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61)
아카데미가 망했다 61화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방학!
영지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아몬은 난데없는 학교장의 호출을 받았다.
“빡통 아몬에게 무슨 볼일이십니까?”
“아직도 삐쳐 계시긴. 워프 마법으로 데려다주기로 했으니 그만 화 풀어요.”
“……크흠, 알겠습니다. 아무튼 왜 부르신 겁니까?”
“이번 여름방학 때 혹시 뭔가 예정이 있으신가요?”
이미 자신의 휴가 일정을 보고했는데 웬 질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일정 보고에 적어 놨듯 고향에 좀 다녀오려 합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
말하던 아몬이 흠칫하더니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설마 이번에도 뜬금없이 우리 영지로 현장체험 학습이니 뭐니 하시려는 건 아니죠?”
그 말에 아나르엘이 귀를 흠칫 떨었다.
정곡을 찔린 모양이었지만, 표정 관리를 성공한 아나르엘이 말했다.
“아니에요.”
“귀나 가만히 두고 말하시죠.”
“앗!”
황급히 귀를 부여잡는 아나르엘을 본 아몬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름방학이잖아요. 이번엔 정말 안 됩니다.”
“그, 그래도 워프 마법으로 데려다주는데…….”
“굳이 저희 영지까지 가셔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뭐, 학생들이야 데려갈 생각이 있습니다.”
보리스와 클로에의 경우 여름방학에 갈 곳이 없었다.
때문에 가고자 한다면 데려갈 용의가 있었고, 레이몬드만 쏙 빼놓는 건 뭐하니 함께 데려갈 수 있다.
‘하지만 다 큰 어른들은 이야기가 다르지.’
슬로스는 집에 가면 될 거고, 마리온도 어디 술이라도 퍼 마시면서 돌아다니면 되리라.
학교장과 부학교장도 마찬가지.
“확실한 이유가 있다면 말씀해 보시죠.”
이유를 말하려던 아나르엘이 입을 꾹 닫았다.
‘아몬 선생님이 없으면 브레슬이 식당 증축하겠다고 날뛸 것 같아서 그런다고 어떻게 말해.’
곧이곧대로 말했다간 한 대 세게 맞을 것 같았다.
“그냥 같이 가고 싶어서요.”
“…….”
“와, 표정 봐. 그렇게 싫어요?”
“왜 싫어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머리를 긁적거린 아몬이 말했다.
“하여간 이번엔 정말 안 됩니다. 지난번엔 경황이 없어 못 봤으니, 형이랑 동생도 보고 집안일을 거들다 올 거라서요.”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아득바득 따라갈 순 없는 일.
“……휴, 알겠어요. 그럼 준비 끝나면 오세요. 데려다 드릴 테니까요.”
“예, 감사합니다.”
잠시 후, 한창 짐을 꾸리던 아몬이 생각했다.
‘흠, 그런데 생각해 보니 브레슬 부학교장을 여기 남겨 놓으면 얌전히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말이지.’
아나르엘의 걱정이 곧 아몬의 우려였다.
때문에 짐 정리를 대강 끝낸 아몬은 곧장 부학교장실로 향했다.
“갑자기 웬일이십니까?”
“이번에 제가 휴가를 간다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훗, 물론 알고 있습니다.”
빙그레 웃는 브레슬을 본 아몬은 깨달았다.
“꿍꿍이가 있으시군요.”
“……그, 그런 거 없습니다.”
“귀나 좀 어떻게 하고 말하시죠.”
“읏!”
얼른 귀를 감추는 브레슬을 본 아몬이 말을 이었다.
“뭐, 부학교장님이 꾸미고 계신 계획은 안 봐도 대충 예상이 갑니다. 보나마나 고급 식자재, 식당 증축 같은 걸 생각하고 계시겠죠.”
브레슬의 귀가 자신만만하다는 듯 치솟았다.
“아니군요. 새 주방장 영입인가?”
브레슬의 귀가 축 늘어졌다.
“……어떻게 아셨죠?”
“다 아는 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제가 다녀오는 동안 그런 꿍꿍이는 좀 접어 두십시오. 만약 얌전히 계셔 준다면…….”
