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85)
아카데미가 망했다 85화
조르가 영지!
인구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사치품인 비단이 특산물인 곳이라 경제 규모 자체는 어지간한 도시에 버금가는 수준인 곳이었다.
다만 양잠을 위한 누에나방의 주식인 ‘뽕잎’ 때문에 산과 들을 끼고 있는 한적한 지역이었다.
즉 거리가 거리인지라 어느 도시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지역.
‘그렇기에 주로 자급자족을 하는 곳이다. 조르가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인 에이시드 조르가 백작은 아예 수도로 올라가 살고, 이곳 영지는 그냥 돈줄로만 생각한다지.’
언덕 위에서 조르가 영지를 굽어보던 아몬이 시선을 돌렸다.
한눈에 들어오는 조르가 영지 뒤편으로 보이는 산.
‘그리고 저곳에 언데드 마굴이 있다.’
아몬이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보그 산맥 건은 어쩔 수 없지만, 이번 건은 실패하래야 실패할 수 없는 의뢰지. 내 돈주머니야, 조금만 기다려라. 곧 배를 두둑이 채워 주도록 하마.’
아몬이 뒤에 쓰러져 있는 아몬과 라스티엘을 보며 외쳤다.
“자, 가자! 아미! 라스티아넬 님!”
“…….”
“거참, 얼마나 뛰었다고 또 둘 다 쓰러져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어?”
아미가 힘겹게 고개를 들며 중얼거렸다.
“오빠가 이상한 거란 생각은 안 해……?”
라스티아넬은 고개를 들 힘도 없는지 꿈틀거리며 중얼거렸다.
“헤이스트 마법까지 썼는데 나보다 빠르다니…… 인간 무서워…….”
“아냐, 라스티아넬. 저 인간이 이상한 거야…….”
“아미, 당신도 정상은 아니에요.”
“난 또 왜?”
하여간 쓰러진 채 징징거리는 둘에게서 시선을 거둔 아몬이 조르가 영지의 뒷산을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건 정말 쉽겠군. 해골들을 깨부수고 돈만 받으면 돼! 그러니 모두들 조금만 힘내자!”
“…….”
“대답.”
“와아아아…….”
아미와 라스티아넬이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키자 아몬이 위풍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우선 조르가 영지의 영지민들에게 뒷산의 언데드들을 깨부수러 왔다고, 당신들은 곧 찾아올 평화와 안녕을 기뻐하면 될 따름이라 알리기 위해서였다.
‘음, 마침 저기에 영지민이 있군.’
다가간 영지민은 언데드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지 초췌한 기색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응? 당신은 누구시오?”
누에나방의 식사인 뽕잎을 옮기던 영지민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자 아몬이 안심하라는 듯 손을 뻗으며 말했다.
“안심하십시오! 저희가 여러분들을 도우러 왔습니다!”
“……음? 도우러 왔다니?”
미심쩍은 얼굴로 이쪽을 흘겨보는 영지민의 눈빛은 곱지 않았다.
‘뭐야? 눈빛이 왜 저래?’
영지 뒷산을 점거하고 있는 언데드 때문에 겪은 수모를 생각하면 쌍수를 받들고 환영해도 모자랄 텐데, 영지민의 시선은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왔나?’ 싶은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 워낙 궂은 고초를 겪어 인간 불신이 뼛속 깊이 스며든 것뿐이겠지.’
아몬이 자신은 무해하며 안전한 생물이라 주장하듯 양손을 앞으로 뻗으면서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해를 끼치러 온 것은 아닙니다. 저는 아모니스 아카데미의 교사이면서 드레이크 남작가의 차남, 아몬 드레이크입니다. 신분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흐음. 귀족님이셨군.”
눈을 번쩍 빛낸 영지민이 입을 열었다.
“아아, 혹시 뒷산의 언데드 때문에 온 겁니까?”
“그렇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영지민이 걸음을 옮겼다.
“따라오십시오. 촌장께 안내드릴 테니.”
빠른 이야기 진행에 아몬은 서둘러 영지민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잠시 후.
드레이크 영지를 다스리는 ‘카임 남작의 저택’보다 호화스러운 ‘촌장의 저택’에 도착한 아몬이 혀를 내두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양잠으로 돈을 쓸어 담는다더니 우리 집보다 훨씬 으리으리하네.’
내준 차를 홀짝거리던 아몬은 촌장이 나타나자 고개를 들었다.
투실투실하게 살찐 노인이었다.
