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72)
아카데미가 망했다 72화
황제가 드레이크 가문 거부 반응 발작으로 쓰러진 이후,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제자야.’
‘예, 디아나 스승님.’
‘아니, 아몬 드레이크야. 검을 돌려다오.’
‘예, 어르신.’
헛기침을 한 디아나가 검을 돌려받으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너를 제자로 삼으려 했으나, 우리 펜도리안 가문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치러야 할 역사 깊은 절차가 있단다. 그 절차를 수행하기 전엔 내 제자로 받아들일 수 없지.’
‘……그게 무엇인지요?’
‘바로 제국의 적수 하나를 베는 것이란다.’
분명 아까 전엔 이미 퇴색된 전통이며, 당장 제국 어디에 적이 있냐며 라인벨트에게 호통을 치지 않았던가.
제국의 으뜸가는 충신 가문인 펜도리안이기에 황제가 심기불편해하는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이기가 꺼려졌기에 저런 구실을 갖다 붙이는 것이리라.
‘그러니 아몬 드레이크.’
‘뭐요.’
이미 퉁명스러워진 아몬!
그러나 디아나는 애써 그 말투를 무시하며 손가락을 뻗었다.
어딜 가르치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말이다.
‘자, 가거라! 제국의 적을 섬멸하고 오거라! 그리하면 너는 정식으로 펜도리안 가문의 일원이 될 것이다!’
말했듯, 제국의 적은 없다.
즉 가망이라곤 전혀 없는 이야기!
그리고 현재, 아몬은 아카데미로 돌아와 축 늘어져 있었다.
“내 인생은 글렀군.”
적어도 지금의 황제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이상 자신의 출세는 가망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유일한 해답은 제자를 장성시켜서 덕 좀 보겠다는 거였지만, 그것도 피드 가문에서 본 꼴을 보니 가능성이 낮은 것 같다.’
어떻게 된 것이 고작 몇 주 눈을 뗐다고 게을러졌단 말인가!
몇 주 안 봤다고 퇴화해서 뗀석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 브레슬보단 낫지만, 사람은 아래를 보기보단 위를 보라는 말이 있다.
‘……녀석들, 아카데미로 돌아오면 호되게 가르쳐야겠군. 아몬 지옥 풀코스로 모셔 주마.’
여름방학이 끝나기까지 남은 기간은 고작해야 일주일 남짓!
방학이 끝나기 전에 슬로스가 책임지고 학생들을 데리고 아카데미로 복귀한다 했으니 학생들이 지옥 풀코스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후후, 기대되는구나. 고통과 절망으로 몸부림치는 너희들이 모습이…….”
흉심으로 눈을 번쩍이던 아몬이 몸을 일으켰다.
말했듯 여름방학이 끝나기까지 일주일 남은 시점이었기에 슬슬 지옥 풀코스의 내용을 구상해 둬야 했다.
‘뭐, 그보다 슬슬 아카데미도 정상화가 되어 가는구나. 브레슬 부학교장도 돌아왔고, 슬로스 선배님이랑 학생들도 곧 돌아올 거고, 카이는…….’
생각해 보니 카이 이놈만이 여태껏 답장이 없었다.
‘하지만 괜찮아. 녀석은 내 후배. 돌아오면 질근질근 짓밟아 주면 된다.’
선배들에겐 최소한의 예를 취했지만, 후배에게까지 그럴 필요는 없으리라!
그리 생각하던 아몬이 문득 뭔가를 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지? 뭔가 묘한 불안감이…….’
피드 후작가에 지갑이라도 두고 왔나?
‘아냐, 있다. 그럼 이 불안감은 대체…….’
묘한 위화감에 진저리를 치던 아몬이 흠칫하며 책상 위를 바라봤다.
대충 접어 구석에 놔둔 편지 한 장에서 시커먼 마기가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아!’
마리온이 보낸 편지!
[돌아가면 넌 뒤졌다 이 개새ㄲ]자신을 향한 증오, 원망, 분노가 한껏 서려 있는 저주의 편지!
편지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는 것 같은 환상을 본 아몬이 중얼거렸다.
“잊고 있었군. 잘못하면 큰일 날 뻔했어.”
마리온의 거대한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선 대륙 전역의 명주가 필요하리라.
그리 생각한 아몬이 허겁지겁 도시 아무르로 나가 갖가지 술을 구매했다.
가급적 이름만 거창하고 가격대는 싼 것들로!
“후후, 열 병이나 사 놨으니 마리온 선배도 이걸 보면 화가 풀리겠지?”
그리 생각한 아몬이 흡족한 얼굴로 아카데미로 복귀하는 찰나였다.
덜컹-!
우편함에 웬 편지를 넣고 돌아가는 배달부.