아몬이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우리 영지의 감자를 세 포대 가져다 드리죠.”
“……!”
드레이크 영지의 감자!
입에 넣는 것만으로도 마나가 충만하게 차오르는 천하의 진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브레슬의 입안이 침으로 촉촉해졌지만, 그녀는 한껏 허세를 부려 봤다.
“흐, 흥! 고작 그걸로 협상이 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얌전히 있어 달라는 걸 협상까지 해야 하는군요. 그럼 알겠습니다.”
“……네?”
아몬이 몸을 휙 돌렸다.
“주방장을 고용하건, 고급 식자재를 사건, 식당을 황궁처럼 짓던 마음대로 하십시오. 대신 감자는 안 가져 올 겁니다.”
“……!”
브레슬이 벌떡 일어나 아몬을 붙잡았다.
“아, 알겠습니다. 얌전히 있을 테니 감자 가져오세요.”
괜한 허세를 부리던 브레슬이 굴복하는 순간이었다.
“하, 하지만…….”
“응? 하지만?”
브레슬이 수줍게 말했다.
“네 포대…….”
“세 포대.”
“……네 포대.”
“아뇨. 세 포대.”
“……흐윽!”
결국 협상안은 감자 세 포대로 결정됐다.
* * *
“준비 끝났나요? 학생들은 같이 안 간다던가요?”
“예. 일주일 뒤에 돌아온다니 아카데미에서 기다리겠다고 하더군요.”
“그렇군요. 그럼 슬슬 시작할게요.”
워프 마법을 준비하는 아나르엘을 본 아몬이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맞다, 브레슬 부학교장님이랑 이야기 잘 끝냈으니 그분이 괜한 짓을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네? 정말인가요?”
고개를 끄덕이며 감자를 담을 포대 세 개를 흔들어 보였다.
“꽤 비싸게 먹혔지만요.”
“아하, 감자!”
“그러니 별걱정 않으셔도 될 겁니다.”
“후후, 신경 써 줘서 고맙네요.”
빙그레 웃은 아나르엘이 손을 휘저었다.
“그럼 푹 쉬다 오세요. 일주일 후에 데리러 갈게요.”
“예, 감사합니다.”
이윽고 푸른빛과 함께 아몬의 신형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아나르엘이 빙그레 웃었다.
“후후, 아몬 선생님. 내 속마음을 제대로 읽어 주셨네.”
말하지 않아도 브레슬을 견제해 주다니.
“역시 아카데미를 위하는 마음이 각별하신 분이라니까…….”
한껏 기지개를 켠 아나르엘이 중얼거렸다.
“아몬 선생님이 저렇게 우리 아카데미를 위해 주시는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중얼거린 아나르엘이 웬 서류뭉치를 집어 들었다.
그 서류뭉치의 가장 위에는 ‘사업 설명서’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후후, 다녀오시면 깜짝 놀라시겠지?”
기뻐하는 아몬의 얼굴을 떠올린 아나르엘이 방긋 웃었다.
* * *
드레이크 영지.
집으로 들어가자 자신의 도끼를 손질하고 있는 어머니를 뵐 수 있었다.
“응? 웬일이니?”
휴가 나온 아들을 본 어머니의 섭섭한 반응!
아몬이 쓰게 웃었다.
“휴가 왔죠. 감자밭은 좀 어때요? 오면서 볼 땐 멀쩡해 보이던데.”
“싹이 잘 났으니 괜찮겠지. 최근에는 몬스터도 뜸해졌고.”
“……네?”
몬스터가 뜸해졌다?
그 말에 아몬이 눈살을 찌푸린 순간이었다.
땡땡땡땡-!
돌연 마을 외곽에서 터져 나온 경종 소리!
몬스터의 습격을 알리는 신호였다.
“…….”
“…….”
어머니는 말없이 도끼를 건넸고, 말없이 도끼를 넘겨받은 아몬이 몸을 돌려 집밖으로 나갔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어머니가 손질해 준 도끼를 어깨에 걸친 아몬이 마을 어귀로 걸어갔다.
“어라, 도련님?”
“오랜만입니다, 잭슨 아저씨. 몬스터들은요?”
