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12
112
그거로는 부족해.
그날, 영상통화 팬사인회의 후기가 하나둘 뜨기 시작하면서 다른 아이돌 팬들의 관심도 쏠렸다.
-남친이랑 영통한다면 이런느낌일까
-중간에 마뜨지 않게 애들이 잘하더라 애들 대응 다 늘었어ㅠㅠㅠㅠ
-아 안되겠다 나 앨범 산다 컷수 얼마야?
-내돌도 영통팬싸 공지떴다
후기를 본 팬들이 다음 회차의 팬싸컷이 점점 올라가고, 다른 아이돌도 영상통화 팬사인회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물론 호의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었다.
-외퀴껴서 컷 돌았던데 이럴거면 존버했다가 대면팬싸가지 ㅅㅂ
-아 내돌팬싸 네트워크 상태 안좋다고 뚝뚝 끊기고 난리났다ㅠㅠ
-최애가 아니라 내가 할말없어서 아진짜요? 하게되더라ㅋㅋㅋㅋㅋㅋ
보통 팬사인회를 하는 팬들은 늘 가던 사람들만 가는 일명 ‘고인물’들이 많았다. 영상통화 팬사인회도 다르지 않았는데, 이안이 이미 얼굴을 익힌 홈마 아이언하트도 영상통화 팬사인회를 늘 출석했다.
(이안아 이거 봐 봐.)
“네? 에이, 우리 앨범이잖아요.”
(여기 뭐가 허전하지 않아?)
“…어?”
그녀가 보여 준 앨범에는 ‘To. 아이언하트’라고만 쓰여 있고, 아무것도 없었다.
“제가 사인을… 안 했네요?”
이안의 반응에 아이언하트가 까르륵 웃었다. 이안이 곧 심각하게 표정을 굳혔다. 팬사인회인데 사인이 없다니!
“와 진짜, 진짜 미안해요, 누나. 새 앨범에 다시 해서 보내 드릴게요.”
직접 마주하고 사인 앨범을 건네는 대면 팬사인회와는 다르게 영상통화 팬사인회는 소속사에서 준비한 앨범에다가 사인해서 택배로 보내는 방식이라, 종종 사인을 빼먹기도 했다.
이안의 진지한 표정에 아이언하트가 손사래를 쳤다. 그녀도 눈치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아냐 아냐! 나 집에 사인 앨범 많은 거 너도 알잖아. 그냥 사인도 안 하고 보낸 니가 귀여워서, 이런 일도 있었다고 얘기하는 거야.)
“아니 그래도 팬사인회인데 사인을 안 했다니… 왜 안 했지?”
이안이 앓는 소리를 냈다. 팬 매니저가 이제 그만 끊으라는 손짓을 했다.
“제가 꼭 보내 줄게요. 매일 같이 통화해 줘서 고맙고. 잘 자요.”
(안녕! 내일 또 봐!)
아이언하트를 마지막으로 오늘 팬사인회는 끝났다. 이안이 팬매니저에게 말했다.
“누나 방금 들으셨죠? 저 앨범 좀 주세요.”
“어, 여기.”
“앞으로는 사인도 잘했는지 봐야겠네….”
팬매니저는 앨범 하나를 가져와 이안의 앞에 놓았다. 이안은 사인과 함께 장문의 메시지를 적었다.
“이거도 같이 보내 주세요.”
팬매니저가 아이언하트에게 보낼 택배 박스에 앨범을 담았다.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영상통화 팬사인회의 장점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덜 받는다는 점이다. 스케줄 사정 때문에 밤 10시부터 시작했던 팬사인회는 11시 30분이 되어서야 끝났다.
“이안이 고생했어.”
“넵, 먼저 들어갈게요.”
오늘은 그룹 단체 팬사인회가 아니라 개인 팬사인회였다. 아위는 각자 빈 회의실이나 연습실에 가서 팬사인회를 했다.
이안이 회의실을 나서자, 마침 앞에 서 있던 김주영을 마주쳤다. 그는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동수 형이 주차장 쪽으로 나오래.”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전 팬싸에서 앨범에 사인 안 하고 보냈더라 너도 그랬어?”
“헐, 너도? 나도. 팬 두 분이 사인이 없었다고 해서 그거 써서 보냈잖아.”
“까먹지 않게 조심해야겠어.”
마침 팬사인회를 끝마치고 연습실에서 올라오던 박진혁도 이안의 옆으로 왔다.
“얘들아 나 아까 사고 쳤어.”
“뭐?”
