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81)
아카데미가 망했다 81화
아몬은 자신의 숙소 침대에 누운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위대하신 드래곤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
‘카셀라그 어르신께서 주신 금덩이 하나는 제 동생을 위한 입학비로 쓰려 했습니다. 그러니 부디 하해와 같은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구질구질한 아몬의 간청에 라스티아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원래는 제 입학비로 쓰려고 한 금이잖아요? 그럼 제 것 맞잖아요?’
‘그, 그렇지만…….’
‘주세요.’
부들부들 떨던 아몬은 결심했다.
‘좋아, 이렇게 된 마당에 드래곤 슬레이어 한번 되어 보자.’
어린 시절의 오랜 꿈!
하지만 카셀라그가 선물로 줬던 아다만티움 검은 숙소에 두고 온 상황이라 지금 당장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더군다나 카셀라그를 포함한 다른 드래곤의 분노를 감당할 자신도 없었기에 아몬은 어린 시절의 오랜 꿈을 손쉽게 포기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금덩어리를 받아 든 라스티아넬이 그것을 양손으로 잡고 쭉 갈랐다.
그리고 두 덩어리가 된 금덩어리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한참 작은 조각을 내밀며 말했다.
‘이건 드릴게요. 동생분의 입학비로 쓰세요.’
‘……헉!’
빵 덩어리를 갈라 나눠 주는 것 같은 라스티아넬의 호의!
금덩어리를 냉큼 받아 챙긴 아몬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라스티아넬 님!’
‘별말씀을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라스티아넬의 입학은 마무리되었다.
‘아무튼 새로 온 학생이 드래곤이라…… 애는 착해. 드래곤답지 않게 예의도 바르고 말이야.’
하지만 금을 먹는다!
작은 금 덩어리를 주고 난 라스티아넬이 자기 몫의 금덩어리를 쩝쩝대며 먹어 치우는 광경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아무튼 나한테 더 이상 금을 달라고 징징댈 일은 없겠지? 나한테 맡겨 둔 것도 아니니까…….’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카셀라그 어르신이 금 덩어리를 몇 개 주셨더라?’
영지에 남겨 둔 것 하나.
자신이 가지고 온 것이 두 덩어리.
아몬의 얼굴에 불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머지 하나도 내놓으라고 하진 않겠지? 그래, 안 그럴 거야.’
가까스로 불안감을 삼킨 아몬이 품속에 있는 주먹만 한 금 덩어리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고, 아미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안 와?”
입학식에 맞춰 오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말이다.
‘수업 못 받은 일수만큼 입학비를 깎을 수는 없는 걸까……?’
그런 치졸한 생각을 하는 와중, 라인벨트가 아몬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아몬, 손님 왔다.”
“아, 어르신. 노크 좀 하고 여세요.”
“흥! 내 제자도 아닌 놈한테 예의를 차릴 이유가 있나?”
지난번에 윽박지르던 꼴을 보면 제자가 됐을 땐 오히려 더 심할 것 같았지만, 그 생각을 애써 삼킨 아몬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런데 올 손님이 있나? 누구요?”
“네 여동생이라던데?”
아몬이 벌떡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에이씨, 개학식까지 오랬더니 진짜 개학식 날 바뀌기 전까지 왔네. 그 녀석 지금 어디 있어요?”
“일단 학교장실로 안내해 줬다.”
서둘러 학교장실로 향한 아몬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익숙한 뒤통수를 볼 수 있었다.
손님용 소파에 앉아 있는 녀석을 보자마자 냅다 꿀밤을 먹였다.
빡-!
“이 녀석아! 왜 이렇게 늦게 온…….”
아몬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꿀밤을 맞은 아미가 그대로 허물어지는 것처럼 옆으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어?”
아몬은 자신의 동생이 얼마나 튼튼한지 안다.
그럼에도 힘 조절을 해서 살짝 때렸는데 고작 꿀밤을 맞고 쓰러진단 말인가!
당황한 나머지 입만 뻐끔거리는데 아나르엘이 안으로 들어왔다.
“자, 여기 먹을 거랑 물 가져왔…….”
말을 잇던 아나르엘이 꿀밤을 맞고 쓰러진 아미와 주먹을 들고 굳어 있는 아몬을 발견했다.
그리고 아나르엘이 음식과 물이 담긴 쟁반을 떨어트리며 비명을 질렀다.
“꺄악! 이, 이 악마! 지쳐서 골골대는 아이를 때리면 어떡해욧!”
“뭐, 뭐라고요?”
뒤늦게 아미의 꼬락서니를 살펴본 아몬이 눈을 부릅떴다.
머나먼 드레이크 영지에서 여기까지 달려온 건지 온통 흙먼지에 신발도 잔뜩 헤져 있는 아미의 꼬질꼬질한 모습!
