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8)
아카데미가 망했다 8화
특별 수업은 무산됐다.
‘내가 비상식적이라고? 인정할 수 없어.’
아니, 인정해선 안 된다.
자신이야말로 이곳의 마지막 양심이자 유일한 상식인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 발언에 보리스와 클로에가 질겁하던 걸 감안하면.
‘……아닌가?’
영지에서 나고 자라며 바깥 생활을 거의 해 본 적 없긴 했다.
기껏해야 영지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에서 며칠 머무르며 일을 보고 배운 것 정도?
‘그때도 사람들이 장작 짊어지고, 보릿자루 짊어지고 낑낑대는 거 보고 대체 왜 저러나, 몸 상태가 안 좋나 싶긴 했는데…… 원래 그게 정상인 건가?’
슬로스의 지적은 네 체력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
앞으로도 계속 그러면 교사는 해 먹기 힘들 거라고 했다.
‘마리온은 마법의 기초가 뭔지 다시 배우라 했고.’
듣자 하니 아버지가 가르쳐 준 ‘마법의 기초’는 세간에서 꽤 높은 수준인 모양이었다.
여태 그 사실을 몰랐던 이유는 마법사 자체가 고급 인력이라 아버지 이외의 마법사를 만나지 못한 탓이었다.
‘……우리 영지가 이상한 거였나?’
하긴, 그 험한 아르마 산맥에 정착한 영지의 주민들이다.
그런 사람들과 부대껴 살았으니 그게 당연하다 생각하는 수밖에.
때문에 슬로스와 마리온의 지적을 일정 부분 수긍하는 한편, 불량 교사인 두 사람에 대한 의심도 공존하고 있었다.
‘그럼 아버지도, 우리 영지도 대단한 곳이라는 거잖아?’
그 정도로 대단한 곳이라면, 유력 귀족이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다.
어떻게든 부려 먹으려 했을 터.
‘아버지가 꽤 소심한 성격이긴 해도, 능력만 좋으면 데려가려고 용을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치솟는 합리적인 의심!
‘이 사람들, 그냥 내 출세 길 막으려고 수작 부리는 거 아냐?’
이내 괘씸한 마음을 접었다.
“……그럴 리는 없지.”
적어도 클로에와 보리스가 엄살을 부리는 것 같진 않았다.
‘아무튼 경진대회는 어떡하지? 이대로라면 좋은 성적은커녕, 좋은 인상을 남길 기회조차 생기지 않을 것 같은데.’
골머리를 싸매는 와중.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자 몸을 일으켰다.
“누구십니까?”
“……잠시 괜찮아요?”
학교장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목소리에 왜 이렇게 힘이 없지?’
얼른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밖으로 나가니, 귀를 축 떨어트리고 있는 학교장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몬 선생님을 보자는 사람이 있어요.”
“저를요?”
그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나를 부르러 온 사람이 학교장이라니?
아무리 폐급 학교장이라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로 이 아카데미의 정점에 누워 빈둥거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아닌가?
“굉장히 무례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요.”
“……오해입니다.”
“하여간 얼른 따라오세요.”
이윽고 도착한 학교장실.
아나르엘은 불도 켜지 않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학교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얼른 들어와요.”
“예. 그런데 어둡게 불도 안 켜고 뭡니까?”
그리 말한 순간이었다.
“당신이 신입 교사인 아몬 드레이크입니까?”
돌연 들려온 허스키한 여성의 목소리에 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시커먼 어둠 속에서 깜빡이는 붉은색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누, 누구십니까?”
“이 아카데미의 부학교장인 브레슬입니다.”
하긴, 정상적인 아카데미라면 부학교장이 있는 게 정상이지.
지금의 아카데미가 정상이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얼른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부학교장님.”
“네. 만나서 반갑다는 말은 못하겠군요.”
“……예?”
“아카데미가 망해서 사달이 났는데, 반가워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짜증이 듬뿍 묻어나오는 부학교장의 목소리.
다만 그 짜증의 대상은 이쪽이 아니었다.
“이 망할 엘프 때문에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군요.”
그 말에 학교장이 ‘히익’이라는 괴상한 소리를 냈다.
곧이어 부학교장이 말했다.
“하여간 신입이라니 얼굴 한번 봐 두려고 불렀던 겁니다. 이만 물러가세요.”
여태 이쪽을 빤히 바라보던 붉은 눈동자가 아래로 향하자 아몬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부학교장님 얼굴 한번 못 보고 가는 겁니까?”
“응? 무슨 말입니까?”
“이렇게 시커멓게 불을 꺼 두셨잖습니까?”
“……아, 그렇군요. 인간은 어두운 곳에서 볼 수가 없었군요.”
순간 ‘탁’하고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나더니 학교장실 안이 확 밝아졌다.
그리고 목격한 것은 무릎 꿇고 양손을 든 채 벌을 서고 있는 학교장과 책상에 앉은 채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는 구릿빛 피부의 여인.
