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88)
아카데미가 망했다 88화
시골 마을 출신인 보리스가 좋아하는 음식은 고기다.
집에서 농사를 짓느라 감자와 보리만 지긋지긋하게 먹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즉 싫어하는 것까진 아니지만 꺼려지는 음식은 단연 보리와 감자였다.
그런 보리스가 목멘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제발 보리죽이라도 곁들여 먹게 해 주세요.”
“안 돼. 보리죽 넣을 배에 우리 영지의 감자를 하나라도 더 넣으려무나.”
“어흐흑!”
단호하기 짝이 없는 아몬의 말에 울상을 짓는 보리스의 앞에는 감자로 만든 온갖 요리가 놓여 있었다.
감자 샐러드, 으깬 감자, 찐 감자, 감자전, 한입 크기로 자른 생감자까지!
브레슬이 봤다면 군침이 맺힌 혀를 휘두를 만큼 먹음직스러운 메뉴였겠지만, 최근 일주일 내내 감자만 먹어 온 보리스에겐 지옥의 수라상과 다를 게 없는 광경이었다.
고기를 좋아하는 한창 자랄 나이의 보리스로선 참기 힘든 고행!
‘오죽하면 클로에랑 레이몬드가 나한테 무슨 감자 비린내가 이렇게 나느냐고 묻겠냐고…….’
그 과정에서 클로에가 눈을 부라리며 ‘이 냄새는, 아몬 선생님네 영지의 감자 냄새 같은데’라며 캐물었다.
하지만 아몬과 ‘네가 감자를 먹는 건 다른 아이들에겐 비밀이다. 알겠지?’라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기에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결국 밖으로는 클로에의 의심을 받고, 안으로는 감자를 배 터지게 먹어 더부룩한 배를 끌어안고 사는 보리스였다.
‘분명 학교장님도, 다른 사람들도 선생님네 감자가 특별하다고 말했지만…… 정작 먹고 있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는걸.’
처음에야 맛도 있으니 감사하며 먹었지만, 집요할 정도로 감자를 먹이는 아몬의 행태에 괜한 의심까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편, 한입 크기로 자른 생감자를 입 안 가득 우물거리고 있는 보리스를 바라보는 아몬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녀석, 먹기 싫네 뭐네 불평해도 결국엔 잘 먹는구만.’
감자를 먹는 보리스를 턱을 괸 채 흐뭇하니 바라보는 아몬.
그 시선에 보리스가 두려움을 느끼는 와중, 아몬이 문득 입을 열었다.
“보리스, 벌써 우리 감자를 먹은 게 일주일쯤 됐나?”
“아, 아직 그렇게밖에 안 됐어요?”
“그렇게나 된 거지. 하여간 일주일 사이에 우리 감자를 한 포대나 먹어 치웠는데, 뭐 느껴지는 거 없어?”
“글쎄요…….”
고개를 갸웃거린 보리스가 배를 문질렀다.
“배가 터질 거 같아요.”
“흠, 그래? 그럼 슬슬 시험 삼아 던전에 가 볼까?”
슬슬 때가 무르익었다는 생각에 던진 말이었지만, 던전에서 연신 마법을 실패했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보리스의 얼굴이 슬쩍 어두워졌다.
“조, 조금만 더 있다가…….”
“그럼 남은 감자 전부 먹고 가자. 대신 지금보다 더 빨리 먹어야 한다?”
아몬의 말을 듣자마자 핼쑥해진 보리스가 허겁지겁 말했다.
“당장 가요.”
“생각을 바꿔서 다행이구나!”
급하게 정해진 던전행이었지만, 마리온 역시 동행했다.
마법사 길드의 환영 던전으로 향하며, 마리온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으음, 이보게 아몬.”
“예, 선배님.”
“요새 수업 끝나고 보리스를 데리고 이것저것 하는 것 같던데, 슬슬 뭘 하고 있는지 말해 줄 수 없겠나? 조금만 더 있다가 말해 준다고 말한 게 벌써 일주일째라네.”
제자를 걱정하는 마리온의 말에 아몬이 부드럽게 웃었다.
“후후후, 직접 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아몬의 말에 마리온이 침음을 흘렸다.
저러니 괜히 더 걱정됐다.
‘저렇게 자신만만하다 말아먹은 게 한두 번이라야 말이지.’
그러나 저리 확신하는 모습을 보면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터.
