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1
11
애드리브 3대장.
그리고 이안이 출연한 고등학교2017이 방영했다. 소식을 들은 연습생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이안보다 앞장서서 모니터를 해야 한다며 옹기종기 거실에 모여들었다.
“와 진짜 개무서운데?”
“야 진짜 일진 같은데? 이안이, 너 설마.”
“어쩐지 김주영 갈구는 게 범상치 않더라….”
“근데 미국에도 일진이 있나?”
외향적인 남자애들 여럿이 모이니 오디오가 꽉 찼다.
“근데 쟤 미식축구 했다며, 그거 미국 드라마에서나 보는 인싸들만 하는 거 아니냐?”
“와 그럼 너 치어리더랑 사겨 봄?”
“우리 유명해졌는데 막 전 여친 등판하고.”
“안 돼! 연애는 안 돼!”
점점 과몰입한다. 어휴 초딩들. 이주혁이 조련사처럼 그들을 진정시킨다.
“얘들아 데시벨 좀 줄이자. 또 윗집에서 항의 들어온다.”
“맞아 개소리들 좀 그만해.”
이안이 한숨을 쉬었다. 이거 완전 명절 때 달라붙는 사촌동생들 같았다.
“실시간 반응에 학폭남 누구냐고 올라왔어.”
“이열~ 쩐다.”
이안의 태블릿 패드는 어느새 이 그룹의 공공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좁은 방에 2층 침대를 2개 들여놓으면 방이 꽉 찬다. 그렇게 네 명이서 한방이니. 누구든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안이 저거 보고 다른 데서 연락 오는 거 아니야?”
“에이 그럴 리가 있겠어요, 형?”
그래 봤자 몇 분 나오지도 않구만… 이안은 괜한 기대를 접었다. 안 그래도 얼굴 때문에 주변에서 떠받들어 주니 마음이 느슨해질 때가 있다. 항상 겸손해야지. 괜히 방심해서 어디서 꼬투리 잡히면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 * *
“뭔가 다들 매력들이 없네.”
기억상실에 걸린 프로파일러와 베테랑 형사의 수사물 ‘블랙 아웃’의 감독 차준호는 배우 지망생들의 프로필을 하나둘 넘기고 있었다.
지금 찾고 있는 배역이 주연 배우와 붙는 씬이 있었고, 결정적인 증거를 남기는 비중 있는 단역 역할이었다. 그가 찾는 배우는 이 역할을 소화할 수 있어야 했다.
작가가 대본 수정을 자주 하는 편이라 급하게 정해진 배역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여유롭게 고를 시간이 없었다. 차준호가 몇몇의 데모 필름을 살펴보는 사이 그의 벨소리가 울렸다.
[뭐 하냐?]“왜요? 나 바빠요.”
[아 거, 새끼 되게 까칠하네.]전화를 건 사람은 이상혁이었다. 차준호와는 같은 대학 선후배 사이였다.
[내가 진짜 괜찮은 애를 찾았거든? 너 지금 하는 드라마에 자리 없냐?]“이 형 귀신같네. 그래서, 청탁이에요?”
[아니 그냥 추천. 애가 싹수가 괜찮더라.]차준호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신인 발굴의 달인. 그 이상혁이 누구 꽂아 달라는 청탁도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추천을 한다고? 자세를 고쳐 앉은 차준호가 떡밥을 물었다.
“데모 있어요?”
[그건 없고, 오늘 저녁에 나오거든. 내 드라마에.]“자세히 말해줘 봐요.”
[톡으로 사진 보냈다. 너 나중에 나한테 술 사라.]전화를 끊은 차준호가 K사의 편성표를 검색했다.
그리고 다음 날, 박주민 대리의 폰에 등록되지 않은 폰번호가 찍히게 된다.
* * *
“좋아. 이정도면 된 것 같아.”
이주혁이 녹음 부스에 있는 이안을 불렀다. 타이틀 곡은 정세준의 곡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진에게 듣기로는 아위의 자작곡은 3집에서나 실린다던데 벌써 이주혁과 박진혁이 작곡 작사한 곡이 앨범에 실릴 예정이었다. 이미 미래는 바뀌고 있었다.
“잘했어요?”
“잘했어. 특히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이 부분이 좋았어.”
“좋아. 다 끝났다.”
