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80)
아카데미가 망했다 80화
아몬은 눈을 감은 채 명상에 빠져 있었다.
‘그래, 어차피 전단지를 만드는데 내 돈을 쓴 것도 아니야. 어차피 아카데미 운영비로 제작한 거고, 웃돈을 주고, 인쇄소의 다른 일정을 모두 미루게 해서 위약금도 우리가 물어 줬지만…… 그래, 맞아. 내 돈도 아니잖아?’
필사적인 정신 승리!
그러나 늘 그렇듯 정신 승리에는 허점이 있기 마련이었다.
‘근데 홍보 전단지가 쓰레기가 됐으니 뿌리지도 못할 거고, 그럼 아카데미를 부흥시키는 것도 불가능하고, 결국 드래곤님과 동생이 입학해도 별 메리트가 없어지는 거잖아? 내 꿈은 날아간 거네?’
현실을 깨달은 아몬의 뺨을 타고 맑은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어흐흑…….”
결국 슬로스가 한가득 안겨 준 초콜릿을 한 조각 먹고 나서야 심신의 안정을 되찾은 아몬이 몸을 일으켰다.
‘그래, 그러려니 하자. 내 인생이 그럼 그렇지 뭐.’
오늘은 개학식.
물론 학생이 고작 셋이라 거창한 행사를 하는 건 아니지만 개학은 개학.
아몬은 개학식을 위해 강당으로 이동했다.
* * *
개학식이 열리는 강당 안.
단상 위에 선 아몬은 동료들을 훑어봤다.
마리온은 언제나 그렇듯 거나하게 취한 채 휘청거리고 있었고, 슬로스는 어제의 멀끔한 모습이 환상이었다는 듯 부스스한 몰골로 하품만 푹푹 내뱉고 있었다.
브레슬은 아직도 문명의 품이 어색한지 옷을 만지작거리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후후,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동료들.’
카이는 늘 그렇듯, 미친놈처럼 여유롭게 미소 지은 채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그리고 왠지 마음에 안 드는 놈.’
해탈의 미소를 머금은 채 그들을 훑어보다 보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쟁쟁하기 짝이 없는 교사진들 사이에 뜻밖의 인물 하나가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
“응? 라인벨트 어르신?”
“뭐.”
아직 스승 선발전 당시의 감정이 채 풀리지 않았는지 퉁명스러운 반응!
애써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정문 경비시면서 왜 단상 위에 계시죠?”
아몬의 인성이 바닥이라 그렇게 말한 건 아니었다.
정문 경비라고 사람 취급도 안 해 주는 게 아니라, 교사진만 단상 위에 올라오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그 의문에 라인벨트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승진했다.”
“승진이요?”
“이번 첩자 사건 때문에 학교장님도 생각이 많으셨던 것 같더군. 그래서 정문 경비를 겸해 경비부장직을 맡게 됐다.”
“다른 경비원은요?”
“없다.”
책임만 늘어나는 허울뿐인 감투!
아무튼 일단 ‘부장’이니 교사들과 함께 단상 위에 올라왔다는 뜻이리라.
“봉급도 올랐다.”
“얼마요.”
“3실버.”
“아, 예.”
탄식을 금치 못하는 와중, 늘어지게 하품을 한 슬로스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런데 학교장님은? 학생들도 다 모였고, 우리가 여기 올라온 지 한 시간은 된 것 같은데.”
“이제 막 올라왔습니다, 선배님.”
“근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안 피곤할 때가 있긴 했습니까.”
“흠.”
아무튼 슬로스의 의문대로 모두가 모였는데 아나르엘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술에 취해 휘청대던 마리온이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때쯤.
돌연 강당의 문이 열리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응? 저게 뭔……?’
곧이어 아몬이 눈을 부릅떴다.
그들은 하나같이 악기를 들고 있었다.
류트, 트럼펫, 그리고 바퀴 달린 오르간까지!
