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73)
아카데미가 망했다 73화
마법은 위험하며 불확실한 개념이다.
그럼에도 이미 스러져 간 선대 마법사들과 현재의 인재들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학문’으로 정립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금욕에 힘쓰는 것이다.
위험한 학문이기에 평온하고 안정된 상태로 그것을 다뤄야 하니까.
그런데.
“술을 처먹어?”
“…….”
“그것도 이 신성한 마탑에서?”
마탑주의 매서운 질타에 마리온이 쭈뼛거리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리고 아몬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이 마시라 했습니다!”
다시금 활약하는 뒤통수치는 주정뱅이!
아몬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휘저었다.
“마리온 선배가 멋대로 먹었습니다!”
“뭣!? 네가 마시라고 줬잖아!”
“제가 언제요!”
어린아이마냥 유치하게 드잡이하는 그들의 모습에 마탑주가 손가락 하나를 세운 순간이었다.
마탑주의 손가락 끝에서 솟아오르는 푸른 불덩어리.
8서클 공격 마법인 헬파이어였다.
“둘 다 계속 지껄여 봐라.”
“…….”
“…….”
“나는 조용한 걸 좋아한다. 부디 내 취향을 고려해 줬으면 좋겠군.”
정숙이 찾아오자 마탑주가 헬파이어를 거둬들이며 마리온을 바라봤다.
“마리온 럼덤.”
“…….”
“아무리 지금은 마탑 소속이 아니라고 하나, 한때 마탑에 속해 있던 마법사로서 이런 무례가 용납되리라 생각하는가?”
“…….”
“대답.”
“아닙니다.”
“잘 아는군. 그런데도 그랬나?”
마리온이 아몬을 힐끔 바라봤다.
마음 같아선 다시 ‘저놈이 마시라 했다’며 뒤집어씌우고 싶었지만, 마탑주가 금세라도 헬파이어를 캐스팅할 것처럼 수인을 맺고 있었기에 금세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죄송합니다, 마탑주.”
“정답.”
마탑주가 이번에는 아몬을 바라봤다.
“아몬 드레이크.”
“예, 마탑주님.”
“마탑이 음주를 금한다는 사실을 몰랐나?”
서슬 퍼런 마탑주의 말에 아몬은 바닥에 찰싹 달라붙는 것처럼 공손한 저자세로 입을 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마탑의 위상에 누를 끼친 이 불찰을 어찌 사죄드려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습니다.”
마리온이 뺨 맞은 것처럼 아몬을 홱 돌아봤다.
작정하고 나무 몽둥이의 속을 파내 술을 숨겨 온 놈이 저토록 공손하게 말하니 배알이 꼴리는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공손한 사과였기에 마탑주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자네야 마탑에 대해 잘 알지 못할 것이니, 이번 한 번만은 넘어가도록 하지. 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될 것이야. 알겠는가?”
오늘 이후로 마탑에 얼씬도 할 생각이 없었기에 대답은 곧장 나왔다.
“명심하겠습니다, 마탑주님!”
“그래, 그래.”
용서받은 아몬이 슬금슬금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만 전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마리온의 진노를 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으니 더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마탑도 만만치 않게 미친놈들 집단이다.’
헬파이어를 위협용으로 사용하는 마탑주!
못해도 8서클 수준의 대마법사라는 뜻인데 아몬이 그런 실력을 가졌다면 진즉 대궐 같은 집에 살면서 떵떵거렸을 것이다.
그런데 마법을 탐구한답시고 금욕을 입에 담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로브 꼬질꼬질한 것 좀 보라지.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때문에 아몬이 서둘러 마탑을 나가려 했지만, 마리온이 말했다.
“어차피 나도 곧 돌아갈 작정이니 잠깐만 기다리게. 자네가 들어야 할 이야기도 있고.”
“하지만…….”
“나와 같이 돌아가면 워프 마법진이 공짜야.”
“기다리겠습니다.”
이곳에 올 때 사용한 워프 마법진 이용료가 이미 마음의 상처로 남았던 아몬이기에 마리온의 회유는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그런데 제가 들어야 할 이야기라뇨?”
자신이 마탑에서 들을 만한 이야기가 있던가?