“허허허, 뒷산의 언데드를 제거하러 왔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허허허허! 참으로 든든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보다 영지민들의 안전을 위해 한시바삐 출발하고 싶으니까, 정확한 위치와 상황을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서두르는 아몬의 말에 잠시 흠칫한 촌장이 껄껄 웃더니 말했다.
“허허허! 시간도 늦었는데 오늘 하루쯤은 푹 쉬시어 여독을 풀고 출발하시는 게 어떨는지요?”
그 말대로, 아무르에서 보그 산맥을 거쳐 이곳까지 오는 와중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때문에 촌장이 제안한 것일 테지만, 아몬은 고개를 저었다.
당장 돈주머니를 챙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하루를 쉴 순 없었다.
“아닙니다! 흉악한 언데드가 영지의 뒷산을 점거하고 있는데 제국의 귀족으로서 좌시할 수 없습니다.”
“으음…….”
침음을 흘린 촌장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때 아몬은 차를 원샷하느라 고개를 치들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찻잔을 내려놨을 때 촌장은 다시금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허허허, 그럼 출발하시기 전에 조금이라도 쉬었다 가시지요.”
“아닙니다. 얼른 일을 해결하고 싶군요.”
말했듯, 당장 돈주머니를 챙기고 싶었다.
몇 번이고 이어진 아몬의 사양에 촌장이 싸늘하게 웃었다.
“흐음, 정 뜻이 그러시다면야. 알겠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데드의 마굴은 뒷산의 진입로를 바로 따라가면 찾을 수 있을 거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아몬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고, 홀로 남은 촌장이 고개를 돌렸다.
“후후후, 카단!”
“예, 촌장 어르신!”
“준비는 확실히 해 뒀겠지?”
“그렇습니다! 걱정 푹 놓으십시오, 촌장님.”
서로를 바라보던 촌장과 카단이 음산한 웃음을 터뜨렸다.
“크크크! 어리석은 귀족 놈!”
“케케케케! 놈의 꼴이 참 기대됩니다요!”
* * *
산길을 오르던 아몬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유, 아까부터 배가 살살 콕콕거리네.”
“오빠도 그래? 나도 그런데.”
아까 아미도 모처럼 귀한 차라며 신나게 홀짝거리곤 했었다.
“그래? 설마 차가 상했나?”
“흠, 하기야 영지민들이 매일 차를 먹고 살진 않을 테니까 모처럼 귀한 손님이라고 차를 내온 거겠지. 그러니 보관하는 과정에서 상했을지도.”
잠자코 대화를 듣던 라스티아넬이 생각했다.
‘독이 들어 있는 것 같던데.’
하지만 드래곤에게는 독이나 물이나 전혀 다를 게 없다.
먹어도 이게 독인지, 물인지도 모를 수준이다.
‘뭐, 두 사람이 저렇게 멀쩡한 걸 보니 독은 아닌가 보다.’
라스티아넬은 편하게 결론지었다.
그리고 한참 산을 오르던 아몬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근데 좀 이상하네.”
“뭐가?”
“언데드 마굴로 올라가는 길이잖아? 근데 길이 이렇게 잘 닦여 있다니.”
“듣고 보니 그러네.”
게다가 마차나 수레바퀴가 굴러 간 것 같은 흔적까지 남아 있었다.
묵묵히 바퀴 자국을 훑어보던 아몬이 탄성을 질렀다.
“그렇군! 언데드 마굴이잖아? 그럼 놈을 통솔하는 놈들이 있을 거야.”
“네크로맨서나 그런 거?”
“그렇겠지. 그런 못된 놈이 영지민들의 고혈을 쪽쪽 빨아먹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이렇게 수레로 술과 음식을 실어 나르도록 한 게 아닐까?”
“오, 그렇겠다.”
아미는 오빠의 현명함에 감탄했고, 아몬은 스스로의 영민함을 자찬했다.
‘후, 역시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는 놈이군. 하루라도 더 늑장을 부렸다가는 영지민들이 내게 주는 보상이 줄어들 뻔했잖아?’
자신의 성실함에 감사한 아몬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자, 얼른 해치우고 가자.”
아몬은 앞장서 걸음을 재촉했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커먼 암굴을 발견할 수 있었고, 안쪽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던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정상적으로 퀴퀴한 냄새가 감도는 것을 보니 이곳이 확실했다.
“그럼 들어간다. 내가 앞장설게.”
“응, 얼른 들어가.”
“……어, 그래.”
자신이 앞장서겠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기특한 동생을 흘겨보던 아몬이 암굴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리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는 와중.
달칵-!
