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7
17
쟤네들은 그런 일 안 겪었으면 좋겠어.
목요일의 음악방송이 끝나고, 금요일은 공중파 K사에서 음악방송이 있는 날이었다.
[오늘 고생 좀 할 거다. 너 전생에는 이런거 없었지?]‘출근길 찍으라고 대놓고 판 깔아 주는 건 처음이네.’
새벽 6시반부터 진행되는 리허설 출근길. 언론사와 팬들이 한데 모여 사진을 찍으니 당연히 새벽부터 숍에서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고, 사복도 신경 써서 입어야 했다.
그렇다고 출근길이 질서가 있느냐? 하면 아니었다. 만약 유난스러운 팬덤이 껴 있다면 펜스를 뛰어넘어 가수에게 달려가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내렸는데 반응 별로면 어쩌지?”
“앞에 대선배님 이미 지나가 있고.”
“아, 뭐야. 이 소리 듣는 순간 트라우마될 듯.”
어느새 잠에서 깬 멤버들이 낄낄거렸다. 웃음이 많아진 걸 보니 긴장했군. 이안이 분위기나 풀어 볼 겸 말했다.
“에이 그 정돈 아니지. 내가 있잖아.”
“와 재수 없는데 맞는 말 같아서 반박할 수 없다.”
“나 순간 한 대 치고 싶었는데 쟤 얼굴 보고 관뒀자너.”
이안의 자뻑노선은 얼굴이 설득력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더 있었다.
“우리 어제 카페간 거 때문에 온다는 사람 많던데?””
어제의 인증샷과 영상이 올라오면서 ‘쟤네가 진짜 알아볼까?’라는 게시글을 시작으로 커뮤니티를 소소하게 달궜다.
진짜 알아봤다. 아니다 주작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어떻게 알아보냐, 소속사에서 작업 친 거 아니냐 말이 많아지니 종지에는 공방에 참여했던 아위의 팬이 공방 포카를 인증한 뒤, 내일 진짜로 간다? 가서 알아보나 본다?라며 본격적으로 판이 커졌다.
“근데 너 진짜 어떻게 알았어?”
“그냥 감이요. 그 방향이 신경 쓰이더라고요.”
이주혁이 신기한 듯 물었으나 ‘사실 저를 따라다니는 전직 홈마의 영혼이 알려 줬어요.’라고 할 수는 없으니 감이 특이하게 좋은 거로 무마했다.
“사람이 아니라 로봇인 거 아냐?”
“들켰군. 인간, 죽어 줘야겠어.”
조태웅이 이안의 볼을 콕 찔렀다. 이안이 입으로 치직거리며 맞장구쳤다.
“얘들아 다 도착했다.”
“나 어때?”
“뒷머리 눌렸다. 헤어 실장님이 등받이에 머리 기대지 말라고 했잖아.”
이안이 조태웅의 머리를 만져 주었지만, 푹 눌린 머리는 차마 살릴 수 없었다. 조태웅은 체념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플래시 세례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뿐만 아니라 팬들의 환호성 소리도 들렸다.
“이게 무슨 일이래?”
“예의상 찍는 거겠지.”
이안이 조태웅의 어깨를 잡으며 차에서 내렸다. 사방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이안의 생각보다 많은 인파가 몰렸다. 같이 출연하는 가수들 중에 이렇게 모일 만한 가수가 있었나?
멤버들과 함께 표시된 포토존으로 향했다. 그룹의 구호를 외치고, 왼쪽 중앙 오른쪽 차례대로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진다.
“이안아 사랑해!”
“태웅이 섹시하다!”
남팬으로 보이는 사람이 우렁차게 소리친다. 멤버들이 푸핫 웃었다.
[저거 높은 확률로 남팬 아니다.]‘그럼 뭔데?’