교사와 학생을 합친 것보다 많은 악단의 등장에 아몬을 포함한 교사들도, 학생들도 당황한 얼굴로 웅성대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 뭐야?”
“요 며칠간 아무르에 머물고 있는 유랑 악단 아닌가?”
그렇다!
그들의 정체는 도시를 옮겨 다니며 음악을 연주하는 유랑 악단!
이윽고 악기들을 가지고 제각기 자리에 선 악단의 단원들도 휑하기 짝이 없는 강당 안을 보고 당황한 기색이었다.
“하, 학생 수가 셋이야?”
“교사도 몇 명 없는데…… 우리 제대로 온 거 맞아?”
아카데미의 인원, 악단의 단원 할 것 없이 모두가 충격에 젖어 있는 와중이었다.
또각또각-!
발소리와 함께 나타난 아나르엘이 강당을 가로질러 단상으로 향하고.
악단이 허겁지겁 연주를 시작했다.
뿜빠라바바밤-!
위풍당당한 아나르엘의 등장!
그 광경에 아카데미의 인원들 모두는 생각했다.
‘설마 개학식이라고 악단을 부른 거야? 학생이 셋인데?’
학생이 수백 명은 되어야 볼 수 있을 법한 풍경!
아몬의 뺨은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저 빡대가리 엘프가 미쳤나.’
단상 위 교사진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지만, 아나르엘은 학교장으로서의 위엄을 간직한 채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넋이 나간 것 같은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아나르엘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개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잔잔하게 깔려 있던 악단의 연주가 최고조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개학식이 끝난 후, 아나르엘은 학교장실에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머리 위로 큼지막한 혹이 달려 있고, 아몬이 불끈 쥔 주먹을 흔들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으리라.
“학교장님.”
“훌쩍! 네.”
“악단을 꼭 불러야만 했습니까? 그 넓은 강당 안에 학생이 셋이었는데요?”
분노가 물씬 배어 있는 아몬의 물음에 아나르엘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여태 행사가 있을 땐 항상 악단을 불렀단 말이에요!”
“…….”
“그나마 이번에는 아카데미의 사정을 고려해서 유랑 악단을 불렀다고요.”
고려한 결과가 그 모양이라 생각하니 아몬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군요. 유랑 악단이 좀 더 싼가 보죠?”
“물론이죠.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정규 악단보다 연주 실력은 조금 떨어져도 반값 정도면 연주해 주니까요.”
할 말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아몬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군요. 그래서 얼마 썼죠?”
“30골드요!”
아나르엘의 머리 위로 탐스러운 혹 하나가 새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심신 안정을 위해 캐모마일 잎을 생으로 우적우적 씹어 먹던 아몬이 말했다.
“학교장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홍보 전단지 싹 다 내다 버린 지 며칠도 안 지났어요. 그런데 또 이렇게 돈을 허공에 던져 버려요?”
“흐흐흑, 아파.”
“여태 행사가 있었을 땐 항상 악단을 불렀다고요? 그땐 학생이 많았겠죠! 그런데 지금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까 악단도 깜짝 놀란 것 같았다고요. 얼마나 보기 부끄럽던지!”
“하지만…….”
“떽!”
“히이잉!”
아나르엘의 우매함을 매섭게 꾸짖은 아몬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저번에 말씀 드린 신입생 말입니다.”
“훌쩍. 네, 지인분의 자녀 한 분과 아몬 선생님의 동생 말씀이죠?”
“예, 그런데 분명 개학식에 맞춰서 온다고 들었는데…….”
아몬이 혀를 찼다.
“개학식이 끝날 때까지 소식이 없네요.”
개학식에 참석해야 내일부터 진행될 수업에 즉시 들어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조금 늦어도 큰 상관은 없지만, 흐름이 끊기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기왕 내는 학비, 하루라도 더 제대로 배우는 게 좋으니까.’
전단지 배포 건으로 날려먹은 돈, 개학식에 악단을 부르는 희대의 삽질은 아카데미의 운영비로 쓰는 거니 속은 쓰릴지언정 아깝지는 않다.