때문에 아몬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마탑주는 아몬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 드레이크 가문 출신이 맞나?”
“예? 맞습니다만…… 제 부친께서 카임 드레이크십니다.”
“……그렇군. 카임 드레이크.”
갑자기 나온 아버지의 이름에 아몬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 그러고 보니 아버지께선 상당히 수준 높은 마법사셨지.’
아버지가 ‘기본’이라고 주장했던 마법 이론들이 세간에선 ‘수준 높은 이론’이라고 평가받는 것만 봐도 그랬다.
그렇기에 천하의 마탑주가 아버지를 지칭하자 아몬의 얼굴이 밝아졌다.
‘초유명 마탑인 이그니스 마탑의 마탑주가 우리 아버지의 성함을 알고 있다니…… 진즉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뜻이 아니고 뭐겠어?’
설마 마탑주가 아버지를 영입하려는 것일까?
‘이건 분명 좋은 징조다! 난 몰라도 아버지의 출셋길이 열린 게 분명해!’
물론 아버지 당신께선 꼬질꼬질한 마탑 로브나 걸치고 다녀야겠지만, 아들인 자신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볼 게 분명했다.
‘게다가 이그니스 마탑은 친제국파라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독립적인 세력이다. 황제의 눈치를 보고 아버지의 영입을 포기할 가능성도 낮아!’
그리 생각한 아몬은 얼른 마탑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렇군. 그럼…….”
‘그래! 아버지를 영입하겠다 이거죠? 얼른 말해 주십시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지.”
‘……엉?’
“우선, 현 대륙의 정세에 대해서 말인데…….”
‘잠깐! 우리 아버지 출셋길은?’
딴죽을 걸고 싶었지만, 어느새 마탑주는 대륙의 정세를 생각하는지 심각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때문에 아몬은 말문을 닫았지만, 사실 그때 질문을 했어야만 했다.
그때 마탑주는 아몬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카임 드레이크…… 작년쯤이었나? 홀연히 나타나 마나 보강 마법진의 개선점을 학계에 제출하고 사라진 인물이었지.’
그렇다! 아몬이 마리온에게 개선점을 지적했었던 마법진!
그리고 마리온이 아몬의 뒤통수를 쳐 자신의 공으로 삼으려 했지만 이미 ‘누군가’가 제시한 이론이라는 마탑주의 면박에 좌절하고 말았던 사건!
그 ‘누군가’가 바로 아몬의 아버지인 카임 드레이크였던 것이다.
‘누가 봐도 1급 훈장감 이론이었기에 황실에 그 사실을 보고했지만, 황실에선 조용히 넘어가 달라는 답변만 돌아왔었다.’
이유는 단연 황실과 드레이크 가문의 악연 때문!
그렇기에 아몬의 아버지는 이렇다 할 포상도 받지 못하고 손가락만 빨았다.
만약 카임 드레이크가 제시한 이론이 깔창 수준의 ‘마나 보강 마법진’만 아니었다면 황실의 요청도 무시하고 훈장을 수여했을 테지만, 깔창 따위에 황실의 체면을 구기는 건 조금 꺼려졌기에 물러선 것이다.
‘아쉽군. 정말 아쉬워. 아무튼 이 청년이 그 카임 드레이크 공의 아들이라는 말이지.’
결국 황실의 눈치 때문에 따로 상을 준다거나 할 순 없지만 아몬이 꽤 좋게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마탑주는 아몬에게 큰 호의를 베풀기로 했다.
“크흠! 말했듯 자네도 현 대륙의 정세를 조금은 알아 둘 필요가 있네. 수많은 마법사들과 학자들이 논의한 끝에 내린 판단이니 알아 두면 좋을 걸세.”
큰 호의였지만 아몬은 심드렁했다.
‘별로 관심 없는데.’
아몬이 장사치였다면 혼란스러운 정세를 틈타 한몫 단단히 잡겠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그럴싸한 밑천도 없지. 황금을 팔면 돈이야 조금 생길 테지만, 이미 골드로드 상회 같은 기업들이 판로를 단단히 잡고 있을 텐데, 굳이…….’
길거리 잡상인이나 할 게 아닌 이상 장사에 뛰어드는 건 미친 짓!
