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89)
아카데미가 망했다 89화
아몬은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
불가해(不可解).
문제는 그 뒤에 ‘감자’라는 단어가 붙는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감자! 불가해의 감자!
‘이상하군. 어감도, 실제로도.’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아몬네 영지의 감자는 인근 도시에서 사 온 씨감자를 심은 것에 불과했다.
그런 감자가 어째서 이토록 이해할 수 없는 효과를 보이는 걸까?
결과만 좋으면 된다지만, 이유가 궁금하기는 했다.
‘뭐, 나중에 영지로 돌아가면 한번 자세히 알아보자. 그보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슬며시 고개를 떨어트린 아몬이 자신의 발밑을 바라봤다.
그곳엔 사랑스러운 여동생, 아미가 땅에 머리를 박은 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아미야.”
“크흑! 으, 윽응.”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무러, 봐앗!”
싸늘한 얼굴로 아미를 바라보던 아몬이 만년필로 턱을 긁으며 말했다.
“검술 수업 평가 엉망.”
“…….”
“마법 수업 평가 엉망.”
“…….”
“수학 수업 평가 엉망, 내 과목인 역사학 수업 평가? 당연히 엉망.”
턱을 비스듬하게 기울인 아몬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미, 대체 왜 아카데미에 입학한 걸까?”
“오으빠, 거기엔, 오해가…….”
“음, 그래. 오해. 어디 한번 들어나 볼까?”
슬금슬금 일어나 무릎을 꿇은 아미가 새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일부러 그런 거야.”
“일부러.”
“극적인 효과를 노린 거지. 오빠라면 처음 입학하자마자 꾸준히 잘하는 녀석, 처음엔 잘 못하다가 차츰차츰 잘하는 녀석. 오빠라면 어느 녀석을 챙겨 주고 싶어?”
“호오…….”
아몬이 생각에 잠겼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 논리였다.
‘따지고 보면, 나도 레이몬드보단 클로에랑 보리스가 더 눈에 밟히긴 해. 뭐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고.’
물론 말이 그렇단 거지, 실제로 레이몬드를 다른 아이들보다 덜 챙기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이미 소드 마스터에 올라 있는 레이몬드를 자신이 특별히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굳이 비유하면, 클로에랑 보리스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 되는 거고 레이몬드는 물에 안 빠질 걸 아니까 마음이 놓이는 거겠지.’
물론 자신을 본떠 만든 인형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걸 보면 걱정스럽긴 하지만, 개인의 취향은 범죄만 아니라면 존중받아야 하는 법이다.
하여간 아미의 잔머리에 아몬이 한숨을 쉬었다.
“뭐, 그래. 네 뜻은 잘 알겠어.”
“그치? 머리 잘 썼지?”
“하지만 벌써 입학한 지 일주일째 된 참이야. 그러니 슬슬 제대로 해. 안 그래도 슬슬 다른 선생님들한테서 네 이야기가 나오더라. 배우는 게 느려서 걱정이라고.”
“저, 정말?”
“그러엄.”
거짓말이다.
마리온은 아부를 잘 떠는 아미를 귀엽다고 좋아하며, 슬로스는 늘 그렇듯 게으름만 피우고 있고, 카이는 가르칠 보람이 있을 것 같다면서 뒤틀린 열정을 뽐내고 있었다.
‘다 잘되자고 하는 선의의 거짓말이지.’
다행히 효과가 있었는지, 아미는 주먹을 꼭 쥐며 다짐했다.
“알았어. 그럼 이제부턴 제대로 할게!”
“그래, 열심히 하자. 잘만 배우면, 어디 가서 먹고사는 건 일도 아닐 거야.”
다름 아닌 자신의 동생이다.
애초에 아미도 불가해의 감자를 배터지게 먹고 자랐으니, 검술이든 마법이든 뭐 하나만 제대로 배우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응! 열심히 배울게.”
“그래, 그래.”
잠시 후, 기숙사로 돌아가는 아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X됐다.’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 성적을 나쁘게 받은 게 아니라 진짜 실력이었다!
아몬이 워낙 흉흉한 기세로 윽박지르기에 대충 둘러댄 것이다!
‘검술은 검이 너무 가벼워서 헛돌고, 마법 공식은 안 외워지고, 수학이랑 역사학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하나도 안 되는데 어떡하라고.’
