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65
165
가서 식사 한번 하시면 됩니다.
전날 밤, 좀비에게 물린 꿈을 꾼 나우신은 다음 날 점심이 되어서도 찝찝한 느낌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우신 씨, 무슨 일 있어?”
“네? 아, 아뇨.”
주인공, 나우신 역을 맡은 김민재가 덜덜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한다. 그는 대본에 시선을 둔 채 목을 긁는 시늉을 한다.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리면서 호흡을 가쁘게 쉰다.
‘오, 잘하네.’
순식간에 배역에 몰입하는 것을 보니, 역시 미래의 톱스타는 달랐다.
‘그러고 보니 김민재가 이 드라마 찍고 떴었지?’
김민재가 열심히 하니 다른 배우들의 눈빛도 달라지고 있었다. 이안은 물을 한 모금 머금고 꿀꺽 삼켰다.
‘나도 대충 할 수 없지.’
배우들이 대본을 한 장 넘겼다. 다음 신으로 넘어가고, 드디어 이안의 차례였다. 조연출이 지문을 읽고, 이안은 고개를 들어 상대 배우를 쳐다봤다.
“너, 뭐야?”
“어?”
“피 냄새 뭐냐고.”
상대 배우가 이안의 시선을 피한다. 의도한 게 아니었다. 이안의 강렬한 시선과 서늘한 목소리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 것이다.
‘됐어.’
삭막한 목소리와 음울한 분위기. 대본을 썼을 때 생각했던 이미지와 똑같았다. 이주희 작가가 남몰래 주먹을 쥐었다.
이안은 상대 배우를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 대사를 쳤다.
“물었어? 야, 입마개 어딨어?”
“아, 아니….”
“이거 뭔데?”
이안이 손을 들어 올린다. 손가락이 움찔거리면서 덜덜 떨린다. 몸 조절을 잘 못 하는 좀비의 움직임을 표현한 것이었다.
‘저 눈빛….’
그 움직임에 박표현 감독이 재미있다는 듯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인간 물었냐고.”
“그, 그게….”
“물었냐고 묻잖아!”
이안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버럭 소리친다.
그 위압감에 상대 배우를 비롯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고작 리딩인데 왜 저렇게 열심히 해.’
‘아씨, 준비 안 됐는데.’
‘내가 어디에 나오더라?’
투톱 주연이 마치 카메라가 앞에서 찍고 있는 듯 실감 나게 연기하니, 분위기가 점점 더 고조되었다. 다른 배우들은 물을 마시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잘못하다가는 다 뺏기겠다.’
마치 ‘희빈 장씨’에서 조연을 맡은 이안이 온갖 주목을 다 가져간 것처럼. 김민재도 긴장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상대 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어….”
“하, 씨발.”
인간을 무는 순간, 그리고 들키는 순간 이 일대의 좀비들은 목숨을 보전하지 못한다. 이안이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사고를 친 상대에 대한 화남, 그리고 벼랑 끝에 몰렸다는 절망,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해결할까 하는 절박함. 짧은 순간 안에 여러 가지 감정이 표정에 담긴다.
박 감독은 그 표정 변화를 눈치채고는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입가에 띤 미소를 감추기 위함이었다.
‘이건… 미쳤다.’
박 감독과 이 작가는 결국 표정 관리에 실패하고 활짝 웃어 버렸다. 기자들은 숨죽인 채 그 상황을 카메라에 담았다.
* * *
“수고하셨습니다.”
리딩이 끝나고, 의자가 드르륵 끌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괜찮았나요, 작가님?”
“완벽했어요. 목소리 긁는 건 일부러 그런 거죠?”
“네.”
이안이 이 작가와 대화를 하는 사이, 박 감독과 김민재가 그에게 다가왔다.
“살살해. 무섭다.”
“형이 너무 잘하시길래.”
두 번 잘했다가는 잡아 먹히겠는데. 그렇게 생각한 김민재는 핸드폰을 이안에게 내밀었다. 이안도 그에게 핸드폰을 내밀어 서로 번호를 교환했다.
“두 분 다 너무 잘하시던데요?”
“빨리 크랭크인 들어가야 하는데.”
박 감독과 이 작가의 극찬을 받으며 리딩을 끝냈다. 이안은 다른 배우들과 인사하면서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는 김명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사진 잘 나왔다.”
