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62)
아카데미가 망했다 62화
감자밭까지 엘더 드레이크의 걸음으로 몇 걸음 남은 상황!
엘더 드레이크는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후르릅!
입 안 가득 넘치는 침을 삼켜 대던 녀석이 크게 한 걸음 내딛고, 감자밭이 눈앞까지 다가오자 녀석이 머리통을 감자밭으로 들이민 순간이었다.
“야, 이 개! 새! 끼야!”
전력으로 달려들어 휘두른 아몬의 아다만티움 검이 엘더 드레이크의 등판에 꽂혔다.
콰아아앙-!
귀청을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엘더 드레이크의 비늘 파편이 마구 솟구치고, 엘더 드레이크의 눈에 경악이 떠올랐다.
-커엉……!?
설마 내 비늘이 부서진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수많은 세월을 버텨 엘더 드레이크로 성장한 이후 자신의 비늘이 부서진 적은 결단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당황에 이어 따라온 감정은 단연 분노였다.
-크아아아아!
천상의 진미와 같은 감자가 눈앞에 있었지만, 자신의 비늘을 부순 적에 대한 분노가 식욕을 앞질렀다.
때문에 고개를 홱 돌린 엘더 드레이크의 앞에는 아몬이 우뚝 서 있었다.
“후우우…….”
무거운 검을 전력으로 휘두르느라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던 아몬이 스산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개자식이, 감히 이제 막 싹이 난 감자를 처먹으려 들어?”
-크르르르…….
“너, 오늘 잘 걸렸다.”
검으로 엘더 드레이크를 겨눈 아몬이 으르렁거렸다.
“감자밭의 비료로 써 주마.”
앞으로 몇 년은 족히 쓸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비료!
아몬이 눈을 희번덕 빛내며 녀석을 향해 다가가는 와중이었다.
“아몬, 잠시만 기다려다오.”
“……어르신?”
땅에 내려선 드래곤 영감, 카셀라그가 입을 열었다.
“이쯤 하고 보내 주자꾸나.”
“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몬이 역정을 냈다.
“우리 마을의 감자밭을 박살 낸 놈을 어찌 그냥 돌려보내란 말씀이십니까!”
“녀석아, 저놈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니더냐.”
“우리도 먹고 살자고 감자 재배하는데요.”
아몬네도 할 일이 없어서 감자를 기르는 게 아니었다. 여기에는 영지민들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그것도 그렇군…….”
“그러니 절 말리지 마십시오.”
하지만 카셀라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내 얼굴을 봐서 이번 한 번만 눈감아다오. 그 검도 선물로 주었잖느냐.”
“하지만…….”
“앞으로 이곳에 올 일 없도록 저놈을 단단히 타일러 놓으마.”
“…….”
아몬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마음 같아선 수많은 감자의 원수, 감자의 학살자를 당장 도륙 내고 싶었다.
‘하지만 카셀라그 어르신은 우리 영지의 중요한 손님 중 하나.’
아니, 손님 중 하나가 아니라 거의 유일한 손님이었다.
‘아무튼 아버지와도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분이시고…… 게다가 드래곤이잖아.’
마지막 대목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비록 늙어서 다소 점잖아 보인다지만, 그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아몬은 드래곤에게 말대답 몇 번 한 것으로 체면은 충분히 차렸으니 순순히 물러나기로 했다.
“카셀라그 어르신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허허허, 고맙구나.”
너털웃음을 터뜨린 카셀라그가 엘더 드레이크를 향해 다가가자 녀석이 어깨를 움츠리더니 작게 목울음을 흘렸다.
-그르르…….
“이 녀석아, 또 이곳까지 무슨 행패냐? 썩 물러가라. 그리고 이곳에 다신 얼씬하지 말거라. 알겠느냐?”
카셀라그가 점잖게 타일렀지만, 엘더 드레이크는 앞발로 땅을 콩콩 구르면서 그르렁대고 있었다.
-구우욱! 구르르!
“어어? 이놈 보게? 어디서 말대답이야. 어디 혼나 봐야 정신을 차릴 테냐?
카셀라그의 호통에 고개를 축 늘어뜨린 엘더 드레이크가 힘없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녀석이 마을 어귀를 넘어 사라지자 한숨을 푹 내쉰 카셀라그가 입을 열었다.
“휴, 이번 한 번만 이해하거라. 녀석에게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으니 말이야.”
엘더 드레이크가 사라진 방향을 측은한 얼굴로 바라보던 카셀라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아몬이 눈을 가늘게 떴다.
‘몬스터한테 사정은 무슨 사정이야.’
