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64
164
우리 데뷔 때 생각나네.
액션 스쿨에서 여러 가지 무술 동작과 와이어 액션까지 섭렵한 이안은 오랜만의 여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여유 시간이라고 마냥 놀지는 않았다.
[어디 가게?]‘연습실.’
[또?]‘아직 부족해.’
이안은 드라마 리딩을 가기 전에 회사 연습실에서 대본 연습을 하기 위해 소속사 지하를 찾았다.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복도가 시끄러웠다. 데뷔를 앞둔 연습생들이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먹고 있었다.
‘그룹 이름이 피버랬나.’
이안이 복도로 들어서자, 그를 발견한 임노을이 음료수를 한입 마시다가 푸헥 뱉었다.
“켁, 케헥… 안녕하세요, 형!”
“어, 노을이 안녕. 얘들아 오랜만이다.”
연습생들은 선망의 눈으로 이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괜히 부담스러워진 이안은 일단 웃었다.
“너희 데뷔한다며. 고생 많이 했다. 컨셉 오지더라.”
“네, 형. 감사합니다.”
“축하해. 쇼케 서담이가 MC 본다고 했지? 아, 나도 갈 수 있으면 가는 건데 촬영 때문에….”
“아니에요, 형.”
어째 웃었더니 연습생들의 눈빛이 더 강렬해진 것 같은데 착각일까? 이안은 자신을 보고 수줍어하는 연습생들을 마주치니 마음이 이상해졌다. 그는 선배 노릇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노을이 무대 위에서 뻗은 게 언제 적인데 벌써….”
“아 형, 흑역사 들추지 마요!”
그때가 생각난 임노을이 발을 동동 굴렀다. 그의 뒤에는 못 보던 연습생이 있었다. 단기간에 데뷔조로 치고 올라온 소문의 그 연습생인가.
“안녕하세요.”
“안녕. 니가 이하얀이지?”
“넵. 어떻게 아세요?”
“나 같은 연생 들어왔다고 회사에 소문 자자해서.”
“제가요?”
노래를 얼마나 잘하면 알 박고 있던 장기 연습생들을 제치고 바로 데뷔조로 치고 올라왔겠나. 앞으로가 기대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맞아요, 얘 없으면 우리 메보 없이 데뷔할 뻔했어요.”
“아니지, 메보 없으니까 데뷔 자체를 못 했겠지.”
이안에 이어서 다른 연습생들의 칭찬에 이하얀이 들뜬 표정을 지었다.
[너네도 그렇고, 얘네도 텃세는 없는 거 같네. 이 회사는 어디서 이런 놈들만 모아 왔지?]‘그러게, 신기하네.’
아위 멤버들도 텃세는 없는 편이었지. 이안은 데뷔 전의 풋풋한 연습생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저 때가 가장 설렐 시기지.
‘좋을 때다.’
[벌써 늙었냐? 하긴 전생이랑 합치면….]‘닥쳐.’
이안이 임노을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말했다.
“너희 바쁘지? 그만 붙잡아야겠다. 나도 연습하러 온 거라서. 데뷔 축하하고, 나중에 보자.”
“네 형!”
연습생들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인사성을 중요시하는 회사의 방침답게 인사도 벌써 칼군무였다.
‘어우, 부담스러워. 블랙러시도 우리 보고 이런 느낌 받았으려나?’
[그랬을걸?]이안은 팔뚝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그는 등을 돌려 아위의 댄스 연습실로 향했다.
이안의 등 뒤로 연습생들이 수군거렸다.
“와 씨… 존나 잘생겼어.”
“씁, 야 우리 이제 욕 쓰면 안 돼.”
“아, 맞다. 근데 저 얼굴 보면 욕 나올 수밖에 없지 않냐? 게다가 개친절해. 우리 간식도 막 사 주잖아.”
“쌉인정.”
“씁, 개랑 쌉도 쓰지 말라고. 입, 입. 디지고 싶어?”
“형도 지금 쓰잖아!”
피버의 리더가 될 한 연습생이 비속어를 쓴 다른 연습생들의 입을 손가락으로 찰싹 때렸다.
임노을의 억울한 목소리가 멀어졌다. 복도 끝에는 이주혁과 박진혁의 작업실이 있었다.
‘녹음실 쪽으로 가는 거 보니 형들도 와 있나.’
온 김에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시간이 없었다. 이안은 너덜너덜해진 대본을 들고 아위의 댄스 연습실로 들어갔다.