이주혁이 후련하게 등을 쭈욱 뒤로 기댔다.
“노래 좋아요, 형들.”
“그래?”
“잘돼서 저작권 달달하게 땡겼으면 좋겠다.”
이주혁이 미리 김칫국을 마시는 박진혁을 툭 쳤다.
“그렇게 생각하면 반대로 된다. 넌 바로 촬영 들어가?”
“넵. 좀 이따 가야 해요. 형들은요?”
“우린 후작업해야지. 이따 보자.”
아직 허접이라 오래 걸린다며 끙 앓는 소리를 냈지만 둘 다 표정은 좋아 보였다. 이안이 씩 웃었다. 노래 진짜 좋은데. 이안의 개인적인 생각뿐만이 아니다.
듣기로는 그들의 자작곡이 소속사 사람들에게 했었던 블라인드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했다. 타이틀 후보 최종 3선발까지 올랐다고 했었으니 다음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 * *
이안은 차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가 타고 있는 건 아위 전용 밴이었다.
“형, 에어컨 좀 더 시원하게 틀어 줄 수 있어요?”
“어 그래 미안, 낮춰 줄게.”
아위의 매니저로 온 박동수는 즉시 에어컨을 조정했다. 그는 강단 있으면서도 멤버들에겐 강압적이진 않았다. 성격도 착한 게 이 회사 사람들은 다 순둥한 사람들만 모였나. 그래도 신인 관리한다고 공포를 조장 한다든가 억압하는 사람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이안은 박주민을 통해 받은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고 촬영장으로 향하는 중이였다.
[이상혁 피디 추천이면 장감독인가? 흠… 아닌가 걘가?]‘어차피 가면 알게 될 건데 뭘 유추까지 하고 앉아 있냐.’
[그래도 궁금하잖아.]박주민은 처음 온 캐스팅 제안에 흥분해서 주요 정보를 빼놓고 말했다. 참, 사람은 좋은데 어딘가 나사가 빠졌다.
이상혁의 추천으로 연락하게 되었다는데, 자세한 설명은 없고 일단 촬영장에 왔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데뷔도 안 한 주제에 재고 따질 일도 없고 진이 이거 별로 안 흥한다 어쩐다 말만 꺼내면 괜히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이안은 데뷔 후에는 진을 자신 전용 위키로 쓸 예정이었다. 까란 대로 까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는 아직 진의 정보가 별로 소용없을 때였다.
‘그래도 연락 올 정도면 대사 몇 줄 있는 것 같은데.’
대본을 미리 받지 않아 불안했다.
그리고 대본이 왜 미리 없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이안은 감독의 얼굴을 보고 1차로 놀라고. 작가의 이름에 2차로 놀랐다. 그리고 자신과 대사를 주고받을 주연 배우를 보고 또 놀라게 된다.
[와, 지금 보니까 이렇게 뭉치기도 쉽지 않은 조합인데.]진도 흥미로운 듯 그들 주위를 돌아다녔다. 이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정지윤 작가. 하도 변덕이 심해서 쓰고 있는 시나리오가 널을 뛰듯 바뀐다. 그 성격 때문에 대본의 여왕이라 불린다.
그럼에도 글발은 좋아서 일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쪽대본 날리는 본인도 자각하고 있는지 감독 및 배우들 눈치를 본다. 그렇기에 배우의 돌발행동에 관대한 편.
주연 배우 조민환. 선후배들이 입 모아 말하는 연예계 인싸. 성격 좋고 붙임성도 좋고 아이디어도 통통 튀는 사람이었다.
‘저 감독님이랑은 작업 안 해 봐서 모르는데 어때?’
[연출력도 뛰어나고 정중하지. 의견 수렴도 잘하고. 근데 너무 관대하다는 게 단점. 나쁘게 말하면 납득충이란 거지.]그리고 그 셋의 공통점. 바로 애드리브 성애자라는 것.
미래에도 유명해질 애드리브 3대장이 한 드라마에 모였다.
“일단 미리 얘기도 없이 급하게 부른 거 사과할게요.”
“아닙니다, 감독님.”
이안이 꾸벅 인사했다. 차 감독이 대본을 건넸다.
