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68)
아카데미가 망했다 68화
아몬은 이래저래 걱정이었다.
“벌써 학생들이 아카데미를 비운 지 2주가 지났나.”
곧 학생들이 자신의 품속을 벗어난 지 3주째에 접어들 시점.
아몬은 사랑스런 학생들이 걱정스러워 밤잠을 이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아! 보나 마나 날 그리워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있겠지!”
그 시각, 보리스와 레이몬드는 뒹굴거리며 낄낄대고 있었다.
“웅히히! 여기 있으니까 너무 편하다, 그치.”
“응, 살맛 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피드 후작가의 막대한 재력!
사랑하는 외동딸의 제자들이 방문했는데 대접이 소홀할 리 없었다!
결국 레이몬드는 산나물만 캐먹고 살던 한을 풀겠다는 듯 마구 먹어서 살이 오동통하게 쪘고, 보리스는 배운 마법을 절반쯤 잊어버릴 정도로 나태에 젖어 있었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건 클로에뿐이었다.
“……얘들아, 슬슬 아카데미로 돌아갈 텐데 배운 걸 복습해야 하지 않을까?”
클로에가 말해 봤지만 게으른 돼지들에겐 어림도 없었다.
“히히히! 클로에, 너도 초콜릿 먹을래?”
속도 모르고 초콜릿을 내미는 보리스를 클로에가 노려봤지만, 녀석은 평소와 달리 조금 움츠러들 뿐 반항을 일삼고 있었다.
“그, 그렇게 노려봐도 소용없어!”
레이몬드는 한술 더 떴다.
검술 실력을 인정받아 여기 머물겠냐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난 평생 여기서 떠나지 않을 테야!”
뒤룩뒤룩 살찐 돼지들을 빤히 노려보던 클로에가 한숨을 푹 내뱉었다.
‘어떡하지? 이 녀석들,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적응 못할 것 같은데…….’
원래 사람이란 한번 높은 곳에 올라가면 거기가 제자리인 줄 아는 법이다.
그러다 도로 아래로 떨어지면 겪는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때 왕족이었던 클로에인지라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말해도 귓등으로도 듣지를 않으니 원…….’
만약 여기가 아카데미였다면 두들겨 패서라도 말을 듣게 했겠지만, 여긴 아카데미가 아니라 피드 후작가다.
왕족으로서 엄격한 교육을 받아 왔던 그녀였기에 남의 가문에서 괜한 사고를 일으키는 건 엄청난 실례라는 걸 알고 있다.
‘휴, 어쩔 수 없네.’
결국 클로에는 비장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 * *
[클로에가 아몬 선생님께] [선생님, 잘 지내고 계세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자신의 안부를 묻는 클로에의 편지를 본 아몬은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동료 교사인 마리온은 자신을 죽여 버리겠노라고 협박하고, 슬로스는 자신을 함정으로 끌어들이려 혈안이 되어 있건만 학생이 보낸 편지는 어찌 이리 따스하단 말인가!
‘역시 믿을 건 학생밖에 없구나.’
아몬이 편지를 계속 읽어 봤다.
[그런데 문제는 저만 잘 지내고 있다는 거예요. 보리스랑 레이몬드, 둘의 상태가 말이 아니에요. 둘이 이곳에 머무르면서 검 한번 안 휘두르고 책 한 장 읽지 않고 있어요.]깜빡이도 없이 심각한 사태로 급회전하는 편지!
믿을 건 학생밖에 없다고 생각한 지 5초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믿을 건 클로에 하나밖에 없나?’
그리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만약 안 바쁘시다면 잠시 들러 주실 수 있나요? 레이몬드랑 보리스를 단단히 혼내 주세요!] [클로에 올림]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슬로스가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피드 후작가에 함정을 파 놨을 게 분명한 상황이거늘 클로에가 자신을 함정으로 들어오라 말하고 있었다.
‘역시 세상엔 믿을 게 하나도 없구나. 하긴, 세상은 혼자 사는 법이지.’
지독한 절망감에 치를 떠는 와중 추신이 눈에 들어왔다.
[추신-선생님, 보고 싶어요.]아몬이 편지를 소중하게 접어 품 안에 넣으며 말했다.
“그래, 클로에. 곧 가마.”
사랑하는 제자가 보고 싶다는데 안 갈 수는 없는 노릇!
슬로스가 파 둔 함정이 조금 걱정스럽긴 했지만, 명문 중의 명문인 피드 후작가가 가문 내에서 칼부림이 일어나는 걸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슬로스 선배가 난리를 피운다 해도 후작가에서 잘 말려 주겠지 뭐!’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냉혹한 법.
슬로스는 편지도 안 보냈고 함정도 안 파 놨다!
가문에 도착한 이후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잠만 자고 있었다!
그리고 함정을 판 당사자, 아몬이 중재해 주리라 믿고 있는 피드 후작은 손수 칼을 갈고 있었다.
‘내 사랑하는 딸을 욕보인 망나니 같은 놈! 단칼에 베어 주마!’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아몬은 피드 후작을 굳게 신뢰하며 후작가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혼인한다느니 뭐니 하는 오해도 풀었으니, 홀대하진 않겠지!’
* * *
“저놈의 목을 베서 개밥으로 던져 줘라!”
“어라.”
피드 후작가의 저택의 문을 두드리자마자 십이검이 기다렸다는 듯이 뛰쳐나오고, 대회의장으로 끌려가자마자 떨어진 피드 후작의 불호령!
아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자, 잠깐! 후작 각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노오옴! 네 죄를 모르겠느냐!”
분명 예전에 피드 후작가에 왔을 때도 비슷한 문답을 했었던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며 아몬이 바락바락 고함을 질렀다.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모르겠으니 말 좀 해 주십시오!”
