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82)
아카데미가 망했다 82화
서로 가족이라는 걸 비밀로 하기로 아몬과 약속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인데 이렇게 들켜 버리다니!
‘뭐지? 어떻게 알았지?’
혹시 얼굴이 닮았나 싶었지만 여태 살면서 그런 말은 한 번도 못 들어 봤다.
아몬은 점잖게 생긴 아버지를 닮았고, 아미는 딱 봐도 한 성깔 해 보이시는 어머니를 닮았다.
즉 아미의 외견은 못되게 생긴 말괄량이 그 자체!
아몬과는 전혀 다른 인상인 것이다.
‘그냥 아미, 아몬이라 대충 찍어 맞춘 건가?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잡아떼기로 했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 아미가 말했다.
“우웅? 무슨 소리야?”
연하들을 상대로 펼치는 회심의 애교 섞인 능청!
물론 씨알만큼도 먹히지 않았다.
보리스와 레이몬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고, 클로에는 그 모습에 아몬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확신했다는 듯 빙그레 미소 지었다.
“언니.”
“으, 응?”
“하는 행동이 아몬 선생님과 똑 닮았어요.”
“뭣……!?”
선배니, 후배니 할 때 손바닥 뒤집는 것처럼 태도를 바꿔 대던 아미!
학생들도 눈이 달려 있기에 ‘아카데미 교류전’ 당시 봤던 아몬의 매서운 태세 전환을 익히 알고 있다.
이외에도 몇 번이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할 새도 없이 꺾어 왔던 아몬!
그것을 아몬 본인은 ‘융통성’이라 포장하곤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찌 받아들일지는 글쎄.
아무튼 하는 짓거리가 아몬과 똑 닮았다는 말에 아미는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나보다 어린 것 같은데 도발하는 솜씨가 수준급이군.’
오빠와 닮았다는 말은 여동생에게 있어선 모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법!
애써 분노를 감춘 아미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아니라니까. 그 선생님과는 오늘 처음 만났는걸.”
아미가 여전히 잡아떼자 클로에가 빙그레 웃었다.
“그런가요? 아니면 말고요.”
“……그, 그래.”
“그럼 언니,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클로에가 공손하게 고개를 꾸벅 숙이자 아미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이곳까지 달려오느라 쌓인 피로 때문에 아미가 일찌감치 곯아떨어지자 보리스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저기, 클로에.”
“왜.”
“저 누나가 아몬 선생님의 동생이라는 거, 정말이야?”
보리스의 물음에 레이몬드도 한 마디 거들었다.
“하는 행동이 비슷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진짜 동생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소드 마스터답게 눈썰미가 좋은 레이몬드조차 아미가 아몬의 동생이라는 확신을 가지기 힘들었다.
하지만 클로에는 확실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동생 맞아.”
“그러니까 어느 부분을 보고?”
“하는 행동도 비슷하고, 무엇보다도…….”
클로에가 코를 톡톡 치며 말했다.
“아몬 선생님의 냄새가 났어.”
“뭣……!”
보리스의 얼굴이 경악에 휩싸였다.
“클로에! 무슨 그런 못된 말을……!”
“어?”
클로에와 레이몬드가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야?”
“냄새가 왜? 갑자기 왜 그래?”
둘의 순진무구한 반응에 보리스가 흠칫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냐. 아무것도.”
“……?”
최근 도서관에서 찾은 ‘백작님, 이러시면 안 돼요.’라는 소설 때문에 괜히 쓸데없는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겉표지를 마법 책과 바꿔 틈 날 때마다 못된 책을 읽는 보리스!
하여간 ‘냄새’가 난다는 클로에의 말에 레이몬드가 말했다.
“하여튼 냄새라…… 확실히 분위기 같은 게 아몬 선생님이랑 닮긴 했지.”
분위기를 냄새로 비유한 것이리란 생각에 그리 말한 거지만, 클로에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로 아몬 선생님의 냄새가 났다고.”
“……뭐?”
“그래서 처음엔 아몬 선생님한테 붙어먹는 못된 것이구나 싶었는데, 가만 보니 아닌 것 같더라. 아몬 선생님이랑 비슷한 냄새였지만, 약간 달랐어.”
“…….”
