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90)
아카데미가 망했다 90화
오후 무렵, 역사학 수업에 들어가기 전.
아몬은 우연히 복도에서 아미와 마주칠 수 있었다.
“오, 아미. 요즘 다른 선생님들도 수업 듣는 태도가 좋다고 칭찬이 많아. 잘하고 있어. 그렇게만 하면 될 거야.”
혈육의 칭찬에 아미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 응. 열심히 할게.”
“그래, 그래.”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음?”
신경을 누그러뜨리는데 도움을 주는 캐모마일 차를 컵에 담아 홀짝거리던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그게, 오빠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잖아? 요령이랄 게 있어?”
눈을 깜빡거리던 아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공부를 잘했다고?”
“아니야? 역사학 교사도 하고 있잖아. 공부 잘 하지 않아?”
아몬이 피식 웃었다.
“잘하는 게 아니라 기를 쓰고 하니까 잘하는 것처럼 보였겠지.”
“뭐? 그게 무슨…….”
아몬은 아미와 나이 터울이 제법 있는 편이다.
때문에 지금까지는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할 기회도, 생각도 없었지만 아미도 이제 자기 살 길을 찾아보려 하고 있으니 못할 이야기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영지랑 작위는 형이 물려받을 거잖아? 그럼 나나 너는 알아서 자기가 먹고살 길을 찾아야 하는 거고.”
“응, 그야 그렇지.”
“물론 가문에 남아서 가신 노릇을 하는 길도 있겠지만, 우리 영지가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니 자기 밥벌이는 알아서 하는 편이 좋겠다 싶더라고.”
쓴 미소를 지으며 캐모마일 차를 꿀꺽 삼킨 아몬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공부라도 필사적으로 한 거지. 먹물 좀 먹어 두면 굶어 죽을 일은 없겠다 싶어서.”
“…….”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그냥 될 때까지 진득하게 책상 앞에 앉아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 혹시 몰라서 아버지한테 마법 이론을 배운 것도 그런 맥락으로 외워질 때까지 읽고 복습한 거고.”
“…….”
캐모마일 찻잎을 가라앉히려 컵을 흔들림 없이 들고 있던 아몬이 말했다.
“뭐, 나도 딱 너 나이 때쯤 자기가 먹고살 길은 알아서 찾아야겠다 싶어서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으니…… 우리가 남매가 맞기는 한가 보다. 시기도 비슷하네.”
“으, 응.”
“그래도 나는 독학이었지만, 너는 아카데미에서 배울 거니까 나보단 빨리 배울 수 있을 거다. 다른 선생님들도 실력은 좋아. 아니다, 실력‘만’ 좋지.”
“…….”
“그러니까 열심히 해.”
아미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열심히 할게.”
“그래. 슬슬 수업 준비하러 들어가 볼 테니까 너도 늦지 않게 들어와.”
“응. 알았어.”
얼른 가 보라는 듯 아몬이 손사래를 치며 멀어지고, 홀로 남은 채로 우두커니 서 있던 아미가 시간을 확인해 봤다.
아직 수업까지 한 시간이 훨씬 넘게 남아 있었다.
그 남은 시간 동안 아몬은 행여 수업에 부족한 부분이 있을까 싶어 미리 내용을 복기하고 진행에 필요한 말을 정리해 두곤 했다.
‘……작은 오빠도 마냥 쉽게 하는 게 아니었구나.’
큰오빠인 아임은 장남답게 늘 온화하고 넉넉한 모습을 보여 줬고, 아미에게도 항상 져 주곤 했다.
하지만 아몬은 져 주기는커녕 여동생을 상대로 전력을 다한다!
때문에 때로는 찢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오빠였건만, 처음으로 그의 속내를 듣게 되니 조금은 달라 보였다.
‘지금 기분이라면, 사지만 뚝뚝 떼 내는 선에서 용서해 줄 수 있을지도.’
찢어 죽이려던 것에서 팔다리만 날아가는 걸로 끝내는 극적인 관계의 개선!
아무튼, 하고 운을 뗀 아미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한번 진짜로 열심히 해 볼까.”
* * *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그래, 다들 수업 듣느라 고생했다.”
말 그대로 삼삼오오 모여 강의실을 나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던 아몬이 픽 웃었다.
클로에가 아미 뒤에 찰싹 따라붙어 쪼르르 따라다니고, 보리스와 레이몬드는 라스티아넬을 데리고 숙덕거리며 뒤따라 강의실을 나간다.
‘벌써 다들 친해졌네? 클로에도 아미를 잘 따르는 것 같고.’
아미가 조금 언니라서 클로에가 잘 따르는 모양이었다.
