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74)
아카데미가 망했다 74화
아몬은 워프 마법진을 통해 아무르에 도착한 후, 아카데미로 향하며 생각했다.
‘휴, 도망치려던 사람들을 어찌어찌 잘 붙잡았군. 이 지옥 마굴 같은 곳에서 혼자 도망치게 둘 수는 없지.’
나만 죽을 순 없다는 못된 심보!
물론 다른 사람들은 이 아카데미에서 도망치겠다는 생각은 전혀 않고 있었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아몬이 그런 생각을 품고 있으니 행동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나저나 카이는 슬슬 돌아왔으려나? 어쩌면 내가 마탑으로 갔을 때 아카데미로 복귀했을지도?’
만약 안 돌아왔다면?
‘단단히 혼쭐을 내 줘야지. 어디 신입이 휴가 때 연락 한 통 없냐고 말이야.’
어린 골목대장 시절 휘하 소년들을 질질 짜게 만들었던 언변을 보여 주리라!
그리 생각하며 정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리온은 술 한 잔 걸치러 간다며 허겁지겁 달려갔으니, 그 사실을 포함해서 학교장에게 보고하면 되리라.
그렇게 학교장실로 향하던 와중이었다.
‘……응?’
처음 보는 뒷모습이 복도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광경에 아몬이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인 것 같은데?’
처음엔 카이인가, 싶었다. 슬슬 돌아올 때가 되긴 했으니까.
하지만 뒷모습이 영 투실투실해 보이는 것이 아무리 봐도 카이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못 본 사이에 풍채가 좋아졌구나!’라고 착각할 정도로 아몬의 눈이 옹이구멍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얼른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실례지만 누구신…….”
“아! 선배님!”
카이가 맞았고, 아몬의 눈은 옹이구멍이었다.
훤칠한 미남자였던 녀석이 투실투실해진 모습에 아몬이 입을 쩍 벌렸다.
“카이야!”
“예?”
“휴가 때 좋은 일 있었어? 얼굴색이 엄청 좋아졌네. 못 알아보겠다.”
곧 죽어도 못된 말을 하지 않는 아몬의 배려!
그 말을 들은 카이는 내심 생각했다.
‘……좋은 일이라고?’
그럴 리가 있나.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신입 교사 카이 스트로, 그의 진짜 정체는 제국의 황태자인 ‘카이야스 아모니스’다.
그런데 현재 황실의 내부 상황은 어떤가?
‘황제 폐하, 아버님께서 와병 중이시라 쉬지도 못하고 국정을 보다가 이제야 한시름 놓고 돌아왔는데…… 좋은 일이 있었냐고?’
그가 아몬의 편지에 답장도 못하고, 얼굴 한번 비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풀다 약혼자에게 ‘저하, 그 배와 턱에 달린 게 정치 주머니인지 여쭤봐도 될는지요?’라는 비꼼까지 들었건만, 얼굴색이 좋아졌다니?
카이의 얼굴이 급속도로 썩어 들어갔다.
“하.하.하. 별말씀을요. 살이 좀 찌긴 했죠.”
“아냐, 아냐. 지금이 딱 좋아.”
“…….”
“예전엔 너무 깡말라서 보기가 좀 그랬어. 그럼, 그럼.”
잘생긴 놈을 향한 질투를 한껏 던진 아몬이 말했다.
“근데, 좀 바빴나 봐? 휴가 때 연락도, 답장도 없던데.”
“아…….”
그러고 보니 아몬이 보낸 편지를 보긴 했었다.
[뭐 하냐? 노냐?]하지만 워낙 바쁠 때라 답장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편지를 한 구석으로 밀어 놨던 게 기억났다.
카이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예, 집안일 때문에 워낙 바빴던지라…….”
“아카데미 일은 일도 아니다?”
“…….”
아몬의 현란한 꼬투리 잡기에 한숨을 푹 쉰 아몬이 말했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 힘들었다, 진짜.”
“……아, 예.”
“뭐, 그보다 돌아와서 다행이네. 도망쳤으면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잡아 오려고 했는데.”
“…….”
그보다 학교장에게 자신과 마리온의 복귀를 알리러 가는 길이었으니 아몬이 얼른 걸음을 옮기자 카이가 따라붙었다.
“응? 어디 가십니까?”
“복귀했다고 학교장한테 알려야지. 너는?”
“아, 저도 이제 막 돌아와서 학교장님께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같이 가시죠.”
이윽고 두 사람이 학교장실 앞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예.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아나르엘에게 인사를 건네며 학교장실을 나오는 웬 중년 남자!
그를 본 아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누구십니까?”
그 물음에 중년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 신입 교사로 채용된 파이스라고 합니다.”
