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97)
아카데미가 망했다 97화
아나르엘은 울부짖고 있었다.
“하나슬러그!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그녀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가장 후미에서 세계수를 거슬러 오르는 하나슬러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아나르엘은 하나슬러그가 바로 직전 대회의 우승자였기에 기량의 저하가 가장 적으리라 판단하고 있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
“내 엘프화 5만 개! 하나슬러그! 제발 힘내요!”
그녀의 애절한 외침에도 하나슬러그는 여전히 미동조차 않고 있었다.
지난번 대회보다 하나슬러그의 허리둘레가 두툼해 보이는 것은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리라.
가출하기 전에 한푼 두푼 모아 뒀던 엘프화 5만 개를 자신의 방에서 발견하고 ‘운명이다.’ 싶은 마음에 하나슬러그에게 몽땅 걸었는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어흐흑! 하나슬러그! 절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요!”
여전히 닿지 않는 비통한 외침 속에서 눈물을 쏟던 아나르엘은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자 거세게 팔을 뿌리쳤다.
“건드리지 마세욧!”
“학교장님.”
“아, 손대지 말…… 아몬 선생님?”
낯익은 목소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아나르엘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아몬이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아, 아몬 선생님! 마침 잘 왔어요. 하나슬러그가 힘을 내질 못하고 있어요! 아몬 선생님도 함께 응원해요!”
“…….”
묵묵부답,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아몬이 손을 까딱거렸다.
귀를 이리 가져다 대라는 신호였다.
“응? 갑자기 왜…… 제국에, 음? 에?”
아나르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제, 제국에 전쟁이요?”
“그런 모양입니다.”
“마, 말도 안 돼요. 그럴 리가.”
그녀가 주변을 휙 둘러봤다.
주변의 엘프들은 전쟁 따위는 모른다는 듯 달팽이 경주에 열광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했다.
엘프 자체가 인간 세상, 외부에 무관심할뿐더러 의지를 지니고 있는 신목인 세계수가 엘프 왕국을 결계로 수호하고 있기에 ‘적의 침입’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수는 단순히 달팽이 경주를 위한 경주장이 아니었다.
단순한 ‘그냥 나무’도 아니었다.
“직접 보시죠.”
아까 신문을 파는 노점상 주인에게 확답을 듣긴 했지만, 아나르엘도 제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좋으리라.
내밀어진 신문의 가장 상단, 대문짝만하게 적힌 글귀를 읽은 그녀의 귀가 파르르 떨렸다.
“구, 군터 군도 연합이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
“노점상 주인이 말한 대로군요.”
아나르엘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제국의 녹봉을 먹는 입장.
또한 황제, 황후와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어 아무리 인간사에 큰 관심이 없는 엘프일지언정 이대로 좌시할 순 없었다.
물론 직접적으로 참전하는 건 아니더라도, 올스타 달팽이 경주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몬 선생님.”
“예, 학교장님.”
“서둘러 복귀해야겠어요. 다른 분들을 모두 모아 주세요.”
“진작 다 모아 놨습니다.”
“역시, 아몬 선생님.”
크게 숨을 몰아쉰 아나르엘이 힐끔 시선을 돌렸다.
“미스터 슬러그! 그는 신이야!”
선두를 달리는 달팽이를 침을 튀겨 가면서 환호하고 있는 어머니, 아르엔에게서 고개를 돌린 아나르엘이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서둘러 돌아가죠.”
* * *
한시가 시급한 일이었기에 일행은 곧바로 복귀했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맞아 준 것은 라인벨트였는데, 그의 얼굴은 심각했다.
“다들 돌아왔군.”
“어르신.”
“엘프 왕국까지도 전란이 알려진 것인가?”
아몬이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음…… 그렇군. 학교장님, 잘 오셨습니다. 모두들 들어가세.”
동요하는 학생들을 가능한 안심시킨 후 기숙사로 데려다준 교사진들은 학교장실의 옆에 위치한 회의실로 향했다.
아카데미가 몰락한 이후, 여러 인원이 모일 일이 거의 없었기에 아몬은 처음 들어와 보는 곳이었다.
쓸 일도 없었고.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장소였다.
자리에 앉은 라인벨트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럼 학교장님, 상황에 대해선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군터 군도 연합이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음. 설명이 길어지겠군요.”
라인벨트가 칠판 하나를 끌어당기더니 능숙하게 지도를 그렸다.
그 익숙함은 교원 자격증을 따 놨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군터 군도 연합에 대해선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군도. 크고 작은 섬들의 집합체.
군터 군도 연합은, 군터 군도에 위치한 수많은 군소 왕국의 연합이었다.