“고등학교2017에서 연기 잘 봤어요. 이 감독님한테 들어 보니 암기력도 좋다고 하길래… 할 수 있죠?”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의도 바르네. 차 감독이 껄껄 웃었다. 감독은 몇 가지를 더 당부하곤 바로 일에 몰두했다. 주연 배우들이 점심을 먹으며 대화하는 신이었다.
이안은 그걸 구경할 새도 없이 적당한 곳에 서서 대본을 살펴보았다. 감독에게 듣기로는 배달원 역할이라는데 역시나 대사는 얼마 없었다.
‘애드리브 성애자들이 모였는데 대본대로 하기엔 아쉽지.’
[알지 알지. 이 기회 놓치면 바보지.]흠… 이안이 대본에 몰두했다. 요새 안무 연습에 녹음까지 겹친데다가 앨범에 들어갈 콘텐츠에 바쁜 터라 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시놉시스를 잘 알지 못했다. 이안이 물끄러미 진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나도 작가나 감독, 배우는 잘 알아도 드라마를 잘 챙겨 보지 않아서 잘 몰라.]위키가 부실하네. 이안이 입을 삐쭉 내밀곤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어때?]‘감이 잡힐 것 같기도?’
“이야, 이 친구 되게 잘생겼네.”
“안녕하세요, 선배님.”
“너무 딱딱하게 그러지 마~ 형이라고 불러. 배달원이 너라고? 이름이 뭐야? 말 놔도 되지?”
“네, 형. 최이안이라고 합니다.”
“이름도 얼굴값 하네. 난 조민환이라고 해.”
마침 촬영이 끝난 조민환이 이안에게 다가갔다. 베테랑 형사 역을 맡은 그는 권총 홀스터를 옆에 착용하고 있었다. 프로파일러를 맡은 다른 주연 배우는 단독 신이 있어 오지 않았다.
“어쩐지 이 근처에만 사람이 많더라.”
“네?”
“아까 전부터 사람들이 너만 쳐다보는데 몰랐어?”
이안이 두리번거리자 몇몇이 고개를 돌렸다. 단역 배우들과 시간이 비는 촬영 스태프들. 배우들의 스태프들까지도 이안의 주변에 자리 잡고 서 있었다. 이안이 눈치챈 듯 보이자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음… 그렇게 도망 안 가셔도 되는데.”
이안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 사이 체구가 작은 여성이 후다닥 달려와 조민환의 메이크업을 수정했다. 그러면서도 흘끔흘끔 이안을 쳐다보는 걸 잊지 않았다.
“민지 저거, 귀 빨개진 거 봐라.”
“아니거든요!”
“대놓고 보셔도 돼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는 최이안에 조민환이 웃었다. 그리곤 주변 스태프들에게 ‘나 얘 맘에 들어.’라고 전했다. 몇몇 스태프이 웃었다. 소란스러움에 드라마 비하인드를 찍는 카메라가 그들 근처로 다가왔다.
최이안은 꽤나 뻔뻔해졌다. 솔직히 이 얼굴을 가지고 관심에 수줍어한다면 그건 기만이었다. 이안은 노선을 ‘내가 잘생긴 거 내가 제일 잘 알고 내가 제일 잘나감’으로 잡았다.
“근데 배달원하기엔 너무 부내 나게 생기지 않았어요?”
이미 조민환의 스타일리스트는 이안 옆에 붙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심을 채우려는 듯 이안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침 앞머리도 길어서 여길 이렇게 만지면 괜찮을 것 같은데… 아, 혹시 따로 스탭이 있나요?”
괜한 참견은 자칫하면 월권행위가 되어 버릴 수 있다.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직….”
“민지야 오빠는?”
오빠 삐진다? 조민환이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그래도 타고난 체구는 숨길 수 없었다. 이안이 하하 웃었다. 예전부터 변함없는 사람이었구나.
김용민 시절에도 눈에 띄지 않은 단역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겨 주던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막 주연을 맡은 배우지만, 미래에는 두 작품의 천만 영화에 출연한다.
“대본은 다 봤어?”
“네. 근데….”
“뭐가 걸리는 게 있구나?”
아무리 애드리브 성애자라도 지켜야 할 선은 있다고 생각한다. 이안은 전생 시절에도 애드리브를 칠 상황에서는 적어도 합을 맞출 상대 배우와 사전에 합을 맞춰 보고 결정했었다.
“이 부분이요. 대사 좀 추가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