“……신입 교사요?”
아몬이 옆에 서 있는 카이를 힐끔 바라봤다.
카이가 신입으로 들어온 지 뭐 얼마나 됐다고 또 신입 교사가 왔단 말인가?
‘……잠깐.’
그때 흠칫한 아몬이 아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최근 대륙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했었지. 그래서 제국 안으로 다른 왕국의 첩자들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혹시, 하는 생각에 파이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투실투실한 체격을 확인한 아몬이 옆에 서 있는 카이를 힐끔 바라봤다.
‘카이랑 닮았군.’
카이가 알았다면 단숨에 표정이 굳었을 정도로 무례한 생각!
하여간 아몬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몬 드레이크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파이스 선생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죠, 선배님.”
“……으음.”
초면부터 선배로 치고 들어오는 파이스의 행동에 아몬은 흡족해졌다.
“그럼 학교장님께 보고할 게 있어 이만…….”
파이스를 남겨 두고 카이와 함께 학교장실로 들어가자마자 아나르엘이 반겨 줬다.
“아몬 선생님! 돌아오셨군요. 가셨던 일은 잘 해결됐나요?”
“예, 마리온 선배도 복귀하셨습니다. 지금은 아무르로 술 마시러 갔지만요.”
“저런.”
아나르엘이 아쉽다는 듯 귀를 으쓱이고,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카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마리온 럼덤, 교사 평가 3점 감점.’
아무튼 아몬이 카이를 힐끔 눈짓하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카이도 복귀를 마쳤고요.”
“네, 네. 다들 잘 돌아오셨어요.”
“그런데…….”
“네?”
아나르엘에게 다가간 아몬이 한껏 목소리를 낮춘 채 말했다.
“또 무슨 신입 교사입니까? 카이를 채용한 지 얼마나 됐다고요?”
아몬이 따지자 아나르엘이 한숨을 푹 쉬었다.
“휴, 아몬 선생님. 아카데미는 배움의 장이에요. 그러니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렸다면 환영해 주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요? 아카데미에서 배움을 청할 수 있는 것은 학생만이 아니랍니다.”
아나르엘이 웬 사과를 손끝으로 매만지며 말했다.
“또한 파이스 선생님은 굉장히 우수하신 분이에요. 오스란 왕국에서 이미 십수 년간 교사 활동을 해 오셨고, 교육에 대한 열의도 대단하신 분이죠.”
그리 말한 아나르엘이 다음에는 웬 수박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인성도 좋으셔서 학생들을 안심하고 맡길…….”
“뇌물로 과일을 선물로 받으셨군요.”
아나르엘의 귀가 흠칫 흔들렸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
뚫어져라 응시하는 아몬의 시선에 아나르엘은 결국 귀를 축 늘어뜨리며 진실을 고했다.
“한 바구니에 5골드나 하는 고급 과일 선물 세트예요.”
“…….”
아나르엘이 힐끔 아몬의 눈치를 봤다.
무려 ‘5골드’라는 미사여구를 붙였음에도 아몬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 사실에 오들오들 떨던 아나르엘이 바나나 하나를 내밀었다.
“이, 이거 하나 드실래요?”
“감사합니다.”
넙죽 바나나를 받은 아몬이 껍질을 벗기며 카이를 힐끔 바라봤다.
“카이, 나가 봐. 나는 학교장님과 할 이야기가 있거든.”
“아, 예. 알겠습니다.”
카이가 나간 후, 아몬은 심각한 얼굴로 한숨을 푹푹 쉬며 말했다.
“학교장님.”
“네…….”
“제가 이그니스 마탑에서 듣고 온 게 있습니다.”
“뭐, 뭐죠?”
“현재 대륙의 정세가 혼란스럽다는 이야기죠.”
“네? 대륙의 정세가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현 황제가 와병 중이라는 건 아실 겁니다. 제국의 군사력에 큰 손실이 있었다는 사실도요. 그 때문에 대전쟁 이후, 제국의 주도하에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은 왕국들이 술렁이고 있답니다.”
“그런…….”
“그 탓에 여러 왕국이 제국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첩자들을 보낼 확률이 높아졌고, 그 주요 대상은 아카데미일 확률이 높다더군요.”
“뭐, 뭐라고요?”
정치와 인간사에 어두운 순박한 엘프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때 아몬이 껍질을 벗긴 바나나를 크게 한입 베어 물며 쏘아붙였다.
“그런데 짜잔! 아주 껍질을 홀랑 벗겨서 먹어 잡수시라고 첩자를 들여보내셨군요!”
“히, 히익!”
귀를 파들파들 떨던 아나르엘이 다급히 말했다.
“하, 하지만 첩자라고 밝혀진 것도 아니…….”