그 각각의 규모는 결코 크지 않다.
그러나 군도의 특성상 구성원 대부분이 ‘해상 민족’이었다.
배를 타고 거친 바다를 쏘다니는 억센 선원들. 거친 성미의 해적들.
군터 군도 연합은 그런 인원이 대부분이었고, 결국 호전적인 성향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대전쟁의 종전. 그 이후로 맺어진 향후 백 년간의 평화 조약에 가장 큰 불만을 품는 것은 단연 그들이었습니다. 군도 왕국의 특성상, 대륙의 비옥한 땅을 누구보다 갈망했을 테지만 점령이 힘겨웠고, 점령한 땅 역시 금세 탈환되었으니 말입니다. 만약 제국이 조금만 더 약했다면, 대전쟁이 조금만 더 약했다면…….”
그 말을 아몬이 받았다.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지요.”
“역사학 교사답군.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 말이 맞네. 고작 몇 년, 대륙의 땅을 다스릴 요령과 기반을 갖출 시간이 조금만 있었더라면 군터 군도 연합은 대륙과 이어지는 땅을 얻게 되는 셈이지.”
“대륙의 판도가 바뀌겠군요.”
“그렇다네.”
고개를 끄덕인 라인벨트가 교사들을 죽 훑어봤다.
“이로써 군터 군도 연합이 전쟁을 선포한 이유를 설명한 셈입니다. 또한 말이 전쟁 선포지 기습 공격과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현재 제국의 우방국인 발트란 해안 왕국이 그들과 교전 중입니다만, 전황이 좋지 않습니다.”
아몬이 침음을 흘렸다.
“제국과 우방국이라는 이유로 군사력에 투자를 거의 않는다고 듣긴 했죠. 제국의 우방국이 된 후 천년함대라 불리던 함대를 상단으로 꾸렸다고…….”
“그만. 논외의 이야기일세.”
“죄송합니다.”
제국의 4대 기사다운 단호한 말에 아몬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때 슬로스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군터 군도 연합이 제국을 상대로 덤빌 정도로 강한가요? 이유야 알겠지만, 그들도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슬로스의 의문에 대답한 것은 카이었다.
그는 제국의 황태자답게 이 상황을 극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 평소의 가면을 벗은 채 위엄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평소의 제국이었다면 엄두도 못 냈겠지요. 벨스라임 황무지 개척 사업의 실패로 제국이 흔들리는 틈을 노린 겁니다.”
“아…….”
개척 사업에 나선 제국 2군단, 제국 중장갑 기병대, 프라임 마탑, 그 외에도 몇 개의 대대가 난데없이 떨어진 ‘운석’에 몰살을 당했던 초유의 사건.
군터 군도 연합은 그 전력의 공백을 노린 것이다.
“게다가 군터 군도 연합은 강합니다. 단일 국가가 아니기에 결속력은 약하지만, 해상 민족 특유의 강인함과 돌파력은 수준급이지요. 그들의 정예병인 크라켄 전사단은 구성원 하나하나가 소드 익스퍼트의 기사를 능가합니다.”
팔짱을 낀 채 침음을 흘리던 마리온이 어깨를 더듬었다.
거기에는 크라켄 전사 ‘단 하나’가 자신을 지키는 병사 수십을 돌파한 후 입힌 부상의 흉터가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
“……젠장. 또 떠오르는군.”
힘없이 중얼거린 마리온이 한숨을 쉬고, 아몬이 잠깐 흘렀던 정적을 깨며 말했다.
“라인벨트 어르신.”
“뭔가.”
“그들도 장기전으로 돌입하면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요? 결국 지금 전황이 좋지 않은 것은 기습으로 허를 찔린 것뿐이잖습니까?”
아무리 제국이 흔들린다지만, 제국은 제국이다.
“제국의 군사력 일부만 투입하면 군터 군도 연합은 파멸할 겁니다. 물론, 그 결과로 또 군터 연합 같은 승냥이들이 일어설지도 모르죠. 하지만 군터 연합이 그걸 노리고 움직이진 않았을 것 아닙니까? 자신들의 멸망을 걸고 그 초석을 마련해 줄 이유는 되지 않아요.”
아몬의 지적은 정확했다.
또 다른 놈들이 일어서서 대륙의 패권을 잡으면 뭐하나?
군터 군도 연합은 이미 멸망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자네, 역사학 교사니 군터 군도 연합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지?”
“그야 물론입니다.”
군터 군도 연합은 ‘크라켄’을 상징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건 바다 괴물인 크라켄이 아닌, 모든 크라켄을 지배하는 존재며 바다를 다스린다는 전설 속 존재인 ‘어머니 크라켄’을 상징하는 것이다.