김명진은 카메라를 가져 왔었는데, 아위 공식 블로그에 올라갈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안이 리딩을 하는 동안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너는 막 찍어도 잘 나온다.”
“그래요?”
“이거 봐. 팬들 좋아하겠는데?”
“오.”
김명진과 이안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갈까? 이거 빨리 올리고 싶다.”
“형, 먼저 가 있어요. 나 화장실 다녀올게요.”
“그래? 그럼 엘리베이터 잡고 있을게.”
김명진이 반대쪽으로 향하고, 이안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어디 가세요?”
“잠깐, 화장실. 먼저 가.”
그리고 이안의 뒤를 쫓아다니는 시선이 있었다. 이안도 그 시선을 눈치채고는 일부러 화장실에 들어간 것이다.
남자는 이안의 뒤를 따라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이안은 손을 씻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안 씨.”
“네, 안녕하세요.”
“리딩 아주 잘 봤습니다. 연기를 너무 잘하시더라고요.”
이안이 거울을 통해 그를 쳐다봤다. 이안은 진의 도움 없이도 남자를 눈치챘는데, 저마다 사진을 찍고 부지런히 기사를 올리는 기자 중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남자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누구시죠?”
“팩트픽스 양인준입니다.”
“여긴 페이퍼 타월이 없네요.”
양인준이 악수를 하려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안은 손에 물기가 있는 것을 보여 주면서 악수를 피했다.
“근데, 팩트픽스라… 이젠 저 안 따라다니시죠?”
이안이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농담을 가장한 진심이었다. 아위의 인기 멤버인 이안은 늘 사생과 기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양인준이 하하 웃었다.
“저희 회사가 이미지가 안 좋긴 하죠.”
어쨌든 안 따라다닌다는 말은 안 하네. 이안이 피식 웃었다.
“근데, 여기까지 왜 따라오셨어요? 뭐 할 말 있으신가 봐요?”
“이런, 제가 너무 티를 냈나요?”
“아까부터 저를 집요하게 쳐다보시길래.”
이안은 양인준에게 멀찍이 떨어졌다. 말투 행동 그리고 묘하게 비열해 보이는 표정까지.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지만 양인준은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청화 그룹.”
견적이 나오는 것 같아 이안이 한숨을 쉬었다. 멤버들이 하도 무당 무당 하더니 진짜 감이 좋아졌나.
“광고 많이 찍었죠?”
양인준은 이안의 뒤에 중국, 신화 미디어 그룹의 예웬리가 스폰서로 붙은 줄 알았다. 그래서 일단 거절할 수 없는 당근을 쥐여 준 뒤에 살살 구슬리려고 했다.
“그래서요?”
이안이 팔짱을 끼고 벽에 등을 기댔다.
갑자기 청화 그룹과 그 계열사에서 광고 제의가 많이 들어왔었다. 이안 개인뿐만 아니라, 그룹까지 통틀어서 말이다.
당시에는 아위의 인기도 고공행진 중이었고, ‘희빈 장씨’로 퍼진 신드롬 때문인가 싶었었다.
‘많이 이상하긴 했지.’
신나게 광고를 찍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수상함을 느꼈는데 역시나.
“갑자기 청화 그룹 쪽에서 광고 제의가 쏟아져 나왔는데, 무슨 일인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거야 나와 우리 그룹이 잘나가서겠지. 이안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이 답은 양인준이 원하는 대답이 아님을 알았다.
“…제가 감사해야 하나요? 그쪽한테?”
“VIP분들께서 이안 씨에게 관심이, 참 많아요.”
양인준은 막상 이안의 뒤를 캐 보니 그에게 붙은 스폰서가 진짜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쯧, 망돌이었으면 더 쉬웠을 텐데.’
소속사를 통해 찔러 보려 했지만, BHL엔터는 연예계에서 드물게 깨끗한 축에 속했다. 소속 가수는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어서 기반도 탄탄한 편이었고, 당연히 아티스트를 보호한다며 거절할 게 뻔했다.
‘그래도 이건 기회야.’
하지만 개인에게 제안을 건다면 다르지. 최이안에게도 이득이라면 이득이지 나쁠 것 없다고 그러니 그도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고, 적어도 양인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돌 인기 한 철인데, 기반 바짝 다지셔야죠. 안 그래요?”
