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84)
아카데미가 망했다 84화
아몬, 아미, 라스티아넬 삼인방은 발이 터져라 달리고 있었다.
도시마다 있는 워프 게이트를 이용할 법도 하건만, 돈주머니의 안위를 그 무엇보다 걱정하는 아몬은 그들의 징징거림을 전혀 수용하지 않았다.
‘오빠! 그냥 돈 좀 쓰자니까!’
‘어림도 없는 소리! 그 돈이면 우리 영지에서 먹을 검은 빵을 백이십 포대나 살 수 있다고!’
‘뛰자!’
라스티아넬도 징징거렸다.
‘좌표를 알려 주세요! 그럼 제가 워프 마법 쓸 수 있잖아요!’
‘좌표 모릅니다!’
실제로 바바란 마을, 조르가 영지는 몰라도 보그 산맥의 좌표를 아는 사람은 세상천지를 뒤집어 봐도 몇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세 지점의 첫 번째 목표가 보그 산맥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몬의 터전인 아르마 산맥만큼은 아니더라도 보그 산맥 역시 시골 깡촌에 위치해 있는 험준한 산맥!
‘그, 그럼 돈을 쓰죠! 인간들이 이용한다는 워프 게이트를 쓰자고요!’
‘한 사람당 금화 세 개입니다!’
‘뭐, 뭐라고요!?’
‘셋이면 깎아서 금화 여덟 개군요!’
라스티아넬은 어제 먹었던 금화의 달콤함과 바삭바삭함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런 맛 좋은 금화를 무려 여덟 개나 사용해야 하다니!
‘달리죠!’
‘현명한 판단입니다!’
아몬, 아미, 라스티아넬 셋이 발에 땀나도록 달리고 있는 이유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셋의 몸뚱이가 평범한 인간과는 궤를 달리 한다는 점.
아카데미가 위치한 도시 아무르에서 말을 타고 쉴 새 없이 달려도 며칠은 걸릴 거리에 있는 보그 산맥이건만, 그들은 한나절도 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도착한 그들이 멀쩡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드레이크 영지에서 단련됐다고 한들, 아미는 클로에와도 나이가 그리 차이나지 않는 소녀!
“헥! 도착, 해엑! 다악!”
머리를 산발한 채 헐떡이는 아미는 금세라도 주저앉을 듯한 기색이었다.
그리고 드래곤이라지만, 이제 갓 성체가 된 데다 인간 몸에 익숙지 않은 라스티아넬은 아예 앞으로 쓰러진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흡사 애벌레와도 같은 모습이었지만, 아몬은 드래곤의 체통을 염려해 애써 그 모습을 무시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휴, 아침에 출발해서 점심 무렵에 도착이라. 조금 늦었군.”
그 중얼거림에 아미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오빠가 체력이 좋은 건 알았는데,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라스티아넬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인간은 원래 다 이런 건가? 인간 무서워…….’
아무튼,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주변을 둘러본 아몬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미와 라스티아넬은 죽을 것 같은 기색이었지만, 아몬은 제법 여유가 있었기에 먼저 앞질러 오면서 행인들에게 길도 알음알음 물어봤기에 이곳이 보그 산맥이라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평온하지?’
그들이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보그 산맥 바로 아래의 마을도 평온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였다.
‘보그 산맥, 오거 군집이 발생한 지역. 난이도 상 의뢰.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평온한 거지?’
드레이크 영지에서 틈만 나면 오거와 돈독한 우애를 나눴던 아몬은 놈들이 얼마나 난폭한 성품을 지녔는지 잘 알고 있다.
세간에서는 ‘식인귀’라 불릴 정도로 흉포한 몬스터가 오거였다.
게다가 기사에 대한 지식이 조금 쌓인 현재 아몬의 판단으로는, 소드 익스퍼트 중급 수준의 기사도 혼자선 오거를 둘 이상 상대하긴 버거우리라.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의 슬로스 선배 실력이었다면 오거 두 마리를 만나면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됐겠지…… 아니다, 가벼운 한 끼 식사 정도겠군.’
포동포동 살찐 브레슬이었다면 든든했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유심히 생각에 잠겨 있던 아몬이 문득 어딘가를 바라봤다.
보그 산맥 아래에 위치한 허름한 마을이건만, 그 바로 옆에 웬 근사한 건물 한 채가 서 있었다.
‘저건 무슨 건물이지? 어디서 본 것 같은 건물인데…….’
뚫어져라 건물을 바라보던 아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카데미가 있는 도시 아무르에 주둔하고 있는 기사단인 ‘골리앗 기사단’의 문양이 건물 외벽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서, 설마……!’
머릿속에 치밀어 오르는 불길한 예감.
‘이 새끼들이 오거 군집을 토벌했구나!’
자신의 밥그릇을 눈 뜨고 빼앗겼다는 생각에 아몬은 한달음에 기사단 건물로 달려갔다.
