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2
12
배달원 김태민. (1)
S31. 치킨집 앞 골목 (낮)
-지원과 싸운 해준이 골목에서 누군가를 찾는다.
-배달원은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가려다 해준에게 걸려 멈춘다.
해준 – (손 까딱까딱) 야, 배달.
배달원 – 에이씨, 왜요.
해준 – 너 나한테 할 얘기 없냐.
배달원 – 뭐요.
날림대본이라더니 행동에 대한 묘사도 없고 상황 설명도 제대로 없었다. 명색이 주연과 붙는 역할인데 단역 연기 지문은 더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닌가? 하긴 디렉팅은 감독 소관이니.
이안은 그래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배달원의 이름은 김태민. 아직 어린데 왜 배달원을 하는가. 집안 사정이 안 좋은 것으로.
왜 배달원이 해준을 피하는가? 어렸을 때 범죄를 저질러서 소년원에 갔었고, 그를 직접 넣은 게 해준이라는 설정으로.
갑자기 할 얘기 없냐는 거로 시작하는 것을 보니, 마치 배달원을 잡범 취급하는 뉘앙스다. 범죄에 절도도 추가.
이안은 스태프가 건네준 조끼를 걸쳤다. 포켓이 여러 개 달린 조끼에는 배달 앱 마크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따로 테이프를 붙여 가리지 않은 것을 보니 PPL이었다.
해준 – 너 여기 돌아다니면서 수상한 사람 못 봤냐. 목에 흉터 있는 사람.
배달원 –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보는 사람만 몇 명인데.
해준 – 야, 너 기억력 좋잖아.
기억력이 좋아서 형사가 개인적으로 찾아올 정도로 똘똘함.
해준 – (몽타주를 배달원에게 보여 준다) 잘 봐 봐. 목에 이런 흉터 있는 놈이거든?
배달원 – 아, 저 바빠요.
해준 – 혹시 배달하다가 보면 나한테 연락 좀 줘라.
배달원은 짜증을 내면서 해준의 명함을 가져간다.
대본은 여기서 끝이다. 이안은 계속 대기하다가 저녁시간대에 한 신을 더 찍게 된다. 이안은 자신의 머리를 대충 흩뜨려놓았다.
“자 바로 들어갈게요!”
차감독의 말에 이안은 대본을 매니저에게 건넸다. 박동수는 대본을 받으면서 잘하라며 주먹을 내밀었다. 이안이 피식 웃었다.
미리 준비된 소품을 들고 감독의 지시에 따라 치킨집 앞에 섰다. 큐사인이 울리고 이안이 배달봉투를 들고 오토바이에 실었다.
“야, 배달.”
“에이씨, 왜요.”
이안, 아니 이젠 김태민이 된 가상의 인물이 짜증스럽게 뒤를 돌아봤다. 형사의 모습을 한 조민환이 이안에게 다가온다.
“너 나한테 할 얘기 없냐.”
“뭐요.”
조민환이 얼굴을 이안에게 들이민다. 덩치 큰 형사가 압박하듯 몸까지 밀착한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형사의 눈빛에 반항적이었던 배달원이 눈을 내리깐다.
이안은 여기서 대사 하나를 추가했다.
“뭐… 뭐요.”
지긋이 쳐다보는 형사의 눈빛에 진짜 뭐가 찔리는 듯 쫄은 모습. 반복된 대사를 치는 것에 저 신인이 대사를 까먹었나 싶어 감독이 컷을 외치려는 찰나였다.
“아니… 나 진짜 아무 짓도 안했어요!”
“진짜?”
조민환이 기다렸다는 듯 받아친다. 차감독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촬영감독이 눈치 좋게 그들의 얼굴을 줌 인 한다. 숨 막히는 분위기. 여기서 이안이 소리친다.
“아 닭 다리 하나 빼먹었어요!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이에요?!”
“다른 건 몰라도 닭 다리는 범죄지 이 배달 거지 새끼야.”
조민환이 이안의 뒤통수를 쳤다. 아씨! 이안이 짜증 내며 자기 뒤통수를 문지른다. “그래서… 저 잡혀가요?” 눈을 흘기며 몸을 움츠린다. 정말 찌질한 모습이었다.
계속해서 주어진 대사를 치고, 차 감독이 컷을 외쳤다. 단 한 번 만에 NG 없이 넘어갔다. 감독이 모니터를 하러 오는 조민환에게 물었다.
