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3
13
배달원 김태민. (2)
이안이 촬영된 씬은 그가 촬영하고 바로 다음 주에 방영됐다.
극 중 투톱주연인 프로파일러는 기억 상실의 여파로 프로파일링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추리하던 것들이 묘하게 비껴 나가게 된다.
형사는 원래부터 낙하산인 그를 안 좋은 시선으로 봤기에, 그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게 된다.
그리고 결국 사건에 관련한 일 때문에 그들은 다투게 되고, 형사는 그를 수사에서 배제한 채 홀로 수사하려 한다.
하지만 두뇌파라곤 거리가 먼 형사는 수사에 난항을 겪게 되고,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자 누군가를 찾아간다.
그리고 이안의 첫 등장은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멀리서 봐도 문짝 같은 큰 키와 큰 어깨가 화면 한가운데 잡힌다. 배달 앱이 큼지막하게 박힌 조끼는 그가 입어서 패션이 된 느낌이었다.
형사의 부름에 뒤돌아본 배달원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미간을 찌푸린 채 반항스러운 표정.
-??
-헐 미친 개잘생겼어
-누구임?
-존함이 어케 되시냐 ㄷㄷ
실시간으로 드라마를 달리고 있던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저 멀리 사라지며 장면이 전환되는데도 실시간 반응은 이어졌다.
회사는 당연히 준비된 기사를 뿌린다.
‘블랙 아웃’ 잘생긴 배달원은 누구? ‘BHL엔터 차기 그룹 AWY의 최이안’
AWY, 데뷔 컨셉 포토 공개… 눈에 띄는 ‘블랙 아웃’ 배달남 ‘최이안’
동시간대 시청률 2위를 하고 있던 드라마라, 파급력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잘생긴 얼굴만큼 꿀리지 않는 연기였다.
‘블랙 아웃’ 배달원 그룹에 누가 있나? 아역 배우 조태웅, ‘K-스타’ 김 현….
이안과 더불어 아역 출신 조태웅과 오디션 프로에서 얼굴을 알렸던 김 현도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 주, ‘블랙 아웃’의 다음 회가 방영했다.
극의 시작은 갑자기 어두웠다.
조그만 반지하 주방에는 노후된 배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한참을 치우지 않았는지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벽에는 핏자국으로 보이는 것들이 사방을 적시고 있다.
시선이 바닥으로 이동된다. 열린 화장실 문틈 사이로 여성의 흰 발이 보인다. 형사와 프로파일러가 찾던 연쇄살인범이 또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카메라가 잠깐 신원미상의 여성을 비춰 주고, 다시 거실로 나왔을 때 체구가 큰 남성이 거실 한복판에 쓰러져 있다. 범인이 자고 있는 걸까? 하지만 미동도 없이 경직된 몸이었다.
카메라는 남성의 다부진 손을 잠깐 비춰 주다가, 시신의 얼굴을 보여 준다.
-미친 범인이 또?
-이렇게 자세히 보여 주는 거 보니 민 순경 죽었나?
-헐 시ㅂ???
-민 순경 아니네 ㅁㅊ
남성의 정체는 바로 저번 주에 나왔던 잘생긴 배달원이었다. 피범벅이 되어 미처 눈을 감지 못한 그의 눈에 초점이 없었다.
똑, 똑. 물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한 새벽을 적신다. 이윽고 싸늘한 시체가 된 그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지며 페이드 아웃 된다. 그렇게 충격적인 오프닝 후 본편이 시작된다.
* * *
배달원 김태민은 며칠 전 들었던 형사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배달을 나가면서도 음식을 받는 손님의 목 언저리를 슬쩍 훑어본다. 그러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니 주제를 알아야지. 내가 경찰이야?
괜히 탐정이 돼서 뭐 하는가, 박해준 형사는 그래 봤자 고맙단 인사만 “옜다, 먹어라.” 하고 줄 것이다.
“에이씨- 돈 되는 것도 아닌데….”
신경 쓰지 말자. 콜을 누른 배달원이 다시 오토바이에 오른다.
배달원은 음식을 가지고 골목길이 이리저리 뻗은 길을 달린다. 그가 벨을 누른다. 배달이요.
현관문이 열린다. 기름칠을 안 했는지 끼이익 소리가 요란했다. 카메라가 유난히 남자의 목을 확대해 보여 준다.
“삼만사천 원이요.”
배달원은 핸드폰을 하면서 남자를 흘끔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숙인다. 배달원의 귀에 꽂힌 무선 이어폰에선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배달원은 남자가 건네준 현금을 받고 오토바이에 올라선다.
설마. 아니겠지? 배달원이 얼마 달리지 않고 멈춰서 뒤돌아본다. 남자의 목에 희미하게 보였던 흉터. 그리고 그의 코끝을 스친 비릿한 향. 마치 언젠가 맡아 봤던….
