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02
102
이럴 거면 오지 마!
“제가 잘못 들은 거죠?”
이안이 순식간에 표정을 굳혔다. 이제껏 짓지 않았던 절망적인 표정이었다.
워낙 순식간의 변화라 객석에서 사진을 찍던 홈마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왜 저래?”
“앞에서 뭐라고 했길래 애 표정이 저래?”
이안의 맞은편에 앉은 팬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원래 이런 반응 보려고 치는 환승 드립이었지만, 그가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일 줄 예상도 못 했다.
“누군지 안 궁금해?”
“…제가 알아야 해요?”
앞에 앉은 팬은 이게 아닌데… 싶다가도 망한 드립으로 남으면 돌이킬 수 없어져서 황급히 말했다.
“머… 멋있는 이안이에서 귀여운 이안이로 바뀌었어!”
어두웠던 이안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양손으로 얼굴을 덮으면서 천장을 바라본 이안이 짧게 투정을 부렸다.
“아 진짜 이런 거 하지 마요.”
“미안, 미안해! 이렇게 놀랄 줄 몰랐어!”
“옆으로 넘어가실게요.”
팬이 애써 수습하려 했지만 팬매니저의 짜증스러운 목소리에 아쉽게 옆자리로 앉을 수밖에 없었다.
“누나가 나빴네.”
이안의 다음 순서였던 조태웅이 팬에게 핀잔을 줬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다.
[노잼.]‘아 PTSD 올라온다….’
[다이아몬드 때도 저런 사람 있었냐?]‘이런 반전 드립이 아니라 진짜로 탈덕 광고하는 팬이 있긴 있었지.’
‘사실 너 탈덕하고 주피터로 갔는데 팬싸 당첨돼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온 거야.’라고 면전에서 들었던 기억이 났다. 심지어 갈아탄 최애가 그의 자리를 빼앗은 조카 새끼였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이안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아… 생각도 하기 싫다.’
[다이아몬드… 그들은 대체.]이안이 고통스러워 몸을 비틀었다. 진은 그 모습을 마냥 재밌게 관람했다.
“이안아 안녕!”
“안녕하세요!”
과거의 기억은 과거로 남겨 두고 지금은 일해야지. 이안이 팬에게 자동 반사적으로 웃었다.
팬덤이 커지면 그만큼 코어 팬들도 늘지만, 이상한 사람도 꼬인다. 이제는 자기 카메라 왜 안 보냐고 꼽 주는 사람은 가볍게 넘길 정도였다.
“이름이 뭐예요?”
“안 알려 줄 거야.”
“네?”
“내 이름 이제 알지?”
[오, 이건 좀 새로운데.]이건 또 무슨 신종 빌런이야. 아위덤만 지금 몇 명인데… 이름을 어떻게 기억해?
장난치는 어투도 아니고 야단치는 어투라서 더욱 기분이 묘해졌다. 이안은 애써 웃으며 사인을 마쳤다.
“누나 난 천재가 아니에요.”
“누나 아닌데… 나 어제도 왔잖아. 내 이름 정도는 알아야 하는 거 아냐?”
이안이 팬들의 얼굴을 너무 잘 알아봐서 생긴 부작용 중 하나였다. 얼굴을 기억하면 이름도 기억해 주겠지? 생각하며 특별한 팬임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유형이었다. 솔직히 대부분은 이름 외워 달라는 강요나 마찬가지다.
[뭐래 끽해야 오늘 포함 두 번 왔으면서.]‘어쩐지 눈에 안 익더라.’
[딱 봐도 이름 못 외웠다고 눈치 오지게 줄 스타일이다.]‘인정.’
이안한테만 하면 상관없는데 다른 멤버들까지 불똥이 튄다는 게 문제였다.
“옆으로 넘어가세요.”
“이름 빨리 알려 주세요. 초성이라도.”
“이름 써 줄 때까지 여기 앉아 있을 건데? 아, 알잖아. 빨리. 내 이름도 모르면 어떡해.”
심지어 그 자리에서 뻔뻔하게 버티는 모습에 이안이 매직 펜을 들어 이름을 쓰려고 남겨 둔 공간에 아무거나 휘갈겼다.
“그냥 내 마음대로 쓴다?”
“아니….”
“옆으로 넘어가실게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무적으로 인사한 이안이 무심하게 휘갈긴 앨범을 팬에게 건네고 다음 팬을 맞이했다.
[못 봤는데 뭐라고 적었냐?]‘이럴 거면 오지 마! 하고 웃음 표시.’
[쎈데?]맘 같아선 더 센 말도 준비 중이었으나, 적지 않은 돈으로 여기까지 온 팬에게 더 이상의 쓴소리는 할 수 없었다.
이후에도 갖가지 환승 드립과 갑질을 시전하는 팬을 겪은 이안이 한숨을 푹 쉬었다.
‘감정 노동 오진다….’
정말 극한직업 아이돌이었다.
