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64)
아카데미가 망했다 64화
우선 아나르엘에게 현 상황을 자세하게 전해 들었다.
‘으음…… 이거 생각보다 상황이 안 좋군.’
이번 사건은 황제를 중심으로 황실의 주요 관료들이 주도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도 예상 못한 천재지변으로 폭삭 망해 버린 상황.
‘그 때문에 황제는 앓아누워 버렸다. 그리고 투자라는 건 철저한 본인 책임이라, 이런 상황에서 투자금을 돌려받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아나르엘이 황제와 안면도 있고, 친분도 있으니, 어느 정도 보상해 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해도 좋겠지만, 당장 앓아누운 상황이니 독촉할 수도 없는 일.’
문제는 지금 당장 쳐들어온 상회의 인부들이 아카데미의 짐을 실시간으로 빼 가고 있다는 것이다.
‘골드로드 상회, 돈에 미친 망자들 같으니라고. 내 예전부터 그놈들을 썩 좋지 않게 보고 있긴 했지.’
골드로드 상회와는 인연이 없지 않았다.
아카데미에 처음으로 임용됐을 때 ‘킹오브망고’ 건으로 신세를 졌던 곳이니까.
‘게다가 블라톤 신전 사업이 망해서 내 쌈짓돈 2골드를 날려먹었지.’
그런 이유로 골드로드 상회에 대한 인식이 나빴다!
‘아무튼 분기마다 나오는 황실의 지원은 아직 기다려야 되는 상황이고, 황제의 직접적인 보상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그런데 실시간으로 상회에서 압류 딱지를 붙이고 있는 상황이라니…….’
말했듯, 생각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아카데미 건물 전체에 빨간 딱지가 붙는 건 시간문제이리라.
“아, 아몬 선생님.”
“…….”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신가요?”
“으음.”
걱정이 듬뿍 묻어나오는 아나르엘의 물음에 아몬이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생각이야 있습니다만, 확인해 둘 것도 여럿 있습니다.”
“네? 확인할 거요?”
“예. 상회에서 아카데미를 털고 있다는 건, 이번 사업이 완전히 망했으니 돈을 갚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 아닙니까?”
“맞아요.”
“빌린 액수는 대략 수천 골드…… 분기마다 나오는 황실의 지원금과 맞먹는 액수군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아몬이 문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근데 잠깐, 뭘 이렇게 많이 빌렸습니까?”
“안토니오가 무조건 성공하는 사업이라고 크게 투자하라 해서…….”
기회가 생긴다면, 부학교장 다음으로 황제도 자신의 손으로 죽이리라 다짐한 아몬이 말했다.
“그래서 한도까지 끌어다 쓰셨군요.”
“……네.”
“잘하셨습니다. 자알하셨어요.”
“…….”
“아무튼 돈은 한도까지 끌어다 썼고, 사업이 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상회에선 최대한 서둘러 원금을 회수하려고 허겁지겁 아카데미를 털고 있다는 거군요.”
“……그래요.”
한숨을 쉰 아몬이 몸을 일으켰다.
“그럼 우선 골드로드 상회로 가야겠군요. 당장 아카데미에 붙은 딱지는 떼야 할 테니까요.”
“네? 어, 어떻게요?”
한숨을 푹 내뱉은 아몬이 배낭에서 뭔가를 꺼냈고, 그것을 본 아나르엘은 눈부신 광채에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 * *
골드로드 상회의 지부장실.
그곳의 탁자 위에 올려 있는 사람 머리통만 한 황금 덩어리.
이번 휴가 당시 카셀라그에게서 받은 황금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골드로드 상회의 지부장, 델몬스의 입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하! 갚을 여력이 되시면서 이제야 찾아오시다니! 잘 오셨습니다!”
그리 말하며 금덩어리를 덥석 집는 델몬스의 손목을 아몬이 탁 붙잡았다.
“응? 뭐, 뭡니까?”
“방금 말하신 것처럼, 대출을 상환할 여력은 충분합니다.”
“예? 그래서 지금 갚으러 오신 거 아닙니까?”
델몬스의 말에 아몬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상환 기한을 원래대로 돌려 달라고 말씀드리러 온 겁니다.”
“예?”
“원금을 회수하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당장 아카데미를 털고 있…… 아니지, 압류 딱지를 붙이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보시다시피 대출을 갚을 자금은 충분합니다.”
지부장, 델몬스가 혀를 차며 금덩어리에서 손을 뗐다.