울상이 된 채 기숙사로 돌아온 아미가 다른 학생들을 훑어봤다.
각자 뭘 열심히 하고 있었다.
“저기, 보리스. 마법 공식 외우고 있니?”
“네, 아미 누나. 왜 그러세요?”
“그러니까…….”
아미는 자존심을 굽히고 마법 공식을 외우는 요령을 물어봤다.
“아, 외우는 요령이요?”
활짝 웃은 보리스가 뭔가를 내밀었다.
“……뭐야, 이거?”
“안 좋은 기억은 오래가는 마법 스크롤이랑, 잠 못 이루는 탕약이요.”
“참 직관적인 이름이구나?”
“네. 이것만 있으면 마법 공식 외우는 건 일도 아니에요!”
보리스는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채 활짝 웃으며 스크롤과 탕약을 내밀었다.
“전 많이 있으니까 누나한테 좀 나눠 드릴게요.”
“아, 아냐. 괜찮아.”
“아뇨. 제발 받아 주세요. 제발…….”
선의가 아닌 악의로 점철된 물귀신의 모습에 아미는 보리스에게서 허겁지겁 떨어졌다.
‘다, 다음엔 검술을…….’
아미가 클로에와 레이몬드를 번갈아 바라봤다.
레이몬드는 항상 그렇듯, 자신과 똑 닮은 인형의 해진 부분을 진지한 얼굴로 꿰매고 있었다.
‘쟨 왜 만날 저러고 있어……?’
결국 아미는 클로에를 향해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저기, 클로에.”
읽던 책을 덮은 클로에가 빙그레 웃었다.
“네, 언니. 무슨 일이세요?”
“너도 검술 잘하잖아? 그래서 묻고 싶은 게 좀 있는데…….”
사정을 들은 클로에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검이 너무 가벼워서 헛도는 것 같다고요?”
“응, 응.”
고개를 갸웃거린 클로에가 말했다.
“수련할 때 쓰는 목검은 안에 철심이 들어서 제 손에는 약간 묵직한데요?”
“그, 그게 묵직하다고?”
클로에가 레이몬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치? 가볍지는 않지?”
레이몬드가 심각한 얼굴로 인형을 꿰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진검보단 가벼워도…… 헛돈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
“그치? 봐요, 언니. 레이몬드도 그렇대요.”
“그, 그래……?”
아미가 머리를 긁적거리는 와중, 클로에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언니, 그런데 말이죠.”
“응?”
“슬로스 선생님한테 들었는데, 목검이 가벼워서 헛돈다는 말. 그거 아몬 선생님이 했던 말이에요.”
“뭣!?”
아미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도, 동생 아니라니까!”
“누가 뭐래요?”
“됐어, 됐어. 그 이야기는 그만. 아무튼 알겠어.”
손사래를 친 아미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럼 역사학, 수학은 어떻게 외우는 게 빨라? 그것도 요령이 있나?”
그 물음에 보리스라는 이름의 물귀신이 스크롤과 탕약을 들고 슬금슬금 다가오고, 화들짝 놀란 아미가 거리를 벌리자 클로에가 보리스를 꾸짖었다.
“보리스! 안 돼!”
“힝.”
“아무튼 역사학, 수학을 외우는 요령은…… 사실 저도 몰라요.”
“……뭐?”
클로에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애초에 저도 검술 빼면 성적이 좀…….”
레이몬드가 잘 꿰맨 인형을 허리춤에 낀 채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미 누나, 전 역사학 점수랑 수학 점수 합쳐서 30점도 안 돼요!”
“…….”
황당한 얼굴로 레이몬드를 바라보던 아미가 클로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클로에 너는 역사학 점수는 좋지 않아?”
“그건 아몬 선생님 수업이니까요.”
“어? 그게 무슨…….”
탁, 아미의 어깨를 붙잡은 보리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나, 더 이상 안 묻는 게 좋아요.”
“왜, 왜……?”
“그런 게 있어요. 모르시는 게 좋을 거예요.”
“어, 으, 응. 알겠어.”
“그보다 이게 또 수학이랑 역사학 암기하는데 참 좋은데 말이죠.”
“좀 떨어져! 이 물귀신아!”
“흑흑! 너무해요.”