설마 카이가 보낸 편지인가 싶어 얼른 우편함을 열어 본 아몬이 흠칫했다.
“큭……!”
눈에 보일 정도로 짙은 살기가 배어 있는 편지!
‘마리온 선배가 보낸 거구나!’
그가 황급히 편지를 열어 봤다.
[내 너를 가만 보니 선배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극심하구나. 이곳 마탑의 일도 슬슬 마무리되어 가는 와중이니, 돌아가는 대로 네놈의 무례를 일벌백계할 것이야. 내가 왜 대전쟁 시절 ‘홍염의 마귀’라 불리며 적들이 두려워했는지 깨닫게 해 주마.]극심한 분노가 서려 있는 편지!
‘X됐다!’
아몬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리온은 성격 자체가 비교적 유한 편이었다.
크게 화가 나도 흘려버리고 금세 푸는 편.
‘그런데 마리온 선배가 이렇게 화가 난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겠지.’
마법사는 금욕을 미덕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런 마법사의 성지인 마탑이라면 술 한 방울도 입에 못 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우리 마리온 선배가 한동안 술을 못 마셨더니 화가 잔뜩 났구나!’
중증 말기의 알코올 중독자 마리온!
선배가 안쓰럽게 느껴진 아몬이 중얼거렸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지.”
아몬이 아무르에서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술병을 훑어봤다.
이 정도 술이라면 불타오르는 마리온의 분노를 잠재우기에 충분할 터.
“……자, 그럼 어디 한번 가 볼까!”
아몬은 다음 행선지를 마리온이 있는 이그니스 마탑으로 정했다.
* * *
“이보게, 마리온.”
“그르르르…… 뭡니까, 마탑주.”
“커흠, 진정 좀 하게. 그깟 술, 안 마시면 좀 어떤가?”
“그깟 술이라 하셨습니까!?”
역정을 내는 마리온을 본 마탑주가 흠칫하며 물러났다.
그리고 마리온이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술이란 무엇인가! 차가운 불에 달을 담아서 마신다는 유구한 격언이 있습니다!”
“잠깐! 그 말은 좀 위험…….”
“떽! 또한 술은 사람의 긍정과 유대감을 끌어내 주며 사람의 혼을…….”
술의 장점을 줄줄이 늘어놓는 마리온을 본 마탑주는 생각했다.
‘술의 단점만 모아 둔 것 같은 인간이 장점을 논해……?’
대전쟁의 전쟁영웅이며 자작이라는 작위를 지니고도 술만 퍼마시다 영지, 재산을 죄다 탕진한 마리온이 장점을 백날 말한들 설득력이 있을 리 없었다.
하여간 황급히 손을 휘저어 마리온의 말문을 막은 마탑주가 말했다.
“알았네, 알았어. 그보다 자네한테 손님이 왔다네.”
“술은…… 엉? 저한테 웬 손님이요?”
“아카데미에서 온 자네의 후배라고 하던걸? 이름이 아마도 아몬이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리온이 눈썹을 휘날리며 몸을 날렸다.
그간 술을 못 마셔 침울해 있던 마리온이라곤 믿지 못할 움직임이었다.
* * *
아몬은 마탑의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호오. 여기가 마탑이구나. 처음 와 보는 곳인데…….’
마법의 끝을 탐구하는 지식인들의 성지, 마탑!
마탑 그 자체는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않은 채 중립을 유지하며 오직 마법의 비밀을 파헤치는 집단이다.
물론 수많은 마탑 중에서도 친국가적 성향을 지닌 곳이 있는데, 아몬이 온 이그니스 마탑이 바로 친제국 성향을 지닌 곳이었다.
그곳 소속이었던 마리온이 괜히 제국의 전쟁영웅이 아닌 것이다.
‘하여간 잘 풀렸으면 좋겠는데…….’
그리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문짝을 부술 것처럼 걷어차고 들어온 마리온이 응접실 안을 휙휙 둘러봤다.
그리고 아몬을 발견한 순간.
“크, 크크크, 후배야.”
“선배님!”
반갑다는 듯 아몬이 몸을 일으키자 마리온도 후배와의 만남이 기쁘다는 듯 만면에 가득 미소를 드리웠다.
물론 그 미소에는 살의가 가득 묻어 있었다.
“내가 애지중지 모셔 둔 명주를 네가 축냈더냐?”
“선배님, 오해입니다.”
또 망할 놈의 오해를 입에 담은 아몬이 손을 뻗었다.
“그 편지는 선배님의 답장을 받아 내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을 뿐, 선배님께서 방에 몰래 숨겨 둔 ‘올나잇 파티’은 전혀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그 술이 올나잇 파티인 건 어찌 알았느냐?”
“……아뿔싸!”
사실 진짜로 마시긴 했다!