학생들의 화기애애한 모습에 아몬은 흐뭇하게 웃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언니한테 잘 보여 둬야지. 앞으로 오래 볼 텐데.’
사심을 지니고 있는 집착!
아미는 지나칠 정도로 호의적인 클로에의 태도가 부담스러웠다.
‘설마 아직도 내가 오빠랑 남매라고 의심하고 있는 건가?’
‘후후후, 나중에는 새언니라고 불러야 할지도.’
‘진짜 남매라고 해도, 진짜 남매가 맞긴 하지만, 아무튼 왜 이렇게 달라붙어서 골골거리지? 부담스럽게?’
‘언니도 날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서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두 사람!
그런 클로에와 아미를 뒤따르는 세 사람은 쑥덕거리고 있었다.
“두 분, 친한 게 보기 좋네요.”
흐뭇해하는 라스티아넬의 모습에 보리스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저게 친해 보여?”
“아닌가요?”
“……난 아니라고 봐.”
레이몬드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인형을 꼭 끌어안으며 흐뭇하게 웃었다.
“친하다는 건 이런 건 말하는 거지. 그치, 레이몬드?”
‘응, 레이몬드.’
“역시 네 생각도 그렇구나!”
그 광경에 라스티아넬은 생각했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똑같은 인형에 스스로를 투영하는구나. 하나하나는 연약한 종족이라서 그런 건가?’
인간에 대해 잘못된 상식을 쌓고 있는 라스티아넬!
“우리 드래곤한테는 저런 문화가 없는데, 하나 또 배워 가네요.”
자신을 드래곤이라 칭하는 라스티아넬의 말에 보리스의 얼굴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어떻게 된 아카데미에 정상인이 하나도 없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보리스 씨는 인형이 없나요?”
“……응, 없어.”
“왜 없죠?”
“없는 게 정상이야…….”
라스티아넬이 혼란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본 보리스가 굳게 결심했다.
‘나 하나라도 정신 꽉 붙잡고 있어야겠다.’
다짐한 보리스는 슬슬 졸려 오자 ‘잠 못 이루는 탕약’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 * *
“아몬 선배님.”
“응?”
카이가 굳은 얼굴로 다가오자 아몬이 경계 어린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설마 얼마 전에 뒤통수 후려쳐서 기절시켰다고 복수하러 온 건가?’
카이가 레이몬드에게 ‘너는 왜 소드 마스터 중급에 오르질 못 하냐.’며 훈계하고 있을 때 저질렀던 짓이다.
그 이후로 며칠간 카이는 ‘제가 왜 기절했죠?’라며 기억 혼탁 증세를 보였었는데, 슬슬 자신이 기절했던 이유를 깨닫기라도 한 것일까.
아몬이 반격을 위해 주먹을 불끈 쥔 채 말했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렇게 심각해?”
“그게, 서둘러 학교장실로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예. 학교장님과 부학교장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둘 다 나를 불렀다고?”
아몬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그 둘이 함께 자신을 부를 일이 무엇 있단 말인가?
‘설마 부학교장이 먹을 게 없어서 아카데미의 중요한 기밀문서라도 씹어 먹어 버렸나?’
황당한 나머지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하던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겠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고?”
“신입 교사가 하나 왔답니다.”
“뭣……!?”
아몬이 눈을 부릅떴다.
‘신입 교사! 그럼 드디어 교사가 다섯이 되는 건가?’
그럼 오매불망 소원해 왔던 홍보 전단도 뿌릴 수 있을 것이며, 아카데미를 궤도에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를 일!
안 그래도 조금 전에 아미에게 열심히 하라며 격려했었는데, 기둥이 다 빠진 것과 다름없는 지금 상태에선 아카데미의 간판 덕도 못 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회가 찾아오다니! 우리 아카데미 간판에 금테를 두를 날도 머지않았구나!’
아몬이 싱글벙글 웃으며 몸을 날렸다.
그 광경에 흠칫한 카이가 아몬을 붙잡으려 했지만, 아몬은 이미 멀찍이 달려가고 있었다.
“왜 저렇게 급하실까. 이야기나 마저 듣고 가시지.”
한숨을 푹 내뱉은 카이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뭐, 별문제 없겠지?’
피식 웃은 카이가 수학 수업을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는 아직 알지 못한다.
문제없겠지라고 안심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학교장실에 도착한 아몬은 심각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 아나르엘과 브레슬을 볼 수 있었다.
“뭡니까? 이 분위기. 두 분 다 왜 그렇게 우거지상을 하고 있습니까?”
“……오셨군요, 아몬 선생님.”
아나르엘이 깍지 낀 손 너머로 음영 진 얼굴을 기울이며 말했다.
