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67
167
Z-Day. (2)
남자 아이돌 그룹, 나인세븐의 엄지환은 소속사 대표로부터 스폰 제안을 받았다.
‘지환아, 우리 뜨자. 다시 없을 기회야. 그 청화 그룹이라고.’
나인세븐은 아위와 데뷔 일이 2개월밖에 차이 안 나는 그룹이었는데, 그중 비주얼 멤버 엄지환은 타고난 얼굴 하나로 당연하게 ‘난 뜰 거야.’라고 생각하며 연예계 생활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의 그룹이 그의 생각보다 인기를 끌지 못해서 초조하던 참에 거절하기 아까운 제안을 받은 것이다.
‘할게요.’
예전이었다면 꿈도 못 꿨을 대기업의 제안. 식사만 하면 된다는 간단한 요구에 엄지환은 홀랑 넘어가 버렸다.
‘지환 씨가 그렇게 급이 높은 건 아니지만, 제가 VIP에게 한번 잘 말해 보겠습니다.’
하다못해 스폰서를 받았다는 자괴감보다 누군가의 대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존심이 상했었다.
‘어쨌든, 나만 이득이지.’
거절한 그 사람이 어리석었다고. 연예인이라면 암암리에 다들 하니까, 나는 뜨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합리화를 했다.
“분위기 죽인다.”
“둘이 케미 잘 맞지 않아요?”
이안과 김민재의 촬영을 지켜보던 스태프들이 수군거렸다.
‘내가 쟤 대신인가?’
그는 한창 연기에 몰두하는 이안의 얼굴을 쳐다봤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가 이안이 했었던 광고를 맡는 순간, 업계 관계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그의 귀에까지 들렸던 것이다.
엄지환이 제 아랫입술을 씹었다. 청화 그룹이 빨리 연락을 줬더라면.
‘저 자리가 내 것이 됐을 수도 있는데….’
엄지환은 스폰서가 붙어 광고도 많이 찍은 상태였다. 그는 부쩍 늘어난 자신감과 함께 헛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잘하긴 하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단순히 ‘잘하긴 하네.’라고 넘어갈 수준의 연기는 아니었다.
‘아니, 생각보다 훨씬….’
음악 방송에서 이안을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세트장 중앙에 서 있는 이안은 음악 방송에서 알던 아위의 이안이 아니었다. 완전히 배역에 녹아들어 다른 사람, 김준희가 되어 있었다.
“컷! 오케이!”
감독의 컷 사인이 울리자 이안이 금세 표정을 바꾸고 손을 풀었다. 묵직하고 빠르게 뻗은 주먹은 김민재의 코 바로 앞에서 멈췄다. 김민재는 놀라서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결국, 그는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와….”
“헐, 아프게 안 잡았는데… 괜찮아요, 형?”
“어? 어어…. 야, 너 진짜 잘한다.”
이안이 피식 웃으면서 김민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줬다.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을 받아 낸 둘은 나란히 서서 모니터를 바라봤다.
“너무 약하지 않아요, 감독님?”
“아냐, 지금이 딱 좋아요. 어차피 K 등장 씬은 따로 찍을 거니까.”
다양한 각도로 방금 했던 연기를 살핀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 감독은 영상의 한 구간에서 일시 정지를 했다.
“민재 씨 여기서 좋았어요. 겁먹은 연기 진짜 실감 나게 잘하네.”
“아뇨, 진짜 무서웠는데요. 와 무슨 눈빛이 저렇게 살벌하냐.”
상대 배우와의 시너지도 중요했는데, 김민재의 연기에 이안도 몰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김민재의 말을 농담으로 알아들은 박 감독과 이안이 하하 웃었다.
“겸손하시네요, 형.”
“다음 씬 촬영 갑시다.”
진짠데…. 김민재는 허탈하게 웃었다.
* * *
김준희에 의해 기절한 나우신은 톡톡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
“아, 쓰으….”
나우신이 코를 찡긋거리며 인상을 썼다. 김준희에게 맞은 얼굴이 쓰라렸다. 습관적으로 코를 만지려던 나우신은 의자에 양팔이 묶여 있는 것을 눈치챘다.
“뭐야….”
얼떨떨하게 묶인 손발을 쳐다보던 나우신은 몇 번 손을 비틀다가 온몸을 흔들며 결박에서 벗어나려고 용을 썼다.
“깼어요?”
“뭐, 뭐예요?”
그 소란스러움에 김준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에서는 기름칠이 안 되어 있어서 끼이익 섬뜩한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여기 어디….”
