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23
123
이안이는 빼 주자.
“컷! 태웅 씨, 자꾸 이렇게 할 거야?”
“제가 뭘요?”
뻔뻔한 조태웅의 대답에 윤 감독이 뒷목을 잡았다. 조태웅은 이안의 조언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캐릭터 구축대로 연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당연히 장면을 찍을 때마다 감독의 볼멘소리가 가득했다.
“전에는 내 디렉팅대로 잘하다가 이게 뭐야?”
“저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나랑 기 싸움이라도 하자는 거야?”
“에이, 제가 감독님께요? 설마요. 그냥 갑자기 슬럼프가 와서 그런가…. 감독님이 지도해 주신 대로 못 하겠더라고요. 왜 이러지?”
조태웅이 팔자 눈썹을 만들고 넉살 좋게 대답했다.
조연 배우와 감독의 기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건 늘 스태프들이었다. 조연출은 윤 감독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감독님, 시간이 없는데요. 다음 촬영 장소 대관 시간 짧아요.”
“에이씨!”
윤 감독이 들고 있던 대본을 거칠게 바닥으로 던졌다. 싸해진 분위기 속에서 조태웅은 생글생글 웃으며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를 시전하고 있었다.
“다음 촬영으로 넘어갑시다!”
윤 감독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배우 하나 콕 찍어서 공포정치를 일삼던 그는 역전된 상황에 화가 치밀었다.
이제 와서 배우를 교체하기엔 이미 방송 회차가 어느 정도 방영된 상태였고, 요즘 너무 억지를 부리다 보니 여론도 안 좋다는 걸 윤 감독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동하실게요!”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시청자들은 예전과 다르다. 이젠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조태웅의 예전 필모그래피와 이번 작품의 연기를 비교하면서 ‘저 감독 원래 디렉팅 못했는데 배우 문제가 아니라 감독 문제 아니냐.’라는 소리도 나오고 있었다.
“태웅아, 괜찮아?”
“네 형.”
얼음장 같은 촬영장의 분위기. 조태웅의 촬영을 따라온 아위의 매니저, 박동수도 긴장하고 있었다.
“니가 괜찮으면 됐는데…. 그래도 잘 조절해서 할 수 있지?”
“형, 나 못 믿어요?”
“너는… 그래, 믿긴 하는데.”
박동수는 혹시 모를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여차하면 녹화를 할 심산이었다.
사실 박동수도 그동안 조태웅의 촬영을 지켜보면서 윤 감독의 갑질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드라마는 원작이 있는 드라마라 작가의 권한이 적었고 연출이 모든 것을 휘어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나, 내가 너무 고집부리는 것 같아?”
조태웅은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맡은 민율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들은 조태웅이 아역 시절에 같이 작품을 했었는데, 대본 리딩 때부터 스스럼없이 말을 터놓는 사이였다.
“아니? 솔직히 좀 통쾌한데…. 저 감독 소문이 워낙… 그렇잖아? 직접 작품 해 보니까 더 거지 같아.”
“그래?”
민율아는 감독에게 이유 없이 찍힌 조태웅을 격려했다.
“그래도 스태프분들이 피해 보니까, 종방연 때 스태프들한테는 뭐라도 돌려.”
조태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촬영에서도 조태웅은 자신만의 연기를 펼쳤고 윤 감독이 뭐라 하면 모르쇠로 나갔다.
같은 장면을 똑같은 연기로 계속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었다. 진을 통해 촬영장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안이 흐뭇하게 웃었다.
‘잘하고 있군. 다른 스태프들 반응은 어때?’
[윤 감독 평판이 워낙 안 좋아서 반반이야. 윤 감독 참교육 솔직히 재밌다. 하던 대로 하지 촬영 시간 얼마 없는데 왜 고집을 부리냐.]‘나름 나쁘지 않네.’
스태프들에게라도 잘해 주지, 평판이 얼마나 안 좋았으면 이럴까. 이안은 이제 조태웅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안심했다.
“태웅이 왔나 보다.”
마침, 도어 록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조태웅이 숙소에 도착했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방에 있던 김주영도 거실로 향했다.
“촬영 어땠어?”
“좋았어.”
김주영에 이어서 각자 방과 화장실에서 나온 멤버들이 거실로 나와 조태웅의 안색을 살폈다. 어둡지 않고 후련해 보이는 표정에 이주혁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감독이 뭐래?”