‘우리 데뷔 때 생각나네.’
연습실의 문을 닫은 이안이 피식 웃었다. 아위도 데뷔 전에 비속어 관리한다고 이주혁이 저렇게 관리를 하기도 했고, 서로 내기를 하면서 단속하기도 했다.
‘우리 비방용 용어 쓸 때마다 오백 원 어때?’
‘오백 원은 약하지, 쓸 때마다 플랭크 5분씩 추가.’
‘플랭크 5분? 개쌉가능이지.’
‘뭐? 개쌉가능? 야 김주영 대가리 박아.’
‘뭐? 대가리? 야 조태웅 너도 엎드려.’
‘바보들.’
‘뭐? 바보? 야 최이안, 너도 조태웅 옆으로 서.’
‘바보가 왜 비방용이야!’
그때 재밌었지…. 잠시 추억에 잠긴 이안이 기지개를 쭉 켰다.
“아! 우리도 무대 하고 싶다.”
기지개에 맞춰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그는 목 스트레칭을 하며 대본을 펼쳤다. 이제 집중할 시간이다.
* * *
시간이 지나고, ‘Z-Day’의 대본 리딩 날이 되었다. ‘Z-Day’는 회당 30억이 넘는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 드라마였다. 그 때문에 대본 리딩에 참관하는 기자들도 꽤 많이 올 예정이었다.
“어? 명진이 형이네. 오랜만이에요, 형.”
그래서 이안은 아침 일찍 숍에 들러 머리를 손질했다. 김명진은 근처에서 사 온 커피를 이안에게 건넸다.
“동수 형은 태웅이한테 갔어.”
“할머니 댁이요? 거기 진짜 오래 걸리는데.”
“사실 내가 가려고 했는데, 태웅이한테 가는 거잖아. 동수 형이 꼭 자기가 가겠다고 하더라.”
정성이네. 이안은 커피를 마시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태웅이 회복되고 너희들 활동 시작하면 아마 로드 매니저를 더 뽑을 거 같아.”
“오, 그럼 드디어 형도 팀장을 다나?”
“나는 아직 멀었지. 동수 형은 실장이 되겠네.”
“동수 형이면 늦은 편 아니에요? 블랙러시 로드 때부터면 경력이 몇 년이야?”
적당히 김명진에게 넘겨도 되는 일을 박동수는 적극적으로 맡아서 했다. 활동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그렇지 이제 올라가야지. 동수 형도 유부남 되는데.”
“아, 이사님이랑요? 아예 날 잡은 거예요?”
“그래.”
이안에게 숨겨 봤자 이미 다 알고 있는 눈치여서 김명진은 아예 툭 까놓고 말하기로 했다. 그는 차가 잠시 멈췄을 때 등을 돌려 이안의 얼굴을 쳐다봤다.
“근데 어떻게 알았어?”
“다 아는 방법이 있죠. 형, 앞이요. 신호 바뀌었어요.”
“무당이라더니….”
이안은 진의 말을 들은 이후로 그들을 가끔 마주칠 때마다 유심히 지켜본 적이 있었다. 기류가 심상치 않은 것이, 진이 알려 주지 않아도 언젠가는 눈치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애들은 아니?”
“모를걸요? 한번 물어봐야지.”
이안은 바로 단체 톡방을 켰다. 안 읽은 톡이 무려 100개가 넘어 있었는데, 조태웅의 할머니 댁을 다녀온 뒤로 다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톡방으로 대화를 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이안5) 우리 축가 준비해야 함 – 10:11
(박진혁3) 갑자기요? – 10:11
(이주혁3) 누구 결혼해? – 10:11
(이안5) 동수 형이랑 서 이사님이랑 결혼한대 – 10:11
(서다미2) ? – 10:12
(춤신춤왕김주영2) ??? – 10:12
톡방이 물음표로 가득 찼다. 다들 새로 산 이모티콘을 자랑하려는 듯 이모티콘까지 남발하고 있었다.
(현현3) 아 거대 이모티콘 뭔데 매너 좀 – 10:16
(죠탱4) 내가 모르다니 – 10:17
(죠탱4) 원래 이런 건 내가 먼저 말해 주는 건데 – 10:17
원래 이런 소식들은 조태웅이 먼저 알아차린다. 회사 사람들과의 친분도 있어서 이런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 주기 때문이다.
(현현3) ㅋ – 10:18
(현현3) 그러니까 빨리 서울 오라고 – 10:18
(죠탱4) ㅠㅠ – 10:18
* * *
‘어디 가?’
