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57
157
잘 지냈나 보네?
“우리 손주는 명절인데 서울 안 올라가니?”
“안 갈래. 어차피 친가 제사 안 지내.”
“왜?”
“친척들 나만 보면 돈 얼마 버냐 많이 벌면 사업하게 돈 좀 줘라. 이런단 말이야.”
빌려 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달라는 소리였다. 아위의 해외 인기가 늘어나서 ‘포스트 마이디어’로 뉴스에 보도되고부터 더 심해졌다.
아이돌은 성공하면 돈 많이 번다던데 가족 좋은 게 뭐냐 이 정도는 줄 수 있는 거 아니냐, 심지어 사촌의 유학 비용을 대 달라는 뻔뻔한 요구도 있었다.
“이런… 썩을 놈들이.”
신순자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그러면서도 귤을 까는 손은 차분했다. 그녀는 손주의 입 안에 귤을 넣어 주면서 말했다.
“조 서방이 안 막아 줘?”
“아빠가 잘 막아 주긴 하는데, 소용없어. 번호 알아내서 계속 전화해. 내가 무슨 돈 나오는 자판기인 줄 아나.”
“그려서 막 퍼 준 건 아니지?”
“당연히 안 주지.”
오죽하면 그의 아버지, 조호철이 이제는 명절에 어디 가지 말자고 선언했겠나. 인터넷에 퍼져 있는 루머와는 다르게 조태웅의 부모는 그가 성인이 되자마자 그의 통장을 넘겨줬다.
‘누가 돈 빌려 달라는 거 절대 해 주지 말고. 보험은 엄마가 다 들어 놨으니까 또 들 필요 없어.’
‘보증도 안 된다. 뭐 좀 사 달라 하면 절대 사 주지 마.’
조태웅의 부모가 그에게 통장을 넘겨주면서 신신당부했던 말이었다. 조태웅은 문득 첫 정산을 받았을 때가 생각났다.
‘다들 돈 관리 잘해. 특히 누가 뭐 빌려 달라, 뭐 가입해 달라. 어? 주식 뭐 사라, 가상화폐 사라, 전부 무시하고. 알았지? 우리가 유명해질수록 사기꾼들도 많이 붙는다고.’
서로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기쁨의 춤을 추고 있었을 때, 이안이 갑자기 정색하면서 한 말이었다.
‘최이안 걔도 비슷한 소리를 했었지.’
당시 멤버들은 ‘너 때문에 흥이 깨져 버렸으니 책임져!’라고 했지만 흘려듣지는 않았다.
나중에 아위의 글로벌 인기가 기사를 통해 알려지고 나서 오만 사람들의 연락을 받았었는데, 그때 이안에게 귀신 같은 놈이다. 무당이다. 소리를 또 한 적이 있었다.
가만 보면 미국에서 살고 온 놈이 다른 멤버들보다 더 잘 알았다. 조태웅이 피식 웃었다.
“할머니 설인데 뭐 없어? 오늘 장날이잖아.”
“이따가 장 보러 갈까?”
“좋아. 할머니 음식 하는 거 나도 도와줄게.”
조태웅이 벌써 팔을 걷어붙였다. 신순자는 조태웅에게 이것저것 일을 시킨 후, 잘했든 못했든 간에 그에게 칭찬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 방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그의 의욕도 나날이 늘어갔다. 좋은 징조였다.
“우리 손주가 음식도 도울 줄 알어?”
“뭐 할지만 잘 알려 주면? 주영이한테 배웠어.”
“그 살림 잘하는 친구? 그려?”
사실 주방에서 사고 치지 않는 법을 배웠지만, 그래도 무조건 센 불을 쓰는 것을 줄이고 약 불을 쓸 정도로는 발전했다.
“친구 하니까 그르는디, 느이 친구들은 언제 온 다냐?”
“친구들? 누구? 우리 멤버들?”
멤버들이 여길 왜 와? 조태웅의 의아한 시선에 신순자가 허허 웃었다.
“에구, 실수했구먼.”
“멤버들이 왜 와?”
“모르면 됐어.”
“뭐 있어? 아, 할머니 뭐 숨기는 거 있지?”
조태웅이 신순자의 어깨를 주물러 주며 대답을 종용했다. 순간, 멀리서부터 차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이 마을에서는 볼 일이 없는 연예인 밴이 대문 앞에 정차했다.
“여기가 태웅이 외할머니 댁이야?”
“꽤 큰데? 우리 다 잘 수 있겠다.”
먼저 내린 김주영과 이안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 탁 트인 산골 환경에 마음이 저절로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깝다.”
