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9)
아카데미가 망했다 9화
절반 남은 킹오브망고는 부학교장, 브레슬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충분한 소재였다.
그 덕분일까?
‘……우물우물, 알겠습니다. 특별 수업을 진행할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학생들을 지도할 명분을 무사히 손에 넣었다.
다만 식사에 대한 부학교장의 굳건한 의지를 완전히 꺾는 건 힘들었다.
‘우물우물, 그러죠. 당분간 운영비는 식사 개선에 최소한으로 쓰는 것으로 합의 보죠.’
꾸역꾸역 ‘당분간’이라는 조건을 붙이는데,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붙은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한 성과지. 게다가 학교장에게 부학교장이 허튼 짓을 하지 못하게 견제해 달라고 부탁했으니 무슨 일 없겠…….’
아니, 부학교장에게 단단히 기가 눌려 있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있을지도?
‘……아니야, 학교장을 믿자.’
학교장이 부학교장에게 잡혀 사는 게 말이나 되냐?
이 아카데미의 우두머리로서의 권력과 권위를 되찾아라!
부학교장을 믿고 따른다고 말은 했지만, 진짜 충성을 바치는 분은 다름 아닌 학교장 당신이다!
그런 식으로 설득하니, 아나르엘은 힘차게 귀를 끄덕이며 자신을 믿어 달라고 했었다.
‘여태 배신당하긴 했지만, 이번만은 다를 거야.’
아무튼 벌써 아침이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아침은 온다.
‘이렇게 된 이상 아카데미는 내 손으로 살린다.’
계약 때문에 3년은 꼼짝 없이 잡혀 있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그러니 이곳을 최소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해.’
검술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의 시간.
아몬은 제4 강의실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슬로스는 또 수면을 방해받을까 싶어 제4 강의실에서 자고 있었다.
‘근데 기껏 장소를 옮기는 게 3 강의실에서 4 강의실로 옮긴 거라니…….’
흔들어 깨우자 안대를 슬쩍 올린 슬로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 씨, 너 사람 진짜 잘 찾는다? 또 뭔데?”
“그러는 선배님은 수업 시작 직전인데 준비도 안 하고 뭐 하시는 겁니까?”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기지개를 쭉 켠 슬로스가 몸을 일으키자 말했다.
“그런데 왜 하필 강의실에서 잡니까? 숙소 내버려 두고.”
그녀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얼굴로 말했다.
“강의실에 있으면 잠이 솔솔 오잖아?”
“……그래서 강의실에서 주무신다?”
“응.”
“……수업이나 하러 가시죠.”
“말 안 해도 간다, 가.”
투덜거리며 몸을 일으킨 그녀가 힐끔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오늘도 견학?”
“당분간은 그래야죠.”
슬로스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근데 밤에는 뭐 하고 낮에 온종일 자요? 밤에 안 자요?”
그 물음에 슬로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었다.
‘보나마나 밤에도 자겠지. 게을러빠져선, 낮에 많이 자서 잠이 안 와도 어떻게든 자려고 빈둥거리기나 할 게 뻔해.’
내심 슬로스를 흉보다 보니 연무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수업을 기다리던 보리스와 클로에는 아몬을 발견하곤 귀신이라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 아몬 선생님.”
“그래, 다들 푹 쉬었니?”
“네…….”
“다행이구나. 수업 열심히 받으렴!”
아몬이 순순히 물러나자 보리스와 클로에의 눈에 불안감이 깃들었다.
곧이어 진행되는 수업.
바닥에 깐 침낭에 드러누운, 불손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수업에 임하는 슬로스의 행태에도 아몬은 별 반응이 없었다.
‘아몬 선생님, 왜 저렇게 기분이 좋으시지?’
‘설마 특별 수업을 포기하지 않으신 걸까? 하지만 다른 선생님들한테 그렇게 혼나셔 놓고…….’
보리스와 클로에는 아몬이 언제 특별 수업을 입에 담을까 공포에 시달렸다.
“그럼 오늘 수업은 끝.”
“고생하셨습니다, 슬로스 선배님. 너희들도 수고 많았다! 어서 쉬러 가렴!”
