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Ruined Academy Life RAW novel - Chapter (98)
아카데미가 망했다 98화
마리온이 차갑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안 되네.”
“…….”
“내가 말했지. 젊은이는 늙은이들의 싸움에 어울릴 필요 없다고.”
마리온이 손가락으로 아몬을 가리켰다.
“자네는 젊어. 미래도 창창하지. 이깟 한심한 일에 나서면 안 돼.”
“…….”
“젊은 혈기는 이해하네. 피가 끓겠지. 하지만 그건 피가 끓는 게 아니야. 머리통과 가슴 안의 시커먼 게 자네를 부추기는 것뿐이야. 나라와 고향을 지키겠다! 아니면 출세를 위해서! 둘 다일지도,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
마리온의 눈에는 시뻘건 핏발이 서 있었다.
“감히 그걸 틀렸다고, 나쁘다고 말하진 않겠네.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자네는 전장에 나서는 이들을 끓는 피로 응원해 주면 될 따름이야. 전장에 서야 할 때는, 그 피가 식었을 때야. 아니면 적의 칼끝이 턱 아래까지 왔을 때. 하지만 지금의 자네는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야.”
마리온의 목소리에는 신념, 증오, 슬픔이 뚝뚝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 분위기에 좌중이 압도당한 채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낸 마리온이 씨근거리며 숨을 고른 후 말했다.
“아몬.”
“……예, 선배님.”
“부탁이야. 눈앞의 멍청한 주정뱅이와 같은 실수는 하지 말게.”
전쟁영웅, 홍염의 마귀. 그럴싸한 그 이름들은 어리석은 판단의 결과였다.
그렇게 마리온의 일장연설이 끝나고, 생각에 잠겨 있던 아몬이 말했다.
“선배님.”
“말하게. 듣고 있네.”
“말씀하셨듯, 저는 젊습니다. 하지만 앞길이 창창하지는 않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인가?”
순간 카이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떠올랐다.
그는 드레이크 가문과 황제의 가문인 아모니스 가문과의 비화를 안다.
때문에 아몬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출세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자세한 말씀은 드릴 수 없습니다. 가문의 일이라 해 두죠. 아무튼 그런 이유로 출세하는 게 힘들다는 것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출세?”
마리온이 헛웃음을 지었다.
“결국 그깟 출세를 위해서…….”
“피가 식었을 때가 전장에 설 때라 하셨죠. 제 피는 뜨겁지 않아요. 꽤 오래전부터요.”
“뭐?”
“……뭘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려나.”
쓰게 웃은 아몬이 말을 이었다.
“다들 저희 영지는 와 보셨죠? 망, 피오라는 못 와 봤겠지만. 아무튼 어때 보였습니까? 솔직히 넉넉하게 사는 것 같지는 않았죠?”
“…….”
“근데 그게 많이 나아진 겁니다. 저 어릴 때는 말도 마세요. 밥도 자주 굶고 그랬어요. 그래도 명색이 남작가문인데요. 몰락 귀족, 가난한 귀족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가난했을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요.”
아몬은 괜히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좋은 이야기는 아니기에 그렇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마리온이 그리 열정적으로 참전을 만류했으니 자신의 이유를 말해 보고 싶었다.
“뭐, 가난했기만 했으면 다행이죠. 우리 영지가 또 안전하지도 않아요. 하루가 멀다 하고 몬스터가 쳐들어오니 죽는 사람도 저 어릴 땐 많았죠. 요샌 거의 없지만.”
아몬이 목이 타는지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차를 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집중된 굳은 시선 속에서 혀로 입술을 적신 아몬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드레이크 산맥 밑에 작은 도시 하나가 있어요. 우리 영지와 가장 가까운, 그나마 사람이 산다고 할 수 있는 곳이죠.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면, 뻔한 일이 있었어요.”
“……?”
“그 뭐냐, 여기 식당에선 흰 빵을 먹잖아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 그 도시에 갔을 때 처음으로 흰 빵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어요. 빵은 다 검은색 아닌가? 빵은 호밀로 만들지 않나? 아니더라고요. 근데 전 그걸 몰랐고, 절 데리고 도시로 볼일을 보러 왔던 아버지에게 말했죠.”
“…….”
“와! 아빠, 저거 봐. 빵이 흰색이야. 신기하지.”
호밀로 만든 검은 빵은 가난의 상징이다.
밀로 만든 흰 빵은 부의 상징이다.
하지만 그건 제국민에게 있어 옛말일 뿐이다.
농업 장려 및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밀’로 만든 흰 빵이 빈민가에도 구제품으로 지급된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아몬과 드레이크 영지에 한해선 그렇지도 않았나 보다.
너무 척박했고, 너무 험한 곳에 있었으니까.
“뭐, 그리고 뻔한 일이 벌어졌죠. 그 도시에 머물던 어느 귀족 자제가 그 말을 들었고, 아버지와 저를 보며 말했어요.”