“진혁이 쟤는 왜 아까워해?”
이주혁이 박진혁을 향해 고갯짓했다. 김 현이 비웃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쟤? 잘 곳 없으면 복불복으로 야외취침 내기하려고 텐트 가져왔대.”
“와 대박.”
“형! 이 한겨울에 미쳤어요?”
눈에 띄게 실망하는 박진혁의 표정을 보며 박서담이 질색을 했다. 차를 운전했던 박동수는 트렁크를 열어 짐을 하나씩 꺼냈다.
“야외 텐트라니, 얘들아 건강 챙겨야지. 너네 병 걸리는 순간 형 수명 줄어든다.”
“맞아. 동수 형 건강 조심해야지. 중요한 일 앞두고 있는데.”
이안의 대답에 박동수가 몸을 흠칫 떨었다. 이제 그만 놀릴까? 이안은 박동수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려 휘파람을 불었다.
“너….”
“왔어?”
소란스러움에 신순자 여사가 현관문을 열고 멤버들을 맞이했다. 조태웅은 얼떨결에 신발을 신고 나가 멤버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아이구, 목청도 좋아라.”
멤버들이 우렁차게 소리치며 상체를 꾸벅 숙였다. 조태웅이 구겨 신은 운동화를 질질 끌고 나와 이안의 앞에 섰다.
“뭐야? 왜 여기 있어?”
“뭐긴, 놀러 왔지.”
“나한테 말도 없이?”
“왜? 재밌잖아.”
이안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조태웅이 허탈한 숨을 내뱉었다. 멤버들이 오는 것이 달갑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옆 동네를 온 듯 평온한 얼굴이 유난히 뻔뻔해 보였다.
신순자는 이안의 앞에 다가갔다. 이안은 키가 작은 신순자가 올려다보지 않게 상체를 숙였다.
“전화한 친구지?”
“네 최이안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조태웅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안을 바라봤다. 할머니한테까지 전화를 했는데 나한테 말 한마디도 안 했겠다? 이안은 그 뜨거운 시선을 무시하고 손을 내민 신순자의 손을 양손으로 잡았다.
“아주 잘생겼네~”
“추운데 왜 나와 계세요, 일단 들어갈까요?”
이안이 뒤를 돌아봤다.
“동수 형! 먼저 들어가.”
“짐 많잖아. 들어 줄게.”
“형 운전 오래 했잖아. 그냥 들어가. 태웅이가 들어 줄 거야.”
박동수와 신순자를 먼저 집 안으로 보내고, 멤버들은 그들이 가져온 짐을 양손 가득 들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우리 다 자려면 이불 있어야 할 거 같아서. 고기랑 해산물도 사 왔어.”
“오 고기, 근데 자고 갈 거야?”
“그럼 여기까지 오는 데 6시간 넘게 걸렸는데 안 자고 가? 할머니가 며칠 자도 된대.”
“6시간이 넘었다고? 미친, 동수 형 개피곤하겠다.”
조태웅이 팔꿈치로 이안의 옆구리를 찔렀다.
“근데 우리 할머니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어머니한테 부탁했지.”
“우리 엄마?”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도 알고 있었구나! 나만 몰랐지! 조태웅은 억울해졌다. 자신에게는 비밀로 했다는 것이 묘하게 괘씸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조태웅의 왼쪽에 선 김주영이 밴 쪽으로 고갯짓했다.
“왜? 싫어? 너 서프라이즈 좋아하잖아. 아니야? 그럼 다시 가고.”
“누가….”
조태웅이 굳은 표정을 풀고 활짝 웃었다. 마침 데이터도 잘 안 터지고 심심하던 시기에 아주 잘 왔다.
“싫다고 했냐? 어서 와.”
조태웅이 앞장서서 현관을 열었다. 그 활짝 풀어진 표정에 이안과 김주영이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오, 진혁이 형 텐트 쓸 일 진짜 없겠다.”
“쳇.”
“와 체리도 아니고 옥색 몰딩 봐.”
“오지는데? 이게 요즘 유행한다는 레트로지?”
곳곳에 조태웅의 물건으로 보이는 것들이 눈에 띄었다. 거실 바닥에는 귤과 고구마 같은 간식이 소쿠리에 가득 담겨 있었다. 시골에 있느라 상담도 드문드문 다닌다 해서 걱정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더 잘 지낸 것 같았다.
“그려, 매니저라고? 매니저가 뭐여?”