“아미야!”
아몬이 기절한 동생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얼싸안았다.
그러나 기절한 아미는 그 외침을 들을 수 없었다.
* * *
아나르엘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미가 일부러 늦게 온 건 아니었다.
아몬은 아미의 다리를 열심히 주물러 주었다.
“녀석, 여기까지 오느라 많이 피곤했나 보구나! 깜빡 잠들어 버리고 말이야!”
물론 아미는 얼떨떨한 기색이었다.
“그, 그래? 아닌데…… 피곤해도 학교장님이 먹을 거 가져다주신다 하셔서 정신 꽉 붙들고 있었는데…….”
“아냐, 아냐. 너 어릴 때 종종 기절하고 그랬어.”
“내가? 정말로?”
“그러엄. 정말이지. 네가 어릴 때는 얼마나 연약…… 했지? 아마?”
알쏭달쏭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미가 정수리를 문질렀다.
“그렇구나. 근데 머리가 왜 이렇게 아프지?”
“피곤하면 원래 두통도 생기고 그래.”
“두통이 아니라 한 대 맞은 것처럼 욱신거리는데.”
“너무 피곤하면 두통도 원래 그렇게 아파.”
“그래?”
필사적으로 혀를 휘두르는 와중 아나르엘이 다시 먹을 것을 들고 왔다.
“자, 자. 시장할 텐데 어서 먹어요.”
“와! 감사합니다!”
아미가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치우는 것을 본 아나르엘이 아몬을 흘겨보면서 속삭였다.
“아몬 선생님, 주먹부터 먼저 나가는 버릇 좀 고쳐요.”
“죄송합니다. 어머니를 닮아서요.”
“…….”
어머니를 휘둘러 아나르엘을 때린 아몬은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얼굴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아몬의 어머니는 예전에 영지에서도 감자를 캐는 브레슬을 보자마자 걷어차고 기절시키지 않았던가!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란 아몬은 훌륭한 어른이 되었다.
“아무튼, 아미.”
“냠냠! 흰 빵 맛있당. 응? 왜?”
“왜 늦었냐? 개학식까지 오라고 하긴 했다만, 날 바뀌기 직전이잖아, 이 녀석아.”
아미가 빵 조각을 입에 쏙 던져 넣으며 답했다.
“시간 계산을 잘못했어. 달려서 열흘쯤이면 넉넉할 줄 알았는데 빠듯하더라고. 그래서 어제부터 큰일 났다 싶어서 폐 뱉을 때까지 안 쉬고 달렸지.”
“호오…… 그래도 결국 날 맞춰서 오기는 했네.”
“응. 좀 늦긴 했지만 말이야.”
“나도 달려서 보름쯤 걸리긴 했는데 열흘도 가능했구나.”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나르엘이 끼어들었다.
“달려서 열흘? 보름? 무슨 말이에요?”
“예? 우리 영지에서 여기까지 달려서 열흘, 보름 걸렸다는 말이죠.”
그 말에 아미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학교장님, 국어 잘 못하시는구나.’라고 농담을 하고 싶었지만 상대는 아몬의 상급자!
오빠의 앞일을 생각하면 내뱉어선 안 될 말이다.
“학교장님, 국어 잘 못하시네요!”
그렇기에 아미는 말했다!
여동생이란 오빠 된 자가 항상 가시밭길만 걷길 원하는 존재!
그 사실을 눈치챈 아몬이 갈고리눈을 떴지만 아나르엘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가 제국 표준어를 늦게 배우긴 했으니까요.”
“……아, 그러네요. 엘프시니까요.”
“그래도 꽤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었나? 그보다 달려서 열흘, 보름? 무슨 속담이나 관용어 같은 건가요?”
“예?”
아몬이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뇨, 말 그대로 달려서 열흘, 보름 걸렸다는 말인데요.”
“네? 드레이크 영지에서요?”
“예.”
“거기서, 여기까지, 달려서, 열흘, 보름?”
귀를 파르르 떠는 아나르엘을 본 아몬이 황급히 손을 뻗으며 말했다.
“학교장님! 여기서 ‘그 먼 거리를 달려서 왔다고요!’라고 말하시는 건 정말로 뻔하고 재미없는 반응입니다.”
“……헉!”
“그냥 ‘아, 맞다. 아몬네가 좀 특이하긴 했지.’ 하고 넘기십쇼.”
“아, 네.”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한 아몬이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여태 차곡차곡 모아온 봉급 중 일부분을 꺼내 떨리는 손으로 내밀었다.
“그보다 여기 아미 입학비요.”
“네! 확실하게 받았어요.”
“그럼 아미를 학생 기숙사로 안내해 주러 가겠습니다.”
“네, 네. 아미 학생, 앞으로 열심히 배워요!”
