 데다 사회 초년생이니 그럴 수도 있지.
그리 짐작한 아몬이 힘겹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무슨 일로 왔어?”
“아, 예. 선배님.”
카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검술 한번 배워 보시겠습니까?”
* * *
카이를 떠밀어 쫓아낸 아몬이 투덜거리며 침대에 도로 누웠다.
‘끙끙 앓고 있는 사람 앞에서 저게 할 말인가? 뭐, 다 낫긴 했지만.’
침대에 다리를 꼬고 누운 아몬이 품속에서 만년필을 쑥 꺼냈다.
‘휴, 이걸 보니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군. 내 살다살다 골드 호라이즌 만년필을 써 보게 될 줄이야.’
자고로 병문안 선물에는 넉넉한 ‘정’이 있어야 하는 법!
‘그런데 빈손으로 와서 뭐? 검술은 무슨 검술이야.’
뭐, 사실 배워 두면 여기저기 써먹을 곳이야 많을 것이다.
‘하지만 대륙은 당분간 평화로울 것 같고, 만약 큰일이 생긴다 해도 망할 황제한테 밉보인 마당이라 공을 세운들 출셋길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말이지.’
때문에 창천검왕 라인벨트의 제자가 되면 제국 4대 기사라는 든든한 그늘에 힘입어 출세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는 출세를 뒤로하고 산나물이나 캐 먹고 사는 괴짜가 아니던가!
‘결국 검술을 배워 봐야 감자 깎고 산나물 다듬는 데나 쓸 것 같단 말이지. 그러니까 나는…….’
골드 호라이즌 만년필을 휙 돌리며 웃은 아몬이 중얼거렸다.
“나는 내가 키운 학생만 믿고 살겠다 이 말이야.”
그야말로 빛과 소금 같은 학생들!
아몬이 만년필을 빙글빙글 돌리며 낄낄 웃는 와중이었다.
툭-!
휙 날아가 땅을 뒹구는 만년필의 펜촉.
아몬이 눈을 끔뻑거렸다.
“뭐야, 이거……?”
골드 호라이즌 만년필은 브랜드값도 브랜드값이지만, 그 튼튼함을 인정받아 명품으로 불리는 물건!
‘그, 근데 왜 펜촉이 날아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순간 소름이 쫙 돋은 아몬이 허겁지겁 만년필을 살펴봤다.
골드 호라이즌.
그 문양을 빤히 노려보던 아몬이 엄지로 슥 문지른 순간.
‘지워져……?’
제대로 각인된 게 아니라 잉크로 새겨 넣은 문양이었다.
즉 이 물건은.
‘가품.’
그 사실을 깨달은 아몬은 눈을 홱 까뒤집은 채 뒤로 넘어갔다.
빛과 소금이라 여겼던 학생들에게도 배신당했다는 사실에 지나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아 혼절한 것이다.
* * *
만년필이 가품이었던 것은 상회의 실수로 밝혀졌다.
모양새가 정교한 가품 하나가 진품에 섞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상회 측은 진중한 사과와 함께 환불을, 그리고 사죄의 뜻으로 진품 만년필 하나를 건넸다.
뭐, 여기까지만 보면 일이 잘 풀렸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몬이 입은 마음의 상처는 전혀 낫지 않았다.
“서, 선생님. 이건 진품이에요.”
“…….”
“가품이었던 건 상회에서 실수한 거래요.”
“…….”
이미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아몬에겐 그 말이 닿지 않았다!
학생들이 억지로 진품 만년필을 쥐어 줬지만, 아몬은 그것을 의심 어린 눈빛으로 몇 번이고 훑어볼 뿐이었다.
“선생님! 정신 차리세요!”
“크, 클로에. 진정하고 일단 나가자.”
레이몬드와 보리스가 절규하는 클로에를 데리고 나가고, 우두커니 자리에 앉아 있던 아몬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쯧쯧쯧, 거참 사람하곤.”
라인벨트였다.
사연을 대충 들은 그가 혀를 차며 뭔가를 건넸다.
“받게나. 자네에게 온 우편이네.”
“…….”
“에이, 거참. 여기 두고 가겠네.”
끌끌 혀를 찬 라인벨트가 사라지고, 홀로 남은 아몬이 멍하니 우편을 바라봤다.
‘……웬 우편?’
충격으로 마음의 문을 닫은 아몬이건만, 딱히 올 우편이 없는데 와 버린 우편에게 호기심이 생긴다.
그렇기에 무심코 우편을 집어 들고 열어 본 아몬이 눈을 가늘게 떴다.
편지 한통과 묵직한 주머니 하나.
‘이 주머니는……?’
주머니를 만지작거릴 때마다 아몬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몸에 솟아나는 의문의 활력.
그 사실을 깨달은 아몬이 조심스레 주머니를 풀어 봤다.
이윽고 눈에 들어온 광경.
“허, 헉!?”
큼직한 주머니 안에 가득 들어 있는 금화!
그 광경에 아몬의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활짝 개문(開門)했다!
‘이, 이게 대체……?’
웬 금화인가?
아니, 누가 보낸 것인가?
치밀어 오르는 의문에 아몬은 주머니와 함께 온 편지를 황급히 열어 봤다.
그리고 편지를 읽는 아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가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