“아니겠지.”
한 번만 더 확인해 볼까? 배달원이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자조적으로 웃었다.
“아, 박 형사가 날 망쳤어.”
그는 괜히 신경 쓰게 한 박 형사가 떠올라 에이씨! 신경질을 냈다. 이게 다 당이 떨어져서 그래. 그는 사탕이나 사 먹을 생각으로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 * *
“누구세요?”
“배달이요!”
그리고 배달원은 남자를 다시 찾는다.
“배달 이미 왔는데요.”
“빼먹은 게 있어서요.”
뭐지? 음식은 누락된 것 없이 잘 왔다. ‘아내’도 잘 먹고 있는데? 남자는 일단 문을 연다. 아까 봤던 뚱한 표정의 배달원이 음료 캔을 내민다.
“서비스요. 사장님이 안 줬다네요.”
“그런가요?”
남자가 미묘한 시선으로 탄산음료 캔을 받아든다. 배달원은 그 틈을 타 살짝 숙인 남자의 목 부근을 슬쩍 바라봤다.
몽타주는 자세히 못 봤지만, 남자의 목에 흉터는 확실했다. 배달원은 짐짓 표정 관리를 했다. 그는 아무것도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뒤를 돈다.
좋아 이제 올라가서 저 골목 너머로 간 다음에… 형사님한테 연락하자.
배달원은 너무 급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 않은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간다.
혹시나 눈치챌까 잘 계산된 행동임에도 얼굴에 식은땀이 흐른다. 쿵, 쿵. 심장이 가파르게 뛰었다.
배달원은 고작 한 층 올라가는 것임에도 산 정상을 오르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근데 왜 아직도 문 닫는 소리가 안 들리지?’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계단을 디디려는 순간이었다.
“아아- 들켰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배달원이 앞으로 고꾸라진다. 그리고 질질 끌려가는 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 * *
으윽, 누군가 송곳으로 머리를 찌르는 느낌이었다. 뜨거운 액체가 이마를 가로지른다. 감은 눈이 서서히 뜨여진다.
배달원이 고통에 얼굴을 찌푸렸다. 흐릿한 눈을 몇 번 감았다 뜨며 초점을 잡았다.
꿉꿉한 분위기의 반지하. 널브러진 일회용 용기. 고기 따위를 두드리는 소리가 나지막히 들린다.
“으윽… 큭….”
배달원은 고통을 못 이겨 신음을 내뱉었다. 여긴 어디… 일어나려 했지만 일어날 수 없었다.
누군가가 그의 팔다리를 묶어 놨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듯 멍하니 누워 있었다.
“깼어?”
살짝 울리는 목소리에 배달원이 시선을 위로 들었다. 욕실 안으로 들어간 남자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상체를 들어 올린다. 온통 피범벅이었다.
하얀 타일이라 유난히 잘 보이는 핏자국에 정신이 퍼뜩 든다. 연쇄살인범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찾았고, 그래서… 배달원이 미친 듯이 몸을 비틀었다. 꽉 묶여진 손발은 미동도 없었다.
“너무 그러지 마. 다쳐.”
“윽… 너… 너 뭐 하는 새끼야!”
“너도 알잖아.”
욕실 위로 비죽 튀어나온 하얀 손을 발견하곤 어깨를 쾅쾅 바닥에 찧었다. 남자는, 연쇄살인범은 여유롭게 욕실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세면대에 올려진 탄산음료를 꿀꺽 마신다.
“어떡… 어떻게….”
배달원이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살인범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알았지? 노골적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일부러 발걸음도 조절했다. 근데 왜?
배달원의 행동은 시청자가 봐도 위화감이 없었다. 그 어떤 행동에서도 살인범을 의심하지 않은 듯 평범했었다.
“이거, 잘 먹었어.”
음료를 다 마신 살인범이 일어나 배달원에게 걸어갔다. 살인범은 배달원의 눈앞에 빈 캔을 내려놓는다. 카메라가 빈 캔을 클로즈업 한다.
아직도 의문이 가득했던 배달원의 표정에서 한 줄기 깨달음을 얻은 듯 놀람이 번진다.
“흐… 흐으….”
“안타깝네, 잘생겼는데. 나이만 어렸어도.”
살인범은 다시 욕실로 들어가 뭔가를 질질 끌면서 다가온다. 배달원이 경악한 표정을 짓곤 온 몸을 비틀며 현관 쪽으로 기어간다.
마지막 발악이었지만, 자유롭지 않은 손발 때문에 기어 봤자 몇 센티 채 안 되어서 멈춘다. 배달원은 소리를 질렀다.
“으악… 아아아악!! 누구 없어요?! 살려 줘요!!!”