-이안이한테 환승 드립쳤다가 태웅이한테 한 소리 들은 후기
(링크) 영상은 아이언하트 링크 긁어옴
…갈아탐 드립 쳤는데 애가 표정이 너무 순식간에 변해서 내가 다 맘아프더라ㅠㅠ
└애는 귀엽긴 한데… 맘 아프면 왜 했냐?
└솔직히 이런 드립 치는거 나만 불편해?
└정도껏해라
└와 무슨 가수들이 이런 것도 받아줘야하냐ㅋㅋㅋㅋ
-아위 팬싸 후기
최이안 내 이름 쓴 거 봐라ㅋㅋㅋㅋㅋ
└헐 저기 팬싸컷 낮지도 않던데 너무한거아냐?
└인성 터졌네ㅋㅋㅋㅋ
└너 내 옆에서 자기 이름 모른다고 애한테 꼽주던 걔냐?
└└헐 뭐임?
-팬싸 후기 쓴사람 저격한다
애한테 내 이름 왜 모르냐고 눈치주고 꼽주고 팬매가 넘어가라는데도 뭉개고 계속 애한테 눈치주고 갑질함 ㅅㅂ 내가 옆자리에서 순서 기다려봐서 앎 일단 사인시디 인증 올린다
└역시
└솔직히 애들 팬사랑 오지는데 저런 말 대놓고 할리가 없음ㅇㅇ
└지금 그글 글쓴이 글삭함ㅇㅇ 이 판에 오지마라 ㅅㅂ
* * *
“지금 초동 몇 장이라고요?”
“23만 장이었는데… 방금 6만 장 또 터졌어요.”
새로 고침을 연타하던 직원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국음반차트, 일명 한음차트 순위에서 아위의 순위가 1위에서 내려가지 않고 있었다.
“우리 ‘Side Effect’ 총판이 얼마였죠?”
“35만 장이요.”
“세상에….”
앨범 발매한 지 이제 나흘, 이 정도 추이라면 초동부터 전작 총판을 가볍게 뛰어넘게 생겼다.
-야 중국 이안바에서 또 터짐ㄷㄷ 영수증 인증 올라왔다
-ㅁㅊ 몇만장이 터진거야
“역시 우상유니가 크네….”
서수련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한류는 돈이 된다. 간혹 한한령 해제에 대해서 간보는 기사가 뜰 때마다 엔터사의 주가도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음 아시아 투어는 규모 크게 가도 괜찮겠죠?”
“그래도 될 것 같아요.”
물론 본격적인 해외 코인을 타기 전에 코로나 때문에 난리가 나겠지만, 소속사 관계자들은 모르고 있었다.
* * *
-요즘 광고 컨셉 다 병맛으로찍네
아위 롱패딩 광고 뭐냐ㅋㅋ
└펭귄 연기 누구야?ㅋㅋㅋㅋㅋ
└└태웅이!
└넘어지는거 너무 리얼한거아니냐ㅋㅋㅋㅋ
간절기가 되자마자 아위가 찍었던 롱패딩 광고가 매체에 풀리기 시작했다.
아위, 광고계 블루칩 급부상… 판매 시작 10분 만에 ‘완판’
대세 아위, 브랜드 평판지수 2위 ‘선두’ 추격하나
‘큰손’ 팬덤의 힘, 광고계는 지금 트로트와 아이돌이 접수한다
롱패딩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해당 브랜드 온라인 쇼핑몰은 서버가 터졌다.
-너네 롱패딩 있다며! 안산다며! 또 나만 진심이지!
-아씨 낮12시인줄알고 잤는데 이미 품절ㅠㅠ
사려던 팬들은 간신히 뚫고 들어갔지만, 이미 전부 품절된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업체들은 아위에게 광고 섭외 제안을 넣기도 했다.
월드 투어 때문에 약간의 공백기가 발생했던 아위는 대신 음악방송 일정을 4주로 잡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숍에 다녀오고 리허설과 사녹, 대기 끝에 본 방송 무대를 마치면 잠도 얼마 못 자고 다시 새벽에 출근한다. 게다가 금토일은 팬사인회까지 있었다.
“우리 처음부터 무대 너무 빡세게 꾸민 거 아니냐?”
“다 우리 업보지 뭐야.”
“그래도 무대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알려진 거겠지….”
그 바쁜 와중에 시상식 준비까지 해야 했다. 데뷔부터 소문난 무대 맛집이라며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위의 시상식 무대를 꽤 기대하고 있었다.
“빨리 정해야 우리 스타일리스트 누나가 덜 피곤하지.”
“그럼 수박차트는 이집트 컨셉으로?”
“좋다. 관은 전에 썼던 거 재탕하면 되겠다.”
연말 일정이 줄줄이 있었다. 아위는 전에 썼던 컨셉과 겹치게끔 해서 준비 시간을 단축하기로 했다.