“이야 단순한 상황에 재치를 불어 넣네, 역시 민환 씨야. 구석에서 서로 얘기하던 게 이거 때문이었구나?”
“감독님 전 한 거 없어요. 저 친구가 제안한 거예요.”
“진짜?”
“네. 와 얼굴도 잘생긴 게 아이디어도 좋고 아주 난놈이에요. 난 배달 거지가 있다는 것도 오늘 알았어요. 감독님은 아셨어요?”
“어, 나는 딸한테 들어 봤지. 이안 씨? 와서 모니터해요.”
대본도 방금 전에 받은 그 상황에서 커뮤니티에 돌던 이슈거리를 가져오다니. 그것도 자기 대사를 추가하기 위해서. 참으로 맹랑한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역시 애드리브 성애자인 감독은 좋아서 흐뭇하게 웃었다.
“이 감독님이 괜히 추천한 게 아니네.”
“저 사람… 저 사람 누구예요?”
“아 깜짝이야. 정 작가. 여기서 뭐 해? 대본 쓰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은 또 있었다. 쪽대본의 여왕 정지윤 작가였다. 정 작가는 현장에서 촬영하는 걸 보면 글이 잘 써질까 하고 현장에 도착한 참이었다.
안 그래도 급한데 촬영까지 보겠다니, 보조 작가가 옆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가 다가오는 이안을 향해 입을 벌렸다.
“와씨… 존잘.”
“야, 너는 작가라는 얘가. 어머.”
화면으로도 믿기지 않는 외모인데 가까이 오니 장난이 아니었다. 이미 보조 작가의 얼굴은 새빨개졌다. 이안이 꾸벅 90도 인사를 했다.
“우리 드라마 정지윤 작가님.”
“안녕하세요.”
“정 작가, 같이 모니터해 보자. 뭔가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사실 이안은 진을 통해 더 다양한 각도에서 자신의 연기를 되돌아볼 수 있지만, 감독의 제안에 냉큼 다가갔다.
‘으… 맘에 안 드는데.’
[왜? 잘했는데? 맘에 안 들면 다시 찍자고 하든0가.]이안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스태프들이 하나같이 다크써클이 진했다. 안 그래도 쪽대본판인데 단역이 다시 찍자고 나대면 분위기 완전 이상해질 것 같았다.
차 감독은 정 작가의 눈치를 보았다. 대사 합도 잘 맞고 배우 간 케미도 상당했다. 이걸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대본 좀 빨리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정 작가는 한참을 말없이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났다. 감독의 바람이 먹힌 것이다.
“저… 가야겠어요.”
“정 작가… 뭐 떠오른 거 있어?”
기대에 찬 감독의 음성에 주변 스태프들마저도 귀를 쫑긋했다. 쪽대본은 배우도 지치고 감독도 지치고 스태프도 지친다.
정 작가는 막히는 거 뚫리면 완전 고속도로이니 다들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 되겠어. 지혜야.”
“네. 작가님, 여기요.”
보조 작가가 후다닥 노트북을 꺼내 벌려 주었다. 작가는 바닥에 철퍼덕 앉아 자판을 와다다다 두들겼다. 차 감독이 기뻐서 웃음을 터뜨리다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이안 씨 연기 너무 잘했어요. 진짜 진짜 고마워요.”
정 작가한테 영감을 줘서. 차 감독이 이안의 손을 간절히 잡았다. 덩달아 조민환도 이안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의 얼굴에도 웃음이 한가득이었다.
이 이후에 이안이 찍을 건 없다. 몽타주의 인물을 어디서 봤다고 문자 메시지로만 잠깐 등장한다.
“아닙니다. 감독님.”
“나중에 나랑 작품 하나 같이하자?”
“형이 저 챙겨 주시는 거예요?”
이안이 웃었다. 미래의 천만 배우에게 이런 제안이라니 황송하기 그지없다. 조민환은 빈말이 아니었는지 매니저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받아 이안에게 내밀었다.
“그러엄~ 자, 번호 찍어.”
“어… 일단 제 번호는 찍었는데요 형. 제가 폰을 쓸 수가 없어요.”
“쓸 수가 없어? 왜? 고장 났나 봐?”
“회사에 반납했거든요. 매니저 형!”
