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96)
아카데미가 망했다 96화
유니콘은 전설 속의 동물이다.
원래는 대륙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존재였다지만, 언제부턴가 자취를 감추고 전설 속 존재라는 환상으로 남게 된 것이 유니콘이었다.
하지만 머리칼이나 우물우물 씹어 대는 꼴을 보니, 그들에 대한 한 줌의 환상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으으윽! 뿔 달린 말 놈들, 물렀거라…….”
유니콘에게 걷어차인 부상 때문에 잠을 자고 있는 카이가 악몽을 꾸는 것을 보니 더더욱 그랬다.
‘그나저나 카이 자식, 왜 유니콘에게 얻어맞았나 했더니.’
아몬은 쓰러져 낑낑대는 카이를 붙잡고 꾸역꾸역 질문을 던졌었다.
‘이 부정한 놈! 유니콘 님께서 네놈을 공격한 이유를 어서 고하지 못할까!’
‘크으윽! 가, 갑자기 무슨 말씀을…….’
‘갈! 말하지 못할까! 이대로 의식을 잃으면 위험하니 얼른 대답해라!’
‘야, 약혼자가 있습니다! 아아, 여기서 돌아가면 꼭 그대와…….’
약혼자가 있다니, 부러운 놈.
“근데 학교장님, 유니콘이 엘프들은 저렇게 걷어차지 않습니까? 자식도 있는 엘프가 많을 텐데요.”
“엘프는 자연과의 친화력이 높아서 그나마 괜찮다는 것 같아요.”
“꺼려지기는 하는 모양이군요.”
“그래도 그럭저럭 참을 수 있을 정도래요.”
아나르엘이 식은땀을 흘리며 ‘뿔 달린 망아지놈들, 모조리 숨통을…….’ 하며 몸을 뒤척거리는 카이를 보며 말했다.
“엘프를 상대론 괜찮은데, 인간을 상대론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밖에는 유니콘이 없어서 다행이군요. 만약에 있었다면 유니콘이 인류의 적이 되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 말에 아나르엘이 말했다.
“어머? 몰랐나 봐요?”
“예? 뭘요?”
“실제로 옛날에 인간이 유니콘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었데요. 유니콘이 전쟁에서 져서 엘프 왕국에 머물고 있는 거고요.”
“……뭐라고요?”
“제 할머니가 고조할머니께 들은 옛날이야기라고 하셨으니까, 몇천 년은 된 이야기겠죠.”
“…….”
참담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설마 유니콘이 전설 속 동물이 된 이유가, 이따위 행패를 부리고 다니다 인간들에게 쫓겨나서 자취를 감췄기 때문인 건가?’
이딴 전설은 알고 싶지 않았다.
아나르엘이 말했다.
“아무튼 카이 선생님이 슬슬 진정되신 것 같으니 나가 볼까요?”
“……그러죠. 기왕 엘프 왕국에 왔으니, 이것저것 구경이나 하고 가야겠군요. 지난번에는 달팽이가 세계수를 기어오르는 것만 보다 갔으니까요.”
그 말에 아나르엘이 짝 박수를 치며 말했다.
“맞아, 달팽이 경주 하니까 생각난 건데요.”
“예?”
“후후후! 기뻐하셔도 좋아요! 저도 이제 막 안 사실인데 말이죠…….”
아나르엘이 활짝 웃으며 눈을 반짝였다.
“원래 달팽이 경주는 10년에 1번씩만 개최하는 축제!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전 대회 우승자가 모두 모이는 올스타 드림 매치! 30년 전 우승 달팽이인 미스터 슬러그도 참전한다는 모양이에요!”
아몬은 아나르엘을 버리고 밖으로 도망쳤다.
* * *
‘미쳤군. 다들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아몬은 세계수를 노려봤다.
그곳에서는 광기에 찬 함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어쩐지 아까 도착했을 때 달팽이들이 몸을 풀고 있더라니, 그딴 해괴망측한 대회를 개최하고 있을 줄은…….’
소름이 쭉 돋았다.
이제 막 안 사실이라고 말하던 아나르엘의 눈은 흉흉히 빛나고 있었다.
정말 몰랐던 걸까? 그 사실은 아나르엘 본인만 알고 있으리라.
‘갑자기 마음이 확 바뀌어선, 등판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꾸역꾸역 여기 온 걸 보면 알고 있었을지도.’
치를 떠는 와중 함께 엘프 왕국을 구경하던 클로에가 옷소매를 당겼다.
“선생님, 세계수 방향이 엄청 시끄러워요. 뭘 하고 있나 봐요.”
“클로에, 저쪽으로는 감히 시선도 돌리지 말려무나.”
“네?”
“아주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단다.”
“아, 알겠어요.”