“이 가증스러운 놈! 감히 내 사랑스러운 딸을 욕보이고도 뻔뻔하게 입을 열다니!”
슬로스의 얼굴을 못 본 지 몇 주가 되어가는 시점.
하물며 ‘욕보였다’는 표현에 아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무, 무슨 얼토당토않은 말씀이십니까! 후작 각하,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오해? 오해에에에?”
피드 후작이 노발대발하며 웬 종이를 품속에서 꺼냈다.
“이걸 보고도 오해라 말하는 것이냐!”
“……!”
피드 후작이 꺼낸 종이를 본 아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신이 슬로스에게 보낸 편지였다.
[슬로스 선배에게] [잘 지내시죠? 조만간 클로에한테 검술 실력 추월당하실 것 같은데 잘 지내신다면, 그걸로 된 거겠죠.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기분이 어떠신지?] [추신-그 검술 실력에 잠이 옵니까?]피드 후작이 들고 있는 자신의 편지를 본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망할! 함정을 판 게 슬로스 선배가 아니라 피드 후작이었구나.’
피드 후작이 슬로스에게 온 편지를 가로챈 모양이었다.
‘저 딸바보가 진짜…… 그보다 이제 어떡하지?’
이대로 순순히 베기 쉽도록 목을 길게 빼야 하나? 아니, 결단코 그럴 순 없다.
이를 악문 아몬이 고함을 꽥 질렀다.
“잠깐!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크하하하! 오해? 그래, 한번 지껄여 보거라!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피드 후작이 말하라는 듯 손을 치켜들자 옆에서 덩실덩실 칼춤을 추고 있던 피드 후작가의 십이검 칸슬로가 우뚝 멈춰 섰다.
‘좋아, 시간은 벌었다.’
그럼 이제 오해를 풀 시간이었다.
‘……근데 잠깐만.’
생각해 보니 오해가 아니기에 풀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진실, 사실, 진정, 참말만을 편지에 담았으니 뭐라 변명할 게 없었다.
‘X됐다.’
퇴로가 보이지 않자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찾아온 패닉!
그럼에도 아몬은 필사적으로 할 말을 쥐어짜 냈다.
“그…….”
“그? 유언은 그게 끝이냐?”
“아니, 그게 말입죠.”
어깨를 움츠린 아몬이 피드 후작의 눈치를 살폈다.
분노로 붉어진 얼굴의 색감을 보아하니 당장 달려들어도 이상할 게 없었고, 옆에 서 있는 칸슬로는 다시 칼춤을 추고 있었다.
즉 당장 뭐라도 지껄이지 않으면 목이 달아날 상황.
‘……에라 모르겠다.’
아몬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 편지는 슬로스 아가씨의 아름다움을 기리기 위한 편지입니다!”
“뭐, 뭐라고!?”
딸바보, 아니, 그보다 심한 딸X신 피드 후작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방법은 오직 슬로스를 칭찬하는 것밖에 없으리라!
게다가 놀랍게도.
“……!”
자신의 말에 피드 후작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굳어 있었다.
‘됐다! 먹힌다!’
딸X신답게 딸을 칭찬하니 굳어 있는 꼴 좀 보라지!
아몬이 박차를 가하기 위해 혀를 마구 휘둘렀다.
“보시다시피 그 편지의 문장 이면에는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 있…….”
“무슨 편지?”
“……!?”
돌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아몬이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슬로스가 눈살을 찌푸린 채 서 있었다.
“스, 슬로스 선배……?”
“네가 우리 가문에 들렀다고 해서 와 봤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야?”
짜증스레 말한 슬로스가 피드 후작을 홱 쏘아봤다.
“아버님, 지금 이게 무슨 일인가요?”
“…….”
피드 후작은 입을 꼭 다문 채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개가 눈치를 보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오빠들, 대체 무슨 일이에요?”
동생 X신인 오빠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떨어트린 채 굳어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슬로스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어휴, 하여간 진짜…….”
머리를 북북 긁은 슬로스가 말했다.
“그보다 무슨 편지? 나한테 편지 보냈어?”
“어…… 예, 아카데미로 언제 돌아올 거냐고 편지를 보냈었죠.”
“슬슬 돌아가려 하긴 했지만, 나 편지 못 받았는데……?”
그때 슬로스가 피드 후작을 홱 바라봤다.
그때까지 편지를 잡고 흔들고 있던 피드 후작이 황급히 그것을 뒤로 감췄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아버님, 제 편지 감추신 거예요?”
“…….”
“아니, 대체 왜…….”
못 말리겠다는 듯 한숨을 쉰 슬로스가 피드 후작에게 다가가 편지를 뺏었다.
맥없이 편지를 뺏긴 피드 후작이 뭐라 말하려는 듯 입을 우물거렸지만, 슬로스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휙 피할 뿐이었다.
딸바보를 넘어선 딸X신다운 모습이었다!
“어휴, 아무튼 아버님. 이만 물러갈게요.”
“…….”
“자, 가자, 아몬.”
아몬은 슬로스에게 붙잡혀 대회의장을 나섰다.
그리고 아몬을 끌고 가며 슬로스는 조용히 생각하고 있었다.
‘편지에 내 아름다움을 기리는 내용을 적어 보냈다고?’
슬로스가 내심 피식 웃었다.
‘하긴, 내가 좀 아름답긴 하지!’
그리고 잠시 후.
“…….”
“죄, 죄성, 슨배임.”
“…….”
“오해, 오해가 있었…….”
아몬은 편지를 읽고 살기를 뿜고 있는 슬로스 앞에 머리를 박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