하지만 우수에 잠긴 듯한 눈빛으로 이쪽을 흘깃거리는 카셀라그를 본 아몬이 썩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무슨 사정 말입니까?”
그 물음에 카셀라그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니, 물어보길 기다린 게 분명했다.
“드레이크는 먼 옛날 우리 드래곤과의 경쟁에 밀려 도태된 종족. 지성을 잃고 일개 몬스터가 되어 버린 작금이지만, 먼 옛날 우리와 자웅을 겨뤘다는 과거만은 변하지 않지.”
생각보다 긴 이야기였다.
‘어르신은 가끔 이렇게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신다니까.’
슬슬 하품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으며, 카셀라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저 녀석은 어렸을 때 어미를 잃은 녀석이다. 어미를 잃고 섧게 울고 있을 때 내가 발견한 것이지. 물론 거둬 키웠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조금은 유심하게 지켜봤지.”
“……예.”
“녀석도 그 사실을 잘 아는 모양인지 나를 제법 잘 따르더구나. 더군다나 최근에 평범한 드레이크에서 엘더 드레이크로 성장한 참이라, 네 손에 목숨을 잃는 것만은 막고 싶었다. 어딜 가기만 하면 졸졸 따라오는 녀석이라 미운 정이 들어 버렸으니…….”
한심함, 기특함이 섞인 중얼거림을 들은 아몬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잠시만요.”
“응?”
“최근에 엘더 드레이크로 성장했다고요?”
“응? 그렇다.”
한동안 엘더 드레이크를 못 봤는데, 갑자기 나타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카셀라그 님이 따라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닌다고요?”
“그렇지. 녀석도 이제 다 컸는데, 아직도 그러는군.”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엘더 드레이크가 쳐들어왔을 때도 어느새 카셀라그가 영지에 와 있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럼 여태 카셀라그 이 늙은 드래곤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거잖아.’
하지만 어쩌겠는가. 드래곤은 지상계의 정점.
서로가 먹고 먹히는 생태계에 별 관심이 없다.
만약 엘더 드레이크가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오줌까지 거하게 싸지르고 갔더라도 그냥 인간들이 좀 죽었구나라며 흘려 버렸을 것이다.
다만 아몬네 영지와 인연이 있고 엘더 드레이크를 각별히 생각해 단순히 중재한 것뿐이지.
그 사실을 깨달은 아몬의 뺨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렇군. 어린 시절, 잊고 있었던 꿈이 떠올랐다.’
아몬이 아다만티움 검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래, 나는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고 싶었지.’
아! 지나간 어린 시절의 장대한 꿈이여!
하지만 그런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카셀라그는 아다만티움 검을 꽉 붙잡고 있는 것을 흐뭇한 얼굴로 보며 말했다.
“허허허, 녀석. 선물이 아주 마음에 드는가 보구나. 하긴, 그럴 만도 하지.”
“…….”
“수많은 드워프들이 가까스로 벼려낸 검이니까.”
“……드워프요?”
엘프에 대한 환상은 씨알만큼도 없었지만, 드워프에 대한 환상은 있었다.
아몬의 화는 눈 녹듯 풀렸다.
“크흠! 감사히 쓰겠습니다.”
“그래그래.”
까짓것, 이번에는 감자밭도 무사히 지킬 수 있었고, 앞으로는 엘더 드레이크도 얼씬하지 않으리라.
‘드워프가 벼려낸 아다만티움 검…… 괜히 토 달고 군소리했다간 도로 돌려 달라고 할 수도 있으니 이번은 잠자코 넘어가야겠군.’
아몬이 내심 싱글벙글 하는 순간이었다.
“음, 그런데 아몬.”
“예?”
“아직 아카데미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느냐?”
“아카데미 생명줄이 꽤 질겨서 아직 일하고 있긴 합니다.”
“흠, 그렇다면 말이지…….”
카셀라그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너도 익히 알겠지만, 내게는 수많은 혈족이 있다.”
모른다. 그러나 아몬은 대충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많은 세월을 산 드래곤이니 알을 얼마나 오랫동안 까왔겠는가.
“그렇군요.”
“그리고 최근에 꽤 눈여겨볼 녀석이 생겼더구나. 아마란스 혈족의 녀석인데, 어린 녀석인데도 상당히 영특해 장래성이 아주 유망한 녀석이지.”
“……예?”
여기까지 들은 아몬은 카셀라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교사로 일하고 있냐? 그리고 유망한 어린 녀석이 있다.
“잠깐, 어르신. 설마…….”
“그래.”
고개를 끄덕인 카셀라그가 말했다.
“아모니스 아카데미는 인간 제국의 유수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교육기관이라지? 영겁의 세월을 사는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역사를 지니고 있는 아모니스 아카데미는 허투루 볼 수 없지.”