목이 쉴 정도로 크게 소리치는 음성이 처절함을 극대화 시킨다. 살인범이 한 뼘 거리로 다가오자 배달원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공포로 온몸을 떨다 못해 턱에도 지진이 난다. 마치 과호흡이 온 사람처럼 숨을 쉰다. 살인범을 앞둔 사람의 극단적인 행동이었다.
“흐으… 흐억… 사… 살려… 허억….”
“내 ‘아들’이 되었을 텐데.”
살인범이 두 손으로 도끼를 치켜든다. 도끼는 잠깐의 실루엣이 나오고 화면은 갑자기 시커멓게 변한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울리고. 3초의 정적 끝에, 제작 지원 협찬사 배너가 뜨며 회차가 마무리된다.
* * *
“와… 소오름.”
“미친.”
연습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던 연습생들이 그제 서야 탄성을 내뱉었다. 김주영이 이안의 태블릿 패드를 껐다. 이안은 회사 사람들에게 들킬 새라 빠르게 가방으로 숨겼다. 괜히 인터넷 반응 보지 말라는 회사의 지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이안이 진짜 미친 거 같았어.”
“미쳤다 진짜.”
“형 연기 좀 가르쳐 줘요.”
이안이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 이렇게 한가로이 여운에 잠길 때가 아닐 텐데… 이안이 김주영의 어깨를 툭 쳤다.
“야, 나 춤 좀 봐줘.”
“엉.”
그들이 일어나자 다른 연습생들도 벌떡 일어났다. 데뷔 쇼케이스가 얼마 남지 않은 날이었다. 그룹의 컨셉이 칼군무기 때문에 더 만전을 기해야 했다.
“근데 범인은 어떻게 안 거야?”
“그냥 다 의심하고 보는 사람 아니야?”
김주영은 이안의 동작을 봐주려다가도 아직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박진혁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살인범은 배달원이 의심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연습생들이 의문을 지우지 않았다.
여섯 명의 시선이 이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유를 알고 있는 이안만 잔잔하게 웃었다.
“글쎄. 왜 알았을까?”
“힌트 좀.”
“음료수.”
음료수우? 몇몇이 얼굴을 찌푸린다. 그래도 모르겠는데? 조태웅이 드물게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하다가 와악! 소리를 질렀다.
“아! 아아! 미친!”
“오…?”
“조태웅 지랄하지 말고 빨리 말해라.”
조태웅이 호들갑을 떨고, 이주혁이 고개를 끄덕인다. 눈치없는 박진혁은 답을 재촉했다.
“아까 음료 캔 보여 줬잖아요!”
“그게 뭐?”
“업소용 음료수 아니었어요!”
“…어어?!”
음식점에서 파는 음료수는 업소용 글씨가 따로 찍혀서 나온다. 배달되는 것도 똑같다. 사장이 서비스를 안 줬다면 당연히 업소용 음료를 줬어야 했다. 편의점에서 사 온 음료가 아니라.
이해 못하고 있던 박진혁과 박서담, 그리고 김 현이 뒤늦게 감탄했다.
[와 진짜 다시 봐도 작감 개변태….]‘변태라니, 연출력이 좋은 거지.’
오늘 방송된 회차는 살인범의 얼굴이 드러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안은 그 장면에 자신이 등장했다는 것에 만족스러웠다.
김용민 시절 쪽대본 때문에 이가 갈린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만큼은 저절로 작가와 감독의 변호가 나왔다.
[벌써 너를 피 땀 눈물에 절일 생각을 하다니, 그래서 변태라는 거.]‘그게 왜?’
[원래 배우는 구르고 굴릴수록 더 좋은 법이지.]‘에엥?’
이안이 김주영의 지도에 따라 하나 둘 동작을 점검하면서도 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에휴, 니가 뭘 알겠냐.]덕후들은 이런거에 환장해. 진이 허공을 부드럽게 유영했다.
* * *
그 후, 연습시간에 치여 다음 방송을 보지 못했지만 다음 회차에서는.
비명소리가 들렸다는 신고를 받아 출동한 박해준 형사가 배달원 김태민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딱딱했던 그의 표정에서 한 줄기 균열이 생긴다. 그는 착잡한 한숨을 쉬고는 마침 현장에 도착한 프로파일러의 팔을 잡는다.
“야 내가 잘못했다.”
고지식하고 고집불통인 형사의 입에서 순순히 사과가 나왔다. 프로파일러는 눈썹을 까딱 들어 올렸다.
“…진짜요?”
“나 그 새끼 잡아야겠다. 도와줘라.”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빛. 프로파일러는 그 결의에 마음을 다시 먹는다.
“그래요…. 잡아야죠.”
김태민은 주인공이 각성하게 되는 계기도 불어넣었다. 배달원 역할은 이안의 생각보다 많은 존재감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