문제는 그녀의 귀가 아나르엘처럼 길다는 사실이었다.
‘……다크엘프!’
속설로 ‘타락한 엘프’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엘프의 한 종류였다.
‘사납고 난폭한 종족이라던데…….’
때문에 뒷걸음치자 부학교장, 브레슬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러시죠?”
“……죄, 죄송합니다. 다크엘프는 처음 봐서요.”
“단순히 처음 봐서 그러는 반응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뭐, 다크엘프니 사납고 난폭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요.”
속마음을 그대로 꿰뚫어 본 브레슬이 말했다.
“그거 편견이고 차별입니다.”
눈치를 보며 손을 내리는 아나르엘의 엉덩이를 걷어차지만 않아도 그럴싸한 발언이었을 텐데.
“앞으로는 조심하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학교장님은 왜 저러고 있는 겁니까?”
부학교장이 서류를 팔락 넘기며 말했다.
“내가 휴가 간 사이에 아카데미를 풍비박산 내 놨는데, 안 이러고 배기겠습니까?”
“……지당하신 말씀이네요. 그런데 휴가요?”
“예. 이 멍청이가 허튼짓하려는 거 어떻게든 가로막으면서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잠시 자리를 비웠더니 이 꼴로 만들어 놨더군요.”
그 말에 눈을 부릅떴다.
‘진작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어도 이상할 게 없었던 아카데미가 여태 운영되고 있었던 이유가 부학교장 덕분이었던 건가?’
비로소 풀리는 의문!
‘그 말은, 부학교장이 학교장 대신에 이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카데미의 진정한 실세!
게다가 본래 거대했던 이곳을 운영했다면, 능력 또한 대단할 터!
아몬은 즉시 부학교장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앞으로 부학교장님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 말에 권력의 추가 기울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학교장이 훌쩍훌쩍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지만 내가 알 바 아니다.
그리고 난데없는 맹세에 이쪽을 힐끔 쳐다본 부학교장이 말했다.
“앞으로 지켜보겠습니다. 그런데…….”
서류를 확인하던 부학교장이 눈썹을 씰룩거렸다.
“임시 수입이 5천 골드?”
부학교장이 아나르엘을 노려봤다.
“이건 뭡니까?”
“그, 그게…….”
“말 똑바로 하십시오.”
“겨, 경주 달팽이 우승 상금…….”
부학교장이 눈을 부라리자 학교장이 어깨를 움츠렸다.
“임시 수입이 생긴 건 다행이지만, 만약 잘못됐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도대체 당신은 학교장이라는 자각이 없는 겁니까?”
“미, 미안…….”
달팽이 경주를 부추긴 장본인인 아몬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휴우, 어이가 없…… 응?”
서류를 넘기던 부학교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킹오브망고 사업 투자?”
이 대목에서 아몬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큰일이다.’
달팽이 경주야 학교장의 취미니 그렇다쳐도, 저까짓 과수원에 거금을 투자한 것은 오롯이 자신의 결단 아니던가.
‘결국 투자를 성공하긴 했지만, 웬 또라이 같은 사업에 투자했냐면서 뭐라고 할 것 같은데…….’
묵묵히 서류를 바라보던 부학교장이 말했다.
“학교장, 이건 뭡니까?”
“그게…….”
아나르엘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이쪽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저 빡통 엘프가 나를 팔아먹을 생각이구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고자질당하느니 선수를 치는 게 낫다.
“제가 제안한 투자입니다.”
“……당신이 말입니까?”
“예. 제 나름대로 성공할 수 있으리란 판단이 섰기에 앞서 얻은 임시 수입으로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운 좋게도 예상이 맞아떨어졌고요.”
거짓말이다.
아카데미를 말아먹을 작정으로 진행한 투자다.
“하지만 멋대로 운영비를 사용했으니, 죄를 물으시겠다면 순순히 따르겠습니다.”
“……흠.”
하지만 웬걸, 서류를 빤히 바라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위험 부담이 있긴 했지만, 투자에 성공한 이상 죄를 물을 이유는 없습니다.”
“……!”
“수고했어요. 덕분에 당분간 아카데미의 재정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요.”
대견해하는 부학교장의 목소리!
아몬이 즉각 허리를 굽혔다.
“영광입니다, 부학교장님.”
“흠, 그보다 킹오브망고인가…….”
“예?”
“……아닙니다.”
묘한 여운을 남기는 그녀에게 말을 이었다.
“저, 부학교장님.”
“뭡니까?”
침을 꼴깍 삼켰다.
부학교장은 엄격하면서도 아카데미의 부흥에 신경 쓰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이번에 황제폐하 배 소년부 경진대회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 경진대회에서 아카데미의 학생이 좋은 성적을 거두면, 황제께서 내린 운영 중단 권고가 철회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가능성은 있겠군요.”
긍정하는 그녀에게 얼른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아카데미에 남아 있는 학생 둘의 교육에 힘써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끌어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
“확실히 좋은 방법이군요.”
