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69)
아카데미가 망했다 69화
“하아.”
“…….”
“후우우…….”
“…….”
팔짱을 낀 채 한숨만 푹푹 쉬고 있는 슬로스를 힐끔 바라본 아몬이 슬쩍 입을 열었다.
“저, 슬로스 아가씨?”
“닥쳐.”
“넵.”
짜증스레 쏘아붙인 슬로스가 편지를 팔락팔락 흔들며 말했다.
“어떻게 이딴 편지를 보낼 수가 있어?”
“그, 그게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해? 오해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꼬리를 잡아끌며 압박하는 슬로스의 말투에 아몬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부녀 아니랄까 봐, 피드 후작이랑 똑같군.’
아무튼 아몬을 한참 노려보던 슬로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오해? 한번 들어나 보자.”
“그, 그게…….”
아몬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편지를 보냈었는데 답장이 없었다, 그래서 읽었는데 일부러 답장을 안 한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읽으면 반응을 안 할 수 없도록 편지를 쓴 거라고?”
“그런 거죠.”
“반응이 확실하게 있긴 했네. 내가 반응한 건 아니지만.”
“그러게 말입니다.”
피드 후작에게도 이 사연을 말해 볼까 생각했지만, 아까 피드 후작의 눈이 팽팽 돌아가던 속도를 감안하면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아무튼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 슬로스가 편지를 흔들며 말했다.
“하여간 이 편지, 진심이야? 클로에가 날 추월할 거라는 말?”
슬로스의 퉁명스러운 말에 아몬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을 열었다.
‘그럼요!’
정말로 솔직하게 말할 순 없으니 입술에 침을 잔뜩 바른 후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디까지나 답장을 받기 위해 허튼 소리를 한 것뿐이에요!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그러게. 그 대답이 네 목숨을 살렸어.”
“예?”
슬로스가 손을 흔들자 천장에서 ‘후다다닥’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아몬은 오싹 소름이 돋았다.
‘썅, 천장에 웬 인기척이 있길래 2층에 있는 고용인인가 했더니……!’
그렇게 듣는 귀들을 물린 슬로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튼 뭐, 이번 한 번만 봐줄게.”
“가, 감사합니다.”
“편지 내용이 틀리기도 했고.”
“예? 그게 무슨…….”
빙그레 웃은 슬로스가 옆에 놓아 뒀던 검을 움켜쥐었다.
그 모습에 아몬은 ‘슬로스가 드디어 날 죽이려 하는구나.’ 싶은 생각에 반격 태세를 취했지만, 곧이어 펼쳐진 광경에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고오오오-!
슬로스의 검을 타고 솟구치는 빛줄기.
소드 마스터의 전유물인 오러 블레이드였다.
“드디어 소드 마스터에 올랐거든. 뭐, 내 재능이 드디어 개화했다고나 할까?”
얼마 전부터 조짐이 보였다만, 가문에 돌아와 휴식을 취하며 익힌 것들을 되새기다 보니 소드 마스터에 올라선 슬로스.
가슴을 쭉 펴며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그녀를 본 아몬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지적해 주고 싶었다.
‘진작 소드 마스터였던 레이몬드도 클로에한테 추월당하기 직전인데, 이제 막 소드 마스터가 된 슬로스 선배라면 추월당하리라는 건 기정사실 아닌가?’
그러나 눈치 빠른 아몬은 물개박수를 치며 치켜세워 주었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저는 슬로스 선배님이 진작 소드 마스터가 될 거라 믿고 있었다고요!”
“하하하, 그래? 정말?”
“물론이죠! 이야, 이 기세라면 그랜드소드 마스터도 꿈은 아니겠는데요? 이렇게 젊은 나이에 소드 마스터에 오르시다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꽉꽉 담아 칭찬하자 슬로스의 어깨가 주먹 하나 높이만큼 솟아올랐다.
그리고 연이은 아몬의 칭찬 세례에 몸을 비틀며 기뻐하던 슬로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맞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갑자기 왜 찾아온 거야?”
“아.”
뒤늦게 이곳에 온 본연의 목적을 떠올린 아몬이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학생들은 어디 있어요?”
“애들? 애들은 다른 방에 있지.”
“그렇구나. 아까 클로에한테서 편지가 왔거든요.”
“클로에한테?”
“예. 보리스, 레이몬드가 아카데미에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와서 단단히 혼쭐을 내달래요.”
“그, 그래?”
슬로스가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하긴, 요즘 나도 나대로 바빠서 애들 상태를 보진 못했네.”
“교사라는 분이…….”
“넌 내가 교사가 적성에 맞다고 생각해?”
아몬이 천장을 힐끔 바라봤다.
듣는 귀는 없는 것 같았다.
“아뇨. 전혀요.”
“고민이라도 좀 하고 말해라. 아무튼 그렇단 말이지…….”
슬로스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가자. 안내해 줄게.”
“예, 선배님.”
* * *
“웅히히! 이거 진짜 맛있다!”