“너무 겁먹지 마세요.”
김준희가 씨익 웃었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의 시선에 나우신은 고개를 내리깔았다. 깜빡거리는 전구 하나가 끝인 지하 공간, 문은 김준희가 들어온 곳 하나뿐. 무거운 분위기에 나우신이 침을 꿀꺽 삼켰다.
“씨발….”
그가 울먹였다. 좀비에게 납치라니.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다. 눈앞에 있는 좀비는 그나마 말이 통하는 것 같아서 나우신이 애원했다.
“그냥 집에 가게만 해 주면 안 될까요.”
“이것만 확인하고 돌려보내 드릴게요.”
김준희가 문을 쾅 치자 나우신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말이 통하긴 개뿔….’
김준희의 신호에 한 남자가 들어온다. 남자는 손에 주사기를 들고 있었는데, 극 중 이름은 김강혁. 엄지환이 맡은 K의 오른팔 역할이었다.
“얘야? 물렸던 애가.”
김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우신은 그때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다. 김강혁도 창백한 피부에 얼굴에는 입마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쉬… 괜찮아요.”
정신 차려 보니 좀비 소굴인데 너 같으면 괜찮겠어? 나우신이 자신을 진정시키는 김준희를 째려보았다.
“우리 우신 씨 겁 많네. 진정하세요.”
“씨발 그럼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이제는 이판사판이다. 나우신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몸을 격하게 흔들었다. 김강혁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럴 필요 있어? 그냥 한번 찔러 보면 될 텐데.”
“안 돼.”
김준희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벽에 기댔다. 그의 움직임이 묘하게 사람이 아닌 듯,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뭐, 뭘 찔러…?”
김강혁이 주사기를 들고 있었지만, 그가 말하는 의미는 주사기를 찌른다는 의미가 아닌 것 같았다. 수술용 트레이 위에는 여러 가지 크기의 식칼이 있었다. 나우신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우신 씨가 화운 제약에서 일하시더라고.”
“화운 제약?”
김준희의 말에 김강혁이 몸을 굳혔다. 화운 제약, 정부 산하의 좀비 백신 전문 회사.
좀비들은 백신 때문에 그나마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더럽게 비싼 백신 값으로 좀비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좀비들의 목소리를 인간들이 들어줄 리가. 이 사회에서 목숨 붙이고 살려면 좀비들에게는 필요악인 기업이었다.
김준희가 나우신의 사원증을 흔들었다. 화운 제약의 로고, 김강혁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화운 제약이면 씨….”
“컷! 잠시만요.”
엄지환이 대사를 치려다가 박 감독에 의해 막혔다.
“지환 씨 잠깐 이리 와 볼래요?”
“네!”
이안은 묶여 있는 김민재에게 다가갔다. 김민재의 손목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쓸려서 아프지 않아요?”
“지금 확 온다.”
“저도 입마개 답답하네요. 줄 좀 여유롭게 해 드릴까요?”
그들의 수다를 뒤로하고 엄지환이 표정을 굳혔다. 감독이 자신만 불렀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
“김강혁이라는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주는 캐릭터거든요. 아시죠? 충분히 분석하셨을 테니까.”
“…네.”
‘충분히’에서 감독의 말에 가시가 있는 것 같았다.
김강혁은 설정상 지명수배자 K의 오른팔 역할이지만, 차분하고 이성적인 김준희와 대비되어 급진적인 성향의 김강혁이 K인 것처럼 시청자들을 속여야 했다.
“무게감을 줘야 하는데, 지금 지환 씨 존재감이 너무 약해요. 지금 민재 씨랑 이안 씨한테만 존재감이 집중되거든요.”
“…….”
엄지환이 모니터에 뜬 촬영분을 살폈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을 잘 표현한 김민재, 그리고 구석에 서서 나긋나긋하게 대사를 치면서도 존재감이 강력한 이안.
그 사이에서 존재감은 다 뺏기고 어중간하게 서 있는 자신. 엄지환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일단… 머릿속에서 김강혁은 잊고, K를 생각합시다. 연막을 쳐야 하니까.”
박표현 감독은 타고난 연출 감각과 함께 연기 디렉팅도 잘하기로 유명했다.
‘어떻게 따낸 기회인데….’
김강혁은 청화 그룹의 힘이 아닌, 엄지환이 자력으로 따낸 역할이었다.