“네! 학교장님!”
잠시 후, 아미를 데리고 학교 시설을 간단하게 구경시켜 준 아몬은 녀석을 데리고 기숙사로 향했다.
“앞으로 열심히 배워라. 알겠냐.”
“응, 그러려고. 오빠는 점수만 잘 주면 돼.”
“그래…… 아, 맞다. 이 자식아, 아카데미에 입학하면 나 모르는 척할 거라고 하더니.”
아미가 깍지 낀 손을 머리 뒤로 댄 채 캬캬 웃었다.
“뭐 어때? 선생님들은 이래저래 다 알 거 아냐? 학생들한테만 저놈 저거 편애받는구나, 하는 걸 안 들키면 되는 거 아니야?”
“그야 그렇지만…… 쩝, 학생들한텐 되도록 남매라는 거 말하지 말고.”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아미가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근데 한 학년에 몇 명씩 있어?”
“응? 보자…… 너 포함 다섯.”
“……에?”
“교사는 넷.”
“……농담이지?”
“농담 같아?”
아몬이 곧 도착한 학생 기숙사의 문을 두드렸다.
“얘들아, 아몬 선생님이야. 잠깐 들어가도 될까?”
부드러운 아몬의 목소리에 아미는 소름 돋는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윽고 대답과 함께 문이 열리자 아미는 깨달을 수 있었다.
학생이 다섯이라는 아몬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이 아카데미, 망한 거 아니야……?’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는 아미를 힐끔 바라본 아몬이 말했다.
“아미 학생, 다른 학생들과 인사해야죠.”
“네? 아, 넵. 아몬 선생님.”
“흠, 흠. 아무튼 클로에, 보리스, 레이몬드. 너희가 아카데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으니까 이것저것 가르쳐 주렴. 알겠지?”
학생 기숙사의 터줏대감 3인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생님!”
잠시 후, 아몬도 떠나고 다른 학생들과 남은 아미가 그들을 훑어봤다.
‘흠…… 다들 나보다 어려 보이네.’
애초에 자신이 조금 늦게 입학한 감이 있긴 했다.
그러나 아미는 누굴 닮아 눈치가 빠르다.
삭-!
순식간에 양손을 포갠 아미가 굽실거리며 그들에게 들이댔다.
“헤헤, 선배님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전 아미라고 해요!”
단숨에 저자세로 깔고 들어오는 아미의 행동에 보리스가 크게 당황했다.
“네? 아, 넷! 저는 보리스예요.”
“히히히! 네, 보리스 선배님. 말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그때 레이몬드가 슬쩍 말했다.
“우리가 한 학기 먼저 입학하긴 했지만, 우린 다 같은 1학년이에요.”
“에?”
아미가 잔뜩 굽었던 허리를 펴며 말했다.
“그래? 진작 말하지.”
“……아, 네.”
“흠. 그렇단 말이지…….”
아미가 슬며시 다른 학생들을 훑어봤다.
‘남자애가 둘.’
보리스와 레이몬드다.
‘그리고 얜…… 뭐지?’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라스티아넬!
그는 소년인지, 소녀인지 모를 중성적인 외모를 지녔다.
애초에 성인 드래곤이 아닌지라 아직 자신이 취할 성별을 완전히 정하지 못한 탓이었다.
‘아무튼 보류. 그럼 확실한 여자애는 하나.’
클로에를 힐끔 바라본 아미가 힐쭉 웃으며 말했다.
“히히, 같은 여자끼리 잘 부탁해! 이름이 뭐야?”
얌전히 앉아 책을 읽고 있던 클로에가 아미를 힐끔 바라봤다.
“클로에 아란이에요.”
아미가 번개처럼 허리를 굽혔다.
성이 있는 걸 보면 귀족일 테고, 어느 귀족 가문이건 간에 필시 시골 촌구석에 처박혀 있는 드레이크 가문보단 대단한 가문이리라!
“헤헤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클로에 아란 님.”
“……네? 아, 네.”
“헤헤헤, 아란 가문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습죠.”
이번에도 레이몬드가 쑥 끼어들었다.
“클로에는 아란 왕국 출신이에요.”
“에?”
아미도 당장 ‘아란’이라 하면 생소해도 ‘아란 왕국’은 안다.
‘얼마 전 국가 경쟁에서 밀려 망한 나라?’
아미의 허리가 도로 올라왔다.
“아, 그렇구나.”
“…….”
모두들 아미의 번개 같은 태세 전환에 아연실색한 와중, 아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클로에가 입을 열었다.
“저, 언니.”
“응응, 왜? 클로에.”
책을 탁 덮은 클로에가 생글 웃으며 말했다.
“아몬 선생님 동생이시죠?”
“……!”
아미가 입을 쩍 벌렸다.
첫날부터 들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