한숨을 쉰 아몬은 보리스가 상기된 얼굴로 어딘가를 가리키는 걸 바라봤다.
“선생님! 저기 정령 꿀빵을 판데요!”
“정령 꿀빵?”
그건 아몬도 먹어 보고 싶었다.
문제는 엘프 왕국은 제국과 다른 화폐를 사용한다.
물론 금화가 통용되기는 하지만, 평범한 엘프 왕국민들에게 금화를 내밀었더니 다들 난감하다는 기색이었다.
거슬러 줄 제국 화폐가 없는 것.
하지만 지금의 아몬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정령 꿀빵 스무 개 주세요.”
“여기 있다, 인간. 엘프화 40개다.”
“아나르엘 공주한테 달아 두세요.”
“헉! 이건 아나르엘 공주님의 손님이라는 표식!”
이런 식으로 아몬은 엘프 왕국의 관광을 만끽하고 있었다.
‘지금쯤 대충 엘프화 500개쯤 쓴 것 같은데, 제국 돈으로 하면 얼마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아몬이 알 바는 아니었다.
“냠냠! 오빠, 이거 진짜 맛있다!”
“너무 달지 않고 맛있네요.”
아미와 라스티아넬도 입에 맞는 모양이었다.
그때 꿀빵을 꿀꺽꿀꺽 삼키던 레이몬드가 방방 뛰기 시작했다.
레이몬드의 등신대 인형도 함께 방방 뛰고 있었다.
“선생님! 저기 엘프식 메뚜기 구이를 판데요!”
“……레이몬드 너, 메뚜기도 먹니?”
“할아버지랑 산에 있을 때 먹었어요. 자주 먹진 못했지만요. 별미였죠.”
“…….”
아몬조차 메뚜기를 먹어 본 적은 없었다.
때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향한 노점에서 발견한 것은, 무슨 칠면조 다리 크기의 메뚜기 다리 구이었다.
‘이게 메뚜기 다리라고?’
달팽이도 더럽게 크더니, 메뚜기도 이렇게 크단 말인가?
‘설마 메뚜기 경주도 있는 건 아니겠지……?’
먹어 보니 맛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관광을 만끽하던 와중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근데 얘들아, 다른 선생님들은 다들 어디로 갔니? 아까 카이 선생님 재우고 나왔더니 아무도 안 보이던데.”
허브로 감싸 구운 메뚜기 다리를 와작와작 깨물어먹던 레이몬드가 말했다.
“마리온 선생님은 엘프주 마시러 가셨고, 슬로스 선생님은 잔데요.”
“……거참.”
다들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군.
‘브레슬 부학교장은 보나마나 뭐 먹으러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을 거고, 개망나니는 뭐 하고 있으려나. 엘프들을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니겠지?’
괜히 인간과 제국에 대한 엘프의 인식만 망가뜨릴까 봐 걱정하는 와중이었다.
“이, 이 소식이 정말인가요?”
“그렇다, 인간 여자.”
“그, 그럴 리가 없어! 거짓 정보가 분명해요!”
“어억! 왜, 왜 이러나! 인간!”
엘프 신문 가판대의 주인장 멱살을 잡고 흔들고 있는 피오라!
그 모습에 아몬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가 또 개망나니 아니랄까 봐. 사서 망나니짓을 하는군.’
마음 같아선 일행이 아닌 척 지나치고 싶었지만, 엘프 왕국과의 관계와 아나르엘의 손님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저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
아몬이 황급히 다가가 피오라를 말렸다.
“망나니야, 그만하고 가자.”
“아, 아몬 씨!”
악연임에도, 아는 목소리가 반갑다는 듯 이쪽을 확 돌아본 그녀는 울상을 하고 있었다.
그 바람에 아몬도 놀라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뭐, 뭔데? 무슨 일이야?”
그 물음에 피오라가 엘프 신문을 확 내밀었다.
위에는 엘프 문자로 대문짝만하게 무어라 적혀 있는데, 문제는 아몬이 엘프어를 모른다는 것이다.
‘근데 잠깐만.’
밑에 그려진 정교한 삽화에는 제국의 깃발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깃발 아래를 불길이 휘감고 있었다.
누가 봐도 부정적인 뉘앙스의 삽화를 본 아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 이거 설마…….”
혹시, 설마, 그럴 리가.
그 부정을 깨부수듯 피오라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외쳤다.
“제국에 전쟁이 발발했다고요!”
피오라의 확인 사살에 아몬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하필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황에서 이따위 미친 소식을 알게 되다니!
* * *
마리온은 늘 그렇듯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겔겔겔! 새벽이슬을 모아 담근 엘프주! 술이 술술 넘어가누나!”
아침나절까진 단정한 꼴을 하고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자유 시간이 주어졌기에 본격적인 술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엘프주를 파는 노점 주인도 술을 물처럼 마시는 마리온의 행동에 흡족한 기색이었다.
