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7)
아카데미가 망했다 7화
아몬의 숙소.
그는 침대에 엎어진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아카데미는 끝장이야.”
폐급 학교장.
나태한 검술 교사.
뒤통수를 치려는 주정뱅이.
“내 희망찬 미래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푸념하던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래, 이보다 더 최악은 없겠지. 하나씩 차근차근 해 나가자.”
적어도 아카데미에 자금줄이 생겼으니 봉급을 못 받을 염려는 없으리라.
‘슬로스, 마리온도 가르치는 실력 하나는 나쁘지 않아.’
게으르고, 주정뱅이라는 하자가 하나씩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것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지. 점심시간이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아카데미의 식당.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메뉴가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싸고 맛있다!
영지에 있을 땐 감자가 주식이었기에 충분히 사치스러운 메뉴들이었다.
‘오트밀, 구운 햄과 샐러드! 생일 때나 먹어 볼 수 있는 식사로군.’
입맛을 다시며 식당 안을 둘러봤다.
널린 게 자리였지만, 아는 얼굴이 있다면 동석하는 게 좋으리라.
‘아는 얼굴이라 해 봐야 몇 명 없지만 말이지.’
이윽고 목격한 것은, 한자리에 앉은 슬로스와 마리온이 황급히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설마 직장 내 따돌림!’
하지만 이런 일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아몬은 코웃음을 쳤다.
‘같이 놀아 달라고 해도 당신들이랑 안 놀아.’
아몬이 휙 멀어지자 슬로스와 마리온이 소곤거렸다.
“아무튼 너도 동감하지?”
“응. 검술도 안 배우고 마나도 못 쓰는데 고위험 몬스터들을 잡아 죽였댔어. 그런데 검술, 마나를 다루는 방법까지 배운다면…….”
“나도 그렇다. 아버지한테 조금 배운 이론으로 마법진을 뜯어고쳤는데, 만약 마법을 제대로 배우면…….”
의견이 일치한 두 사람이 은밀하게 눈빛을 교환했다.
아몬에게 일체의 기술 전수를 금하는 ‘아몬 비교육 연맹’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한편.
“아, 여기 있었구나.”
찾던 얼굴이 보이자 아몬이 얼른 그리로 향했다.
“안녕, 얘들아. 앉아도 되니?”
“아, 선생님. 물론이죠.”
보리스와 클로에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둘 다 오전 수업 고생했어.”
“선생님도 고생하셨어요.”
슬로스를 잡으러 다니고, 마리온의 술주정을 받아 주고 등등.
오직 너희만이 고생했다는 걸 알아주는구나.
포크와 나이프를 들며 말했다.
“그래, 너희한테 묻고 싶은 게 있거든?”
“네? 뭔가요?”
“몇 개월 후에 경진대회가 있는 거 알고 있니?”
“네, 알아요.”
둘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혹시 너희 둘, 참가해 볼래?”
“……네? 저희가요?”
“그래. 좋은 경험이 될 거야. 그리고 경험은 평생 남는 재산이지.”
만약 안 나간다고 하면 어떻게든 설득해 볼 작정이었다.
성적이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아카데미를 개선할 의지가 있다는 걸 황제 폐하에게 보여 줄 수 있으니까.
‘물론 그걸로 권고 철회까진 힘들겠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조금은 더 생길지도 모를 일이지.’
그리고 그 물음에 침묵하고 있던 두 사람 중 보리스가 입을 열었다.
“안 나갈래요.”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괜찮다.
‘한번 설득을 해 볼…….’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보리스가 말했다.
“저는 평민이잖아요. 그런 곳에 나가면 창피만 당할 게 분명해요.”
“으, 응?”
“평민인 저따위가 귀족님들과 경진대회에서 겨룰 수 있을 리 없잖아요. 귀족님들이 얼마나 대단하신데…….”
자기 비하를 퍼붓는 보리스에게 얼른 말했다.
“보리스! 평민에게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잖니? 제국에 평민 출신의 귀족들이 얼마나 많은데!”
실제로 그랬다.
성장 환경 등등은 차치하고, 제국은 공을 세운다면 평민 역시 얼마든 귀족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보리스의 뚝심은 대단했다.
“그건 그분들이 대단하신 거고요.”
“…….”
“고작 저따위가 뭘 할 수 있겠어요!”
땅을 파고 들어갈 것 같은 지독한 자기 비하!
보리스는 아예 울상을 짓고 있었다.
‘망했다.’
이 빌어먹을 아카데미의 유일한 양심이요, 오아시스였던 학생 중 하나가 이렇게 자기 비하가 심할 줄이야!
‘교사진을 보고 이보다 더 최악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잘못하면 더한 최악으로 굴러 떨어지게 생겼구나.’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에 허겁지겁 입을 열었다.
“보리스.”
“훌쩍! 네, 선생님.”
“그래. 이 선생님을 보렴.”
“……네?”
“선생님도 어릴 땐 겁도 많고 대단한 약골이었단다.”
