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61
161
그래도 늦지 않게만 와라.
“뭐야….”
잠에서 깬 이안이 눈을 떴다. 바깥이 묘하게 밝은 느낌이었다. 그가 커튼을 걷자, 사방이 하얬다.
“눈 온다는 예보 있었나?”
“아니?”
“아이 깜짝이야. 깼냐?”
어느새 소리 없이 이안의 옆에 선 김주영이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흘의 시간은 함께 있어서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내일은 그들이 서울로 올라가는 날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신순자의 생활 패턴에 금세 적응한 멤버들은 아침 8시에 밥을 먹었다. 멤버들은 신순자를 도와 집안일을 끝냈다.
“우리 손주들 덕에 정리가 빠르네. 다녀올게.”
“다녀오세요.”
신순자가 경로당을 간 사이에 집에 남은 아위 멤버들은 뜨끈한 거실 바닥과 한 몸이 되었다. 그들은 꾸물꾸물 움직이면서 귤을 까먹었다.
“노는 거 너무 좋아.”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
여섯 명이서 이불을 목 끝까지 덮은 채 행복함에 헤헤 웃고 있었다.
‘무슨 애벌레 같은 게 있네.’
그 모습을 바라본 이안은 물컵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들었다. 셔터 소리에 멤버들이 기겁을 했다.
“와 레전드 사진 나왔다.”
“아 형! 사진 찍지 마요.”
“지금 자연인 상태인데. 야 서담아 뺏자.”
느릿하게 일어난 박서담과 김주영이 이안의 핸드폰을 뺏어 사진을 지우려 했다. 이안은 팔을 높게 들었다. 두 명이 달라붙어도 핸드폰을 뺏진 못했다.
“아씨, 힘 되게 쎄! 형 또 키 컸어요?”
“아니?”
“너 팬 카페에 올리면 죽은 목숨이야.”
“안 올려 안 올려.”
나중에 올려야지. 쟤네만 잘라서. 이안은 다시 누우러 가는 김주영과 박서담의 등을 보며 웃었다.
[너 거기 무대 가 본다고 하지 않았냐?]‘아, 맞다.’
숙소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서, 많이 외로움을 탔었나 보다. 멤버들과 함께 지낸 시간이 너무 재밌어서 그런지 원래의 목적을 잊은 이안은 조태웅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야 죠탱. 너 여기서 태우 형네 그룹 봤던 데가 어디야?”
마침 할 일이 없던 멤버들도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표정이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맞아, 그 사연의 장소가 여기 아니야?”
“가 볼까?”
“가자.”
드디어 할 일을 찾은 멤버들이 옷을 빠르게 껴입고 밖으로 나섰다. 설 연휴가 끝나서 거리엔 차도 없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시장을 지나 마을 회관 쪽에 다다르자 넓은 공터가 펼쳐졌다.
“저기 있네.”
공터의 한 편에는 1미터 정도 높이의 단상이 있었다. 이안이 먼저 무대 위로 올라갔다. 눈 때문인지 무대의 경계가 어딘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내가 여길 다시 올 줄이야.’
감회가 새로웠다.
이안이 발로 눈을 대충 치우자, 뒤따라온 멤버들도 그를 따라 눈을 치웠다. 그러자 조잡한 나무 데크의 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다.”
이렇게 작았었나? 이안이 고개를 기우뚱했다.
저쪽에서 들어와서, 마을 회관에서 준비를 마치고 이쪽으로 올라왔었지. 그 당시에는 얼마 없는 행사 스케줄이었다. 무대가 작고 말고를 따질 수 없었다.
[에엥, 이게 무대야?]진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저 말도 그 당시 다이아몬드 멤버 중 누군가가 똑같이 말했던 기억이 생각났다.
행사비 깎아도 좋으니 무대만 시켜 달라고 매니저가 굽실거리는 것도 초라한 자신의 위치를 확인받는 거 같아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었다.
[여기서 행사를 했다고? 대충하지 그랬냐?]‘사실 그러고 싶었는데….’
어떻게든 무대를 열심히 해서 관심 없는 노인네들에게 반응을 이끌어 내고 싶었다. 이 악물고 춤추고 노래했었다.
[그래서 성공했어?]‘망했지.’
하지만 호응도 철저히 인기로 결정되는 세상이었다. 당시 김용민이 고음을 치는 부분에서 두세 명 정도가 박수를 친 기억이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날, 숙소로 가는 길에는 멤버 중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었다. 무대에 대한 열정으로 애써 포장했지만 내심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날이었다.