“…….”
“뭐야? 웬 못 보던 거지새끼들이야?”
남작 가문의 자제가 들은 말.
이야기를 듣는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카이는 거의 울상을 짓고 있었다.
“아버지는 곧장 저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갔죠. 그리고 볼일을 보는 내내 말이 없으셨고, 돌아가는 길에 흰 빵을 한 덩어리 사 주셨어요.”
“…….”
“부드럽고, 맛있었어요. 엄청.”
작게 숨을 몰아쉰 아몬이 마리온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한 것처럼, 우리 영지가 지금은 그보다 나아요. 흰 빵도 먹어요. 근데 가족들도, 마을사람들한테도 흰 빵보다 더 좋은 음식 먹게 해 주고 싶어요. 제 동생 아미도 어디 가서 그런 나쁜 소리 들을 일 없었으면 좋겠고요.”
“…….”
“혈기, 열정 그딴 거 없어요. 냉정하게, 출세하고 싶습니다.”
아몬이 가진 출세욕의 이유였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묵묵히 듣기만 하던 마리온이 몸을 일으키더니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어라? 왜 그냥 나가시지. 뭐 대답도 안 해 주시고.”
“…….”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겠죠?”
“…….”
아몬의 말에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다들 애꿎은 천장만 필사적으로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광경에 아몬이 짜증스레 말했다.
“아, 씨. 괜히 이럴까 봐 말하기 싫었는데.”
“……아몬.”
“왜요. 슬로스 선배님.”
“초콜릿, 킁! 먹어.”
“감삼다.”
슬로스가 준 초콜릿을 우물거리던 아몬이 손뼉을 짝 치며 정리했다.
“뭐, 아무튼 제 입장은 그렇습니다.”
어느새 눈시울과 코가 새빨개져 있는 아나르엘이 몸을 빙글 돌리더니 말했다.
“맘 같아서능 말리고 시픈뎅 그렁거라명 어쩔 수 없죵.”
피오라는 아몬에게 악감정이 있었기에 별말은 없어도, 그래도 그를 보는 시선은 다소 부드러워져 있었다.
물론 아몬의 속내는 부드럽지 않았다!
‘저 망나니가 나를 왜 저런 눈으로 볼까? 나 지금 동정해?’
그리고 팔짱을 낀 채 진지한 얼굴로 아몬을 응시하던 카이가 말했다.
“아몬 선배님의 그 마음, 잘 알겠습니다.”
‘뭐지? 저 새끼, 뭔데 갑자기 윗사람처럼 저딴 말투로 말하지?’
“모자란 힘이나마, 제 힘이 닿는 데까지 돕겠습니다.”
그 말에 아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도 참전하려고?”
“예? 아뇨?”
세상천지 어느 미친 황태자가 전선으로 기어 들어가겠는가.
아몬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장난쳐? 근데 뭘 돕겠다는 건데.”
“하, 하하하…… 머, 멀리서나마 응원하겠다, 그 말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황태자 카이야스’의 입장으로 말해 버린 것이다.
아무튼 상황이 대충 일단락되자 브레슬이 입을 열었다.
“이제 밥 먹으러 가도 됩니까?”
브레슬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나르엘의 박치기에 얻어맞고 의자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 * *
아카데미의 뒤편에 위치한 시들어 빠진 정원.
마리온은 그곳의 벤치에 앉은 채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평소처럼 막 퍼마시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면서 사려 깊게 술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옆으로 잔을 내밀며 말했다.
“한잔하겠나? 아몬.”
“주시면 감사히 마셔야죠.”
읏차, 하며 마리온의 옆에 앉은 아몬이 말했다.
“평소보다 비싼 술 같은데요? 늘 마시던 거랑 다르게.”
“출진을 앞뒀는데, 이런 날마저 값싼 술을 입에 털어 넣을 순 없지 않은가.”
“그도 그렇군요.”
쭉 시원하게 술을 들이마신 아몬이 말했다.
“휴, 괜찮네요.”
“아몬.”
“예.”
“나는 마법사니 배틀 메이지 사단에 소속될 걸세. 자네는 귀족 자제로서, 또한 아카데미의 교사로서 지원병을 지휘하게 될 테지. 정확히는 잘 몰라도 아마 백인장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네.”
마리온이 술잔에 술을 채워 주며 말을 이었다.
“그들의 얼굴을 잘 기억하게. 절대로 잊지 말고 기억하게나.”
“……명심하겠습니다.”
“잊게 되면, 얼굴이 뭉개진 이들이 자네를 끊임없이 따라다닐 걸세. 잠을 잘 때는 물론이고, 깨어 있을 때도 말이야.”
그리 말하는 마리온은 멍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술에 취한 마리온이 늘 보여 주는 모습이었지만, 그 말과 아까 그가 했던 일장연설을 들은 아몬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선배님, 설마 지금도요?”