“확실히 그렇군요. 한데 무슨 방법으로 대출을 상환하실 계획이신지? 이미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남은 자금이 없다는 것은 확인한 상태입니다만.”
의심어린 델몬스의 눈빛에 아몬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미 검토 중인 사업이 있습니다.”
“그, 그렇습니까?”
“물론이죠. 그러니 대출 상환엔 아무 지장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말로만 해선 믿으실 수 없을 테니…….”
아몬이 손끝으로 황금을 짚으며 말했다.
“이 황금을 골드로드 상회에 담보로 맡기겠습니다.”
“……!”
“그럼 계획이 잘못되더라도 즉각 대출을 상환할 수 있을 테고, 골드로드 상회도 당장 원금 회수를 서두를 이유가 없겠죠.”
“으으음…….”
아몬 말대로 그리되면 상회 입장에서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원금을 갚을 능력이 없으니 혹시 모를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 가능한 서둘러 아카데미를 털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황금이라는 확실한 자금이 있다는 걸 확인했고, 이걸 우리에게 맡기겠다면 서두를 이유는 전혀 없다.’
결국 황금이 담보가 되는 셈이었다.
때문에 델몬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몬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황금 무게는 제가 정확하게 재 뒀습니다.”
“……예?”
“깎아서 빼돌릴 생각은 절대 마십시오. 소수점까지 무게 재 뒀어요.”
지부장이 한숨을 푹 내뱉었다.
“우리 골드로드 상회 아무르 지부가 분기마다 유통하는 금화만 수만, 수십만에 달합니다. 우리는 원금만 확실하게 회수할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
쓸데없는 짓 않을 테니 걱정 말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혹의 눈초리를 번뜩이던 아몬이 결국 몸을 일으켰다.
“그럼 곧 다시 뵙겠습니다.”
“예, 살펴 가십시오.”
아몬은 골드로드 상회에서 나왔다.
‘음…… 당장 시간은 벌었군.’
이로써 아카데미를 무자비하게 약탈하던 빚쟁이들은 물러갈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시간을 번 것에 불과하다. 빚을 갚지 못하면 다시 빚쟁이들이 쳐들어와서 아카데미를 털어 가겠지.’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덩어리를 맡겨 뒀지만, 아몬은 그것을 절대로 상회에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내가 미쳤어? 아카데미 빚을 왜 내 돈으로 해결해야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금덩어리는 터럭만큼도 건드리지 않고 돌려받아야 했다.
‘그러려면 다음이 중요해.’
지부장에게 말했던 ‘검토 중인 사업’을 잘 마무리하는 게 중요했다.
그렇기에 한달음에 아카데미로 돌아온 아몬은 곧장 아나르엘에게 향했다.
“학교장님, 찾았습니까?”
“네. 천리안 마법을 사용해서 찾는 건 금방 찾았는데, 솔직히 잘될지 모르겠어요.”
“잘될 겁니다. 아니, 잘돼야죠.”
그래야 담보로 맡겨 둔 금덩어리를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출발할까요.”
“……네.”
아나르엘이 워프 마법을 캐스팅했다. 그리고 천리안 마법으로 찾아낸 ‘누군가’를 향해 이동했다.
* * *
“후…….”
벌써 얼마의 시간이 흘렀던가.
야속하게도, 초토화된 땅을 멍하니 바라보던 중년인이 절망으로 고개를 떨어트렸다.
‘제국 조사단도 움직여 주지 않는다. 이대로 모든 걸 포기해야 하나?’
자신의 인생을 바쳐 온 숙원이 이렇게 무너지는 것인가.
좌절감이 사나이를 키운다는 말이 있지만, 지나친 절망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법이었다.
“흐흐흐……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이 지독한 원한만은 풀고 말리라.
증오스러운 그 얼굴만은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중년인의 눈앞으로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한 악마가 스멀스멀 나타났다.
‘하하하, 봐라! 얼마나 원한이 깊으면 이렇게 환상까지 보겠는가?’
으득 이를 악문 중년인이 옆에 놓아둔 서슬 퍼런 낫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눈앞의 환상을 향해 예행연습이라도 하듯 낫을 휘두른 순간이었다.
“꺄아아악!?”
자지러지는 비명과 함께 뒤로 나동그라지는 환상!
‘……아니, 환상이 아니야?’
그 사실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중년인의 눈에 불똥이 확 튀어 올랐다.
“죽여 주마앗!”
자신의 오랜 숙원, 꿈, 모든 것을 짓밟은 가증스러운 엘프!