[난 리딩은 재미없더라. 촬영 현장 때나 구경 갈래.]이안이 밴에서 내리자마자, 진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가끔 기분 전환한다고 사라지던 진이었기에 이안은 아무 생각 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안이 김명진과 함께 빌딩 로비로 들어서자 빌딩에 입주한 사무실 직원이 그를 발견하고 숨을 삼켰다.
“헉!”
“안녕하세요.”
이안은 습관적으로 웃으며 인사를 했다. 잠시 커피를 사러 나왔던 직원은 지나가는 이안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뒤늦게 핸드폰을 들었다.
“저기…!”
이안이 엘레베이터를 타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문 열림 버튼을 연타했다. 누군가가 헥헥 숨을 내뱉으며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왔다. 김명진이 뒤로 물러났고, 이안이 반갑게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Z-Day’의 주인공, 나우신 역을 맡은 김민재였다. 김민재는 처음 만나는 사람 특유의 낯가림이 있었는데, 이안은 마치 어제 본 사람처럼 말을 걸었다. 같이 연기 합을 맞추는 신이 많았기 때문에 빨리 친해질수록 좋았다.
“사고당했다고 들었는데, 몸은 괜찮으세요?”
“어, 네.”
“교통사고가 후유증이 오래가잖아요.”
김민재는 ‘희빈 장씨’에서 김춘택 역할로 내정되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전생이었다면 이안이 아닌 김민재가 김춘택 역할로 확정이 되지만,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면서 그가 맡은 배역은 연준서에게로 돌아갔었다.
“네. 그렇게 많이 다친 건 아니라서요….”
“다행이네요.”
김민재는 살짝 얼떨떨한 얼굴로 이안의 말에 대답했다.
‘와씨, 얼굴이 무슨 잡티 하나도 없네.’
그는 병실에서 ‘희빈 장씨’를 보면서 놓친 배역에 대한 아쉬움이 짙었었다. 김춘택 역을 맡은 이안이 신드롬급 인기를 끌자 질투심도 들었었다.
‘성격도 좋아 보이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막상 이안의 얼굴을 마주치다 보니 그런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25살이라고요? 형이시네.”
“말 놓아도 돼요.”
“형도 저 편하게 부르세요.”
이안과 김민재가 리딩 장소로 들어서자 기자들이 수군거리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다.
“왔다.”
“둘이 같이 왔네?”
이안이 그들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를 하자, 김민재도 따라서 인사를 했다. 사진을 찍던 기자들 몇몇이 혼잣말을 했다.
“김민재가 우리한테 인사를 다 하네.”
“그러게요.”
김민재는 모델 출신 배우였는데, 모델계에서는 인지도와 경력도 꽤 탄탄했다.
타고난 능력에다가 집안도 잘사는 편이었기에 김민재는 자존감도 높았고 당당했는데, 그 때문인지 기자들에게 잘 보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었다.
김민재는 연기를 도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에게 무례하게 구는 기자를 한 번 마주치고 난 뒤부터는 기자들을 싫어했다.
“쟤는 모델 옆에서도 안 꿀리네.”
“막 찍어도 화보다. 화보. 지금 올리고 있어?”
“넵.”
“괜히 어그로 끌지 말고 칭찬만 해. 최이안은 클릭 수가 다르니까.”
블록버스터 드라마에 요즘 뜨는 아위 이안까지 기자들은 간만의 대형 떡밥에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었고, 실시간으로 기사를 올렸다.
이안은 옆에 앉은 배우와 인사를 하다가, 소란스러움에 고개를 들었다. 박 감독과 이 작가가 들어오고 있었다.
“다들 오셨죠?”
“리딩 시작하기 전에 짧게 자기소개하고 갑시다.”
이안이 맡은 배역은 말만 악역이지, 김민재와 투톱 주연이나 마찬가지였다. 박 감독의 앞에는 김민재가, 이 작가의 앞에는 이안이 앉아 김민재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박 감독과 이 작가가 짤막하게 소개를 하고, 김민재와 이안의 차례가 오자 기자들이 바쁘게 셔터를 눌렀다.
“K, 김준희 역을 맡은 아위 이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른 배우들의 소개까지 끝내고, 잠시 정적이 있었다. 박 감독이 박수를 한번 치고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럼, 리딩 시작할까요?”
박 감독이 조연출에게 손짓했다. 조연출이 대본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