“전설에서는, 어느 누군가가 어머니 크라켄의 가호와 계시를 받았고 그에 감화된 군도의 국가들이 모여 연합을 결성했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맞네. 딱 하나 틀린 부분이 있지만.”
“예? 틀린 부분……?”
라인벨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크라켄은 실재하네. 전설이 아니라.”
“뭣……!?”
그 말은 설마.
“그럼 놈들이 덤벼든 이유가…….”
“어머니 크라켄이 나타나 그들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지.”
“마, 말도 안 됩니다! 어머니 크라켄이라니!”
전설 속의 유니콘이 사람을 걷어차다가 인간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나머지 엘프 왕국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보다 충격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 크라켄은 그야말로 신화 그 자체 같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드, 드래곤도 잡아먹는다던데요?”
“이제 막 성체가 된 드래곤이라지만, 그렇다 하더군.”
“다리가 수십 수백 개고, 다리 하나하나가 성벽만 한 크기라고…….”
“발트란 왕국에 파견된 전령의 급보에 의하면, 다리 하나하나가 성벽보다 더 크다고 하더군.”
아몬이 눈을 질끈 감았다.
상상하고 만 것이다.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 있는 성벽보다 큰 수십 수백 개의 크라켄 다리를.
“큰일이군요.”
“그래. 큰일이지.”
쯧, 혀를 찬 라인벨트가 말했다.
“아무튼 학교장님. 그런 이유로, 저는 상황 전달을 위해 남긴 했지만 서둘러 수도로 가 봐야 하는 입장입니다.”
제국 4대 기사로서 제국의 위기를 좌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인벨트가 교사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교사 여러분.”
“…….”
“제국에 닥쳐온 위협을 좌시하지 말게. 아무르의 시가지에 급히 개설된 긴급 파병 부대의 참전 신청소가 있네.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네. 그럼 이만.”
라인벨트는 황급히 회의실을 나가자, 오랜 정적이 감돌았다.
‘참전.’
현 시점에서 의무는 아닌 모양이었다.
학생들을 가르쳐야 할 임무를 지닌 교사들에겐 재량껏 맡기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긴급 파병 부대.’
제국의 정규 부대들은 병참 및 보급 때문에 출전이 비교적 늦어진다.
그렇기에 가능한 서둘러 투입될 이들을 모집하는 것이다.
즉 곧장 전선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어느 정도의 실력자들로 가려 받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이곳의 교사들은 전원이 상당한 실력자다.
“……다들 어떡하실 겁니까?”
아나르엘, 브레슬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엘프인 그녀들에게 있어 인간의 전쟁은 관계없는 일이었기에.
그리고 그를 떠나 아카데미의 학교장, 부학교장이라는 인물이 전쟁에 참전할 순 없는 일이다.
가장 먼저 슬로스가 입을 열었다.
“난 싫어. 야,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 뭐야. 귀찮아서 그러는 거 아니야.”
한숨을 쉰 슬로스가 허리춤의 검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기사다.
하지만 실전? 그를 넘어서, 전쟁?
“그냥, 그게…….”
마리온이 두려움으로 흐려지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젊은이는 이깟 일에 휘말릴 필요 없네. 이런 건 늙고 어리석은 이들이 져야 할 책임이야. 젊은이들은 나설 필요 없어. 아니, 나서면 안 돼.”
단호한 마리온의 말에 슬로스가 조용히 고개를 떨어트렸다.
“저는…….”
피오라가 말끝을 흐렸다.
제국의 충신, 펜도리안 가문 출신으로서 참전 의사를 강력히 밝히고 싶다.
하나 마리온의 말에 담긴 의미가 너무나도 강렬했기에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카이가 말했다.
“아몬 선배님은 어떡하실 생각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시선이 집중되고, 아몬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험한 아르마 산맥에서는 먹고사는 것 자체가 전쟁에 가까웠다. 그런데 먹을 게 있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평화로운 삶 속에서 전쟁이라.
한심할 뿐이었다.
‘참전, 공을 세울 기회, 출세할 수 있는 기회.’
그것을 원하지만, 아몬은 앞선 이유 때문에 전쟁 그 자체에 부정적이었다.
그럼에도, 사는 것 자체가 전쟁인 아르마 산맥에서 살아왔다.
아몬의 가족은, 마을사람들 모두는 지금도 전쟁 속에서 살고 있다.
그가 출세해야 하는 이유다.
“참전하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진 순간 마리온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그런 그의 눈에는 진한 노기가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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