거짓말이다.
어릴 때부터 그 험한 아르마 산맥을 뛰놀고, 영지의 동년배들에게 ‘매콤 주먹 아몬’이라는 이름으로 뭇 경외를 받았다.
“하지만 보렴! 이렇게 아카데미의 선생님이 되었잖니?”
“서, 선생님은 귀족가 출신 아니세요?”
“……맞긴 한데, 그래도 지금은 선생님이 됐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아니겠니? 선생님은 아무나 하는 줄 아니? 아무나 못해!”
거짓말이다.
지금 상황의 아카데미라면 개나 소나 선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나도 아버지의 얄팍한 인맥으로 들어온 거고.’
그러나 어린아이에게 ‘선생님’이라는 단어는 무겁다.
정말인가, 싶은 얼굴로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보리스에게 계속 말했다.
“게다가 경진대회에 나가서 열심히 하면 귀족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단다?”
“귀, 귀족이요? 제가요?”
“그러엄! 귀족이 되면 얼마나 좋은 줄 아니?”
보리스가 아껴먹던 보리 오트밀을 힐끗 보며 말했다.
“고, 고기도 매일 먹을 수 있어요?”
아몬이 구운 햄을 덜어 주며 말했다.
“그러어엄! 선생님은 매일 고기만 먹고 살았단다!”
거짓말이다.
감자가 주식이었다.
“게다가 경진대회가 자주 있는 건 아니잖니? 이건 기회야!”
“꿀꺽! 귀족…… 고기…….”
눈을 초롱초롱 빛내던 보리스가 갑자기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저따위가…….”
“보리스! 그런 말 마렴! 아직 몇 개월이나 남았잖아? 열심히 하면 되지!”
“하, 하지만…….”
우물쭈물하는 보리스에게 구운 햄을 조금 더 덜어 주며 말했다.
“귀족이 되고 싶지?”
“……네.”
다행히 보리스는 출세욕이 있다.
즉 아카데미에 온 목적에 충실하다는 뜻!
“좋아. 오후에는 수업이 없잖니? 선생님이 특별 수업을 해 주마! 게다가 틈틈이 역사 수업, 일반 학문도 가르쳐 주마!”
출세를 하려면 우선 재주가 많고 봐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따로 시간을 내서 수업을 해 준다는 말에 보리스가 침을 꼴깍 삼켰다.
“저, 정말요?”
“그럼! 대신 열심히 해야 한다?”
“네! 열심히 할게요!”
힘찬 보리스의 대답에 아몬이 푸근하게 웃었다.
‘훌륭하다, 보리스.’
이 정도의 의욕이 있다면 경진대회에서 충분히 좋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터!
‘부디 내 출세의 밑거름이 되어다오!’
아몬이 다음 타깃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태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클로에를 향해 말했다.
“클로에도 경진대회에 나가 볼래?”
“저, 저는…….”
대답을 듣기 위해 빤히 바라보자 클로에가 어깨가 움츠리더니, 고개를 떨어트린 채 벌벌 떠는 게 아닌가.
‘……어라?’
보리스가 대신 설명했다.
“선생님, 클로에는 겁이 많아요.”
“……겁이 많아?”
“네. 특히 사람이 쳐다보는 걸 무서워하고 사람이 많은 곳도 무서워해요.”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경진대회! 관중이 수백, 수천은 될 것이다!
아무리 목적을 위해서라지만, 무서워서 벌벌 떠는 클로에더러 경진대회 참가를 강요하는 건 못할 짓이다.
‘게다가 겁이 많은 건 설득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지.’
빠른 포기는 정신 건강에 좋다.
벌벌 떠는 클로에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강요하려던 건 아니었단다. 신경 쓰지 마렴, 클로에.”
그때 고개를 떨어트리고 있던 클로에가 말했다.
“……요.”
“응?”
“……싶어요.”
목소리가 너무 작아 못 들었기에 멍 때리고 있는 와중, 클로에가 한층 더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참가하고 싶어요.”
“……!”
“이, 이런 저를 극복하고 싶어요.”
가느다랗지만 결연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
처음 보는 클로에의 적극적인 모습에 보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아몬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구나! 햄 먹으렴!”
구운 햄을 덜어 주며 말을 이었다.
“극복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란다! 암, 그렇고말고!”
“저, 정말요?”
“그러엄! 나도 어릴 땐 부모님 말고 다른 어른들을 얼마나 무서워했는데!”
거짓말이다.
어른들만 보면 용돈 한번 받아 보겠다고 얼굴을 땅에 박다시피 하며 살았다.
“나도 그랬는데, 네가 못할 이유가 없잖니? 너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단다.”
“……네, 열심히 할게요.”
“그래, 그래! 햄 더 먹으렴!”
어느새 생일에나 먹을 수 있을 법한 햄 덩어리가 반 토막이 났지만, 마음만은 푸근했다.