자신의 돈이 아니니까!
하지만 학비의 경우엔 이야기가 달랐다.
‘그건 내 돈이라고.’
아몬이 원망스럽다는 듯 영지가 있을 법한 방향을 바라봤다.
‘내 동생 아미야, 개학식까지 오겠다며.’
하지만 어쩌겠는가. 오지 않은 것을.
한숨을 쉰 아몬이 몸을 돌렸다.
“아무튼 곧 올 테니 알고 계시라고 말씀 드린 겁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리 말한 아몬이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텅-!
문을 박차고 들어온 라인벨트가 사색이 된 얼굴로 외쳤다.
“학교장님! 드래곤이 아카데미에 왔습니다!”
그 말에 아나르엘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드, 드래곤이라뇨!? 라인벨트 님, 웬 농담을 하세요.”
“노, 농담 아닙니다! 드래곤이 입학하러 왔다고…….”
“네? 이, 입학이요?”
고개를 끄덕인 라인벨트가 이번엔 아몬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예, 그런데 아몬 녀석의 지인이라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찾아온 정적.
제 자리에 석상처럼 굳어 있던 아나르엘이 힘겹게 고개를 돌려 아몬을 바라봤다.
“……아몬 선생님?”
“예!”
“혹시, 지인분의 자제분이라는 게…….”
“예! 맞습니다! 드래곤입니다!”
깜짝 놀라는 아나르엘의 반응을 기대했기에 일부러 그 사실을 미리 알려 주지 않았던 아몬!
아몬은 엘프가 염소의 친척이라 주장했던 아나르엘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었다.
박치기에 턱을 맞고 쓰러져 꿈틀거리는 아몬을 씩씩거리며 노려보던 아나르엘이 말했다.
“라인벨트 님.”
쓰러져 경련하는 아몬을 쿡쿡 찔러보던 라인벨트가 고개를 돌렸다.
“그분을 학교장실로 좀 모셔다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라인벨트가 나간 후, 아나르엘은 아몬의 주머니를 뒤져 그가 늘 가지고 다니는 ‘심신안정에 도움을 주는 캐모마일 잎’을 한 주먹 꺼냈다.
“훌쩍!”
그녀는 캐모마일 잎을 눈물과 함께 씹어 삼켰다.
* * *
아나르엘은 당황했다.
아직 어린 드래곤이라도 드래곤은 드래곤.
그렇기에 입학하겠다는 드래곤은 오만이 하늘을 찌를 거라 생각했건만, 나타난 드래곤은 아나르엘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예의 발랐다.
“흠,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어라?’
“그런데 입학비는 이 아몬이라는 분께서 내주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어머나?’
충격, 경악, 그리고 감동.
감격으로 입을 막은 아나르엘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요. 아몬 선생님께서 내주시기로 하셨어요.”
“역시 그렇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그런데 성함이……?”
싱긋 웃은 드래곤.
소년, 소녀인지 모를 중성적 외견을 하고 있는 드래곤의 머리칼은 샛노란 금발이었다.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골드 드래곤, 아마란스 혈족의 라스티아넬입니다. 카셀라그 어르신은 저희 혈족과 먼 친척뻘이시고, 제가 인간 세상에 관심이 많아 이렇게 아몬 선생님을 통해 입학하게 됐습니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예의 바른 드래곤의 모습에 아나르엘은 감격의 눈물까지 글썽거리고 있었다.
‘이것도 다 인맥이니까!’
생글생글 웃던 아나르엘이 문득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자신의 박치기에 쓰러진 아몬은 어느새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런 아몬을 발끝으로 툭툭 건드린 아나르엘이 말했다.
“아몬 선생님.”
“으으으…….”
“아몬 선생님, 일어나세요. 드래곤 님 오셨어요.”
“드래곤 님…… 아!”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킨 아몬이 라스티아넬을 바라봤다.
“아, 아몬 드레이크입니다. 반갑습니다.”