“우리 잡지 촬영했다는 거 말해 버려가지고 동수 형이 나 완전 째려봤잖아.”
“아 형, 진짜.”
스포요정 또진혁은 이미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혀서, 그의 팬사인회에는 박동수가 늘 참관했다.
“근데 뭐 어때… 한국 잡지 아니니까 괜찮을 줄 알았지.”
“지금 쯤 일본 팬들한테 소문 다 나는 거 아니에요?”
“언제 왔어? 아야.”
뒤따라오던 박서담이 박진혁의 팔뚝을 꾸욱 눌렀다.
“비밀이랬는데 자꾸 스포할 거예요, 형?”
“미안합니다.”
늘어만 가는 아위의 인기는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어졌다. 음방 외에 화보 촬영 스케줄이 있었는데, 일본 잡지에 실릴 예정이었다.
“이안이는 그쪽에서 별말 없대?”
“없지, 자기 집에 불났는데 내 생각이 나겠어?”
“크, 아깝다.”
이안도 우상유니 이후 중국에서 인기가 많아졌다. 그 덕분에 화보와 광고가 제의가 들어왔으나 코로나로 인해 무기한 연기되었다.
아위 멤버들은 익숙하게 밴의 문을 열었다. 밴에는 이미 김명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얘들아 막방까지 고생 많았어.”
“형도 고생 많았어요.”
아위는 4주를 꽉 채운 음악방송을 끝으로 이번 앨범 활동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늘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이안아, 우리 무대 직캠 떴는데 모니터 하쉴?”
“좋아.”
이안이 박진혁의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잔잔하게 흐르다가 클라이맥스 부분에 비트가 휘몰아치는 부분에서 화면 속 이안이 표정을 찡그리며 노래를 부른다.
“와 여기 표정 오졌다. 이렇게 찡그리는 거. 미리 생각해 둔 거야?”
“의도한 건 아닌데, 저절로 나왔나 봐.”
“오.”
박진혁이 짧게 감탄을 내뱉었다. 이주혁은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보고 있었는데, 그 화면을 옆에서 흘끔 쳐다본 김 현이 화제를 돌렸다.
“근데 아까 봤어? 1위 발표 때?”
“아, 뒤에서 손잡고 계시던?”
“와 무슨 팬 없다고 그렇게 대놓고 손을 잡냐?”
“현아 부럽다면 부럽다고 말을 해.”
이주혁이 핸드폰 화면을 끄고 김 현에게 일침했다. 김 현이 입을 꾹 다물고 호두 같은 턱을 만들었다. 조태웅이 하하 웃으며 김 현을 약 올렸다.
‘저 형 뭐 보고 있었냐?’
[파트 분배 논란.]‘아직도?’
인기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신곡이 나오면 이 파트는 누가 불렀는지, 파트는 몇 초를 받았는지 누군가 정리해서 올린다.
아위는 이번 활동 곡에서 몇몇 멤버의 파트가 눈에 띄게 적었다. 곡의 느낌을 잘 살리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줬기 때문이다.
-태웅이 파트 이게 끝이야?
-아 뭐라 하지도 못하겠고ㅋㅋ 같은 멤버가 작곡하면 이게 문제야ㅋㅋ
-얼마나 못하면 파트가 적냐?
└이때싶 돌려까기 오지네
-근데 다른 곡에는 파트 많은데?
└다른곡이면 뭐해 타이틀이 수납인데
이걸 빌미로 까는 악성 개인 팬이나, 어그로들은 많다. 그리고 파트 분배 논란은 다른 아이돌도 겪는 일반적인 일이었다. 단지 아위 멤버들이 웹 서핑을 너무 잘 한다는 게 이런 사소한 논란에도 신경을 안 쓸 수가 없게 만들었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우리 숙소 가서 야식이나 땡기자.”
조태웅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대화를 엿듣던 김명진이 오른손을 들었다.
“안 돼. 야식 금지야.”
“왜요!”
김명진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너네 요즘 우리가 관리 안 한다고 운동 안 하지? 방송에서 보니까 얼굴 많이 빵빵하더라. 특히 주영이.”
“아 안 돼!”
김주영이 마른세수를 하며 비명을 질렀다.
“내일부터 식단 조절 들어갈 거야.”
“아, 형. 우리 활동도 끝났잖아요.”
“관리는 일찍 해 두는 게 낫지.”
“저 형 큰일 났어. 점점 동수 형이랑 닮아가.”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멤버들이 저마다 앓는 소리를 냈다. 남자 아이돌 매니저 일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김명진은 멤버들의 애원도 제법 무시할 줄 알게 되었다.