말하던 아나르엘도 곧 입을 다물었다.
다른 왕국에서 십수 년간 교사 경력이 있다!
다 망해 가는 아카데미에 꾸역꾸역 찾아와 교사로 채용됐다!
그것도 ‘한 바구니에 5골드’나 하는 과일 선물 세트까지 바쳐 가면서!
“그, 그럴 수가…….”
아카데미 학교장실에 박혀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한 가엾은 엘프가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떠는 와중, 아몬이 중얼거렸다.
“이 바나나처럼! 제국은 껍질이 홀랑 벗겨져 외세에 꿀꺽 삼켜지겠군요!”
“히이익!”
자신이 뇌물로 받아먹은 과일 선물 세트가 두렵다는 듯, 상반신을 쭉 젖히는 아나르엘을 본 아몬이 생각했다.
‘음, 그만 놀려야겠군.’
따지고 보면 첩자라 확정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에 아몬이 말을 이었다.
“뭐, 그런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자 이 말입니다. 물론 이렇게 신입 교사를 덜컥덜컥 받아들이는 것도 조심해 주셨으면 하고요.”
“며, 명심할게요…….”
“아무튼 앞서 이야기한 것도 있으니, 새로 들어온 사람은 제가 한동안 주의 깊게 지켜보겠습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네, 네! 부탁드릴게요, 아몬 선생님.”
고개를 끄덕인 아몬이 바구니에서 바나나 하나를 더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확실히 5골드짜리 선물 세트라 그런지 맛이 굉장하군.’
이윽고 학교장실에서 나온 아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수고 많으셨습니다!”
카이는 어디로 갔는지 없고 신입 교사인 파이스가 여태껏 밖에 서 있었던 것이다.
“설마 절 기다리고 계셨던……?”
“예, 그렇습니다. 이곳에 적응도 할 겸, 선배님께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요. 혹시 실례라면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적극적으로 열의를 보이는 파이스의 행동에 아몬이 멋쩍게 웃었다.
파이스는 중년의 나이로, 아몬보다 훨씬 연상인 데다 아버지인 카임 남작보다도 윗배로 보였다.
때문에 아몬이 공손히 말했다.
“하하하, 거절이라뇨. 어차피 여름방학이라 저도 당장은 할 일이 없는데요.”
“아뇨, 아뇨. 그래도 선배님의 시간을 뺏는 건데요.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아,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저보다 경력도 훨씬 길다고 들었는데요.”
그때 파이스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저보다 아몬 선배님께서 훨씬 길지 않습니까? 그러니 나이, 경력에는 구애받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아몬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 얼마나 확실한 선배 대접인가!
‘게다가 나이 많은 신입은 불편하다지만, 이 사람에게선 진심이 느껴진다.’
이 집단에 소속되어 최선을 다하겠다는 열정이 느껴졌다.
그런 사람에게 불편함을 내비치는 것은 상대에게도 부담일 터.
아몬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아몬 선배님!”
“그럼 제 소개부터 다시 하죠. 저는 아몬 드레이크입니다.”
아몬의 말에 파이스가 씩 웃었다.
“예, 저는 파이스 파이든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몬 선배님. 그나저나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십니까?”
“예? 아, 예. 당장 오늘 하루는 좀 쉬려고 했습니다만.”
“그렇군요.”
빙그레 웃은 파이스가 말했다.
“그럼 아카데미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고, 모처럼 이렇게 뵙게 됐으니 한잔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혹시 괜찮으신지?”
술을 대접하겠다는 교사로서 어긋난 파이스의 발언!
그러나 두둑한 주머니를 슬쩍 쥐고 흔들어 보이는 파이스를 본 아몬이 헛기침을 했다.
“에이,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럼 염치 불고하고.”
“하하하!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마침 제가 잘 아는 곳이 있으니, 가시죠.”
아몬과 파이스가 싱글벙글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파이스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쉽군!’
* * *
잠시 후, 아몬과 파이스가 도착한 술집.
“와아아! 죽여라! 죽여!”
술집의 중심에는 철창이 있고, 그 안에서 두 명의 장정이 서로를 잡아 죽일 듯 싸우고 있는 광경!
그런 살벌한 광경이 익숙하다는 듯 자리에 앉은 아몬이 중얼거렸다.
“이야, 오늘도 뜨겁네.”
한편, 파이스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여, 여긴?”
“자주 오는 곳입니다. 술도 안주도 썩 괜찮아요. 자, 그럼 파이스 선생님.”
“…….”
빙그레 웃은 아몬이 테이블에 턱을 괸 채 말했다.
“얼른 안 앉으시고 뭐 하세요?”
그 한 마디에 파이스는 직감했다.
‘쉽지 않겠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