잭슨이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큰 도련님과 아가씨께서 먼저 출발하셨습니다.”
“……엥?”
큰 도련님은 형이고, 아가씨는 동생이었다.
그런데 둘은 근처 도시에서 돈을 벌 겸 일을 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둘 다 잠깐 집에 들렀나 봐요?”
“아뇨, 최근에 일이 좀 생겨서 아예 돌아오셨다더군요.”
“……일이요?”
잭슨이 목을 죽 긋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못 참고 그만…….”
“아, 결국 사고를 쳐서 잘렸구나.”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 아몬이 걸음을 옮겼다.
“그럼 다녀올게요. 오랜만에 형 얼굴이나 좀 봐야지.”
“예, 다녀오십시오.”
가볍게 몸을 날린 아몬은 한창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몬스터를 우직하게 주먹으로 두들겨 패고 있는 건장한 인형과 통통 뛰며 적들을 베어 넘기고 있는 조그만 인형을 발견했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잠시 기다리던 아몬은 상황이 마무리되자 몸을 날렸다.
“형, 오랜만.”
“……응? 아몬?”
주먹에 묻은 피를 쓱쓱 닦던 건장한 청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몇 살 터울의 형인 ‘아임’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얼마 전에 영지에 왔다갔다면서?”
“응. 형이 요 앞 도시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동료들이랑 같이 왔던 거라 찾아갈 여유는 없었네. 미안.”
아임이 껄껄 웃었다.
“괜찮아, 괜찮아. 피차 바쁠 때였을 텐데 뭐.”
“이해해 줘서 고마워. 근데…….”
눈살을 찌푸린 아몬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때 단검에 묻은 피를 닦고 있던 소녀가 움찔하며 시선을 피했다.
“아미.”
“…….”
“또 사고 쳤다면서?”
동생, ‘아미’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
“사연이 있었어.”
“사연.”
“큰오빠는 포목점, 나는 청과점에서 일하고 있었거든?”
“있었는데?”
아미가 감았던 눈을 뜨며 말했다.
“힘들게 일하다 보면 달콤한 게 먹고 싶고 그러잖아?”
“그렇긴 하지.”
“그래서 사장이 가끔 과일 몇 개를 먹으라고 내준단 말이야. 그래서 넙죽 먹었더니 사장이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더라고.”
“왜 그랬을까?”
“나야 모르지. 그래서 억울해서 싸우다 보니 그만…….”
아미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자 아몬이 형을 보며 말했다.
“쟤, 과일 훔쳐 먹었다가 잘린 거지?”
“응.”
“청과점 주인이랑 포목점 주인이 아는 사이라 형도 덩달아 잘린 거지?”
“정확해.”
아몬이 아미를 바라봤다.
아미는 어느새 악어의 눈물을 멈춘 채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빡-!
“끼아악! 내 머리!”
“잘하는 짓이다. 먹을 게 없어서 훔쳐 먹어?”
“오, 오빠도 옛날에 일하면서 자주 훔쳐 먹었다고 해놓고선…….”
“훔쳐 먹더라도 들키면 안 되지.”
티격태격하는 둘의 모습에 아임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만, 그만. 둘 다 진정하고 돌아가자. 영지에서 걱정하겠다.”
“에휴, 하여간…….”
“짜증 나, 진짜…….”
“하하, 둘 다 진정해. 오랜만에 만났는…….”
아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쿠르르릉-!
저만치서 들려온 돌 굴러 가는 소리에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이거 마을 밖에 놔둔 경계용 낙석 소리 아니야?”
“으, 응.”
아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거 드레이크 올 때만 굴러 가게 해 둔 거잖아?”
“…….”
셋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 *
드레이크의 출현 소식에 아버지는 아예 앓아누울 기세였다.
“가, 감자밭을 복구한 지 얼마나 됐다고…….”
한숨을 쉰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도 엘더 드레이크만 아니면 감자밭은 어떻게 지킬 순 있겠지.”
그나마 희망을 담고 있는 아버지의 말에 아몬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왜 그러느냐?”
“아까 아미가 슬쩍 보고 왔는데 말이죠.”