‘뭐, 그때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 지금 그룹에 조태웅이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어떻게 거기서 현 멤버가 볼 수 있지? 생각할수록 신기한 인연이었다. 이안이 피식 웃었다.
‘그때는 이거보다 더 커 보였는데.’
이제는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이안은 제 옆에 서 있던 멤버들을 쳐다봤다. 그때를 생각하니 지금 순간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우리 베트남 때보다 작은 거 같지 않아?”
이안의 몽글몽글한 감성을 박살 낸 것은 역시 박진혁이었다. 그의 말에 멤버들이 질색했다.
“에헤이 진짜.”
“누군가? 누가 베트남 얘기를 꺼냈어?”
“아 베트남 얘기하지 마라. N넷 갑자기 킹받네.”
박진혁이 머쓱한 표정으로 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요즘은 잘 챙겨 주긴 하잖아.”
“피디가 사람이라면 잘 챙겨 줘야죠.”
“거긴 지금보다 더 챙겨 줘야지. 아직 부족해.”
“너 때문에 기분 망쳤으니 책임져.”
김 현이 바닥에 있던 눈을 뭉쳐 박진혁에게 던졌다. 몸에 맞은 박진혁이 씨익 웃었다.
“뭐야, 싸우자는 거야?”
언뜻 광기가 비쳐 보이는 눈빛에 다른 멤버들이 그에게서 한걸음 뒤로 떨어졌다.
박진혁이 단상 밑으로 뛰었다. 밤새 내렸던 눈 때문에 공터는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가 눈 뭉치를 멤버들에게 흩뿌렸다.
“아, 형! 눈 튀어요!”
“야 박진혁한테 던져.”
“난 최이안 노린다.”
상황은 순식간에 눈싸움으로 변했다. 어느새 편을 갈라 싸우게 된 멤버들은 격한 눈싸움으로 인해 온몸이 차가워졌다.
몸에 붙은 눈은 추운 날씨 때문에 금방 녹지 않았다. 이안은 패딩 후드에 들어간 눈을 탈탈 털고서는 지쳐서 바닥에 누운 멤버들 옆에 누웠다.
“태우 형은 저 무대에 섰을 때 자기 인생이 바뀔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당연히 몰랐겠지. 진짜 그 정도 인생 역전이 어딨냐? 그 형은 나중에 자서전 써야 한다.”
“인정.”
임태우, 자신은 그저 어릴 때의 추억 얘기를 한 것이 전부였는데 그 한마디로 인해 그의 인생이 확 바뀌었다. 그가 생각난 조태웅이 이안에게 넌지시 물었다.
“태우 형은 요즘 어때?”
“그 형 지금 장난 아니야. 행사 스케줄 풀로 잡힌 거 알아? 콘서트도 체조부터 시작한다는 얘기도 있던데.”
“체조 몇 석이지?”
“만은 넘을걸?”
“와 쩐다.”
산골짜기의 조잡한 나무 데크 무대에서 누구도 호응해 주지 않았던 망한 아이돌은, 솔로로 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가수가 되었다.
“진짜 조태웅이랑 최이안이 큰일 했다.”
“내가 왜?”
“그 형이 태웅이랑 이안이 말을 계기로 인생 역전한 거 아니냐?”
“와 진짜 다시 생각해도 드라마다, 드라마.”
임태우는 인생 2막을 시작했고, 그가 인생 역전을 하게 만든 계기를 준 조태웅은 활동을 잠시 중단할 정도로 마음이 다쳤다.
“한 사람한테 그 정도로 영향을 준 게 어디 흔한 줄 아냐?”
“맞아.”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 인생 진짜 모른다.”
이주혁의 말에 멤버들이 생각에 잠겼다.
“우리 데뷔할 때에도 우리가 앨범을 막 100만 장 넘게 팔 생각은 못 했잖아.”
“꿈꾸지도 않았지.”
“우리 진짜 많이 크지 않았냐?”
멤버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쳐다봤다. 김 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지금 힘들어도 나중엔 웃을 날이 있을 거야.”
“현이가 산증인이지.”
“맞아.”
김 현이 허심탄회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이젠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 봐 봐. 마녀사냥 오지게 받았었는데 요즘 그때 얘기하면 다들 욕하더라? 그때 김 현한테 너무 심하지 않았냐고.”