한숨을 쉰 보리스가 ‘겉표지를 바꾼 마법 책’을 펼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클로에, 얘 점점 이상해지네. 나 하나라도 정신 꽉 붙잡아야지.’
레이몬드도 한숨을 내뱉더니 자신을 똑 닮은 인형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이 아카데미에선 나만 정상이야. 그치? 레이몬드.’
벌써 발랑 까져선 못된 책이나 읽는 보리스나 자신을 본뜬 인형들을 가지고 다니며 스스로를 투영하는 레이몬드가 클로에를 비정상 취급하는 진풍경!
확실히 ‘냄새’ 타령을 하는 클로에가 이상해 보이긴 했지만, 클로에의 고국인 아란 왕국은 고산지대에 위치한 왕국.
다소 척박한 환경에서 이어져 온 혈통의 정점이었기에 클로에의 감각은, 특히 후각은 여느 사람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고 클로에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한 레이몬드와 보리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와중, 여태 석상처럼 앉아 있던 라스티아넬이 입을 열었다.
“두 분 남매 맞아요.”
“으, 응?”
“같은 혈족끼리의 냄새가 났으니까요.”
“어……?”
냄새가 비슷하다는 클로에의 주장에 한술 더 뜨는 라스티아넬!
클로에는 그럼 그렇지 하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보리스와 레이몬드는 가엾은 것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라스티아넬을 바라봤다.
“그걸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아냐뇨?”
라스티아넬이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드래곤이니까요.”
“……아아, 그렇구나.”
레이몬드가 체념한 듯 빙그레 웃었다.
‘또 이상한 녀석이 하나 추가됐구나.’
보리스도 못된 책의 페이지를 팔랑팔랑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 어떻게 된 아카데미에 정상이 없네.’
클로에조차 고개를 흔들었다.
‘아몬 선생님, 앞으로 고생이 많으시겠네.’
따스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에 라스티아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아나르엘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우선 아카데미의 급한 불은 껐구나.’
말 그대로 아카데미 전체를 집어삼킨 거대한 화마는 사라졌다.
빚도 사라졌고, 교사들도 전원 돌아왔고, 재건된 킹오브망고 농장을 통해 정기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데다 신입생도 ‘무려’ 두 명이나 추가됐다.
그러나 아직 군불이 남아 타닥타닥 아카데미를 태우고 있는 상황!
‘그래, 결국 제대로 된 실적이 필요해. 그래야 뭘 해도 할 수 있을 테니까.’
황제, 아모니스 18세.
즉 산드리오가 앓아누운 이상 그에게 따로 연락해 얼른 후원금을 보내 달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정식으로 교육부에 후원 독촉을 해야 하는데, 아무 실적도 없이 돈만 내놓으라고 악다구니를 쓸 순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즉 학생을 교육하고 있다는 제대로 된 증거가 필요한 시점!
“……휴, 좋아.”
심사숙고 끝에 추려낸 몇 뭉치의 서류를 테이블에 쭉 늘어놓은 아나르엘이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리고 한참의 정적 후.
“……아, 이제 비서 없지.”
멋쩍게 중얼거린 그녀가 몸을 일으켜 직접 교사들을 호출하러 움직였다.
* * *
“실습이요?”
“네, 아몬 선생님.”
“흐음…… 그러고 보니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실습을 치른다는 말을 듣기는 했죠.”
1학기 때는 학생들에게 지식 등의 기초적인 기반을 마련해 준다.
그리고 2학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지식을 기반으로 한 실습에 들어간다.
그 실습은 단연 아카데미의 꽃인 던전 탐험!
즉 위험 요소가 따르는 일이기에 교사들의 엄중한 판단을 통과한 학생들만이 실습에 들어갈 수 있었다.
‘클로에는 검술 실력이 좋으니 별문제 없을 거고, 레이몬드는 이미 소드 마스터니 말 할 것도 없지. 그리고 보리스는…….’
생각에 잠겨 있던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는 착해.’
그리고 나머지 학생, 아미와 라스티아넬에 이르러선 두말하면 입 아프다.
동생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아미는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쌍검을 들고 아르마 산맥의 몬스터들과 정겹게 우애를 나누던 아이가 아닌가.