하지만 놀랍게도 수업이 끝나자 얼른 가라는 듯 돌려보내는 게 아닌가!
‘특별 수업은 포기했나?’
‘포기했나 보다.’
덕분에 보리스와 클로에는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찾아온 마법 수업 시간.
‘아몬 선생님이 없어!’
‘포기하셨구나!’
하지만 아몬은 수업 도중에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네. 아무튼 로널드 위슬리의 이론에 대해 설명하자면…….”
술 취한 채 진행되는 마리온의 수업에도 불구하고, 아몬은 진지한 얼굴로 수업을 들을 뿐이었다.
‘대, 대체 왜?’
‘사실 특별 수업을 포기하지 않은 걸까?’
이윽고 마법 수업이 끝났을 때.
“고생하셨습니다, 마리온 선배님! 너희도 수고했다! 얼른 식사하러 가렴!”
뜻밖에도 흔쾌히 보내 주는 게 아닌가!
그 산뜻함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대체 왜 저러시는 거지?’
‘오히려 무서워…….’
그리고 이변은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일어났다.
보리스와 클로에가 아몬의 묘한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하던 와중, 아몬이 마리온과 슬로스를 거느리고 나타난 것이다.
“하하, 얘들아. 식사는 잘하고 있니?”
“네? 아, 넵! 선생님.”
“그래, 그래. 하지만 적당히 먹으렴. 특별 수업 받다가 토하면 곤란하니까.”
“……네?”
아몬이 부학교장의 직인이 찍힌 ‘특별 수업 허가증’을 내밀고, 둘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오전 수업 때, 학생들을 얼른 내보낸 아몬은 부학교장의 허가증을 가지고 슬로스와 마리온을 후려쳤다.
‘부학교장님의 허가가 떨어졌으니, 더는 특별 수업을 막을 순 없습니다!’
‘크윽……!’
‘하하하! 힘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등에 업은 권력을 써먹을 때의 짜릿함!
킹오브망고 반쪽의 힘이었다.
“그럼 어제처럼 연무장으로 모이렴. 알겠지?”
“흑, 아흐흐흑…….”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을 뒤로하고 식당에서 나왔다.
그런 학생들을 걱정스레 바라보던 마리온이 술 냄새를 풍기며 말했다.
“이보게, 아몬. 어른이 돼선 애들을 이렇게 놀려서 쓰겠는가?”
그 말에 웃으며 말했다.
“원래 잔뜩 겁먹고 있다가 정작 해 봤을 때 할 만하면 의욕이 생기잖아요. 막상 수업에 들어가면 할 만할 텐데요 뭘.”
원래 사람 심리가 그렇다.
시작이 반이다, 시작이 어렵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사실 그것도 이유지만, 어제 슬로스랑 마리온한테 혼날 때 둘이 그 뒤에 숨어서 노려보던 게 괘씸했단 말이지…….’
뚝뚝 묻어나는 사심!
“아무튼 저도 나름대로 수업 강도를 생각해 봤는데, 선배님 두 분이 지켜보시다가 심하다 싶으면 말씀해 주세요. 그렇다고 부학교장님 말마따나 너무 느슨하게 풀어 줄 형편은 안 되니까, 정말 심하다 싶을 때만 부탁드립니다.”
즉 슬로스와 마리온은 특별 수업의 감독관이었다.
그 부탁을 위해 학생들을 얼른 내보낸 것이다.
“그래, 언제까지고 감싸고 돌 수만은 없는 법. 맡겨 주게.”
가슴을 탕탕 치는 마리온.
슬로스는 침낭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난 귀찮은데.”
“부학교장님께 말씀드리죠.”
“라고 할 뻔.”
곧이어 아몬을 포함한 세 교사들은 식사를 간단하게 마친 후 모이기로 약속한 연무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보리스와 클로에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눴다.
“허허, 그래도 그 둘은 노력할 줄 알아. 잘만 가르친다면 경진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줄지도 모르지.”
마리온의 푸근한 말에 아몬은 사심을 담아 말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경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좋겠군요!”