온갖 스케쥴에 출석해 사진을 찍어서 데이터를 파는 사람들이다. 이게 돈이 돼? 하겠지만 놀랍게도 진짜 돈이 된다. 사정상 스케쥴 못 뛰는 홈마들이 사거나, 개인 소장 목적으로 산다.
[어제 왔던 너네 팬 또 왔다.]‘어디?’
이안이 파란 점을 찾았다. 포토존에서 떨어진 두 개의 점이 방송국 입구 쪽에 반짝이고 있었다.
“진짜 왔네?”
“누가? 어제 팬?”
이안의 놀란 소리에 멤버들이 이안을 쳐다보았다. 멤버들은 포토존을 떠나 방송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이안이 발견한 팬을 향해 손을 방방 흔들었다.
자세히 보니, 이안도 얼굴을 기억하는 팬이었다. 스케쥴이 끝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자기 전까지도 그 팬의 너무 좋아하는 표정이 잊혀지지 않을 정도였으니.
“어제 카페 앞에서!”
“안녕하세요! 오늘도 저희 보러 온 거예요?”
이주혁과 김주영도 생각이 났는지 그쪽으로 한 발짝 다가갔다. 당연히 맞은편에선 소리치고 난리가 났다. 이안은 그 팬 뒤에 있는 파란 점에게도 인사했다.
“어제 오셨죠? 사녹.”
“저는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카페도 안 갔었는데? 팬의 호들갑에 주변이 더 놀란다.
“저는 다 알아요.”
“저 오늘도 사녹 들어가요!”
“그래요? 그럼 무대 위에서도 아는 척해 줄게요.”
한 팬만 특혜한다 뭐다 창조논란이 있겠지만 데뷔 4일 차인 지금하지 언제 하겠나. 그리고 만약 논란이 일어난다면 다른 팬들도 일일이 알아봐 주면 된다.
팬이 꺄르륵 웃는 것에 이안도 따라 웃었다. 다른 멤버들은 이안을 신기한 생물 보듯 쳐다봤다.
“이안이가 귀신인가 봐요. 어제도 이안이가 다 알려 줬어요.”
“와 최이안 맵핵인가?”
조태웅의 목소리에 팬들이 하하 웃었다. 이렇게 맵핵 칭호가 생기게 되나.
혼잡한 와중이라 얼마 못 가고 매니저가 끌고 들어갔지만 화제가 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근처에서 소스를 문 기자 몇이 기사를 쓰고, 그 기사를 받아 적은 기자들이 하나둘 기사를 올렸다.
아위, ‘멋짐 흩날리는 7명의 꽃미남’
[사진] 아위, ‘어제 오셨죠?’ 팬 알아보는 신인 아이돌연차가 쌓이면 늘 출석하는 사람들을 알아보는 건 쉽다. 하지만 갓 데뷔한 신인이 사녹 한 번 참여한 팬을 알아보기엔 쉽지 않다. 새벽 시간이었지만 아위 관련 키워드가 실시간 해시태그로 떠올랐다 사라졌다.
***
이 방송사는 왜 새벽부터 전체 가수가 출근길을 찍나? 하면 바로 이 시간 때문이었다. 바로 아침에 하는 드라이 리허설 일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사녹 다 송출될 텐데 왜 이런 걸 하는 걸까. 비효율적이지 않나?’
[전통이지 뭐. 방송 끝나고 한데 모여서 피디한테 인사도 하잖아.]‘아직도?’
김용민 때에도 그러더니 아직까지 없어지지 않았군. 이안이 쯧 혀를 찼다.
무대가 펼쳐질 홀에서, 제작진과 출연자들은 좌석에 앉아 무대를 지켜본다.
자기 이름이 박힌 큼지막한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대기하고 있으면, 스태프가 마이크로 호명하는 그룹부터 차례대로 나와 리허설을 진행한다.
아위의 순서는 딱 중간이었다. 그래도 ‘핫 데뷔’라고 앞 순서는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선배님들 다 쳐다보고 있는 거야?”
“왕부담.”