“꿀꺽, 꿀꺽! 캬! 이게 인생이지!”
음식과 마실 것에 파묻혀 삶을 즐기고 있는 레이몬드와 보리스!
“냠냠, 초콜릿이 쥬시해.”
“좋은 단맛이 나.”
시시덕거리며 사치와 향락에 젖어 있는 그들의 목소리를 문밖에서 엿듣는 아몬의 몸은 분노로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이, 이 녀석들이 진짜…….’
열심히 가르친 학생들이 타락한 것에 대한 분노일까? 아니다!
‘감히 나는 어릴 때 입도 못 대 본 초콜릿을 쌓아 놓고 먹어?’
부러움과 질투!
감자가 주식인 드레이크 영지의 차남, 아몬 드레이크는 벌써부터 못된 것부터 배운 학생들의 나태함을 호되게 응징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놈들!”
문짝을 걷어차며 들어가고 싶었지만, 피드 후작가의 건물답게 무척이나 비싸 보였기에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간 아몬이 노성을 터뜨렸다.
“배움과 검소에 힘써야 할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어찌 이런단 말이냐!”
느닷없는 아몬의 등장에 보리스와 레이몬드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서, 선생님이 왜 여기에…….”
“너희들이 살찐 돼지가 됐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왔다!”
“익명의 제보……!”
제보할 사람은 단 하나뿐!
보리스와 레이몬드가 눈에 불을 켜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클로에가 거칠어진 손톱을 다듬으며 앉아 있었고, 그들의 시선을 받은 클로에가 눈을 새치름하게 뜨며 그들을 바라봤다.
“뭐?”
“아, 아냐. 아무것도.”
“쯧.”
나태의 책임을 클로에한테 전가하는 학생들을 본 아몬이 호통을 쳤다.
“이놈들! 당장 일어나라! 내 너희들의 배움이 흐려지진 않았는지 엄히 살펴볼 것이야!”
“네, 네! 선생님!”
“당장 연무장으로 나가…… 슬로스 선배, 연무장이 어디죠?”
“나가서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후문으로 나가면 돼.”
“들었지? 어서 나가라, 이놈들!”
두 마리 살찐 돼지들이 허겁지겁 연무장으로 나간 후, 씩씩대던 아몬이 접시에 쌓여 있는 초콜릿을 향해 다가갔다.
어린 시절,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초콜릿!
그 탓에 상처가 된 데다 고가품이라 어른이 된 지금도 도무지 사 먹을 수 없었던 음식!
초콜릿을 입에 넣은 아몬은 동심을 되찾았다.
“훌쩍! 초콜릿은 이런 맛이었구나.”
“……아몬.”
“예?”
“갈 때 초콜릿 좀 챙겨 줄게.”
“헉! 감사합니다!”
* * *
‘음,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군.’
소드 마스터에 오른 검사이며 산나물 애호가인 레이몬드의 날렵한 턱선은 두 개의 능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르지도, 찌지도 않았던 보리스의 평범한 체격은 듬직하니 무게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피드 가문에서 빵에 기름을 절여서 먹였나? 그러지 않고서야 고작 몇 주 사이에 이렇게 변할 수가…….’
근육 단련을 하는 이들이 봤다면 게거품을 물고 식단을 알려 달라 애걸할 정도로 극적인 변화!
침음을 흘리던 아몬이 말했다.
“자, 그럼 먼저 보리스부터.”
“네, 네! 선생님.”
“네가 배우던 마법 이론부터 확인해 보자.”
침을 꼴깍 삼키는 보리스를 보며 말했다.
“마법의 3대 이론 중 하나, 마나의 불확실성에 대해 설명해 보렴.”
아몬의 질문에 지켜보던 클로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 저건 알겠지.’
마법을 중심적으로 익히지 않은 클로에조차 아는 기본 이론이었다.
‘마나는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으며, 마법과 검술을 수련하지 않는 이는 평생 느끼는 것조차 힘든 것이 마나다. 또한 마법에 매진한 이들조차 마나가 그곳에 존재한다는 확신을 가지기 힘들며, 때문에 마법은 아직도 그 정체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학문이다.’
겉만 보자면 이렇지만, 좀 더 깊이 파고들 여지가 있는 심도 높은 이론.
그리고 클로에가 이 정도로 안다면 보리스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 예상대로.
“……밝혀지지 않은 학문이에요!”
“정확하구나!”
이론의 설명을 마친 보리스를 본 아몬의 얼굴에 흡족함이 떠올랐다.
클로에도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내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진 않은가 보다.’
아몬도 클로에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말을 이었다.
“좋아, 그럼 다음 문제! 마나를 화염 마법으로 치환하는 공식의 주의 점은?”
이건 클로에가 모르는 문제였다.
마법 ‘사용’의 주의점이니까.
‘그래도 보리스는 알겠지?’
하지만 어느 현자는 말했었다! 기대를 하니까 배신을 당하는 것이라고!
“모르겠어요.”