“내일부터면 오늘 마지막으로 야식 먹으면 딱인데.”
“안 돼. 몰래 먹으면 운동 강도 올린대. 그리고 이제 오늘 아냐, 어제야.”
김명진이 12시를 넘은 시계를 가리키며 웃었다.
* * *
“다 끓였어?”
“어, 수저 좀 놔 주라.”
물론 그 말을 들을 멤버들이 아니었다. 숙소에 도착한 멤버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주방을 찾았다. 김주영이 라면을 끓이고, 멤버들이 앞 접시와 수저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우유 없나? 우유가 붓기 빼는 데 직빵인데.”
“없는데… 근데 얼굴 부어서 티 나도 어쩌겠어요. 이미 먹어 버린걸.”
박서담이 면발을 후후 불다가 후루룩 소리 내며 면을 입에 넣었다.
“와 미친, 주영이 형 나중에 장사해요.”
“나도 그럴까 생각 중이야.”
강도 높은 운동보다 먹는 게 우선인 멤버들은 사이좋게 라면 열 봉을 다 해치웠다.
아까부터 라면을 깨작깨작 먹으며 뭔가를 생각하던 이주혁이 젓가락을 거칠게 내려놓고선 말했다.
“얘들아, 우리 유닛 활동할래?”
“어?”
“아니면 각자 솔로 내는 건 어때? 디싱으로. 프로젝트 이름은 ‘주간 아위’가 좋겠어.”
물을 떠 온 박서담이 말했다.
“우리 마이튜브에 커버 곡 많이 올리잖아요.”
“아냐 그거로는 부족해. 내가 너네한테 잘 맞는 곡 만들어 줄게.”
“아 형, 내 물인데!”
박서담이 떠 온 물은 박진혁이 뺏어 다 마셨다. 그들이 투닥거리는 사이 조태웅이 어깨를 으쓱했다.
“형이 그러고 싶으면 해.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할 일도 없고.”
“사실 솔로곡 한 번쯤 내보고 싶었어.”
이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주혁의 눈빛을 빤히 쳐다보았다. 투지가 엿보이는 눈빛, 파트 분배 논란에 의기소침해 있는 게 아니라 이를 갈고 있었던 거였나.
사실, 멤버들이 하기 싫다고 해도 밀어붙이려 했던 이주혁이 미소 지었다.
“그럼 내일 동수 형한테 말해 볼게.”
이주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 방에 들어가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이안이 고개를 쭉 빼고 방으로 들어가는 이주혁의 등을 보며 말했다.
“형 너무 무리하진 말고.”
“괜찮아.”
이주혁은 웃고 있었지만, 눈이 웃고 있지 않았다. 그는 파트 분배에 대한 논란은 생길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활동을 위해 노력했던 동생들을 폄하하는 반응은 참을 수 없었다.
‘다신 실력 없다는 소리 안 나오게 해 준다.’
이주혁의 방문이 닫히고 이안이 한숨을 쉬었다. 어그로에 휘둘리는 것도 안 좋은데, 어쨌든 좋은 방향으로 휘둘리는 거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우리 챙겨 주는 건 고마운데 저러다 병나는 거 아냐?”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둬, 저 형은 뭐에 꽂히면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
김 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남은 국물에 밥을 투하했다. 멤버들의 숟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쓸데없는 오지랖이지.]자기 밥그릇 챙겨도 모자랄 판에 동생들 곡까지 써 주겠다니 진은 이주혁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 * *
요일별 공적 마스크를 판매하고, 점점 코로나의 전염이 소강될 즈음, 드라마와 영화 촬영이 재개됐다.
아위도 두 번의 화보 촬영을 했고, 이안은 따로 두 번의 개인 화보를 더 찍었다.
그리고 광고 촬영이 남아 있었다. 곧 군대에 동반 입대하게 될 마이디어가 모델인 광고가 계약 만료가 되면서 그중 많은 수가 ‘트로트의 남자’ 출연진, 그리고 아위에게 제안이 왔다.
“안녕하세요!”
그중 하나인 화장품 광고 촬영 현장에 도착한 아위가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파우더 룸으로 도착한 아위는 광고 콘티를 보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상큼한 표정은 어떻게 짓는 거야?”
“이렇게?”
“아, 나 보고 하지 마라.”
조태웅이 한껏 미소를 짓자, 김 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 팬송할 때처럼 하면 되지 않아요?”
“그건 상큼하다기보다는… 아련한 느낌 아니었냐?”
“촉촉하게 웃으라는 게 무슨 말이야?”
멤버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 광고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