멤버들의 한탄소리를 들으며 이안은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지금 왕부담이면 나중엔 어떡하나….’
[나중에 왜?]‘…들리지?’
[와… 리허설이라고 대충 하면 안 되겠네.]무대에서 무대 하는 가수 바로 뒤 순서는 빠른 진행을 위해 인이어와 마이크를 미리 착용하고 있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앞 사람의 노래 소리가 인이어를 통해 흘러나오게 된다. 어디 노래 소리뿐인가? 숨소리까지도 적나라하게 들린다.
진은 이안의 한쪽 인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경악했다.
[노래 개못 함. AR빨이었네.]‘저 정도 춤추면서 하는 거면 잘하는 거지.’
[니가 그런 말 하는 건 기만아니냐?]바로 앞 순서는 오늘 막방인 갤럭시보이즈였다. 누군가의 음 이탈이 인이어를 통해 들리자 멤버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한창 멋 부릴 나이, 게다가 그들의 바로 뒤 순서는 여자아이돌이다. 갑자기 물을 찾는 멤버들을 보며 이안이 작게 웃었다.
“다음, 아위 나오세요.”
벌떡 일어나 무대로 올라가는 신인 그룹을 제작진과 가수들이 유심히 지켜본다.
“얘네가 오늘 데뷔 무대.”
“쟤 배달원 아니에요? 이 그룹이구나.”
제작진들이 앞 가수의 동선을 정리하며 그들을 힐끔 쳐다보았다.
“쟤 데뷔하는구나.”
“아는 애 있어? 쟤는 어디서 많이 봤는데?”
좌석에서 대기하고 있는 가수들 중에는 같이 연습생 생활을 하다가 각자 그룹으로 데뷔한 몇몇 일면식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 목이 좀 잠겼는데.’
다른 멤버들이 긴장하거나 말거나 이안은 인이어를 끼우며 편하게 목을 풀었다. 성량 좋은 목소리가 홀을 울리자 깜짝 놀라는 시선이 느껴졌다.
“저렇게 대놓고 목 푸는 신인은 처음이다.”
“패기 좋네~ 저러고 삑사리 나오면 어쩌려고 저러나.”
좌석에서 작게 웅성거렸으나 인이어를 착용한 상태라 이안은 듣지 못했다. 몇몇 멤버가 이어마이크를 정리하고, 래퍼인 이주혁, 박진혁과 메보 최이안은 핸드마이크를 가볍게 잡았다.
“언제나 당신 곁에! 안녕하세요, 아위입니다!”
짧게 정비를 마치고 그룹 인사를 했다.
“스탠바이, 아위 AR주세요.”
스태프의 사인에 노래가 시작되고, 이안이 마이크를 들었다. 살짝 잠겨 낮은 목소리지만, 타고난 노래 실력은 감출 수 없었다.
박자가 딱딱 맞는 절도 있는 군무를 펼치면서도 음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 잘하네.”
피디가 의외라는 듯 무대를 쳐다보았다. 신인이면 아무래도 모두가 모인 이 자리를 부담스러워 해서 음 이탈도 나고, 안무가 안 맞기도 했는데 이 그룹은 마치 생방송인 것마냥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얘네 넣어도 되겠다.”
“괜찮네.”
피디가 옆 사람에게 무언가를 의논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옆 사람은 바로 이 방송사 연말 가요제 담당 피디였다.
***
드라이 리허설을 마친 아위가 대기실로 향했다. 오늘도 파티션 대기실이었다. 언제쯤 신관에 있는 개별 대기실을 써 볼 수 있을까.
“얘들아 우리 리허설 두 번 더 남았어. 좀 자 둬.”
매니저의 말에 모두가 바닥에 털썩 앉았다. 아침에서 끝이 난 게 아니다. 중간 리허설이랑 마지막 카메라 리허설이 있다. 그리고 사전녹화까지.
중간 퇴근 시간이 있지만 따로 일정이 없는 그들로서는 방송국에서 무한 대기 신세다.
