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79)
아카데미가 망했다 79화
여긴 상업도시 아무르.
이곳에 주둔하는 골리앗 기사단의 단장, 토마트 경은 피곤함에 미간을 꾹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하, 썩을. 갑자기 이게 웬 날벼락인지 원.”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첩자가 숨어들었다는 제보.
꽤 확실한 증거와 함께 들어온 신고였기에 기사단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압송한 파이스라는 인물은 조사 결과 첩자로 밝혀졌다.
그 덕분에 평화롭던 아무르는 황실의 조사관이 들락날락하느라 한바탕 난리도 아니었다.
‘그나마 한가하다는 게 이곳의 유일한 장점이었는데 말이지. 젠장할, 재수도 더럽게 없군.’
기사의 본분은 전투다.
하지만 평화로운 아무르에 너무 오랫동안 머물렀던 탓일까? 기사 서임을 막 받았을 당시에는 열정을 불태웠던 그였지만, 관록이 제법 쌓인 지금의 토마트 경은 어느새 시끄럽고 번거로운 게 질색이었다.
게다가 대전쟁이 종식된 후 이곳에서 제법 오랫동안 썩고 있으니 출세는 물 건너간 상황.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
“충성! 단장님, 이번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신입이 긴장된 얼굴로 서류를 들고 오자 토마트 경은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말했다.
“부단장한테 넘겨.”
어느새 그는 나태에 젖어 있었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예? 하지만 조사관이 꼭 단장님께 확인받으라고…….”
“아, 씨이입.”
신경질적으로 욕지거리를 삼킨 토마트 경이 책상의 책자를 확 집어 던졌다.
퍽-!
책자에 얻어맞은 신입이 휘청거리며 물러나고, 토마트 경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야.”
“……예!”
“야.”
“예!”
“부단장한테 넘기랬지.”
“…….”
“단장 말이 말 같지 않아?”
“……부단장께 전하겠습니다.”
“나가기 전에 그거 주워서 가져와.”
책자에 눈가가 찢어진 신입이 터덜터덜 책자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
“그럼 꺼져.”
“예. 충성.”
문이 닫히자 토마트 경이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썅, 가뜩이나 짜증 나는데 웬 거지 같은 새끼가.”
투덜거린 그가 집어 던졌던 책자를 펼쳤다.
골드로드 상회에서 배포하는 사업 설명 책자였다.
한참 그것을 들여다보던 그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중얼거렸다.
“하, 책자에 피 묻었잖아. 무슨 되는 일이 없냐.”
쓰레기통에 책자를 툭 던져 넣은 토마트 경이 몸을 일으켰다.
‘젠장, 기분도 더러운데 술이나 한잔해야겠군.’
대낮부터 술을 마시러 나가는 기사단의 단장은 타락한 기사의 표본이었다.
이윽고 기사단의 건물을 나온 그가 어슬렁어슬렁 번화가로 향하는 와중이었다.
“응?”
다소 낯익은 얼굴이 보이자 토마트 경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여자는……?’
처음에는 못 알아볼 뻔했지만, 분명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근무하고 있는 피드 후작가의 여식이었다.
‘이곳에 있을 땐 항상 부스스한 꼬락서니더니…… 웬일로 봐 줄 만하게 꾸미고 나왔군.’
아카데미에 있을 때의 슬로스는 침낭 속에서 사느라 항상 부스스했다.
그러나 본가에 있을 땐 집중 마크를 하는 시녀들 덕분에 머리칼 한 가닥 삐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아무튼 슬슬 아카데미의 개학이 임박했기에 슬로스도 학생들을 데리고 이제 막 아무르로 돌아온 참이었다.
“선생님, 저거 먹고 싶어요.”
“그래? 아몬 부를까?”
“잘못했어요.”
보리스의 식탐을 ‘아몬’ 두 글자로 차단한 슬로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사려고 봐 뒀던 검이…… 응?”
두리번거리던 슬로스는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낯익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의 주둔 기사단인 골리앗 기사단의 단장인 토마트 경.
그가 실실 웃으며 다가오는 것을 본 슬로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가까이 다가온 토마트 경이 손을 치켜들며 말했다.
“이게 누구십니까? 피드 아가씨 아니십니까?”
“아, 네. 오랜만이네요, 토마트 경.”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신가 봅니다? 웬 멋을 잔뜩 부리시고.”