“네, 애들 관리하고 보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얘네들을 다? 그거참 힘들겠네~”
“어유, 아니에요. 일이니까요. 근데 저희 애들이 괜히 귀찮게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괜찮여. 손주들 많으면 좋지. 우리 매니저, 동수도 자고 가.”
박동수가 쩔쩔매면서 고개를 연신 꾸벅였다. 신순자 여사는 허리도 굽지 않았고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기운이 넘쳤는데, 그래도 한참 어른에게 폐 끼치는 것 같아서 눈치가 보였다.
“할머니, 저희 있는 동안 일거리 있으면 맡겨 주세요.”
이주혁이 그들의 사이에 앉았다.
“괜찮여, 우리 손주가 다 했어.”
“그럼, 내가 다 했지.”
조태웅이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쭉 폈다. 박서담은 그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흘끔 쳐다보고는 신순자의 옆에 앉아 살갑게 말했다.
“태웅이 형이 뭐 했는데요?”
“집안일 많이 도와줬지. 우리 손주가 일을 참 잘혀.”
신순자가 푸근하게 웃으며 조태웅을 바라봤다. 멤버들의 시선도 조태웅에게 향했다. 조태웅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깨 볶고, 호미 같은 농기구 닦고, 세면대랑 변기도 뚫고.”
“뭐? 니가?”
“헐.”
“개쩌는… 아니, 대단한데?”
김 현은 할머니를 의식해서 말을 순화했다. 멤버들이 의외라는 듯 쳐다보자, 조태웅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쟤가 잘했어요?”
“그러엄, 잘했지.”
멤버들이 오올~ 소리를 내며 감탄했다. 조태웅의 병을 의식해서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순수한 감탄이었다. 시키면 잘하는 성격이었구나.
“대단한데?”
“앞으로 우리 숙소 변기 막히면 조태웅이 책임진다.”
“근데 우리 숙소 신축이라 물 잘 내려가던데.”
“아무튼.”
조태웅의 딴지에 박진혁이 영혼 없이 허허 웃었다.
“그래서, 잘 지냈나 보네?”
“잘 지냈어. 우리 일 없는 동안 뭐 하고 지냈어?”
“차기 애들 곡 봐주고 화보 같은 거 찍고….”
신순자가 그들의 대화를 조용히 지켜봤다.
손자에게서 다들 괜찮다고 얘기는 들었지만, 막상 손자만 좋게 생각하고 다들 까칠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의 병을 안고 여기까지 왔으니 누군가 몰래 괴롭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악질들이 어떤 식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변 친구나 소속사 사람들을 의심한 것이다.
‘쓸데없는 걱정이었구만….’
막상 멤버들을 마주하니 다들 밝고 모난 데 없어 보여서 마음이 한결 놓였다.
설 연휴에 각자 집이 아니라 이런 산골까지 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 신순자는 무릎에 손을 얹고 벌떡 일어났다.
“편히 쉬고 있어, 우리 손주들 밥 멕여야지.”
“맞아, 시장 같이 갈 사람?”
조태웅이 할머니를 따라 벌떡 일어나자, 이안과 박서담도 일어났다.
“나도 따라갈게.”
“와 시장 오랜만이다. 나도 갈래요.”
조태웅은 주방 찬장에서 장바구니를 꺼내 이안에게 내밀었다.
“짐 셔틀 해.”
“예예.”
이안은 군말 없이 받았다. 할머니의 목도리를 조심스레 여며 준 조태웅이 현관문을 열었다.
박서담은 어느새 신순자의 옆에서 팔짱을 꼈다. 신순자는 그를 보며 기집애 같다며 뭐라 하던 것은 잊고 활짝 웃었다.
“아이고, 내가 손주랑 팔짱도 껴 보네.”
“가요, 할머니.”
박서담은 배시시 웃었다. 그는 할머니랑 같이 살았기 때문에 할머니들이 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금방 올 테니까 쉬고 있어!”
“어, 맛있는 거 많이 사 와.”
현관문이 닫혔다. 남아 있던 이주혁, 박진혁, 김 현과 김주영이 서로를 바라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갔군.”
“갔어.”
그들은 천천히 일어나서 자신들의 짐 가방을 뒤적거렸다.
“얘들아, 나도 할게.”
“아냐, 동수 형은 쉬고 있어.”
그들을 따라 일어나려는 박동수의 어깨를 이주혁이 잡았다.
짐을 뒤적이던 김주영이 새로 사 온 고무장갑을 꺼냈다. 그의 모습에서는 묘한 박력이 느껴졌다.
남은 멤버들이 그를 따라서 고무장갑을 꼈다. 김주영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집도를 시작합니다.”
고무장갑을 낀 멤버들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