“그리고 끝나고 팬사인회 있는 거 다들 알지?”
“넵.”
“그렇다면 먼저 누워야지.”
“아, 최이안 반칙.”
잠깐 어두워진 표정을 숨기려 이안이 구석에 누웠다.
[왜 그리 죽상이야?]‘팬사인회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떠올라서.’
때는 최이안이 김용민 시절, 그가 다이아몬드 활동을 할 때였다. 대부분은 가수의 팬사인회 논란이라고 가수들이 똑같은 말만 반복해서 성의가 없다라든가 예쁜애한테는 대응 잘 한다고 차별 논란이 일기도 한다.
그리고 반대로 듣보 아이돌이 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받는 모욕도 존재한다.
다이아몬드는 음반 2장만 사도 당첨되는 팬사인회, 100명 정원에 많아 봤자 고작 70명밖에 오지 않는 정말 듣보돌 중 듣보돌이었다. 그것 때문에 매일 출석하는 사람은 다 아는 사람들이구만 할 정도로 고인물들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새로운 얼굴이 찾아온다? 저렴한 가격에 연예인 손이나 잡아 볼까 하는 마치 호스트 바 개념으로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너는 진짜 정이 안 간다.’
‘제가 정이 왜 안 가는지 알려 줄 수 있어요?’
‘그냥 싫어. 너 메보라고 파트 많은 것도 이해 안 돼, 노래 연습 좀 더 해.’
그리고 그 고인물 팬이, 자신도 얼굴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면전에서 대놓고 자신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무리 비난에 익숙한 연예인이어도 상처를 받는다.
‘다음에는 언제 나오니? 지친다.’
‘어떡해야 너를 좋아하게 될까?’
‘너 이번 춤 구려, 춤 연습 좀 해.’
팬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악의적인 비방. 물론 이렇게 말하는 팬들은 대부분 까빠, 자신보다 다른 멤버를 좋아하는 악성 개인팬인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도 그들 그룹의 팬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팬이라는 권리하에, 굳이 팬사인회까지 돈을 쓰고 와서 자기가 회사 사장인 양 갑질을 하러 오는 것이다.
‘너네 보라고 일부러 파인 옷 입고 왔어. 어때? 좋지?’
그리고 어차피 논란 있어 봤자 듣보 아이돌이라 사람들의 관심도 적으니, 성희롱도 서슴치 않는다.
‘언제나 응원하고 있을게, 용민아.’
물론 그도 자주 찾아오는 찐팬들은 기억이 나지만, 그래도 안 좋은 말을 들은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내가 너한테 돈을 이만큼 썼는데 이정도 말은 들어 줄 수 있지? 하는 보상 심리. 그들의 팬심이 식으면 늘 출석하던 얼굴이 하나둘 없어진다.
어차피 그들에게 있어서 아이돌 가수란, 쇼핑하듯 다른 젊은 사람들로 갈아타면 되니까.
[그냥 대놓고 싫다고, 하지 말라고 말하면 안 돼?]‘그럴 수 없었지. 그 사람들은 맘만 먹으면 더 잘난 그룹으로 갈 수 있겠지만, 나한테는 그 사람들이 전부였거든.’
[그런 일이 있다고는 들었었는데, 여기 경험자가 있었네.]이안이 씁쓸하게 웃었다. 매번 보였던 얼굴이 언젠가 안 보이고 그 사람이 다른 그룹의 응원봉을 들고 있을 때를 우연히 봤을 때.
점점 빈자리가 늘어나는 인원 미달 팬사인회. 음악방송에 나갈 돈은 없고 행사에서는 인기 없다고 안 불러 줄 때.
‘쟤네들은 그런 일 안 겪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최이안이 된 너도?]‘그렇지.’
어느새 반쯤 일어나 소리 없는 베개 싸움을 하고 있는 멤버들을 보며 이안이 하하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