“뭐라고 하긴, 겁나 화내더라. 그런데 내가 계속 똑같은 연기만 하니까 촬영 시간은 없고. 결국 넘어가더라고. 근데 최이안 얘는 어딨어?
“여기.”
조태웅은 식탁 앞에 앉아 있던 이안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손을 모아 기도 자세를 했다.
“최멘.”
“오냐.”
이안도 이젠 즐기기 시작했다.
-드라마 개재밌어짐
-조태웅 눈빛 연기 미쳤는데?
-뭐야 갑자기 각성함ㄷㄷㄷㄷ
-그러니까 범인이 조태웅인거야? 아닌거야?
“진작에 이럴걸.”
조태웅은 속이 후련한 얼굴로 대본을 폈다. 주눅이 들었던 예전과는 다르게 이제는 자신감이 붙어서 연기에도 물이 올랐다.
“컷! 뭐… 괜찮네.”
“다음 씬으로 넘어갈까요?”
조연출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반응이 괜찮아지자 윤 감독도 모른 척 연기에 대한 훈수를 두지 않게 됐다.
게다가 아위의 인기 덕분에 촬영 마지막 즈음에는 해외 수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서 감독은 더욱 말을 아꼈다.
“태웅 씨, 내 덕분에 우리 드라마에서 연기 변신도 하고 얼마나 좋아?”
“아, 예.”
기는 죽었어도 재수 없는 건 여전했다. 종방연 때 선물을 돌리던 조태웅은 선물을 윤 감독의 얼굴에 집어 던질 뻔했다.
* * *
조태웅의 드라마도 끝났다. 이주혁과 박진혁은 곡 작업에 매진했고 김주영과 김 현은 댄스 관련 예능에 잠깐 출연했다. 박서담은 M사 음악방송의 MC로 매주 음악방송 스케줄이 있었다.
“우리 게임 좀 하는 사람 누구 있지?”
그리고 오랜만에 단체 스케줄이 있었는데 바로 ‘아이돌 올림픽’이었다. 이번에는 PC 온라인 게임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저번 아림픽보다는 몸이 편하지만, 역시 분량을 따내기 위해서는 게임을 잘하는 게 좋았다.
이주혁의 물음에 이안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손을 들었다. 조태웅이 호들갑을 떨었다.
“너 게임 안 해?”
“폰 게임만 가끔 하는데. 아림픽은 PC 게임이잖아. 잘 안 해.”
PC 게임은 김용민 시절에 총 게임이나 우주 RTS 게임을 해 본 게 다였다. 요즘은 모바일 앱 게임이 많아져서 스케줄 중간마다 간단한 퍼즐 게임이나 했지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우리 게임마다 나갈 사람 정해야 하는데.”
“뭐 뭐 있어?”
이주혁이 종이를 펼쳤다. ‘그라운드 서바이벌’, ‘스페이스 마피아’, ‘러쉬 라이더’, ‘폴 휴먼스’ 등등 이안은 하나도 들어 보지 못한 게임들이었다.
“일단 ‘폴 휴먼스’는 단체로 나가는 거고, 이 중에서 각자 나갈 거 정해야 해. 중복으로 나가도 되고.”
“나 총 게임은 할 줄 알아.”
“그래?”
이안의 말에 이주혁이 ‘그라운드 서바이벌’ 옆에 이안의 이름을 적었다.
“난 다 할래.”
혼자 하는 것보다 단체로 하는 게 더 즐겁다. 김 현이 다 한다고 하자 박진혁과 조태웅, 김주영도 손을 들었다.
“나도 다 할래.”
“괜찮아 다들?”
“게임이잖아.”
어차피 폐막식을 할 때까지 집에도 못 간다. 핸드폰도 보지 않는 게 좋았다. 방송 카메라에 잡히면 태도가 불성실해 보이니까.
다른 사람이 게임을 하는 걸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재미가 없었다. 차라리 게임을 못 하더라도 출전하는 게 지루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럼 저도 다 할래요.”
“뭐야, 다들 다 나가? 우리 이거 다 할 수 있는 거야?”
“어차피 사람 오버되면 제작진이 알아서 솎아 줄걸?”
“그럼 나도 다 나갈래.”
이주혁이 ‘그라운드 서바이벌’에 적었던 이안의 이름에 빗금을 그었다. 그리고는 모든 게임 종목에다가 아위라고 적었다. 이주혁이 펜을 도로록 굴리다가 말했다.
“다들 스케줄 없지?”