마리온은 대답 대신 술을 연거푸 입에 흘려 넣었다.
그가 늘 주중선으로 지내는 이유였다.
‘처음 만났을 때 단순히 맛있어서 마신다고 했던 건 둘러댄 거였구나.’
그때 아몬이 했던 ‘죄책감을 술로 잊으려 한다.’는 말이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아몬이 쓴 얼굴로 말했다.
“하긴, 술을 누가 맛있어서 마실까요.”
그 말에 마리온이 무슨 헛소리냐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소린가? 이 맛있는걸.”
“엥.”
“잊으려고 그러는 것도 있지만, 맛도 있으니까 마시는 거지. 맛도 없는 걸 잊겠다고 꾸역꾸역 마시면 그게 무슨 헛짓거리인가? 고문도 아니고.”
“……아, 예.”
피식 웃은 마리온이 아몬의 등을 팡 때리더니 말했다.
“아무튼 무사히 돌아오게. 내 부탁하지.”
“……감사합니다. 선배님도 무사히 돌아오십시오. 부탁입니다.”
“음.”
두 사람은 잔을 부딪쳤다.
* * *
아몬은 마리온이 말한 대로 병사들로 이뤄진 백인대의 지휘자가 되었다.
그리고 마리온과의 약속대로, 그들의 얼굴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백인장님! 설렁설렁 좀 합시다! 예?”
“…….”
“쯧, 이래서 이제 갓 백인장이 된 귀족님들이란.”
“…….”
노련한 병사들은 신입 백인장인 아몬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냥 내 손으로 싹 다 죽여 버릴까? 아냐. 아몬, 그럼 너도 큰일 나.’
그 바람에 분노만 쌓여 가고 있었기에, 그들의 얼굴을 잊으래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아몬은 인내라는 단어를 가슴속에 새기며 묵묵히 길을 나아갔다.
그렇게 종군 이틀째 되는 밤이었다.
“드레이크 백인장! 천막으로 오게!”
“예!”
천인장의 부름에 아몬은 황급히 천막 안으로 향했다.
천막 안에 모여 있는 것은 자신을 포함한 백인장 전원, 그리고 천인장도 전원이 모여 있었다.
‘뭐지? 무슨 일이지?’
지휘자 전원이 모였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긴급 파병 부대의 지휘관, 살몬 백작이 입을 열었다.
“자,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모였나?”
“예! 글씀다!”
“모두 똑똑히 듣게나!”
“예!”
살몬 백작이 서류를 냅다 흩뿌리며 외쳤다.
“종전이다아아앗!”
“예, 옛!?”
“황후마마께서 직접 시녀단을 이끌고 출병하시어 어머니 크라켄을 토벌하셨으며, 그에 따라 군터 군도 연합이 일제히 항복했다!”
제국의 황후!
그녀는 그랜드소드 마스터이며 대마법사인 황제, 아모니스 18세의 ‘검술 스승’이였다.
그런 황후는 군터 군도 연합의 전쟁 선포에 차갑게 분노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산드리오가 앓아누웠는데, 건방진 잡것들이 제국에 이를 드러내?’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낸 황후, 빅토리아는 그녀가 직접 육성한 ‘시녀단’을 이끌고 전선으로 향했다.
참고로 총원 50인의 시녀단은 전원이 소드 마스터의 괴물들이다!
그런 실력자들이 황후를 필두로 어머니 크라켄에게 달려들었으니, 어머니 크라켄은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푸짐한 문어숙회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군터 군도 연합 전 국가가 제국의 깃발 아래 복종하기로 맹세하는 것으로 전쟁이 끝난 것이다!”
살몬 백작의 선언에 천막 안에 모인 지휘자들이 모두 거센 함성을 터뜨렸다.
“우와아아아!”
“황후마마 만세! 제국에 영광 있으리!”
열광의 함성 속에서, 귀족 자제로 이뤄진 백인장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난리도 아니었다.
첫 출진이라 공포에 떠는 와중 들려온 희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으하하하! 만세! 만세! 종전이다!”
“야! 너, 우냐!?”
“으하하하! 너도 울잖아!”
눈물까지 흘리며 부둥켜안고 난리법석을 떠는 그들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아몬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 아몬도 운다!”
“푸하하! 저 녀석, 매일 뭐가 무섭냐고 떵떵거리더니 저 녀석도 우네?”
“흑, 으흑…… 흐흐흑…….”
힘껏 오열하는 그의 모습에 다른 백인장들이 눈물을 흘리며 아몬을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그들에게 푹 안긴 아몬은 한층 더 거세게 울기 시작했다.
“흐흐흑! 그래, 울어라 이 자식아! 너도 많이 무서웠구나!”
“커흡! 으허어어어어엉!”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