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04
104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무대 중앙의 리프트가 올라가면서 금색의 파라오 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비로운 느낌을 더하기 위해 준비된 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무대 바닥을 채웠다.
“이집트 맞네.”
관을 보자마자 중얼거린 이다솔은 바이올린 선율로 노래가 시작되자 입을 다물고 무대에 집중했다.
파라오 관이 스륵 열리면서 그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바로 이주혁이었다. 머리에 감긴 붕대를 거칠게 풀어낸 이주혁이 마이크를 들었다.
“너와 내가 있어서 이 우주가 시작돼”
이어서 제사장 같은 의상을 차려입은 이안이 다음 소절을 불렀다. 곡의 브릿지 부분, 풍부한 음향이 공연장 내부에 울려 퍼지면서, 백업 댄서가 우르르 무대 위로 올라갔다.
“가자….”
오늘 뭘 잘못 먹었는지 속이 좋지 않았던 임노을은 애써 숨을 내쉬고 무대 위로 향했다.
‘여기서… 이렇게….’
임노을은 원래 춤을 출 때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생각이 많아졌다는 것 자체가 집중력이 흐트러졌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하필 임노을의 중간 동선이 맨 오른쪽에서 왼쪽 앞줄로 이동하는 극악의 동선이었다.
‘…어?’
동선을 찾아가던 임노을의 몸이 휘청거리면서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안 돼…!’
* * *
임노을이 아위를 처음 보게 된 날은 아위가 연습생 시절, 대학로 앞에서 버스킹을 할 때였다.
“누구야? 연예인이야?”
“가운데 잘생겼다.”
약속장소에 늦은 친구를 멍하니 기다리기엔 너무 심심했던 임노을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누군가의 공연을 관람했다.
일곱 명의 남자들, 미리 관리를 받았는지 다들 얼굴이 멀끔했다.
살만 빼면 복권이라고 나름대로 엔터사의 명함도 두어 개 받아본 임노을은 그들이 연습생이거나, 무명 아이돌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우와.”
가볍게 춤을 추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목소리. 표정도 여유 있게 웃으면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눈을 맞춘다.
“멋있는데…?”
임노을은 그 순간 버스킹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안이 고음을 지르는 순간, 쩌렁쩌렁한 울림에 주변에서 와! 감탄을 내뱉으며 박수를 쳤다.
“감사합니다!”
“저희 12월에 데뷔해요! 아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버스킹이 끝나고, 허리 숙여 인사하는 그들을 보며 사람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그 자리를 맴돌았다. 임노을도 그중 하나였다.
이후, 괜히 아위의 이름을 검색해 보던 임노을이 아위의 데뷔 무대 사녹 신청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머리를 감쌌다.
‘그때 노래 잘 불렀었지…. 현장에서 듣고 싶은데….’
마우스 커서를 왔다 갔다 하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그는 결국 사전 녹화 신청 버튼을 꾸욱 눌렀다.
“근데 가면 사람들 다 여자 아니야? 불편한데… 아! 모르겠다.”
임노을이 허허 웃었다. 폭발적으로 올라가는 댓글수를 보아하니,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었다.
‘설마, 내가 되겠어?’
됐다.
정신 차려 보니 목요일, 학교도 빠지고 새벽 시간에 N넷 사녹 대기 줄에 설 수 있었다. 모여든 사람들 중에 남자는 임노을뿐이었다.
‘겨울이라 다행이야….’
롱패딩과 목도리, 모자로 완전무장한 임노을이 쭈뼛거리면서 고개를 숙였다.
“어머, 남팬도 있네.”
“어쩌다 여기까지 왔어요?”
타 그룹과 동반 사녹이어서, 수군거리는 말과 시선이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임노을이 작게 말했다.
“대학로… 버스킹에서 보고요.”
“버스킹 입덕? 부럽다~ 나는 못 갔는데.”
말을 걸던 사람들과 적당히 대화한 그는 녹화 장소에 들어서면서도 최대한 다른 팬들과 안 붙게 어깨를 접었다.
‘아… 신경 쓰여. 다음엔 되도록 안 와야겠다.’
불편함에 미간을 찌푸렸던 임노을은 아위가 무대 위로 올라가자마자 표정이 저절로 풀렸다.
“안녕하세요. 저희 첫 사녹이에요.”
말은 그렇게 해 놓고 3번의 무대를 완벽하게 소화한 아위를 보며 임노을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버스킹 때보다 더 잘하는 느낌이었다.