내 출세를 위해서!
“슬로스 선배님도 한 말씀 해 주시죠?”
“자고 싶어.”
“부학교장님께…….”
“둘 다 검술의 재능이 보여.”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얼마를 기다렸을까.
“점심시간 끝났죠?”
“그렇다네.”
또 얼마를 기다렸을까.
“커리큘럼대로라면, 오후 수업 시작할 시간이죠?”
“응.”
또다시 시간이 흐르고, 몸을 일으킨 아몬은 보리스와 클로에를 사냥하러 몸을 날렸다.
* * *
“살려 주세요…….”
“흑흑, 살고 싶어…….”
두 학생의 비통한 울부짖음은 아몬에게 닿지 않았다.
“하하, 녀석들! 누가 잡아먹는 대?”
둘을 연무장으로 데려온 아몬은 팔짱을 낀 채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둘 다 어제 해 봤으니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
“서, 설마…….”
“그래!”
아몬이 박수를 쳤다.
“건강한 몸에!”
“거,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보리스와 클로에가 달리기 시작하자 아몬도 구령을 외치며 뒤따랐다.
그리고 그 촌극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마리온이 말했다.
“슬로스, 저게 의미가 있다고 보나?”
“응? 의미라니?”
“무작정 달리는 게 검술에 도움이 되느냔 말이야.”
슬로스가 픽 웃었다.
“이래서 마법사란, 체력은 검술의 기본이야.”
“그래, 난 종군할 때도 병사들이 업고 다녔다 왜.”
“흥, 아무튼 달리는 게 검술의 시작이라 할 수 있지. 땅을 딛는 힘을 키워 주고 체력도 길러 주며, 자신만의 호흡 조절까지 몸에 익힐 수 있으니까.”
그 말에 마리온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왜 여태 그렇게 안 가르쳤지?”
“학생들이 귀족 자제들이니까.”
“……아아.”
귀족 자제의 부모들은 자식의 응석을 과하게 받아 준다.
“하기야, 귀족이나 돼서 품위 없게 뜀박질이나 하게 한다고 부모들이 뭐라고 할지도 모르겠군.”
“실제로 그랬어.”
슬로스가 턱을 괸 채 학생들을 뒤쫓는 아몬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느니 대충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거고.”
“……흠.”
피식 웃은 마리온이 말했다.
“뭐, 그럼 아몬 녀석도 저 학생들의 사정을 알고 저렇게 하는 거겠군.”
“보리스는 평민, 클로에는 나라를 잃었으니까.”
좀 험하게 굴려도 뭐라 할 사람은 없으리라.
하지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둘이 동시에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귀족 자제라도 저렇게 굴릴 거야.”
“……내 생각도 그렇다네.”
당장 둘만 해도 술병으로 머리를 맞고, 주먹으로 명치를 얻어맞지 않았던가.
그리고 얼마를 달렸을까.
“그럼 둘 다 휴식!”
“허억, 헉…… 예……?”
헐떡대던 둘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멈춰 섰다.
어제처럼 죽기 직전까지 몰아세울 줄 알았는데, 벌써 멈추다니?
물론 지금도 숨이 턱까지 차긴 했지만, 어제는 그러거나 말거나 토할 때까지 달리게 하지 않았던가.
아무튼 휴식을 취하는 둘을 두고 슬로스에게 향했다.
“이쯤하면 됩니까?”
“……응, 달리는 자세가 무너지기 직전이었어.”
“다행이다. 딱 맞게 멈췄네요.”
만족스레 웃으며 슬로스가 넘겨준 목검을 받았다.
그리고 헐떡이며 숨을 고르고 있는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자, 다들 쉬면서 들어라.”
이제 또 어제처럼 이해도 못할 마법 수업을 하겠구나 싶어 보리스와 클로에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아몬은 둘에게 목검을 던져 주며 말했다.
“그걸 들고 날 때려.”
“……네?”
“한 대라도 때려 봐. 만약 못 때리면…….”
“……?”
아몬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또 달린다!”
둘은 허겁지겁 목검을 움켜쥐었다.