“…….”
“이안 씨 집안이야 뭐, 파워 있는 건 알죠. 근데 한국 연예계는 좀 다른 세상인 거 모르실 리 없을 테고….”
양인준은 이안의 어깨에 묻은 먼지 따위를 털어 줬다. 이안은 그 손길이 기분 나빠서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지만, 표정만은 덤덤했다.
“광고가 이거 한 번뿐이겠어요? 쭈욱 이어지는 거지.”
“…….”
“이안 씨는 그냥, 제가 마련해 준 자리에 가서 식사 한번 하시면 됩니다.”
간단한 식사 한번이 나중에는 술집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호텔이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 될 것이다.
“이런 거 하면 그쪽은 뭐가 이득인데요?”
양인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당연히 수락할 것이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이안은 달랐다.
‘내가 김용민 때였으면 이 제안을 듣고 고민했을지도 몰라.’
항상 잘나갈 만하면 어디서 일이 터지고, 선택하는 것마다 한 끗 차이로 실패한 인생이었다. 차라리 얼굴이라도 잘나서 스폰이라도 물어 봤으면, 그렇게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연예부 기자한테 대단한 언론인의 자세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팩트픽스 일 없나 봐요? 스폰서들 따까리 짓 하면서 연예인이나 소개해 주는 게?”
하긴, 잘하는 게 그쪽이지 연예인들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면서 건수 뭐 없나 기웃거리는 게.
“그 좋은 밥은, 그쪽이나 많이 드세요.”
이안은 양인준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그의 어깨에 붙은 먼지를 툭툭 떼 줬다.
“연예인 소개비로 옷도 좀 사 입으시고… 앞으로 얼굴 마주치는 일 없었으면 하네요.”
이안은 그 말을 끝으로 화장실을 나갔다. 양인준은 이안이 털어 준 제 어깨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어이없는 듯 하, 숨을 내뱉었다.
“어린놈의 새끼가….”
* * *
‘Z-Day’ 첫 대본 리딩 현장 공개… 숨 막히는 열연 펼친다
[★현장] 이번엔 좀비다 ‘Z-Day’ 아위 이안, 반전 분위기 발산이어서 아위의 블로그에 현장 스케치 사진이 올라왔다.
그중 가장 반응을 끌어 올린 사진은 목에 핏대를 세운 채 누군가를 몰아붙이는 이안의 사진이었다.
└ㅅㅂㅅㅂ대가리깬다
└미쳤다ㅠㅜㅠㅜㅠㅜㅜㅜㅠㅠ
* * *
“어? 청화 그룹 쪽에서 엄지환을 모델로 썼네요?”
“…애들 1년 계약 아니었어요?”
광고 찍은 지 고작 3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온에어를 앞두고 갑작스러운 모델 교체 소식에 바빠진 것은 소속사였다.
“이유가 뭐래요?”
“자세한 얘기는 안 해 주는데요? 위약금 얘기도 따로 없고.”
아무리 광고주가 갑이라지만, 이건 상도에 어긋나지 않나? 서수련이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댔다.
“근데요… 계약 기간 동안 계약은 유지하자는데요?”
“그게 뭔 개소리래? 전화 제가 해 볼게요.”
계약은 지속되는데 모델이 바뀐 게 무슨 일이야? 돈도 돈이지만, 팀 활동 중지 상태인 터라 미리 찍은 광고로도 매체에 꾸준히 노출되어야 했다.
다시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서수련이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뭐야?”
* * *
그 소식은 이안도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대본을 살피던 이안은 잠시 쉬는 시간 동안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뉴스 기사를 훑어보고 있었다.
자신이 들어갔던 광고에 다른 사람이 모델로 발탁됐다는 소식에 저절로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양인준, 그 사람 짓인가? 그 정도 영향력은 없는 거 같았는데.’
졸렬한 짓을 했네. 이안이 피식 웃었다.
‘나 대신 다른 연예인을 물었군.’
그것도 ‘Z-Day’에서 같이 촬영하게 될 조연 배우였다. 순간, 이안의 핸드폰에서 문자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잘 봐, 이게 니가 누렸어야 할 것들이야.)
“지랄한다.”
이안은 그 번호를 스팸 처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