“우선 앉으시죠. 긴히 상의하고 싶은 안건이 있어요.”
“……진짜 무슨 일이라도 있나보네요?”
단순한 신입 교사 채용 건이 아니었나?
심각한 얼굴의 아나르엘과 더불어 브레슬조차 진지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몬 선생.”
“예?”
“그러고 보니 감자는…….”
“없어요.”
“왜 없죠.”
풀 죽은 얼굴로 귀를 축 늘어뜨리는 브레슬에게서 관심을 끈 아몬이 말했다.
“학교장님, 그럼 슬슬 이야기해 주시죠. 무슨 일이십니까? 카이한테 듣기로는 신입 교사가 왔다고 하던데요?”
“정확히는, 채용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상태죠.”
“예? 고민하고 있다고요?”
“네. 그래서 교무부장으로 내정되신 아몬 선생님의 의견을 묻고 싶어요.”
아몬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다.
‘학교장이 고민할 정도라고?’
주정뱅이와 침낭에서 나오지 않는 여인을 교사로 고용한 엘프가 채용을 망설일 정도의 인물이라니.
평화, 안정을 인생의 지표로 삼는 아몬마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러십니까?”
“우선은, 대단한 귀족 가문 출신이에요. 들으면 누구나 알 명문이죠.”
아몬이 침음을 흘렸다.
‘여태 살면서 배운 건, 대단한 가문 출신이라고 대단한 사람은 아니란 거다.’
그 사례 중 하나가 피드 후작가 출신들이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찰할 수 있는 ‘슬로스 피드’라는 개체에 의하면, 침낭과 떨어트리면 수 시간 이내로 삶을 살아갈 의지를 잃어버리곤 했다.
‘더 나아가선 황제의 혈통인 아모니스 가문도 정상이 아니지. 가장 솔선수범해야 할 황제부터가 제정신이 아니니 원.’
그렇기에 아몬은 출신 가문 따위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았다.
‘나만 하더라도, 남작 가문 출신이지만 얼마나 사람이 올곧고 발라?’
아무튼, 팔짱을 낀 아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한번 만나 보죠. 근데 그 사람은 어디 있습니까?”
“밖의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려 달라 했어요.”
“왜 또 밖에서 기다리고 있대요?”
아나르엘이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좀 무서워서…… 아몬 선생님이 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라 했어요.”
“무섭다고요?”
“네.”
아몬이 손을 뻗었다.
“잠시, 잠시만요. 부학교장님.”
“응? 왜 그러십니까?”
신입 교사 지망자를 부르러 가던 브레슬이 멈춰 서자 아몬이 입을 열었다.
“일단 좀 더 들어 보죠. 대체 누구길래 무섭다고 하십니까?”
“휴.”
한숨을 쉰 아나르엘이 말했다.
“펜도리안 가문의 귀족 영애예요.”
“펜도리안 가문?”
순간 아몬이 눈을 가늘게 떴다.
예전에 이와 관련해서 뭘 들은 것 같은데?
“설마 그분의 이름이 피오라입니까? 피오라 펜도리안?”
“어라? 아는 분이세요?”
“와, 진짜 왔네.”
얼마 전 디아나가 피오라더러 아모니스 아카데미에서 교사로 일하라느니 뭐니 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때 단칼에 거절한 것 같던데, 생각이 바뀐 건가?’
아니면 디아나가 한 번 더 설득한 것일지도?
뭐, 그런 내부 사정이야 아몬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그런데 무섭다뇨? 고작 한번 본 것뿐이지만, 딱히 모질고 사나운 성격은 아닌 것 같던데요? 조금 단호한 것 같긴 했지만 말이죠.”
아나르엘이 치를 떨었다.
“그게 안 무섭다고요?”
“어, 자세히 본 건 아니지만 적어도 당시에는요.”
아나르엘이 귀를 바짝 세우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한번 자세히 보시죠!”
브레슬이 한달음에 피오라를 부르러 학교장실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아나르엘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속삭였다.
“자! 보세요! 아몬 선생님!”
“…….”
“저게 안 무서워요!?”
아나르엘의 말에 아몬이 피오라를 바라봤다.
분명 얼마 전에 본 피오라가 확실했다.
그런데.
“카아악! 퉤!”
“치, 침 뱉지 마세요…….”
“아이씨, 학교장님, 담배 한 대만 피면 안 되냐고요.”
“시, 실내 금연이에요…….”
“에이 씨.”
껄렁하게 앉은 채 투덜거리는 피오라를 바라보던 아몬이 스르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람이 미친 개망나니가 된 걸까.’
어째서인지 천장이 뿌옇게 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