“아몬, 제발 엘더 드레이크라는 말은 하지 말아다오.”
아몬은 말없이 몸을 돌렸다.
제발 말하지 말라니 말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모두들 마을 어귀에 모인 채 엘더 드레이크의 습격에 대비하는 한편, 아몬은 애용하던 도끼를 걱정스레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지난번 전투에서 많이 상했는데, 괜찮을까?’
그렇기에 어머니도 자신의 도끼를 손질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음…… 버텨 주길 바라는 수밖에.’
아몬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저 멀리서 쿵쿵대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동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 저놈은 지난번의 그놈!’
이렇게 다시 설욕의 기회가 찾아오다니.
‘이번에는 반드시 감자밭을 지키고 말리라.’
아몬이 전의를 불태우며 도끼를 힘껏 움켜쥐었다.
* * *
감자밭까지 남은 거리는 걸어서 1분.
“크아아악! 밀어!”
“으악! 미, 밀린다아앗!”
장정, 아낙네 할 것 없이 엘더 드레이크를 필사적으로 때리고 밀어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엘더 드레이크는 군침이 맺힌 혀를 휘두르며 감자밭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었다.
“큭! 제, 젠장…….”
기진맥진한 채 헐떡이던 아몬이 침을 꿀꺽 삼켰다.
‘조, 좋아. 한 번 휘두를 힘은 돌아왔다.’
이를 악문 아몬이 도끼를 양손으로 움켜쥔 채 고함을 내질렀다.
“으오오오!”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낸 필사의 일격!
괴성과 함께 달려든 아몬이 전력을 다해 도끼를 휘두른 순간이었다.
쩌어어엉-!
엘더 드레이크를 때린 순간 굉음을 토하며 사방으로 휘날리는 검은빛 파편!
도끼가 박살 난 것이다.
“으, 으아아아아!”
구르듯 엘더 드레이크의 등판을 미끄러져 내려온 아몬이 박살 난 도끼자루와 파편을 움켜쥔 채 절규했다.
“내, 내 도끼!”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도끼와의 추억!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늘 자신의 곁을 지켜 주던 사랑스러운 도끼가 눈앞에서 박살 나 땅을 구르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에 슬픔과 절망이 휘몰아치고, 그 감정을 뚫고 솟구쳐 오르는 감정.
분노. 그리고 증오.
부술 듯 어금니를 악문 아몬이 시뻘겋게 물든 눈으로 엘더 드레이크를 노려봤다.
‘죽인다. 내 사랑스러운 도끼를 부순 망할 놈.’
악에 받친 아몬이 엘더 드레이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아몬!”
별안간 하늘에서 들려온 고함에 아몬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의 눈에 비춰지는 노인.
‘……카셀라그 어르신?’
이따금 영지에 찾아오는 늙고 병들고 외로운 드래곤 어르신 아닌가?
그 사실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카셀라그가 외쳤다.
“받아라! 지난번에 말한 선물이다!”
“……예?”
그리 말한 카셀라그가 웬 기다란 막대 같은 것을 던졌다.
곧이어 날아온 그것이 가까워지자 깨달을 수 있었다.
‘검?’
새까만 검이었다.
그리고 벼락처럼 날아온 그것을 아몬이 무심코 오른손으로 낚아챈 순간.
“크아아아악!”
검에 담겨 있는 엄청난 무게감에 아몬은 검이 날아오는 기세 그대로 땅을 구르고 말았다.
뒤이어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아몬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뭐, 뭐야, 이거? 왜 이리 무거워?’
평범한 롱소드와 비슷한 크기였건만, 무게감은 자신이 쓰던 도끼의 몇 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그 사실에 당황한 채 카셀라그를 올려다보자 그가 말했다.
“어떠냐? 꽤 무겁지? 아다만티움으로 만든 검이다.”
“아, 아다만티움……!”
아다만티움!
극도로 무겁지만 미스릴 ‘따위’와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견고하고 불면, 불멸, 영원을 상징하는 환상의 금속!
“엘더 드레이크! 우리 영지의 감자밭은 절대 못 건드린다!”
아몬이 쓸모없는 도끼 파편과 도끼자루를 냅다 집어 던지며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