‘…다음에 또 올 수 있으면 오자.’
방송국 1층의 카페에서, 사녹에 왔던 팬들을 하나하나 알아보던 이안은 멀찍이 서 있었던 임노을까지 알아보면서 손을 붕붕 흔들었다.
“…팬클럽 가입해?”
그 모습을 보던 임노을은 결국 팬의 길로 들어섰다. 운이 좋아서 두세 번의 사녹을 더 다녀 본 그는 사녹만 뛰기에는 뭔가 아쉬운 기분을 받았다.
“무슨 팬싸컷이 이렇게 높아?”
중학생이 감당하기엔 너무 높은 금액이었다. 그래서 구매 수로 줄 세우는 응모 방식 말고 순전히 응모권 뽑기로 당첨된다는 대형 서점의 팬사인회에 앨범을 사서 응모했지만, 당첨되진 않았다.
“너 남자 아이돌 좋아한다며?”
“어?”
“2반에 누가 그러던데? 뭐더라? 공방?에서 너 봤다고.”
친구의 말에 임노을이 몸을 작게 떨었다. 학교에서는 나름대로 일반인 코스프레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아위덤이었나 보다.
“너 게이야?”
“아닌데?”
“근데 왜 남자 아이돌 좋아해? 루나걸즈 이런 여자 아이돌은 안 좋아해?”
“루나걸즈… 겁나 이뻤지. 근데 편견 오진다?”
임노을이 얼굴을 찌푸렸다. 남자가 남자 좋아한다고 다 게이냐?
“너 나 좋아하지.”
“뭐?”
“친구로든 뭐든 어쨌든 좋아할 거 아냐.”
“존나 오글거리는데 뭐, 안 좋아하면 친구 아니겠지?”
“그럼 우리 게이냐?”
“그건… 아니지.”
친구를 납득시켰을지 몰라도 옆 반에서 퍼지는 소문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느새 임노을은 게이다! 남자를 좋아한다! 라는 소문이 학교에 퍼졌다.
“나는! 그냥 노래가 좋아서! 멋있어서 좋아한다고! 아이돌 뜻이 뭔데! 우상이잖아!”
참다못한 임노을이 소문의 근원지를 찾아서 한 소리였다.
“나도 여자 좋아해! 여친 사귀고 싶다고!”
오해는 풀리고 ‘남자 아이돌 좋아하는 1반의 특이한 애’로 소문은 가라앉았다. 할 말 못 할 말 직설적으로 말하는 성격이 소문을 수습하는 데 도움이 되긴 했다.
소문에 주눅 들지 않고 공방이나 출퇴근길을 가끔 다니며 팬질을 이어가던 임노을은 안방에서 시상식 재방송 무대를 지켜봤다.
“와… 쩐다.”
화면 속, 박서담의 뒤에 나타난 이안이 그를 붙잡고 백 다이브를 한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이젠 팬과 가수가 아니라 같은 가수로써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면 욕심일까? 임노을이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그래도 본판은 괜찮다며 길거리 캐스팅도 받아 봤는데….
‘이왕 살 빼는 김에 춤으로 빼 보자. 그리고… 오디션 볼 거야.’
임노을이 연습생 춤 평가에서 1, 2위를 다투게 된 계기였다.
* * *
무대 위에 나란히 서고 싶었다는 게, 무대 위에서 무대를 망치란 의미는 아니었다.
‘이런 미친….’
드라이아이스로 희미한 무대, 미끄러운 재질의 무대 바닥, 최악의 동선, 그리고 오늘 유난히 좋지 않았던 임노을의 몸 상태가 맞물려서 결국 바닥에 대자로 뻗어 버린 임노을은 시큰거리는 발목을 애써 무시하고 벌떡 일어나 안무를 따라갔다.
“어? 누구 넘어졌는데?”
“애들이에요?”
“아니, 백댄서. 개아프겠다….”
다행히 카메라 화면에서는 잡히지 않았지만, 공연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꽈당 넘어지는 임노을을 눈치챌 수 있었다.
무대가 끝나고 결국 백스테이지에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터뜨린 임노을이 구석진 곳에서 쭈그려 앉아 고개를 숙였다.
‘잘할 수 있었는데… 여태까지 잘했는데.’
임노을이 끅끅 울음을 삼켰다.
“뭐야 누가 얘 재산 몰수했어?”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내려온 조태웅이 쭈그려 앉은 임노을을 발견했다. 백업 댄서들은 전부 미라 분장이어서, 눈에 안 띌 수가 없었다.