“태세전환 에반데.”
“그때 휩쓸려서 나 욕하던 연습생들 대부분은 데뷔도 못 했을걸?”
그렇게 욕먹는 와중에도 자신을 응원하는 사람이 있었고, 김 현은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디어에 나온 것으로만 김 현을 판단하던 사람들은 결국 김 현만큼 성공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막상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니게 되더라.”
그렇게 생각하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반쯤은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김 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춥지 않냐?”
“가기 전에 우리 이거 사진 찍어서 태우 형한테 보내 보자.”
“좋아.”
멤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태웅아, 이거. 회사로 온 팬레터야.”
“와… 많네.”
멤버들을 데리러 온 박동수는 조태웅에게 큼지막한 쇼핑백을 내밀었다.
“와 인형까지 있어.”
“이번 인형은 너랑 좀 닮았네.”
팬들의 비공식 굿즈 중에는 솜뭉치라 불리는 캐릭터 인형도 있었다. 최애의 특징을 잘 조합해 15센티나 20센티 정도의 조그만 인형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꽤 수요가 있었다. 팬들은 이 인형을 들고 광고 인증이나 콘서트를 갈 때 들고 가기도 했다.
“잠깐만, 더 있어.”
“더요?”
박동수가 조수석에서 남은 짐을 꺼냈다. 쇼핑백은 하나가 아니라 셋이었다. 너무 크고 많아서 신순자의 손까지 빌린 조태웅은 쇼핑백 안에 빼곡히 차 있는 팬레터를 보며 코를 훌쩍였다.
“우냐?”
“아니? 추워서 그런 거거든요?”
조태웅이 눈을 부릅떴다. 박동수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었다. 그는 조태웅의 어깨를 툭 치고는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푹 쉬다 와. 너무 조급해하지도 말고. 니가 잘 회복하고 와야 쟤네랑 회사에 도움이 되는 거야.”
“…넵.”
“얘들아! 어르신 추우니까 잡지 말고, 빨리 가자!”
신순자와 인사를 나눈 멤버들이 조태웅의 주위로 모였다. 다들 조태웅의 어깨와 등을 툭 치면서 한마디씩 했다.
“태웅아 우리 갈게. 잘 놀다 간다.”
“형, 우리한테 연락하는 거 잊지 마요.”
“상담 올 때 연락해. 밥이나 먹자.”
“야, 좀 늦어도 돼. 괜찮아.”
“이따가 전화할게.”
이안이 밴에 타려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조태웅은 아쉬운 기색을 숨기려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야, 안 타?”
다들 조태웅을 배려해 늦어도 된다고 천천히 회복하고 오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안은 왠지 모르게 그런 판에 박힌 말은 하기 싫었다. 조태웅은 다른 말을 듣고 싶어 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야 태웅아.”
“어?”
“그래도 늦지 않게만 와라.”
“…그래.”
조태웅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멤버들을 태운 밴이 마을 입구를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멀어지는 신순자의 집을 바라보면서 멤버들이 멍하니 말했다.
“재밌었어.”
“맞아. 수학여행 한 거 같았어.”
“다음에 또 오자.”
“집수리할 거 좀 있던데 다음엔 집수리를 배워 봐?”
“할머니 벌써 감격의 눈물 흘리신다. 내가 봤다.”
박진혁과 김 현이 낄낄거렸다. 뒷자리에 앉은 김주영은 이안을 툭 쳤다.
“죠탱 얼마 걸릴 거 같냐?”
“글쎄, 한 3개월?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는 않더라. 속은 모르겠지만.”
“나도 금방 올 거 같은 예감이 드는데.”
김주영과 이안의 대화를 엿들은 박서담이 유리창에 이마를 기대고 중얼거렸다.
“빨리 왔으면 좋겠다.”
* * *
조태웅은 멤버들을 태운 밴이 능선을 넘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허.”
멤버들이 사라진 텅 빈 집을 바라본 조태웅이 허탈하게 웃었다.
허전하고 허무했다. 마치 콘서트가 끝나고 귓가에 팬들의 함성이 계속 맴도는데 나는 숙소의 작은 침대에서 누워서 지나간 공연을 곱씹고 있는, 그런 공허함이 느껴졌다.
그의 얼굴을 지켜보던 신순자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넌지시 물었다.
“허전하지?”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