그리고 건물로 달려간 아몬이 문을 쾅쾅 두드렸다.
“계십니까! 계십니까아아!!”
잠시 후, 부스스한 몰골의 남자 하나가 밖으로 나왔다.
“누구…… 엇!?”
“어라?”
낯익은 얼굴이었다.
그리 오래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었지만, 워낙 인상 깊은 첫 만남을 가졌었기에 알 수밖에 없는 얼굴.
“분명 슬로스 선배님의 오빠이신…… 랜슬로 님?”
“그러는 자네는, 우리 사랑스럽고 예쁜 슬로스를 홀려서 타락시키려는 거지 같은 약혼자 놈!”
아몬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휘저었다.
“아뇨! 약혼자 아닙니다. 거기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뭐?”
자초지종을 설명하라는 듯 눈을 부라리며 팔짱을 끼는 랜슬로였지만, 아몬은 지금 당장의 일이 더 급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겁니까? 분명히 이곳에 오거 군집 토벌 의뢰가 떨어져서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골리앗 기사단이 이곳에 주둔 중이라니요?”
“아, 그게 말이지. 일이 좀 있었다네.”
“일이요?”
고개를 끄덕인 랜슬로가 말을 이었다.
“내가 아무르의 골리앗 기사단에 부임한 건 알고 있겠지?”
모른다.
하지만 아몬은 호쾌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죠. 피드 후작가의 랜슬로 님이 별 볼 일 없는 골리앗 기사단에 부임했다는 걸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얼굴에 금을 펴 바르는 아몬의 칭찬에 랜슬로가 흐뭇하게 웃었다.
“하하, 아직 수행 중인 몸인데 자네 같은 사람이 띄워 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 하여간 자네 말대로, 골리앗 기사단의 임무는 아무르의 수호. 그런데 정작 아무르는 평화롭기 짝이 없는 도시지.”
“그럼요, 그럼요.”
“하지만 문제는 아무르 인근 지역이 문제였기에 구태여 그곳에 부임시킨 거였다네.”
“예? 아아.”
아무르는 상업 도시.
그렇기에 주변 지역은 뭘 하더라도 아무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즉 보그 산맥이 아무르와 꽤 떨어져 있다곤 하지만, 결국은 아무르의 인근 지역으로 분류된다.
“휴, 그렇군요. 그래서 골리앗 기사단이 오거 군집을 토벌한 것이군요.”
“오거 군집 토벌이라…….”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거린 랜슬로가 말했다.
“토벌이라기보단…….”
“예?”
“그 뭐냐, 교류와 화합, 친선이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요?”
오거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나열에 아몬이 눈을 끔뻑거렸다.
‘뭔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랍니까?’
필터 없이 말하면 쌍소리가 나왔을 테지만, 필사적으로 정신줄을 붙잡은 아몬이 한층 순화된 말을 내뱉었다.
“그게 뭔 되도 않은 헛소립니까?”
“하하하…… 당황스럽겠지. 우리 역시 많이 당황했다네.”
쓰게 웃은 랜슬로가 건물 안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가락! 잠깐 나와 보겠나?”
그 외침에 안쪽에서 우당탕 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웬 큼지막한 것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오거였다.
그런데 옷도 입고 있고, 조악하게 만든 안경 비스무리한 것도 쓰고 있었다.
“뭣……!?”
그 사실에 경악한 아몬이 랜슬로와 오거를 번갈아 바라봤다.
“이, 이게 뭔…….”
랜슬로가 뺨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음, 소개하지. 우가락은 보그 산맥의 오거 족장인 자가락의 오른팔로, 제국과의 평화 사절 겸 통역을 맡고 있다네. 우가락, 이자는 아몬이라 하네.”
오거, 우가락이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나, 우가락. 오거다. 힘세다. 착하다. 인간, 친하게 지낸다.”
아몬이 눈을 부릅뜬 채 입을 뻐끔거렸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가 없는 나머지 아몬이 랜슬로와 우가락을 번갈아 바라보는 와중에, 부연 설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랜슬로가 아몬의 귀에 속삭였다.
“보그 산맥의 오거 족장은 수백에 달하는 대부족을 통합한 지도자라네. 그리고 그는 백에 하나, 아니지. 만에 하나 나온다는 ‘오거 로드’야.”
“오, 오거 로드라고요?”
“그렇다네. 자네도 알겠지만, 오거 로드는 여느 인간보다 지능이 높기로 유명하지. 그래서 오거 로드 자가락은 인간과 평화 협정을 맺길 원했다네. 인간과 적대하는 것보단 화합을 유도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 판단한 거지.”
“그, 그럴 수가…….”
하지만 드레이크 영지에서 오거들과 돈독한 우애를 나눠 왔던 아몬은 그들의 기질이 극히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을까요?”