“우리 수박차트하고 다음 주에 무대 또 있잖아요. 어떻게 해요?”
“아 맞다.”
누워 있던 멤버들이 으으 앓는 소리를 냈다. 수박차트 어워즈가 끝나면 바로 방송사 연말 가요제가 줄줄이 예약되어 있었다.
“우리나라는 뭔 음방도 많고 시상식도 많냐?”
“그래도 거긴 사녹 먼저 따고 할걸?”
박진혁이 투덜거리고, 김 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번에는 뭐 하지?”
“이번에 사제 나오는 드라마 유행 탔던데, 신부 컨셉은 어때?”
“근데 신부 의상을 입은 우리 안무가… 신성 모독 아니냐?”
“우리 안무 정도면 괜찮지…. 그리고 천주교는 이런 거에 관대하던데.”
“으… 어렵다. 내일 위에다 물어보자.”
다들 퇴근하고 아위만 연습실에 남아 새벽을 지새고 있었다.
“이번에도 연습생들 백업 서 주려나?”
“아마 그럴걸? 이번에는 애들 다 올라갈 거래.”
“와 한 30명 되는 거 아냐? 그림 오지겠다.”
무대 위를 꽉 채우면 채울수록 그림은 더 좋게 나온다. 군무가 살짝 안 맞아도 티가 안 나는 장점도 있었다.
문득 궁금한 게 생긴 이안이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 보니 다들 블랙러시 백업 서 봤어?”
“너 오기 전에 몇 번.”
“오, 어땠어?”
이안은 전생 현생 통틀어 백업 댄서를 서 본 적이 없었다.
“…나 무대 위에서 토할 뻔했어.”
“진짜?”
흑역사가 생각난 조태웅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현이 형이랑 주영이는 댄스 대회 자주 나가 봐서 익숙했지, 주혁이 형이랑 진혁이 형도 몇 번 해 봤다고 하고. 서담이는 처음이라면서 리허설 때 나보다 잘하더라?”
“형 저는 실전에 강한 타입이에요.”
박서담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나름 카메라 앞에 많이 서 봐서 괜찮을 줄 알았지. 근데 연기랑 무대 위에서 춤추는 거랑 많이 다르더라고.”
“맞아.”
“맨날 거울 앞에서 연습했는데, 거울은 없지 내가 잘하고 있나? 동선 괜찮나? 생각은 많아지는데 속은 안 좋고…. 목구멍에서부터 위액 올라오면서 불안불안하더라?”
“그래서 어떻게 됐어?”
“하필 그때 블랙러시 컴백 무대였어가지고 다들 동선 모여 있는 사이에 백스테이지로 뛰어갔지.”
사전 녹화를 하던 중에 생겼으니 다행이었다. 만약 생방송 때 그랬으면… 조태웅이 몸을 떨었다.
“백스테이지에 토하고, 우리 스태프들은 그거 수습하러 다니고 그 뒤로 나는 백업 못 서게 됐지.”
“대판 깨졌겠네.”
“오지게 깨졌지. 김주영 저 새끼 나 놀리는 거 몇 개월 갔다. 아! 근데 그때 영현이 형이 나한테 물 줬다? 처음 올라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조용히 엿듣던 멤버들이 크으 감탄사를 내뱉었다.
“영현이 형이 진짜 진국이라니까? 가끔 우리 아이스크림도 사줬 잖아.”
“전에 임진각 간다니까 나한테 과자 몰아줬어.”
“우리한테 고기도 사 주고.”
“맞아.”
생각해보니 자잘하게 얻어먹은 게 많았다. 배고픈 연습생 시절을 오래 겪었던 김 현이 나지막이 물었다.
“…우리 연습생들 뭐 좋아하지?”
이안이 불쑥 대답했다.
“얘들 다 좋아해. 요즘은 떡볶이 좋아하더라. 튀김을 떡볶이 양만큼 쌓아 올린 거.”
“너 걔들한테 벌써 뭐 사 줬냐?”
“어.”
“아씨 내가 먼저 했어야 했는데…. 쟤는 맨날 멋있는 거 혼자 한다?”
이안이 멋쩍게 웃었다. 그는 조태웅이 ‘우리도 사 줘!’라며 찡얼거리는 것을 무시하고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영현이 형 뭐 하려나? 한우 얻어먹은 거 보은해야 하는데.”
“새해 되면 서담이도 술 먹을 수 있는데, 세준이 형도 불러서 다 같이 가자.”
“좋다.”
이주혁이 시계를 흘끔 쳐다봤다. 쉬는 시간이 2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가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자, 노가리도 그만 까고… 우리 남은 연말 무대 뭐 해?”
“으아아….”
멤버들이 작게 비명을 질렀다.
[아 뭔가 중요한 게 있었는데….]연습실 구석에서 둥둥 떠 있던 진이 정신 사납게 셔터를 찰칵거렸다.
[뭐지? 내가 뭘 잊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