보리스가 헌신짝 내다 버리듯 믿음을 저버리자 아몬이 입을 쩍 벌렸다.
“보리스! 얼마 전에 배운 거잖아!”
“저, 정말요? 기억 안 나요…….”
배신감에 치를 떨던 아몬이 문득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베스트릭 아카데미와의 교류전을 위해 보리스에게 사용했던 마법인 ‘안 좋은 일은 오래 기억하는 마법’의 주의점이 떠오른 것이다.
아나르엘은 이렇게 말했었다.
‘이 마법은 긴장의 끈이 지나치게 풀어지면 반작용이 꽤 크게 와요.’
‘예? 바, 반작용이라면……?’
‘뭐, 그동안 배운 것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는 거죠. 몇 주 내내 놀거나 복습을 안 한다거나 그러면 일어나는 현상이고요.’
‘하하하! 보리스가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호호호! 그렇죠?’
한데 맞닥뜨린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아아악!”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던 아몬이 확 고개를 돌렸다.
“그, 그럼 다음! 레이몬드!”
“네, 넵!?”
“이리로 와서 서! 목검 들어! 그 인형은 좀 내버려 두고!”
아몬의 불호령에 레이몬드가 쭈뼛거리며 목검을 들었다.
“그럼 창천검 제 1초식! 시작!”
“네, 넷!”
레이몬드가 너울너울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아몬이 또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레이몬드의 움직임은 듬직해진 풍채와 비례하게 느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 이럴 순 없어…….’
혹시 몰라 챙겨 온 물건, 심신 안정에 큰 도움을 주는 캐모마일 잎을 우적우적 씹어 먹던 아몬이 홱 고개를 돌렸다.
“클로에.”
“……네, 네!?”
나까지 타깃이라고? 클로에의 동공이 흔들렸다.
“너도 한번 보자.”
“서, 선생님., 전 괜찮아요.”
“아냐! 너도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뺨이 통통해졌어!”
“……!”
클로에도 정도가 덜했을 뿐이지 보리스와 레이몬드 틈바구니에 섞여 든든하게 챙겨 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몬의 충격 발언에 클로에가 딱딱하게 굳어 버리고, 상황을 지켜보던 슬로스가 차가워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진짜 개 쓰레기다.”
“시끄러워요! 자, 클로에! 피드 검술 1초식, 시작!”
* * *
아몬은 옆으로 쓰러진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클로에의 검진 결과도 레이몬드와 그다지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아아, 별이 지는구나. 내 희망의 별들아.’
가르친 학생들의 덕을 톡톡히 보겠다는 원대한 야망이 이렇게 스러지다니!
절망감에 오열하던 와중이었다.
“어, 저기, 아몬?”
“……왜요.”
“일어나 봐. 할 말 있거든.”
“……뭔데요.”
비틀비틀 몸을 일으킨 아몬이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슬로스의 옆에는 웬 낯익은 중년인 하나가 서 있었다.
예전에 봤던 피드 후작가의 집사였다.
“음, 네. 그렇게 전할게요.”
“예, 아가씨.”
헛기침을 한 슬로스가 말했다.
“에, 그러니까 네가 라인벨트 어르신한테 편지를 보냈다면서?”
아몬의 얼굴이 충격으로 굳었다.
‘잠깐, 설마…….’
슬로스가 말을 이었다.
“드디어 네가 검술에 뜻을 뒀다고, 라인벨트 어르신께 가르침을 청했다고 했다지? 그래서 라인벨트 어르신이 크게 기뻐하시면서 너를 불렀어.”
“뭐, 뭣!?”
단순히 답장을 받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그런데 그걸 진심으로 알아먹고…….
‘그래, 거절하자. 그 영감 제자로 들어가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산나물만 캐 먹고 살던 반동으로 레이몬드가 어찌 되었는지를 보라!
때문에 아몬이 서둘러 거절의 의사를 밝히려는 순간.
“마침 제국 4대 기사 회합도 잡혀 있으니 다른 4대 기사 분들께 널 소개시켜 주고 싶다고 하시더래. 양해는 구해 뒀으니 오기만 하면 된다 하셨어.”
도망가려던 쥐구멍은 어느새 막혀 있었다!
다른 제국 4대 기사들이 라인벨트 영감의 감언이설에 놀아나 기대하고 있을 텐데 어찌 거절한단 말인가!
“아, 아, 안 돼!”
“그래서…….”
슬로스가 집사를 힐끔 보며 말했다.
“지금 바로 가요?”
“아,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집사가 쪼르르 걸음을 옮겨서 건물 모퉁이 너머에 몸을 숨기고 있는 피드 후작에게 향했다.
슬로스 앞에만 서면 굳어 버리니 거기 숨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곧 돌아온 집사가 말을 전했다.
“마침 후작 각하께서도 소집에 응하시려던 참이라, 곧 출발하실 예정이니 아몬 드레이크 공자께선 함께 회합에 동행하시면 될 듯합니다.”
퇴로를 완벽히 차단하는 그 말에 아몬은 결국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