“음…… 나도, 제국의 상층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 그래서 내가 직접 이곳까지 와 있는 거고. 하지만 내가 직접 자가락을 만나 봤는데, 우리 여섯째 형님보다 문명적이더군.”
“여섯째 형님이요?”
“그, 자네가 봤던 우리 십삼검 중에서 가장 덩치 큰 형님.”
“아.”
그러고 보니 오거와 트롤이 배를 까며 오줌을 지릴 정도로 흉포하게 생겨 먹은 대머리에 흉터투성이 거한이 하나 있었다.
그게 여섯째였나 보다.
아무튼 오거 로드가 인간과의 화합을 원하고 있고, 랜슬로가 오거족의 사절단이라는 우가락과 함께 있는 걸 보면 제국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몬은 여전히 눈을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상급 의뢰인데…… 오거만 잡아 족치면 돈이 호박이랑 넝쿨이랑 같이 굴러 들어올 텐데…….’
그 살기를 느낀 건지 우가락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나, 우가락! 빵 좋다!”
“…….”
“돼지고기 좋다! 안경 너무 좋다! 눈 잘 보인다!”
“…….”
“인간 문화 좋다! 사랑해요, 제국!”
필사적으로 인간들을 향한 우호를 어필하는 우가락을 노려보던 아몬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저쪽 구석에 있는 논밭에서 오거와 인간이 함께 밭을 일구면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커커커커! 오거가 늙은 암소보다 힘 더 세다! 오거가 쟁기 멘다!”
“아이구! 저가락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누!”
“인간 할머니! 앉아서 쉬고 있는다! 오거가 열심히 낫질한다!”
“우리 스가락이! 쉬엄쉬엄 혀!”
소 대신 오거가 쟁기를 메고 밭을 갈고, 거대한 대낫을 한 손 낫처럼 들고 무성한 잡초를 베고 있는 상황.
오거가 벤 잡초를 놀고 있던 늙은 암소가 질겅질겅 씹는 광경을 본 아몬이 눈을 스르르 감았다.
‘다들 미쳤군.’
아카데미가 망한 걸로도 모자라 세상마저 망해 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때 잠시 안으로 들어갔다 나온 랜슬로가 사람 몸통만한 뭔가를 내밀었다.
“자아, 자네도 하나 먹게.”
“……이건 또 뭡니까.”
“오거 족장, 자가락이 만든 빵이라네. 최근에 직접 쌓아 올린 화덕으로 빵을 굽는 것에 재미가 들렸다고 하더군. 얼마나 잔뜩 만들었는지, 최근 기사단에선 이것만 먹고 있단 말이지.”
“…….”
무심코 빵을 집어든 아몬이 그것을 한입 베어 물었다.
너무나도 보드랍고 맛있는 빵이었다.
* * *
보그 산맥의 의뢰, 오거 군집의 토벌!
‘……돈주머니가 날개를 달고 스스로 하늘로 날아갔군.’
첫 번째 행선지가 수포로 돌아간 상황에 아몬은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곧바로 다음 행선지로 향할 작정이었다.
‘이곳 보그 산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조르가 영지.’
그리고 그곳의 의뢰는 ‘영지 뒷산에 있는 언데드 마굴’을 토벌하는 것.
‘언데드? 지성도 없는 놈들이지. 그놈들이 인간과 화합을 할 리는 없으니 해골들을 신나게 까부수고 돈을 받아먹으면 되겠지.’
때문에 아몬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 아미! 라스티아넬 님! 둘 다 충분히 쉬었겠죠!”
둘은 죽을상을 하고 있었지만, 아몬은 불끈 쥔 주먹을 흔들며 말했다.
“그럼 힘내서 다시 가 봅시다!”
“…….”
“대답.”
“와아아아…….”
둘은 울상을 한 채 아몬의 뒤를 따랐다.
* * *
아나르엘은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보그 산맥의 오거 군집 의뢰가 극비리에 취소됐다니…….’
그래, 그럴 수 있다 치자.
몬스터들 중에서는 간혹 똑똑한 개체가 나오고, 그런 개체가 무리를 통솔하면 그 부족의 수준이 현격히 올라가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오거 로드쯤 되는 개체라면, 개중에서도 지능이 특히 높은 개체라면 부족을 문명화 시키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그럼 인간과 화합을 시도하려고 할 수도 있고.’
하지만 문제는…….
“조르가 영지의 언데드 마굴 토벌 의뢰…… 이게 가장 심각하단 말이지.”
이 사실을 직접 워프 마법으로 아몬에게 향해 알려 주고 싶었지만, 바로 옆에 있는 라스티아넬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마법, 마나 그 자체라 일컬어지는 드래곤 때문에 아몬 근처의 워프 지점이 계속 일그러지고 있었다.
‘아몬 선생님…… 무사하셔야 해요.’
중얼거린 아나르엘이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 무늬가 일렁거리더니 아몬의 얼굴로 보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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