잠시 후, 아몬은 신기하다는 듯 던전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막상 아몬도 이곳에 와 본 건 처음이었다.
‘던전 도감에서 본 가장 흔한 형태인 동굴형 던전이군.’
허름한 동굴 모습을 한 던전.
하지만 인위적이라 만든 곳이라 그런지, 진짜배기 허름한 곳을 알고 있는 아몬의 눈에는 영 마뜩치 않았다.
‘쯧쯧쯧, 저 벽 좀 보게. 일부러 문질러서 낡은 것처럼 보이게 연출했군! 우리 집 벽에 비하면 새것과 마찬가지인데 말이야!’
갑자기 아려 오는 가슴을 움켜쥔 채 끙끙대는 와중 마리온이 말했다.
“아몬, 도착은 했는데 이제 뭘 어쩌려고?”
“후후후, 지켜보세요.”
“아까부터 지켜봐라, 지켜봐라 말만 하는데 생각해 둔 게 있긴 한 건가?”
마리온의 예리한 지적에 아몬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지켜보세요.”
“아니…… 에휴, 됐네. 말을 말지.”
고개를 흔든 마리온이 보리스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아직도 영 자신감이 없는지 주눅 든 기색이었다.
“보리스, 마음 편하게 먹고 다시 해 보자꾸나.”
“네, 넵.”
“그럼 가슴 속에 마나로 이뤄진 원이 회전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마법을 사용해 보렴. 선생님이 뒤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보리스를 본 마리온이 입을 열었다.
“나타나라. 환상이여.”
던전의 시동어가 떨어지자 환영으로 이뤄진 몬스터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낡은 칼을 든 채 히죽히죽 웃고 있는 못되게 생긴 고블린들!
놈들의 흉측한 모습에 보리스가 뒷걸음질을 쳤다.
“으, 으으으…….”
“보리스! 선생님이 뒤에 있다! 실패해도 괜찮으니 마법을 써 보렴!”
“네, 네!”
눈을 질끈 감은 보리스가 손을 뻗었다.
“매, 매직 애로우!”
그 순간이었다.
꽈아아앙-!
굉음과 함께 터져 나가는 환영과 던전의 벽.
그 반동으로 인해 보리스가 뒤로 휙 밀려나고, 그대로 마리온의 복부에 뒤통수를 처박았다.
“커허어억!”
그 바람에 마리온은 술로 연약해진 배를 붙잡은 채 주저앉아 토악질을 하고, 그런 마리온의 등판에 누운 것처럼 뻗어 있던 보리스가 눈을 끔뻑거렸다.
“어, 어라?”
매직 애로우는 1서클의 기본 공격 마법이다.
아니, 정확히는 ‘공격’ 마법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위력의 마법.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위력이란 말인가?
매직 애로우에 직격당한 벽이 박살 나 우르르 무너지고 있는 충격적인 광경에 보리스가 홀린 듯 입을 열었다.
“서, 선생님…….”
보리스의 떨리는 목소리에 토악질을 하던 마리온이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래! 보리스! 선생님은 널 믿고 있었단다!”
“선생님!”
연이은 부름에 마리온이 보리스를 얼싸안으려 한 순간.
휙-!
부리나케 달려가 아몬의 품에 쏙 안기는 보리스!
그 광경에 마리온이 눈을 부릅떴다.
“보, 보리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마법을 쓸 수 있게 됐어요!”
아몬을 붙잡고 방방 뛰는 보리스를 본 마리온의 얼굴에 절망이 떠올랐다.
그토록 열심히 가르친 보리스가 애먼 놈을 붙잡고 기뻐하다니!
죽 쒀서 개를 대접한 충격적인 현실에 마리온이 공허한 얼굴로 아몬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흠칫-!
아몬의 얼굴을 본 마리온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보리스의 감사를 독차지하게 된 아몬은 우월감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저 새끼……!’
‘후후후, 선배님. 제가 지켜보라고 했지요? 거기 주저앉아 보리스가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나 하시죠!’
‘이이익!’
아몬이 승리감에 젖은 채 웃음을 터뜨리려는 찰나였다.
덜컹-!
던전 안으로 들어온 길드의 관리자가 고함을 질렀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여긴 2서클 마법만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라고 누누이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런데 던전을 이렇게 박살을 내놓으시면 어떡합니까! 수리비 내놓으십시오!”