결국 그럴싸한 해결법을 찾지 못한 아미가 스르르 고개를 돌렸다.
눈을 감은 채 의자에 앉아 있는 라스티아넬.
‘아, 맞다. 쟤가 있었지.’
워낙 석상처럼 가만히 있는지라 미처 존재를 깨닫지 못했다.
“저기, 사랑하는 내 동기야.”
“네? 무슨 일이세요, 아미 씨.”
“그러고 보니 너는 다 잘하잖아? 요령이라도 있어?”
라스티아넬이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 채 말했다.
“요령 같은 건 없어요. 그냥 하는 거죠.”
“어, 음, 그렇구나.”
스르르 라스티아넬에게서 떨어진 아미는 생각했다.
‘얘 재수 없어.’
라스티아넬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애초에 저는 드래곤이니까요.”
아미는 카셀라그는 안다.
하지만 라스티아넬이 카셀라그의 추천으로 입학한 드래곤이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한다.
‘아, 얘 제정신이 아니구나.’
깊어지는 오해!
‘아무튼 어떡하지? 마땅한 방법이 없을까?’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혀를 쯧 차더니 눈을 반짝였다.
‘하는 수 없지. 그 방법밖에 없어.’
* * *
오전, 검술 수업.
아미는 침낭에 싸여 누워 있는 슬로스의 머리맡에 선 채 그늘이 되어 주고 있었다.
게다가 행여 더울까 싶어 부채질까지 해 주고 있었다.
“선생님, 바람 세기는 어떠세요? 너무 약하진 않나요?”
“아냐, 딱 좋아. 고마워.”
“헤헤헤, 별말씀을요. 아앗! 햇빛이 슬슬 세지네요.”
몸을 활짝 펼쳐 햇빛을 가려 주는 아미!
슬로스의 얼굴에 흡족함이 떠올랐다.
“아미 학생.”
“네, 존경하는 슬로스 선생님.”
“수업 태도가 너무 좋네?”
“헤헤헤! 감사합니다.”
아미가 활짝 웃었다.
‘쉽군!’
다음 시간, 마리온의 수업이 진행되는 도중에 있는 쉬는 시간.
아미는 쉬는 시간을 틈타 술을 퍼마시는 마리온의 앞에서 온갖 아부를 떨고 있었다.
“에이, 수업 중에 술 마시는 게 뭐 어떻습니까요?”
“으허허허! 그렇지?”
“그럼요! 원래 맛있게 마시는 술은 보약이라 했습니다요. 수업을 위해서 보약을 챙겨 먹는 게 뭐가 문제겠습니까요.”
“껄껄껄! 아미 학생 말이 맞아! 이거 참 마음에 드는 학생이로군!”
“감사합니다요.”
아미가 비릿하게 웃었다.
‘쉽군!’
다음 수업은 아몬의 역사학 수업.
아미는 바른 자세로 앉은 채 아몬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어, 대륙을 덮친 마족의 군세가 물러났단다. 자, 그럼 아미 학생!”
“네! 아몬 선생님!”
“대답이 참 우렁차구나! 질문, 마족의 군세를 물리친 용사의 이름은?”
아미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한층 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한번만 더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그래! 용사 그레모리가 신검 누카엘을 뽑고…….”
아몬 앞에선 최대한 수업을 열심히 듣는 척!
‘오빠도 쉽군!’
다음 수업인 카이의 수학 시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른 자세로 앉아 최대한 열심히 듣는 척! 눈을 초롱초롱하게! 대답은 크게!
* * *
일과 시간이 끝난 후, 모처럼 교사들과 간단하게 술을 한잔하는 와중.
“아, 그러고 보니 아몬.”
“예?”
“자네 동생, 성격도 좋고 수업 태도도 좋아졌더군! 자네 수업에선 좀 어떻던가?”
이미 교사들에겐 아미가 동생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동생의 칭찬을 듣는 건 낯간지럽기에 아몬은 괜히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더군요.”
모처럼 함께 외출한 슬로스도 한마디 거들었다.
“마치 든든한 한 그루 나무 같더라. 크게 될 아이 같아.”
카이도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보기 좋더군요.”
연이어 동생에 대한 칭찬이 들려오자 아몬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
‘이거 잘하면 동생 덕도 볼 수 있겠군!’
때론 진실을 모르는 게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