“그, 그렇죠?”
역시 부학교장과는 뜻이 맞구나.
“그런데 슬로스, 마리온. 그 둘이 당신을 제지했다라…… 흥, 그 나태한 교사와 주정뱅이 교사인가.”
“그렇습니다!”
“내가 그 둘에게 말해 두죠. 아무리 어린 학생이라고 한들, 때론 엄하게 가르쳐야 할 때가 있는 법이죠. 지금처럼 우리 아카데미가 궁지에 몰렸다면 더더욱요.”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폐급 학교장.
나태한 검술 교사.
뒤통수 전담 주정뱅이.
‘그런 놈들을 제치고 나타난 구세주가 아닌가!’
감격한 나머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제 부학교장만 믿고 가면 되는 거구나!’
글썽거리는 눈물을 닦는 와중이었다.
“학교장.”
“……네?”
“혹시나 해서 여쭙는 건데…….”
부학교장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킹오브망고, 남은 거 있습니까?”
“딱 하나 남았어요.”
아나르엘이 숨겨 둔 킹오브망고를 쑥 꺼냈다.
그리고 헤실헤실 웃으며 말한다.
“이거 엄청 맛있어요.”
“…….”
묘한 침묵이 흐르고, 묘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뭐지? 킹오브망고를 왜 저렇게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거지?’
불안감에 침을 꿀꺽 삼킨 순간.
동시에 침을 꼴깍 삼킨 부학교장이 말했다.
“투자 수익이 나오면 킹오브망고 농장에 추가로 투자를 해야겠군요.”
그 말에 아몬이 입을 쩍 벌렸다.
“부학교장님! 그게 무슨……!”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니, 무슨 농장에 추가로 투자를 합니까!?”
부학교장이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
“편지의 내용을 감안하면 수익이 확실한 투자처 아닙니까? 아카데미의 재정을 위해 추가로 투자하는 게 옳은 선택일 텐데요?”
“그, 그건…….”
맞는 말이었다.
“동의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
곧이어 부학교장이 서류를 탁탁 치며 말했다.
“게다가 아카데미의 구내식당 인원 감축이 치명적이군요.”
“……예?”
“학교장, 구내식당 충원 서류에 서명을.”
아나르엘이 얼른 펜을 꺼내 들자 손을 냅다 후려쳤다.
“교사 셋에 학생 둘밖에 없는데 식당 인원을 충원합니까!”
“아야! 내 손!”
“부학교장님!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부학교장이 엄한 얼굴로 말했다.
“질 낮은 식사로는 잔류 인원들의 사기 저하를 막을 수 없습니다. 식사의 질을 개선해서라도 의욕을 끌어 올리는 게 옳은 처사 아닙니까?”
“아니, 그건…….”
“반박은 받지 않겠습니다.”
저게 맞는 말인가?
‘아니, 맞을 리가 없잖아! 저게 무슨 헛소리야?’
허겁지겁 아나르엘에게 다가가 귀에 속삭였다.
“학교장님.”
“히익! 귀 간지러워요!”
“죄송합, 귀로 때리지 마세요! 그보다 저분, 왜 저러시는 겁니까?”
아나르엘이 부학교장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다크엘프는 말이죠. 한 가지 욕망에 집착하는 자들이 많아요.”
“예? 그 말은 설마…….”
“네. 부학교장은 식욕에 대한 집착이 심한 경우예요. 그런데 휴가 가서 굶고 왔나? 전보다 더 심해졌네요.”
“…….”
“게다가 황실 지원금 아니라고 막 쓰려고 하다니…… 저런 모습은 저도 처음 봐요.”
쯧쯧 혀를 차는 아나르엘의 말에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와중에도 부학교장은 뭔 이상한 헛소리를 계속 지껄이고 있었다.
“육류 납품 업체가 형편없군. 새로운 곳을 찾아야겠어.”
“…….”
“흠, 그래. 그 주방장을 아카데미로 불러 와야…….”
“부학교장님.”
아몬을 바라본 브레슬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딱 하나 남았다는 킹오브망고를 들고 있었다.
“……뭡니까?”
아몬은 용건을 묻는 브레슬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킹오브망고의 껍질을 깎을 뿐.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아몬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화가 난 듯 점점 치솟는 브레슬의 기다란 귀를 바라볼 뿐.
“이, 이봐요. 그만…….”
아몬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쩍 벌려 킹오브망고를 탐욕스레 먹어치울 뿐.
그리고 그 충격적인 광경에 브레슬은 비명을 지르며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아악! ‘내’ 킹오브망고!”
단 하나 남은 킹오브망고가 과즙을 뿌리며 사라지는 광경에 브레슬은 귀를 축 늘어뜨린 채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고.
“우적…… 훌쩍!”
아몬 역시 오열하는 브레슬을 보며 과즙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충성을 맹세한 부학교장은 자신과 아카데미를 구원해 줄 구세주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