아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 *
아몬은 홀쭉해진 주머니를 멍하니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무슨 허름해 빠진 동굴을 수리하는데 돈이 그렇게 많이 들지?’
주머니를 뒤집어 보고, 이리저리 돌려 봐도 텅 빈 주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사기당한 거 아닐까?’
당장 마법사 길드로 달려가 내 돈 내놓으라고 일갈하고 싶었지만, 부순 것은 사실이니 어쩔 수 없는 일.
“휴…… 재수 없는 놈은 앞으로 넘어져도 엉덩이가 쪼개진다더니.”
탄식을 내뱉은 아몬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넋두리에도 마리온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튼 간에, 보리스의 상태를 설명하라고요?”
“그래.”
“쩝. 우리 영지의 감자를 좀 먹였습니다.”
“감자…….”
“예, 일주일 동안 우리 감자를 든든하게 먹였습니다. 걔 몸통만 한 포대 하나를 통째로 먹였죠.”
아몬네 영지의 감자.
그 말에 마리온은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리스는 마나에 대한 적성이 낮아 보였다.
‘하지만 라인벨트 어르신의 말에 의하면, 아몬은 육체가 마나 그 자체에 적응한 것 같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어릴 때부터 감자를 먹고 자라서…….’
순간 마리온은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났다.
감자.
그딴 걸 처먹는 걸로 마법에 대한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깨부수고, 마나 적성이 낮은 보리스가 단숨에 3서클 위력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고?
‘하지만 보리스의 몸을 살펴보니 여전히 서클은 생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 아몬과 비슷한 상태가 되고 있다는 뜻인데…….’
머리를 북북 긁은 마리온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젠장, 도저히 알 수가 없군.”
“왜 욕을 하십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결과만 좋으면 되죠.”
마리온 역시 그리 생각하곤 있지만, 마음 한편으론 자신의 숱한 노력과 가르침이 그까짓 감자 따위에게 밀렸다는 사실이 영 께름칙했다.
“휴…… 그래, 그렇다 치자고. 아무튼 아몬.”
“예?”
“내 당부하겠는데, 그 감자는 되도록 외부인이 알지 못하도록 하게나.”
아몬이 생각에 잠겼다.
어릴 때부터 아모니스 아카데미에 임용되기 전까지, 영지를 찾아왔던 외부인이 몇 명이나 되더라?
‘열 명도 안 되는 것 같은데.’
하물며 오지 중의 오지인 드레이크 영지까지 찾아와 감자 따위에 관심을 기울일 미친놈이 세상천지 몇 명이나 있을까.
“음,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네요.”
“그래. 아무나 감자를 먹고 자네처럼 괴물이 되면…….”
“괴물이라뇨? 듣는 사람이 앞에 있는데, 말씀이 심하시네.”
“커흠! 자네처럼 되면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워질지 짐작이 가질 않는구먼. 모르긴 몰라도, 드레이크 영지의 감자를 둘러싸고 한바탕 난리가 나겠지. 아마도 무수한 피가 흐를 걸세.”
아몬이 상상해 봤다.
‘크하하하! 약탈이다! 감자를 캐라!’
‘감자를 몽땅 포대에 담아라!’
상상 속의 감자 도적단은 단숨에 영지민들에게 제압당해 드레이크 산맥의 깊숙한 곳에 버려졌다.
아무튼 감자를 탐내는 도적들은 몬스터로 족하니, 아몬도 괜한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는 않았다.
“명심하죠. 하지만 애초에 보리스니까 먹였던 거지 다른 잡것들한테 먹일 생각은 없어요. 얼마나 애지중지 기른 감자들인데.”
슬로스조차 감히 감자를 먹으려면 아몬과 혼인할 각오를 해야 할 정도였다!
그것도 피드 후작가의 경제권을 넘겨주는 것을 전제로!
“뭐, 그러니 괜한 걱정 않으셔도 될 겁니다.”
“알겠네. 노파심에 하는 말이니,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진 말게나.”
“기분 나쁠 건 또 뭡니까? 맞는 말인데요. 뭘.”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군. 그런데…….”
마리온이 슬그머니 말했다.
“나도 외부인은 아니니 감자 좀 주면 안 되나? 7서클이 눈앞인데.”
“안됩니다.”
“……….”
학생을 제외한 이들에겐 가차 없는 아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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