“얘 왜 이래?”
“나도 몰라.”
이안도 조태웅을 따라서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임노을이네? 얘 아까 넘어졌어. 무대 위에서.]‘진짜?’
[어, 완전 벌러덩 누워 버렸는데. 공연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 눈치챘을걸?]‘카메라에는 안 잡혔고?’
[어, 그때 너 얼빡 잡혔지.]카메라에 잡혔으면 공연을 시청하는 모든 사람들이 알았을 터, 그나마 다행이었다.
웅크린 몸 사이로 흐느낌이 들렸다. 문득, 뭐가 생각난 조태웅이 두리번거리다가 공연 관계자에게 다가갔다.
“죄송한데, 물 한 병 좀 주실 수 있어요?”
스태프가 멍하니 물을 건넸다.
“일단 이거 마셔.”
김영현이 조태웅에게 그랬듯, 조태웅도 임노을에게 물 뚜껑을 따서 건네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임노을이 고개를 들어 물을 받았다. 그의 얼굴이 새빨개져서 눈물 콧물로 얼룩져 있었다. 임노을이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물을 마셨다.
“야…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괜찮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조태웅이 말했다. 평소라면 놀리고, 장난을 쳤을 텐데 진지한 얼굴이었다. 연습생이었던 옛날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맞아, 나도 아까 마이크랑 이 봉이랑 헷갈려서 이거로 노래할 뻔했어.”
이안이 말했다. 진짜로, 무대 소품을 들고 노래할 뻔했다. 자연스럽게 반대 손을 올려서 마이크를 들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나도 아까 신발에 스프레이 뿌렸는데도 미끄럽더라고.”
“바닥이 미끄러운 재질이더라. 넘어질 만했어.”
임노을이 팔뚝으로 눈물을 닦았다. 연습생 중에서도 연습실을 제일 오래 쓰는 게 임노을이었다.
“근데… 무대 준비 많이 하셨잖아여….”
그럼에도 아위의 연습실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늦게까지, 밤을 새워서라도 무대를 완성해가는 그 모습을 지켜봐서 잘 알았다.
내가 그 무대를 망쳤어. 임노을이 허엉 소리를 내며 울어 버렸다.
“죄송해여어….”
조태웅과 이안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무대 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긴 했었다.
전체 그림이 무너진 것이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들은 자신의 실수에 엄격하지 남의 실수에 연연하진 않았다.
“야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이안과 조태웅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어차피 혼나는 건 안무가에게 혼날 터, 그렇다고 마냥 혼내지도 않을 것이다. 무대 바닥이 원체 미끄러웠으니까. 그들은 그저 임노을을 달래 주기로 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소란을 듣고 찾아온 다른 멤버들이 임노을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얘 무대 위에서 넘어졌었대.”
“진짜? 우리 무대 하느라 누가 넘어진 줄도 몰랐어.”
“괜찮아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
“근데 넘어졌다며,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순식간에 일곱 멤버들에게 둘러싸인 임노을이 자신을 달래 주러 온 아위에 대한 감동과 미안함에 북받쳐 결국 소리 내 통곡을 했다.
“뭐, 뭐야 왜 또 울어?”
“죄송해여허어….”
“허… 이러면 달래 주는 의미가 없는데.”
조태웅이 허허 웃는 것을 시작으로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 웃음이 터졌다.
* * *
조태웅에게 물을 건넸던 공연 스태프가 몰래 사진을 찍었다.
-백댄서 달래는 아위
일단 계자 인증한다.
갑자기 나한테 물 달라고 하길래 자기가 마시는 줄 알았는데 백댄서한테 주더라 백댄서 무대 실수해서 통곡하고 있었음 ㅇㅇ 연습생인거 같은데 쩔쩔매는게 귀여워서 찍어봄
└뭐야 얘네 왜이래?
└└마이튜브에는 안 나왔는데 백댄서 넘어졌대
└ㄹㅇ?
└아 귀여워ㅋㅋㅋㅋ누가 보면 일진이 둘러싼 줄 알겠다ㅋㅋㅋㅋㅋ
└연생까지 챙기고 애들 스윗ㅠㅠㅠㅠ
└나도 현장 계자인데 얘네 다 착함 나도 연생 달래주는거 뒤에서 지켜봤는데 무대 하다 와서 자기들도 힘들텐데 연생 달래주다가 매니저한테 끌려감
└우는 연생도 귀엽고 매니저한테 끌려가는 애들도 귀엽넼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