아카데미 전원의 이탈로 인해 멘탈이 나간 아몬이 슬쩍 손댄 것이다.
“……다 마시진 않았습니다.”
“마시긴 마셨구나.”
“하지만 반이나 남겨 뒀습니다.”
“반밖에 안 남겼구나.”
말꼬투리를 잡으면서 스멀스멀 살의를 피워 올리는 마리온의 모습에 아몬이 황급히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선배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것 좀 보십시오!”
큼직한 나무 몽둥이!
그것을 본 마리온이 활짝 웃었다.
“그걸로 때려 달라는 뜻이냐? 묵직하니 때리는 맛은 좋겠…….”
마리온은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돌연 아몬이 나무몽둥이의 손잡이 부분을 쑥 뽑은 것이다.
그와 동시에 방 안을 스르르 채우는 기분 좋은 냄새!
“이, 이건……!”
아몬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술입니다!”
“뭣!?”
마리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금욕의 성지라 불리는 마탑!
술을 밀반입하는 건 어불성설! 때문에 마탑에 출입할 때 철저한 검문을 거치는데, 검문을 피하기 위해 나무를 깎아 속을 파내 술을 담아 왔다는 것인가!
“후후후, 호신용 몽둥이라 적당히 넘기고 반입한 술입니다.”
“그, 그런…….”
“선배님.”
아몬이 술 냄새 나는 몽둥이를 들이밀며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고초가 심하셨습니까. 못 본 사이에 많이도 야위셨습니다.”
“이, 으으…….”
“자아, 한잔 시원하게 쭉 들이켜십시오.”
그간의 설움을 봄눈 녹이듯 달래 주는 아몬의 부드러운 음성!
그 음성과 함께 마리온의 분노가 사그라들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올나잇 파티를 몰래 마신 건 참을 수 없다.’
사나이의 복수는 수십 년을 미뤄도 그 빛을 잃지 않는 법!
‘하지만 달콤한 복수도 음주경. 우선 한잔하고 보자.’
꺼져 가는 분노를 재차 불태운 마리온이 거짓 웃음을 드리운 채 말했다.
“후배야, 역시 날 생각해 주는 건 너밖에 없구나…….”
마리온이 흐뭇하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럼 네 성의, 고맙게 받아들이…….”
마리온이 술통을 받아 들려는 순간 아몬이 손을 쑥 뺐다.
그 바람에 마리온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 하는 거냐?”
“우선 한잔하시기 전에.”
“엉?”
“약속 하나 해 주시죠.”
“뭐? 무슨 약속.”
아몬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걸로 제가 올나잇 파티를 마신 건 없던 일이 되는 겁니다?”
“……!”
마리온이 눈을 부릅떴다.
‘이, 이 자식…….’
몸을 파르르 떨던 마리온이 이를 악물고, 아몬이 비열한 미소를 머금었다.
“제 사과를 받아 주시겠습니까?”
“그, 그르르륵…….”
“어떻게, 술병 뚜껑 도로 닫을까요?”
중증의 알코올 중독자인 마리온은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 그래! 없던 일로 하자! 그러니 술 좀 다오!”
발악하며 달려드는 마리온을 제지한 아몬이 소리를 질렀다.
“틀렸습니다! 제발 없던 일로 해 주십시오.라 하셔야죠!”
“뭣!?”
“뚜껑 닫습니다!?”
“그, 그으으……!”
마리온이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제발…… 없던 일로 해 주십시오…….”
“하하하! 좋습니다! 저도 이미 지난 일은 사과드리겠습니다!”
“부디 사과를 받게 해 주십시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아는 총명한 마리온!
아몬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우리도 다 큰 성인 아닙니까? 그러니 지난 일들은 시원하게 잊고 현재에 충실하도록 하죠!”
“으, 으으으…….”
“자! 받으십시오!”
허겁지겁 술병을 넘겨받은 마리온이 그것을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아몬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찰나였다.
덜컥-!
문을 열고 들어온 마탑주가 말했다.
“마리온, 손님이 혹시 드레이크 가문의…….”
말을 잇던 마탑주는 벌컥벌컥 술을 들이켜고 있는 마리온을 보고 흡사 강철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홀린 것처럼 술병을 쪽쪽 빨던 마리온도 움찔 굳고 말았다.
“…….”
“꿀꺽! 마, 마, 마탑주……?”
“…….”
무표정한 얼굴로 마리온을 빤히 바라보던 마탑주가 씩 웃으며 말했다.
“마리온 럼덤.”
“…….”
“참……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로군.”
차갑게 가라앉은 분노가 담긴 말을 내뱉은 마탑주가 몸을 홱 돌렸다.
“따라오게. 거기 손님 자네도.”
말을 마친 마탑주가 걸음을 옮기자 마리온이 울상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딸꾹!”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