엄지환이 주먹을 꽈악 쥐었다. 지금 자존심 차릴 때가 아니었다. 방심하다가는 두 주연 배우에게 밀려서 제대로 주목받지도 못할 것이다.
박 감독과 엄지환의 짧은 연기 디렉팅 시간이 지나고, 촬영이 재개됐다.
* * *
“화운 제약이면 씨발, 엘리트네? 우리 돈으로 잘 먹고 잘 살 거 아니야?”
“채혈이나 해.”
김준희가 나우신 쪽으로 고갯짓을 한다. 김강혁이 우뚝 멈춰서 김준희를 빤히 쳐다봤다.
김준희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김강혁과 눈싸움을 했다. 둘이 서로 싸울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김준희가 경고하듯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하지 마.”
“굳이 피 뽑을 필요 있어?”
“김강혁.”
김강혁이 식칼을 들어 나우신의 허벅지를 찔렀다. 미리 세팅되어 있던 가짜 피 주머니가 팍 터지고, 나우신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비명을 배경 음악 삼아 김강혁이 씨익 웃는다. 김강혁의 표정에서는 광기가 번들거렸다.
김준희가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 쉰다.
“또 송장 치우게 생겼네.”
비명을 지르던 나우신의 목소리가 뚝 끊기고, 그는 정신을 잃었다.
벽에 기댔던 김준희가 나우신의 허벅지를 살폈다. 김강혁이 식칼을 뽑자, 피가 멎지 않고 콸콸 쏟아져 나왔다.
“…아니잖아.”
기대에 찬 시선으로 쳐다보던 두 좀비는 이내 실망한 표정으로 변했다.
“씨발!”
뒤돌아선 김강혁이 벽을 발로 찼다.
그들은 좀비 바이러스에 대항하면서도, 좀비의 장점을 가진 인간을 찾고 있었다.
그들의 동료가 애꿎은 인간을 물었다고 했을 때, 들키면 사살이기 때문에 시체를 처리하러 현장을 찾았었다.
하지만 시체는 없었고 물렸던 인간이 버젓이 살아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드디어 그들이 찾아 헤맨 인간을 찾았구나, 희망에 가득 찼었다.
“뭐 해? 나가자, 시체 처리반이나 부르자고.”
김강혁이 문을 열었다. 하지만 김준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나우신의 앞에 우두커니 서서 변화를 찾아내려 애썼다.
“잠깐.”
칼에 찔린 나우신의 허벅지를 살피던 김준희는 그의 청바지를 손으로 찢었다.
대본에는 없던 행동이었다. 순전히 이안의 애드리브였고, 질긴 청바지를 뜯는 것은 그의 힘으로 해낸 것이다.
찢어진 청바지 속에 칼에 찔린 나우신의 맨살이 드러났다. 카메라 화면에는 가짜 피범벅에 상처 없이 매끄러웠지만, 이안의 눈에는 상처가 잔상처럼 보였다.
“이거 봐.”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김준희와 김강혁이 서로를 쳐다보면서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한다.
“컷! 오케이! 좋습니다!”
박 감독이 박수를 한 번 쳤다. 죽은 듯 늘어져 있던 김민재가 어깨를 폈다. 스태프들이 황급히 다가와 김민재를 묶은 끈을 풀어줬다.
“나 놀라서 눈 뜰 뻔했잖아. 다음엔 예고 좀 해 주라.”
“아, 어쩌다 보니….”
이안이 멋쩍게 웃었다. 김민재의 한쪽 허벅지가 휑했다. 김준희 역에 몰입한 이안은 갑자기 김민재의 바지를 찢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곧바로 시행했다.
“제가 너무 과몰입했나요?”
“바지 뜯는 거? 아주 좋았어요. CG 작업은 좀 하겠지만.”
박 감독은 이안의 애드리브에 감탄했다. 이 한 장면으로 좀비의 신체적 특성까지 보여 줄 수 있게 되었다.
세 배우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보완할 점을 찾았다. 박 감독은 거슬리는 부분이 있을 때마다 모니터를 짚었다.
“이 구간은 다시 촬영해 보죠.”
“네.”
김민재가 바지를 새것으로 갈아입고, 이안은 입마개를 풀고 물을 마셨다. 엄지환만 초조하게 손톱을 뜯었다.
이후, 같은 신의 촬영은 길게 이어졌다. 연기 합이 잘 안 맞아서 벌어진 일이었는데, 대부분은 엄지환이 낸 NG 때문이었다.
‘나만 NG 냈어.’
엄지환이 주먹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