달각달각달가닥-
동굴 안에서 흐릿하게 들려오는 뼈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
그것을 들은 아몬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스켈레톤 소리. 확실히 왔군.’
허리춤에 있는 아다만티움 검을 뽑으려던 아몬이 고개를 저었다.
고작 스켈레톤 따위에게 쓰기엔 너무 무거운 검이다.
말 그대로 무겁다는 뜻이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는 없지.’
주먹으로도 스켈레톤의 골통을 깨부수는 건 간단할 터!
아몬이 불끈 쥔 주먹을 휘두르며 몸을 날렸다.
‘자, 그럼 신나게 돈을 벌어 볼……!’
벼락처럼 몸을 날리던 아몬은 제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눈앞을 채우고 있는 진귀한 광경 때문이었다.
‘……뭔데, 이거?’
아몬이 주변을 둘러봤다.
암굴 안의 널찍한 동공 안을 채우고 있는 수십에 달하는 스켈레톤들이 베틀 앞에 앉아 정신없이 손을, 아니 손뼈를 움직이고 있었다.
달가닥 달각 달각-!
스켈레톤이 달각거리는 소리, 베틀이 달각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아몬이 우두커니 굳은 채 안을 훑어보는 와중이었다.
“……누, 누구십니까?”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아몬이 홱 고개를 돌렸다.
초췌한 인상의 청년이 구석에 웅크려 앉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그러는 당신은 누구세요?”
“초, 촌장이, 아니, 촌장님이 보내셨습니까?”
“……예? 그렇긴 합니다만.”
그 말에 청년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웅크렸다.
“아아악! 죄송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
“제, 제가 모자란 탓입니다! 스켈레톤을 더 열심히 움직일 테니……!”
아몬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뭐지?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부들부들 떠는 청년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몬이 입을 열었다.
“네크로맨서세요?”
“예? 그, 그렇습니다! 더 열심히 비단을 짤 테니 제발 채찍질만은…….”
아예 발작을 하는 청년을 바라보던 아몬이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여기까지 오는 산길은 잘 닦여 있고, 수레바퀴 자국도 있고, 스켈레톤은 정신없이 비단을 짜고 있고, 스켈레톤을 통솔하는 네크로맨서는 겁에 질려서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상황이라.’
어지럽기 짝이 없는 상황.
생각에 잠겨 있던 아몬은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저기요.”
“예, 옙!”
“혹시 영지민들한테 붙잡혀서 혹사당하고 있는 겁니까……?”
그 말에 청년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촌장님께 참 많은 은혜를 입었고, 그분께서 절 얼마나 아끼시는데요! 전 촌장님께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
“저 네크로맨서 데시키! 촌장님께 충성을 다하고 있다는 걸 몇 번이나 거듭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촌장에게 세뇌당한 네크로맨서 데시키!
아몬이 눈을 스르르 감았다.
‘미쳤군. 세상이 진짜 미쳐 돌아가는구나.’
오거와 평화롭게 화합하는 마을!
네크로맨서를 착취해 스켈레톤으로 비단을 짜게 만드는 영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아몬이 문득 밖을 바라봤다.
“아미야.”
“응?”
“근데 밖이 왜 이렇게 시끄럽냐?”
“그러게? 잠깐 보고 올게.”
휙 밖으로 달려 나간 아미가 잠시 후 돌아왔다.
“밖에 난리 났는데?”
“무, 무슨 난리?”
“웬 기사들이랑 병사들이 잔뜩 와서 영지민들을 잡아가고 있는데?”
“…….”
“대충 들어 보니까, 뭐 여기 온 귀족들이 하룻밤 머물면 슥삭 하고, 독도 먹이고 막 그랬다는데? 여기 동굴 입구에도 칼 든 사람 몇 명 있더라고. 때려서 기절시키고 왔어.”
“뭐…….”
다리에 힘이 풀린 아몬이 털썩 주저앉았다.
“이게 대체 무슨…….”
영지민들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영주가 왜 수도에서 안 내려오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다 기회를 봐서 오늘처럼 한 방에 처리한 것이리라.
그리고 아미의 말을 엿들은 네크로맨서 데시키가 벌떡 일어나며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드, 드디어 해방이다!”
“…….”
“이, 이제 흑마법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농사나 짓고 살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신이시여!”
데시키가 기쁨에 겨워 펄펄 뛰고, 아몬은 절망하는 와중,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던 라스티아넬이 오들오들 떨며 중얼거렸다.
“인간 세상, 무서워…….”
“…….”
아몬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점점 인간 세상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