“…….”
“그러니 녀석을 그곳에 맡기고 싶구나.”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어르신?”
“왜 그러느냐?”
“그곳은 인간의 아카데미입니다.”
“인간만을 위한 교육기관은 아니잖느냐? 학교장이 엘프인데.”
듣고 보니 그럴싸하군.
“게다가 인간 형상을 취하고 있으니 크게 눈에 띌 염려도 없을 거다. 기운이야 감추면 그만이고.”
“하지만…….”
아몬은 직감 상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엉망진창인 인간들이 잔뜩 모인 아카데미다.’
여기에 드래곤까지 입학한다?
‘심기가 불편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어린 드래곤이라도 아모니스 아카데미를 폭삭 무너뜨리기에는 충분하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몬은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군.’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아몬이 말했다.
“본 아카데미는 드래곤 님의 입학을 환영합니다.”
“허허허, 시원시원해서 좋구나.”
“그런데 말입니다.”
카셀라그의 눈치를 슬쩍 본 아몬이 말했다.
“그, 입학하려면 입학비라는 게 필요합니다만…….”
“입학비? 인간의 돈 말이로구나.”
“그렇습니다.”
“흠. 아쉽지만 인간의 금화를 쌓아두는 취미는 없는데 말이지.”
고개를 갸웃거린 카셀라그가 손가락을 탁 튕긴 순간이었다.
쿵-!!
허공에 나타나 땅에 깊숙하게 처박히는 사람 머리통만 한 금덩어리!
그것을 본 아몬이 입을 쩍 벌리고, 카셀라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 정도면 되겠느냐?”
차고도 넘친다.
그러나 억지로 표정을 관리한 아몬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허험! 뭐, 이 정도면 빠듯하게나마 가능할 것 같습니다.”
“흠. 빠듯하면 쓰나.”
카셀라그가 재차 손가락을 튕기자 오크 머리통만 한 금덩어리 두 개가 추가로 나타나 땅에 처박혔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물론이죠!!”
허겁지겁 금덩어리를 챙기는 아몬의 입꼬리는 관자놀이까지 올라가 있었다.
“책임지고 입학 수속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허허허, 그래.”
“지금은 여름 방학이니 나중에 느긋하게 몸만 오시면 될 겁니다!”
“알았다. 때가 되면 아카데미로 보내마.”
“예! 어르신!”
* * *
엘더 드레이크도 쫓아냈고, 큰손이 되어 버린 카셀라그도 손님으로 방문한 참이니 드레이크 영지에는 한바탕 축제가 열렸다.
그리고 늦은 밤.
아버지, 카임 남작의 집무실에서 영지의 재정 상태를 살펴보던 아몬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비록 현재 재정 상태는 엉망이었지만, 오늘의 소득은 푸짐했다.
‘아다만티움 검, 큼직한 금덩어리가 세 개, 거기에 엘더 드레이크의 부서진 비늘까지.’
선물받은 아다만티움 검은 당장 팔아먹을 수 없으니 당분간 자신이 쓰다가 기회를 봐서 처분하면 될 일!
‘금덩어리는 당장 현금화할 수 있고, 엘더 드레이크의 비늘은 상태가 아주 좋진 않아도 부르는 게 값일 테지.’
그동안 영지를 괴롭히던 엘더 드레이크가 귀한 선물을 주고 갔으니,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었다.
아몬은 만연한 미소를 지으며 재무표에 크게 한 획을 그었다.
‘대흑자로군! 우리 영지에 드디어 그럴싸한 재산이라는 게 생길 줄은!’
기분이 좋아진 아몬이 낄낄 웃는 와중이었다.
똑똑-!
느닷없는 노크 소리에 아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구지?’
아버지의 집무실에서 재무표를 보고 있다는 게 그리 좋은 모양새는 아니라 황급히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아미?”
“역시 여기 있었네.”
깨물어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여동생, 아미의 등장에 아몬이 허탈한 얼굴로 도로 의자에 앉았다.
“웬일이냐? 이 늦은 시간에 안 자고.”
“그러는 오빠는 아빠 집무실에서 뭐 하고 있어?”
평소였다면 ‘신경 꺼라.’ 혹은 ‘알 바냐?’라고 말했겠지만, 넉넉해진 영지의 사정 덕분에 지금 아몬의 기분은 특히 좋았다.
“그냥 뭐,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그보다 이 시간에 안 자고 뭐 하냐니까?”
“음…… 그게 말이지.”
아미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나, 오빠 아카데미에 입학하면 안 돼?”
아몬의 좋았던 기분이 확 나빠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