하지만 마탑주는 ‘큰 호의’를 베풀겠다는 생각에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몬은 억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감사합니다!”
“허허허, 그래. 자네도 관심이 있을 줄 알았지. 자, 얼른 앉게.”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자리를 권하는 마탑주를 본 마리온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 냉혈한 마탑주가 저렇게 사람 좋게 웃는다고? 어째서?’
내막을 모르는 마리온은 의혹을 품었지만, 이내 무시하기로 했다.
아무튼 아몬이 자리에 앉자 마탑주는 설명을 시작했다.
긴 이야기였다.
* * *
“휴, 머리야…….”
짧은 시간 사이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때문에 이마를 통통 두드리는 와중, 마리온이 말했다.
“슬슬 가려 하는데, 준비는 됐나?”
“잠시만요. 두통 때문에 지금 워프 마법진 쓰면 토할 게 분명해요.”
“흠.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럼 조금 기다리지.”
대기실에 앉은 마리온이 아몬을 힐끔 보며 말했다.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까 들은 거요?”
“뭐가 또 있겠나?”
“흠.”
아몬은 아까 마탑주에게 들은 대륙의 정세를 떠올렸다.
뭐, 솔직히 그중 절반 이상은 아몬 본인과 큰 관계가 없었기에 그렇구나 하고 관성적으로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몬도 몇 가지 염두에 둬야 할 요소가 있었다.
‘이번 사건이 낳은 결과가 심각하긴 한가본데…….’
황제가 앓아눕게 된 사건!
벨스라임 황무지 개척 사업의 처참한 실패!
느닷없이 떨어진 운석으로 인해 제국의 정예 병력들이 깡그리 몰살당한, 희대의 대사건!
‘군단 하나가 날아가고, 중장갑 기병대와 마탑 하나분의 마법사가 증발하고, 몇 개 대대가 깡그리 사라지고…… 아무리 제국이 큰 국가라 하더라도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피해지.’
현재 제국이 운용할 수 있는 병력이 큰 폭으로 소멸.
문제는 현재 대륙이 겉으론 평화로워 보여도 속으로는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대전쟁이 종결된 지 고작 몇 년. 제국의 주도로 대륙 전체가 100년간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긴 했지만, 그 주체가 되는 제국이 흔들려 버린다라…….’
아몬이 혀를 찼다.
아무튼 가장 중요한 요점.
“요점은, 제국 안으로 첩자들이 슬금슬금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거죠?”
“그렇지. 그중에서도 교육 기관이 주요 대상이 될지도 몰라. 황실은 첩자가 숨어드는 게 거의 불가능하고, 군과 기사단은 이번 사태로 경계가 심해졌으니 보안을 한층 철저히 하겠지. 결국 남은 곳은 국가기관.”
“음…… 확실히 그중에서도 교육 기관이 우선적으로 타깃이 되겠네요.”
자라나는 새싹을 세뇌시킬 수도 있고 짓밟을 수 있는 훌륭한 터전!
게다가 각 지역의 정보가 모이는 것은 당연하니 첩자가 활동하기에도 수월할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마탑주는 아몬이 알아 둬야 한다고 말했던 것인데, 문제가 있었다.
“근데 선배님.”
“응?”
“솔직히 말해서 우리 아카데미에 첩자가 올까요?”
“…….”
“제가 첩자였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다른 곳을 찾을 것 같은데.”
“솔직히 내 생각도 그렇다네.”
학생 수 총원 셋! 교사 수는 간부진과 청소부를 포함해 일곱!
거기에 입학 예정자가 둘 있긴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망가져 버린 비율이다.
그렇기에 아몬은 생각했다.
“뭐…… 괜찮겠죠?”
마리온도 피식 웃었다.
“그렇겠지. 첩보 활동에 더 좋은 곳이 널려 있을 텐데.”
“그럼요, 그럼요.”
“아무튼 머리는 좀 어떤가?”
“아,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그럼 슬슬 출발하시죠.”
아몬과 마리온은 함께 워프 마법진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시각.
학교장, 아나르엘은 웬 중년인을 마주한 채 활짝 웃고 있었다.
“채용 결정입니다, 파이스 선생님!”
아나르엘의 말에 중년인, 파이스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학교장님!”
파이스는 성공적으로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채용’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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