‘드래곤인 라스티아넬은 굳이 실습을 칠 필요가 있나? 어지간한 몬스터는 눈만 마주치면 오줌을 지리지면서 배를 까뒤집을 텐데?’
뭐, 그래도 교육 과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
어깨를 으쓱인 아몬이 마리온을 바라봤다.
“선배님은 누구누구 시험을 치면 된다고 생각하세요?”
“흠,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저야 전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보리스가 약간 걱정되긴 하지만요.”
아몬의 우려에 마리온이 돌연 눈살을 찌푸렸다.
“어째서 보리스가 걱정이라 생각하나?”
“예? 그야 보리스는 아직 마법 이론만 익히고 있잖아요? 멘탈 쪽도 아직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고요.”
연이은 우려에 마리온이 빽 소리를 질렀다.
“어허! 이 사람이 참! 우리 보리스가 걱정스럽다니!”
“어, 예?”
“우리 보리스가 마법 연습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게다가 최근에는 마법의 실사용도 가르치고 있었다고! 에잉, 자네 보는 눈이 없어도 너무 없구만!”
“…….”
그러고 보니 마법에 뜻을 둔 학생은 보리스가 유일했다.
‘그래서 이 술주정뱅이가 보리스를 편애하는군.’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개중에는 깨물면 특히 아픈 손가락이 있는 법!
마리온에겐 보리스가 특별한 손가락인 모양이었다.
뭐, 그렇다고 마리온이 다른 학생들을 차별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으니 아몬은 그러려니 넘기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제가 실언을 했네요.”
“크흠! 앞으론 조심하게. 그래서 말인데.”
“예?”
마리온이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이번 던전 실습, 내가 보리스의 인솔 교사를 맡도록 하지.”
“예? 아, 뭐. 알겠습…….”
순순히 대답하려던 아몬이 흠칫하며 다른 교사들을 둘러봤다.
‘잠깐!’
마리온의 말은 즉 학생마다 인솔 교사가 하나씩 붙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교사들도 그 사실을 익히 아는 모양인지 저마다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때 슬로스가 손을 들었다.
“그럼 내가 클로에의 인솔 교사를 맡을게.”
“뭣!”
아몬이 역정을 냈다.
“선배님! 클로에는 제가 맡아야죠!”
“뭐? 왜?”
“클로에가 저를 얼마나 따르는데요!”
“검술을 가르친 건 난데? 그럼 실습할 때도 내가 봐 주는 게 맞지.”
“큭……!”
반박할 수 없는 정론에 부들부들 떠는 아몬!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어 아몬을 내려다보는 슬로스!
두 사람의 모습에 마리온은 생각했다.
‘예전에 혼담 어쩌고 하더니, 무슨 양육권 두고 싸우는 부모 같구먼.’
아무튼, 클로에로부터 양육권을 빼앗아 올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 아몬은 힘없이 레이몬드의 인솔 교사를 맡겠노라 말하려 했다.
‘소드 마스터니까 실습 자체는 아무 어려움 없겠지? 내가 따로 지적할 부분도 없을 거고.’
결국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계산하에 입을 열려는 찰나.
“레이는 제가 맡도록 하죠.”
“뭣!? 카이, 이놈!”
어김없이 자신의 밥그릇을 뒤집어엎으려는 카이의 행패에 아몬이 일갈하자 카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선배님?”
“레이몬드는 내가 인솔한다!”
“예? 왜요?”
“후배가…… 말대꾸?”
“선배님께는 죄송하지만, 레이가 저를 엄청 따르거든요.”
“……어?”
그럴 리가 없다.
수업이 끝나면 레이가 라인벨트에게 항상 카이에 대한 험담을 한다는 걸 들어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카이는 국정을 보느라 푸짐해진 턱살을 흔들며 웃었다.
“하기야, 이름도 카이. 레이. 비슷하잖아요?”
“…….”
“그 때문에 통하는 게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 그래. 네 맘대로 해라.”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카이를 향해 손사래를 친 아몬이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잠깐, 그럼 남은 학생이……?’
아미, 눈에 넣으면 너무나도 아플 여동생.
라스티아넬, 드래곤.
딱 봐도 트러블이 생길 법한 조합이라는 것을 깨달은 아몬이 빙그레 웃었다.
“역사학 교사로서, 이번 실습의 인솔 교사 건은 사퇴하겠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