“라스티아넬입니다. 저, 그런데 입학비를 내주시기로 했다 들었습니다.”
“아!”
고개를 끄덕인 아몬이 얼른 주머니를 꺼냈다.
그 안에는 받았던 금덩어리를 환전한 금화가 푸짐하게 들어 있었다.
“그럼요, 드래곤님께서 입학하신다는 데 당연히 대신 내 드려야죠!”
아몬이 금화 한주먹을 꺼내 아나르엘에게 내밀었다.
“자, 학교장님! 여기 라스티아넬 님의 입학비입니다!”
“확실하게 받았어요!”
이렇게 드래곤의 입학이 확정!
아나르엘이 실실 웃었다.
‘후후후, 드래곤이 우리 아카데미에 입학하다니…… 우리 아카데미의 재건도 머지않은 거야!’
아몬도 실실 웃었다.
‘이렇게 드래곤한테 생색도 내고 남는 돈도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구나!’
아나르엘과 아몬이 서로 다른 이유로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와중이었다.
“그런데, 아몬 씨.”
“예? 라스티아넬 님.”
“그 금화는, 카셀라그 어르신께서 제 입학비로 쓰라고 주신 것 아닌지요?”
라스티아넬의 물음에 아몬이 흠칫했다.
“그, 그렇긴 하죠.”
“그럼 제 것 아닌가요?”
“어어…….”
남은 금화를 날름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나오다니.
‘드래곤이 되어선 얼마 되지도 않는 금화를 받아 챙기려 하다니…….’
괘씸함과 섭섭함!
아몬이 서둘러 말했다.
“그, 아카데미에서 생활하시다 보면 이래저래 돈 들어갈 구석이 많습니다.”
“돈 들어갈 구석이요?”
“예. 교재비도 들고, 식비도 들고, 옷도 사 입어야 하고…….”
아나르엘이 끼어들었다.
“입학비에 교재비는 다 포함돼요!”
‘이 개 같은 엘프가!’
이를 악문 아몬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아, 아무튼 식비와 옷도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니 이 금화는 제가 맡아 두는 게 어떨까요?”
“식비, 의류비.”
라스티아넬이 고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는 드래곤이라 식사가 필요치 않습니다. 의류도 마법을 통해 얼마든 만들어 낼 수 있고요.”
“…….”
“그러니 주시죠. 어차피 제 것 아닙니까?”
결국 명분에서 밀린 아몬은 순순히 금화 주머니를 건네며 말했다.
“그런데 금화는 어디 쓰시려고…….”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으드득, 오도독-!
라스티아넬이 금화를 씹어 먹기 시작했다.
그 충격적인 광경에 아몬이 말하다 말고 입을 쩍 벌린 채 굳어 버리고, 오물오물 맛있게 금화를 몽땅 먹어치운 라스티아넬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금 순도가 낮네요.”
“…….”
“더 없나요? 어르신께서 금을 두 덩어리는 주셨다 하셨는데요.”
“……….”
아몬이 아래턱을 덜덜 떨며 말했다.
“시, 시, 시…….”
“네?”
“식사, 안 하신다고, 방금 말했…….”
라스티아넬이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필요하지 않은 거지, 하려면 합니다.”
“뭐, 뭐…….”
“특히 금을 좋아하죠. 맛있거든요.”
아나르엘이 아몬의 속도 모르고 끼어들었다.
“금이 맛있나요?”
“네. 달면서 고소해요.”
“어머나! 저도 언제 한번 먹어 봐야겠네요!”
“아뇨, 아뇨. 금이 유독 골드 드래곤의 입에 맞는 것뿐이에요. 다른 드래곤들도 금을 모으긴 해도 먹지는 않는다고 들었어요.”
“그렇군요!”
하여튼, 하고 중얼거린 라스티아넬이 아몬을 바라봤다.
“아몬 씨.”
“…….”
금 먹는 드래곤이 손을 내밀었다.
“나머지 금 주세요.”
그 말에 아몬은 허물어지는 것처럼 주저앉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