중년인이 엘프를 향해 매섭게 달려든 순간이었다.
“자, 잠깐!”
돌연 달려든 웬 청년이 중년인을 붙잡았다.
“진정하세요!”
“이, 이익! 놔라! 저 가증스러운 악마의 피로 이 낫을 녹슬게 하리라!”
엘프, 아나르엘을 낫으로 베어 죽이려는 중년인은 다름 아닌 킹오브망고 농장의 농장주였다!
아나르엘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풍작을 기원하는 춤을 춰 댔기에 대륙 역사상 전례 없는 홍수와 물난리로 농장을 쫄딱 말아먹은 가엾은 농장주!
그렇다고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라 제국 조사단이 움직이지도 않았기에 피해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머리가 하얗게 새어 버린 농장주!
그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분을 터뜨렸다.
“저 악마 때문에 내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단 말이다! 이거 놔라!”
“으음…….”
농장주를 끌어안고 있는 청년, 아몬이 아나르엘을 힐끔 바라봤다.
그녀는 주저앉은 채 사색이 되어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아몬이 농장주의 분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비장의 물건을 꺼냈다.
“이것 좀 보십시오!”
그것은 피와 살이 있는 생물이라면 분노와 증오를 누그러뜨린다는 마법과도 같은 물건이다!
바로 오크 머리통 크기의 금덩어리!
그리고 그것을 본 농장주가 입을 쩍 벌리며 외쳤다.
“에잇! 치워라! 이딴 것!”
물난리 때문에 축축해진 진흙탕에 처박히는 금덩어리!
그 광경에 아몬이 비명을 터뜨렸다.
“아아아아악!”
허겁지겁 금덩어리를 회수한 아몬은 농장주의 가공할 분노에 일말의 공포마저 느껴졌다.
‘금덩어리를 보고도 이런 반응이라니? 대체 얼마나 화가 났기에…….’
아무튼, 자칫하면 아나르엘이 낫에 찍혀 죽게 생겼기에 황급히 농장주를 붙잡은 아몬이 외쳤다.
“일단 진정하십시오!”
“으아아악! 진정하게 생겼나? 저 간악한 마귀 때문에 내 모든 게 송두리째 날아갔는데!”
“그래서 저희가 찾아온 겁니다! 킹오브망고 농장을 재건하기 위해서!”
“뭐라고?”
흠칫한 농장주가 아몬을 바라보고, 그 말에 반응한 농장주를 본 아몬은 생각했다.
‘금을 마다하고 농장 재건에 분노를 억누르다니. 참 특이한 사람이로군.’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여간 농장주가 솔깃한 기색을 보이자 아몬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말씀드렸듯, 킹오브망고 농장의 재건을 돕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저, 정말인가? 하지만…….”
농장주가 주변을 가리켰다.
“보게나. 농장은 홍수 때문에 진흙탕이 됐고 건물도 모두 무너졌네. 한데 그걸 수습할 인부조차 고용할 수 없는 형편이지.”
“저축해 두신 건요?”
“아카데미에 배당금을 주고 남은 건 전부 농장 확장에 썼는데, 저축해 둔 게 있을 리가 있나.”
아몬은 이 양반도 정상은 아니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묘목, 종자는 있으십니까?”
“그건 지킬 수 있었다네. 그것만은 내가 목숨 걸고 지켜 냈지.”
“그렇군요. 그럼 다행입니다.”
“뭐가 다행인가?”
진흙탕이 되어 버린 드넓은 밭을 본 아몬이 말했다.
“물난리가 제대로 났으니 수습만 되면 땅의 질은 좋아졌을 테죠?”
“……수습만 된다면 말이지.”
분명 홍수는 인간에게 큰 피해를 주는 천재지변이다.
그러나 대지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었다.
홍수로 인해 유기물이 땅에 섞이고 위아래가 고루 섞여 기름진 토양을 만들어 주니까.
하지만 길게 본다면 몰라도, 당장 오늘 내일이 시급한 농장주에게 먼 미래의 기름진 토양은 사치였다.
“그러니까…….”
“응?”
“그리하면…….”
“……허어.”
농장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가능한가?”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으음…….”
침음을 흘리던 농장주가 주저앉은 채 쭈뼛거리고 있는 아나르엘을 바라보고, 아몬도 동시에 아나르엘을 바라봤다.
그리고 동시에 던져진 두 사람의 시선에.
“……?”
아나르엘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며 귀를 축 늘어뜨리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