“없지.”
“이거, 우리끼리 한번 해 볼래? 저기 상가에 피시방 있던데.”
“오, 좋아.”
멤버들이 벌떡 일어나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옷을 갈아입은 멤버들이 숙소 밖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우리 다 같이 게임 한 적은 없었지?”
“피시방도 진짜 오랜만이야.”
“그래? 연습생 때도 안 해 봤어?”
이안이 의외라는 얼굴로 멤버들을 쳐다봤다. 이안을 제외하고 다 같이 연습한 시간이 길어서 한 번쯤은 같이 게임을 해 봤을 것 같았다.
“게임 할 시간이 어딨어. 연습하느라 바빴지.”
“그래?”
“피시방에 사람 많지 않겠지?”
“열 시 넘었으면 미자들은 다 집에 간 거 아냐? 없겠지.”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아위는 곧장 피시방으로 향했다. 막힘 없이 길을 찾는 모습에 이안이 허허 웃었다.
“다들 게임 하고 싶었구나.”
박진혁과 김 현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스케줄을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면, 큼직하게 걸려 있는 피시방 간판에 사실 언제 갈까 위치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중학교 때 게임 진짜 많이 했거든. 기대된다.”
“너 티어 몇이였냐?”
“나? 브… 브론즈.”
조태웅의 대답에 멤버들이 코웃음을 쳤다. 조태웅이 소리쳤다.
“왜!”
“어딜 브론즈 주제에 게임 많이 했다고 부심을 부려?”
“너는 티어 몇이였는데!”
브론즈가 가장 낮은 순위인가 보지? 이안은 게임 부심을 부리는 멤버들을 지켜봤다.
피시방에 도착한 아위는 익숙하게 키오스크로 향했다.
‘와 깨끗하네. 요즘 피시방 다 이래?’
이안이 기억하는 피시방은 담배 냄새가 가득하고 지하의 퀴퀴한 냄새와 어딘지 모르게 음습한 분위기였는데, 요즘 피시방은 쾌적한 공기와 은은한 LED 조명이 영화에서 보던 사이버 펑크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았다.
맨 뒤에 선 이안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멤버들이 하는 것을 지켜봤다.
“뭐야? 뭐 하는 거야?”
“너 피시방 처음 와 봐? 여기서 회원가입하고 시간 충전해야 해. 몇 시간으로 하지 형?”
“알아서 해, 너네 좋아하는 거 보니까 다음에 또 올 것 같은데.”
멤버들은 빠르게 회원가입과 시간 충전까지 마쳤다. 박진혁은 벌써 자리까지 보고 있었다.
‘와, 나 때는 카운터 가서 자리 몇 번 충전해 주세요. 이래야 했는데 지금은 그냥 가입하고 충전만 하면 되는구나.’
[아재요….]‘헐, 미친 신용카드도 되네?’
[할배요….]진의 한심한 목소리에 갑자기 쑥스러워진 이안은 괜히 아르바이트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까부터 연예인인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피시방 아르바이트가 숨을 헉 들이 삼켰다. 설마 아위인가? 의심하던 아르바이트는 박진혁의 외침을 듣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이안아, 여기!”
일렬로 자리를 잡은 멤버들이 허공에 손을 휘휘 저었다. 다행히 손님은 별로 없었다.
“내가 왜 가운데야?”
“너 겜알못이잖아. 우리가 도와줄게.”
“아이고 황송해라.”
이안은 김주영과 조태웅 사이에 앉아서 로그인을 했다. 김주영이 이안의 마우스를 가져가 어떤 창을 열었다.
“너도 뭐 시키려면 시켜. 여기 보면 음식 주문 있어.”
“와 뭐야 이거? 김밥헤븐이야?”
나 때는 컵라면이 끝이었는데.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끝이 안 보였다. 음식뿐만 아니라 음료도 어디 카페에서 나올 법한 수많은 음료 종류에 이안이 멍하니 화면만 쳐다봤다.
“피방 음식 맛있어. 요즘은 배달도 하더라.”
“배달? 창조 경제 오지네. 너무 많으니까 선택을 못 하겠다.”
저마다 음식을 시킨 멤버들이 손 스트레칭을 했다. 아주 기세만 보면 프로게이머 저리가라였다.
“우리 내기해?”
“이안이는 빼 주자. 보니까 게임 못 할 각이다.”
“나도 하면 잘하거든?”
이안은 왠지 억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