* * *
“헉, 허억! 이얍!”
“하하! 둘 다 힘이 없구나!”
“힉, 이야앗!”
“느려.”
보리스와 클로에가 흐느적거리며 아몬을 향해 목검을 휘두르고, 아몬은 여유롭게 피해 낸다.
그 광경에 마리온이 멍한 얼굴로 말했다.
“저것도 무슨 의미가 있나?”
그 물음에 슬로스가 턱을 괸 채 말했다.
“달려 봤지?”
“……가끔은?”
“그럼 달리기가 힘들다는 것도 알지?”
“음…….”
“체력은 한계를 넘어서야 빠르게 성장해. 그런데 달리기에 익숙지 않으면 한계까지 달리는 것 자체가 죽을 정도로 괴로워.”
슬로스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니까 둘을 한계 직전까지 달리게 하고 검을 휘두르는 걸로 한계를 넘게 하려는 거야. 무턱대고 달리게 하는 것보다는 할 만하겠지.”
“……체력은 빠르게 늘겠군.”
“게다가 저 둘, 일단 검을 휘두르고 있잖아? 검을 휘두르는데 사용하는 근육도 붙겠지. 물론 자세가 엉망이지만, 그걸 바로잡는 게 내가 할 일이고.”
마리온이 피식 웃었다.
“무작정 굴리는 것치곤 꽤 효율적이군.”
그 말에 슬로스가 쓰게 웃었다.
아까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때, 아몬은 새 교육 방침에 대해 끝없이 조언을 구했었다.
너무나도 진지하게.
‘몇 번이고 고치고 보충한 수업. 무작정 굴린다고 하긴 좀 그렇지.’
아몬과 학생들을 지켜보던 마리온이 문득 말했다.
“그럼 저것도 이유가 있나?”
아몬은 펄쩍펄쩍 뛰며 학생들을 도발하고 있었다.
“못 때리쥬? 느려 터졌쥬?”
“익, 이이익!”
“나 때릴 사람 어디 갔나~.”
“큭, 이이이익!”
슬로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독기를 키워 주려는 거 아닐까……?”
“그, 글쎄…….”
그냥 놀리는 거다.
* * *
잠시 후, 비로소 학생들이 지쳐 쓰러지자 아몬이 목검을 회수하려 했다.
“크르르!”
“이크, 보리스! 물면 안 돼!”
“하아아악!”
“클로에! 넌 고양이가 아니야!”
너무 심하게 놀렸는지, 적대감이 그득한 그들을 보며 피식 웃은 아몬이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둘 다 쉬면서 들어라.”
“…….”
“이제 마법 수업을 시작한다!”
그들이 흠칫했다.
‘또, 또 알아먹지도 못할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만 아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로널드 위슬리의 주요 이론은?”
오늘 마리온의 수업에서 배운 내용이었다.
“……4대 원소의 정의요?”
“정답. 그럼 4대 원소에 대해 말해 봐.”
“그, 그게 그러니까…….”
마법 수업을 진행하는 아몬을 바라보던 마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섣불리 새로운 것을 가르치기보단 복습이 최고지.’
즉 현재의 특별 수업 구조는 간단했다.
아몬이 체력을 길러 주고, 그 체력을 토대로 슬로스가 검술을 가르친다.
마리온이 마법을 가르치고, 아몬이 배운 것을 복습시킨다.
‘평범하게 충실한 수업이다. 특별한 건 없지만…….’
아니, 특별한 게 있다.
‘열정.’
얼핏 보기엔 장난스러웠지만, 아몬은 진심으로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또한 마법 수업의 복습을 하면서도, 피로로 지친 학생들의 다리를 정성껏 주물러 주는 배려까지.
그 광경을 빤히 바라보던 슬로스가 입을 열었다.
“……마리온 아저씨.”
“……왜.”
“우리, 좀 더 진지하게 해 볼까?”
“……괜찮지.”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
‘내 출세의 발판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마사지해 주는데 내일 근육통이 뭐니 징징대기만 해 봐라!’
아몬은 학생들의 다리를 주무르며 괘씸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