직접 담근 술을 저렇게 기뻐하며 마시니 주인 된 자로서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늙은 인간, 정말 잘 마시는군! 이것도 마셔 봐라!”
“오오오! 좋지요! 어디, 돈은…….”
“서비스다!”
“갸아악! 부얼라! 마쎠라!”
자신의 술에 환호하는 마리온의 행동에 주인장도 오늘은 장사를 접고 한바탕 어울리기 위해 술잔을 들었다.
“인간! 나와도 한잔하지!”
“껄껄껄! 좋지요!”
마리온과 주인장이 기쁨으로 술잔을 부딪친 순간이었다.
“마리온 선배님!”
“엉?”
저 멀리서 아몬이 쩌렁쩌렁 외치며 달려오자 마리온이 손을 치켜들었다.
“오오! 아몬, 자네도 한 잔 푸르륵!”
그대로 뒷덜미를 잡혀 끌려가는 마리온!
그 광경에 주인장이 손을 뻗으며 애절하게 외쳤다.
“인가아안!”
“주인자아아앙!”
* * *
브레슬은 노점에서 걸신들린 것처럼 음식을 해치우고 있었다.
“냠냠냠냠!”
“쯧.”
“우물우물! 꿀꺽, 짭짭짭!”
“쯔읏!”
브레슬 말마따나 허여멀건 엘프들은 다크엘프인 그녀를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 가지 않았다.
“한 그릇 더.”
“……또?”
“두 그릇 더.”
“어어?”
“더 가져오십시오! 아니, 다 가져와!”
“얼른 가져다드리겠습니다요!”
엘프 차별도 돈 앞에서는 장사 없는 법이다.
그렇게 브레슬이 정신없이 음식을 빨아들이는 와중.
두두두두-!
돌연 들려온 발소리에 흠칫한 브레슬이 고개를 돌렸다.
‘아몬 선생? 그리고 마리온 선생?’
아몬이 토하고 있는 마리온의 뒷덜미를 붙잡고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 광경에 브레슬이 도로 고개를 돌려 음식 그릇에 얼굴을 박았다.
‘드디어 미쳤구나. 못 본 척하고 지나가게 내버려 두자.’
두두두-!
‘가라. 가라. 제발 그냥 가라.’
덥석-!
“케헤에에엑!”
브레슬도 아몬에게 뒷덜미를 붙잡힌 채 끌려가고 말았다.
* * *
슬로스는 아나르엘의 집, 모데라우스의 정상에 누워 있었다.
‘하아, 여기 정말 좋다…….’
모데라우스가 가지를 움직여 얼굴로 내리쬐는 햇볕만 가려 주고 있었기에 몸은 따끈따끈, 얼굴은 딱 좋은 밝기인 데다 가지로 느긋이 바람을 부쳐 주고 있었으니 슬로스에겐 이곳이 천국이었다.
‘엘프 왕국으로 망명하는 방법은 없을까?’
슬로스가 그런 못된 생각을 하던 와중이었다.
부우웅-!
갑자기 들려온 바람 가르는 소리에 슬로스가 눈을 떴다.
그리고 단련된 그녀의 눈에 비춰지는 풍경은, 슬로우모션처럼 나뭇가지를 뚫고 나타난 아몬이었다.
‘어? 뭐지? 갑자기 왜 아몬이 튀어나온…….’
슬로스의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끼에아아아악!”
아몬에게 붙잡혀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곧이어 지면에 착지한 아몬이 슬로스를 내려 줬다.
“헥! 헤엑! 야, 아몬! 이게 지금 뭐 하는…….”
슬로스가 눈을 끔뻑거렸다.
마리온, 브레슬도 함께 끌려온 모양인데 그들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이고, 아이고!”
“웩! 웨엑!”
한창 술을 퍼마시고, 폭식을 하다 끌려온 그들은 배를 붙잡고 땅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그들에 비해 자신이 멀쩡하다는 것을 깨달은 슬로스가 떠듬거리며 말했다.
“아, 아몬.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그 물음에 아몬은 말없이 아까 가져온 신문을 내밀었다.
“엘프어는 모르는데…… 응?”
불타는 제국 깃발!
삽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삐걱삐걱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잠깐. 설마. 혹시.”
“예.”
아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쟁 났습니다.”
“악!”
슬로스가 펄쩍 뛰었다.
“하, 학생들은!?”
“망나니가 데리고 오고 있을 겁니다.”
“학교장님은!?”
“그야 물론…….”
아몬이 고개를 돌렸다.
달팽이 경주로 인한 광기에 휩싸인 환성이 터져 나오고 있는 세계수 방향을 바라본 그가 말했다.
“이제 끌고 와야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