그리 말하며 위아래를 슬슬 훑어보는 토마트 경의 눈빛을 본 슬로스의 한쪽 눈썹이 확 치켜 올라갔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토마트는 슬로스의 차림새를 훑어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꼴에 검술을 수련하는 기사라 그런지 옷맵시는 좋군.’
이윽고 토마트의 시선이 슬로스의 얼굴까지 이르렀을 때, 그는 대놓고 불쾌하다는 기색을 보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토마트는 히죽 웃을 뿐이었고, 그 무례한 반응에 슬로스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뭐가 재밌죠?”
“하하하! 이렇게 우연히 아리따운 피드 아가씨와 마주쳤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요.”
“…….”
“그나저나 가주께선 안녕하신지?”
“…….”
그 물음에 슬로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토마트는 재밌다는 듯 능글맞게 웃었다.
‘흐흐, 피드 가문에서 버림당하다시피 한 주제에 가주가 안녕한지 아닌지 알 턱이 있나?’
토마트가 후작가의 여식인 슬로스에게 무례하게 나올 수 있는 이유였다.
피드 후작가에서 내버린 자식인 슬로스.
아주 크게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피드 후작가도 자신의 무례에 대해서 죄를 묻지 않을 테니까.
그 사실을 믿고 여태 슬로스와 마주칠 때마다 비꼬고, 놀리고, 은근히 집적거리던 토마트였다.
예전, 아몬이 학생들을 병사들과 대련시킬 때 마주쳤던 토마트가 ‘피드 후작가의 증표’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크크크, 마침 기분도 더러웠는데 잘 만났군.’
성격 나쁜 토마트는 슬로스와 마주칠 때마다 놀려 먹곤 했다.
가장 심했을 때는, 슬로스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날 정도였다.
마침 기분도 꿀꿀했기에 오늘도 한번 제대로 집적거려 볼 참이었다.
“크큭! 알겠소, 알겠소. 가문 이야기는 그만두지요.”
“…….”
“검술 수련은 잘하고 있습니까? 분명 예전에 봤을 땐 소드 익스퍼트 중급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
“흠, 근데 늘 궁금했던 건데 피드 가문은 분명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인원만 가문 밖으로 내보낸다고 들었습니다만, 피드 아가씨는…… 아아, 아카데미에서 근무하시느라 특별 취급을 받고 계신 건가 보군요.”
슬로스가 예민하게 받아들일 만한 말들을 정신없이 주워섬기던 토마트가 히죽 웃었다.
어느새 슬로스는 고개를 살짝 젖힌 채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주변에 있던 보리스가 슬로스의 옷소매를 흔들며 말했다.
“서, 선생님. 우리 얼른 다른 곳으로 가요.”
학생이 눈치 빠르게 장소를 옮길 걸 권하자 토마트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피드 아가씨가 가르치는 학생인가 보구나?”
“네? 네.”
“거참 똘똘하게도 생겼구나. 흐흐흐, 이런 훌륭한 선생님에게서 배우고 있으니 크게 될 게 분명…….”
그때 보리스가 얼굴을 창백하게 물들이며 슬로스의 소매를 마구 흔들었다.
“서, 선생님! 얼른 다른 곳으로 가요!”
그 말에 토마트가 보리스를 보며 웃었다.
“어린놈의 자식이, 어른들이 이야기 하시는데 자꾸…….”
그때 슬로스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레이몬드가 탄성을 질렀다.
“우와!”
그 탄성에 토마트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는 레이몬드 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말했듯, 레이몬드는 슬로스 뒤에 서 있었다. 즉, 슬로스가 토마트의 눈에 먼저 들어왔고, 그런 토마트의 눈에 비친 슬로스는.
쩌어억-!
자신의 턱을 후려갈기고 있었다.
“케흡……!?”
침과 피와 뒤섞여 뿜어지는 누런 강냉이에 레이몬드가 재차 탄성을 질렀다.
“멋져요, 선생님!”
휘청거리며 쓰러진 토마트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지만, 손아귀를 비집고 마구 쏟아지는 피!
주저앉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를 내려다보던 슬로스가 말했다.
“듣자듣자 하니 자꾸 선을 넘는군요, 토마트 경.”
“후, 후욱! 훕. 이, 이것이…….”
“응?”
“피, 피드 후작가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찌 될지 모르는 거냐!”
“……?”
슬로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화도 아니었던 착각은 진작 풀린 상황!