회사에 왜 반납을 하지? 감독도 이안을 쳐다보았다. 아위의 매니저 박동수가 후다닥 달려와서 명함을 내밀 때까지도 조민환은 이해 못 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단 이쪽으로 연락주시면….”
“회사에 반납을 했다고?”
박동수의 명함을 일단 받은 조민환이 되묻는다. 이안도 덩달아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문제라도?
“저 음방 1위 해야 돌려받을 수 있거든요.”
“음방 1위? 너 배우 아니었어?”
“아뇨 저 AWY라고… 12월에 데뷔하거든요.”
“아이돌?”
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민환이 어이없는 듯 허어 숨을 뱉었다. 차 감독도 금시초문인 얼굴인 걸 보아하니 이상혁 감독에게 들은 적이 없었나 보다.
“야 나는 너 마스크도 배우상이고 연기도 잘하길래 신인 배우인 줄 알았잖아.”
“하하 칭찬 감사해요, 형.”
“와 이거 보소? 그럼 아직 정식 데뷔도 안 했는데 애드립 제안까지 한 거야? 와 이 짜식.”
조민환이 기특한 듯 웃었다. 예의도 바르고 얼굴도 잘생겼고 제 몫도 챙길 줄 아는 야무짐까지. 무엇보다 연기를 잘해서 막힘없이 신을 넘어간 게 맘에 들었다.
“일단 저장해 놨어. 문자 보내 놓을게.”
“네. 형. 근데 그거 아세요? 형이 제 번호 받아 간 첫 연예인이에요.”
“그래?”
봤지? 나 이런 사람이야. 조민환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깨를 으쓱댔다.
“그럼 이제 바쁘겠네요?”
“네 감독님. 이제 데뷔도 얼마 안 남아서….”
“정 작가 저러는 거 보면 추가 촬영 할 일이 생길 것 같은데….”
“그런가요? 제가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안이 매니저를 돌아보았다. 박동수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신들린 듯 자판은 두들기고 있어도 귀는 열려 있던 정 작가가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성큼성큼 걸어와 감독을 붙들었다.
“감독님. 저분 등장 씬 있습니다. 잡아야 합니다.”
“어떻게, 시간 내주면 안 될까요?”
빠르게 태세를 전환한 감독이 이안을 쳐다보았다.
“많이 나오는 씬은 아니거든요? 시간도 오래 안 걸릴 거예요.”
“대본 빨리 나올 것 같아?”
“내일. 내일까지 쓸게요.”
정 작가는 이안이 신인 배우인 줄 알고 방심했다가 누가 머리를 한 대 후려친 느낌이었다. 신인 배우면 당장 언제 오라고 해도 달려와 줄 테니까. 하지만 바쁘다니!
지금 급하게 쓰고 있는 부분이 부족했던 범인에 관한 내용이었고 그 범인을 제일 먼저 알아보는 배달원의 신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냥 나오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게, 애초에 이 날림 쪽대본 상황은 작가 탓이고. 일회성으로 쓰일 단역이라 미리 며칠 섭외 제안을 하지 않아서 더욱 그랬다.
감독과 작가가 간절히 쳐다본다. 조민환과 보조 작가도 그리고 스태프들도. 이 잠도 못 자는 상황을 타개해 줄 사람이 이안이라고 다들 생각했다.
이안이 박동수를 쳐다보고 박동수는 핸드폰을 보며 일정을 체크했다. 이안이 더 나와 주면 회사 입장에서도 이득이었다.
[안무 빡세게 따라가야겠네. 할 수 있겠냐?]‘…해 봐야지.’
뮤직비디오 추가 촬영분도 찍어야 했고, 사진도 추가 촬영이 남았다. 그리고 안무 연습도 해야 하고 틈틈이 자체 콘텐츠까지 찍으려면 추가 촬영 할 시간은 연습 시간뿐이었다.
“너 연습 시간 까야겠다.”
“…네.”
마침 매니저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작가와 조연출에게 다가가 일정을 조율했다.
드라마 출연진들의 잠을 구했지만 정작 자신의 잠을 구하지 못했다. 연습실 구석에서 쪽잠을 잘 미래가 훤히 그려진 이안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어디 한 군데라도 얼굴 비추는 게 나은 선택이기도 하고, 결국 그의 애드리브가 먹혀서 분량이 늘어난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