‘이 기특한 녀석들!’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점심시간이 끝나고 잠시 쉬었다가 연무장에서 보자꾸나.”
그 말에 자신의 미래를 구원해 줄 두 줄기 동아줄도 환히 웃으며 답했다.
“네! 아몬 선생님!”
* * *
아몬은 검술에 문외한이다.
그렇기에 보리스와 클로에의 체력을 우선적으로 단련시켜 주기로 했다.
‘그렇게 늘어난 체력으로 슬로스에게 열심히 배우면 돼!’
그리고 아버지께 배운 마법의 기초 이론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준다면, 마리온의 수업을 이해하기도 수월할 터!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일반 학문을 가르쳐 주는 거지!’
완벽한 계획!
아니, 완벽한 계획이었을 터였다.
“흑흑! 못하겠어요!”
“훌쩍! 너무 힘들어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때문에 두 학생에게 체력 단련을 위해 연무장을 가볍게 달리게 했다.
그런데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질질 짜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동아줄이 아니라 썩은 새끼줄이었구나.’
눈을 질끈 감은 채 말했다.
“……휴, 둘 다 많이 힘드니?”
둘 다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이자 아몬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래, 체력 단련은 천천히 진행하자.’
마음을 넉넉하게 먹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조금만 쉬었다가 마법 이론 수업을 하자꾸나.”
“훌쩍! 네, 선생님.”
잠시 후.
“……해서, 마법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냈단다!”
“……?”
“자, 여기까진 이해했니?”
보리스와 클로에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뭐?”
“어려워요…….”
아몬이 눈을 끔뻑거렸다.
“이게 왜 어렵니?”
“…….”
“마법의 기초 이론일 텐데?”
“죄, 죄송해요.”
“아니, 죄송할 건 없는데…… 이게 왜 어렵지?”
어리둥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거리던 아몬이 한숨을 푹 쉬었다.
“휴, 그럼 얘들아.”
“네, 선생님.”
“쉴 만큼 쉬었지?”
“……네?”
“자!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그 느닷없는 말에 보리스와 클로에가 벌벌 떨기 시작했다.
아까 연무장을 달리던 두 사람의 뒤를 쫓아오며 아몬이 외치던 구령이었기 때문이다.
* * *
“발이 보인다! 더 빨리 달려, 얘들아!”
“히익, 히이익!”
“따라 해!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거, 건강, 그웨에엑!”
결국 보리스가 토악질을 하며 주저앉고, 클로에도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아니, 얘들아. 뭐 얼마나 달렸다고 벌써 힘들어하니?”
“헉, 흐윽! 엉엉!”
“거참, 이해가 안 가네…….”
하긴, 생각해 보면 슬로스가 아이들의 체력 단련을 열심히 시켰을 리가 없잖은가!
‘녀석들, 운 좋은 줄 알아! 이 기회에 내가 너희들을 듬직하게 만들어 주마!’
다짐하던 와중.
“……아몬 선생.”
“응?”
어느새 슬로스와 마리온이 시커메진 얼굴로 다가와 있었다.
‘흥, 이 업무 태만 교사들.’
아까 기초 마법 이론도 모르는 걸 보니, 마리온 역시 수업을 딱히 제대로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때문에 아몬이 퉁명스레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슬로스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보다시피 학생들의 체력을 단련시켜 주고 있었죠.”
“……뭘 시켰는데?”
아몬이 산뜻한 얼굴로 말했다.
“가볍게 연무장 100바퀴 달리기요.”
“……100바퀴?”
“네.”
“10바퀴가 아니고? 아니, 10바퀴도 좀 많은…….”
“에이, 연무장 이거 좁아터진 거 10바퀴 돌아서 무슨 체력 단련이 돼요? 솔직히 100바퀴도 너무 적다 싶어서 걱정인데.”
우리 영지에선 아이들도 아침 산책으로 부모님들과 함께 아르마 산맥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아, 그리고 마리온 선생님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마법 이론을 조금 가르쳐 줬죠. 아버지께 조금 배운 정도지만요.”
마리온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대체 뭘 가르쳤나?”
“에테르와 마나의 상관관계 규명이랑, 마법의 정의가 에테리우스와 물질계의 간섭 장벽을 무너뜨리는 거라는 사실 증명 정도요. 근데 이해를 잘 못하더라고요. 딱히 어려운 것도 아닌데.”
“…….”
에테르학.
못해도 6서클 마법사는 되어야 겉 페이지를 날름 핥아 볼 학문.
세계의 원리 자체를 엿보는 행위라, 미숙한 마법사들은 결코 익혀서는 안 될 학문.
마리온이 생각했다.
‘이 어린애들한테 에테르학을 가르쳤다고?’
슬로스도 생각했다.
‘이 어린 애들한테 연무장 100바퀴를 달리라고 했다고?’
굳어 있는 두 사람을 본 아몬이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문제 있습…….”
아몬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학생들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슬로스와 마리온이 냅다 달려들어 발로 걷어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