‘설마 아직도 내가 가문에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슬로스가 주저앉아 있는 토마트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까흐흑!”
새된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지는 그를 빤히 바라보던 슬로스가 말했다.
“클로에.”
“네, 선생님.”
“다른 애들이랑 같이 아카데미로 돌아가 있으렴.”
“네.”
학생들이 종종종 아카데미 방향으로 사라지고, 토마트를 기가 찬다는 듯 흘겨본 슬로스도 몸을 돌렸다.
“그리고 가문에서 알게 되면, 운운했죠.”
“크으윽…….”
“이미 알았어요.”
“뭐……?”
그 말을 마지막으로 멀어지는 슬로스를 노려보던 토마트가 이를 악물었다.
‘이, 이 망할 것이……!’
하지만 뒤쫓을 수는 없었다.
갑작스러운 기습 한 방에 호되게 맞고 나니 전의가 꺾인 것이다.
‘감히 비겁한 수작을 부리다니!’
필사적인 정신 승리!
이윽고 몸을 추스른 토마트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래, 그 가증스러운 계집을 감옥에 잡아 처넣어 주지. 감히 비겁한 수작을 부려서 기사단 단장을 해쳐?’
부들부들 떨던 그가 기사단 본부로 돌아가려는 와중.
퍼어어어억-!
갑자기 호랑이처럼 달려온 사내가 토마트의 가슴팍을 걷어차고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케에엑! 켁, 무, 무슨!?”
멱살을 틀어쥔 채 뺨을 후려치는 사내를 바라본 토마트가 흠칫 몸을 떨었다.
눈과 얼굴은 시뻘겋고, 흡사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사내!
“다, 당신 누구…….”
“누구? 누구우우?”
“도, 도대체 누구신데 갑자기…….”
그 물음에 재차 토마트의 뺨을 후려갈긴 사내가 고함을 질렀다.
“슬로스 오빠다. 이 찢어 개밥으로 던져 줄 새끼야.”
“뭐! 아니, 예?”
피드 후작가의 십삼 검 중 하나이며 슬로스의 막내 오빠인 랜슬로!
그가 마침 아무르에 볼일이 있어 동행하고 있었다!
문제는 슬로스를 보기만 해도 굳어 버리는 그인지라 한참 떨어져서 미행하는 것처럼 졸졸 따라오고 있었는데, 슬로스가 모욕당하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그러고 더 심각한 문제는, 슬로스가 모욕당하는 것을 본 그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굳어 버리는’ 상태가 됐었다.
하지만 슬로스가 멀찍이 떨어지자 비로소 움직인 것이다.
“흐흐흑! 이 모자란 오빠가 미안하다, 슬로스! 내가 진작 나섰어야 했는데!”
화내다 말고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랜슬로!
그 광경에 토마트는 직감했다.
‘미친놈이다.’
그 미친놈이 갑자기 눈을 번쩍이더니 실실 웃었다.
“자, 그럼 슬슬 죽자.”
“잠깐…….”
토마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바닥에 그대로 메다꽂혀 땅에 떨어진 잘 익은 토마토처럼 된 것이다.
부들부들-
경련하는 그를 내려다보던 랜슬로가 혀를 찼다.
“흥, 꼴에 기사라 이건가. 용케 살아 있군.”
콧방귀를 뀐 랜슬로가 숨만 깔딱거리고 있는 토마트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그나저나, 내가 단장으로 부임할 기사단 본부가 이쪽이었나.”
단원들의 무수한 신고로 인해 토마트는 단장 직에서 해임됐고, 오늘 부로 골리앗 기사단의 새 단장이 된 랜슬로가 토마트‘였던 것’을 질질 끌고 걸음을 옮겼다.
* * *
슬로스는 아카데미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흐흥, 상당히 오랜만이네.’
본가에서 푹 쉬다 와서 그런지, 늘 피곤에 절어서 이곳을 걸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맑은 신심을 지닌 슬로스는 품 안에 뭔가를 가득 안고 있었다.
예전에 아몬과 약속했던 초콜릿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그 전에, 일단 학교장한테 복귀 보고를 해야지.’
잠시 후, 학교장실에 도착한 슬로스는 문을 두드렸다.
“슬로스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
“응?”
한참 이어진 침묵에 슬로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 슬로스는 화들짝 놀랐다.
아나르엘과 아몬이 쓰레기로 전락한 전단지의 산을 시체 같은 눈으로 바라보며 굳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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