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73
173
Z―Day (8)
‘Z―Day’ 촬영도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약간의 마찰을 빚은 이후 엄지환은 조용했다. 이안과 단둘이 있어도 별말을 안 했고, 어쩌다 단둘이 있으면 서로를 무시하기 바빴다.
‘엄지환은 조용하네.’
[너보다 유명해지겠다고 이 갈고 있던데?]‘그래?’
촬영장에 도착한 이안은 늘 그랬던 것처럼 스태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뭐로 유명해져? 실력은 똑같던데.’
[언플 오지게 때리려나 보지. 다른 드라마도 들어갈 거고. 쟤랑 쟤 기획사가 원래 그래.]하긴 연예계에서 실력이 다가 아니지.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하는 게 좋았다.
이안은 피식 웃었다. 엄지환이 이를 갈아 봤자 그렇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원래도 쟤가 스폰을 받았었어?’
[청화는 아니고 다른 쪽. 이맘때쯤 엄지환 언플 오지게 때렸었지. 반짝하고 사라졌지만.]‘그랬었나….’
이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다.
[아마 이거 끝나고 다른 드라마 들어갈걸? 푸쉬빨로 ‘우연의 일치’ 들어갔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잠깐만, 그거 무슨 역할로 들어갔는데?’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남자 조연이었을 걸? 서브 남주였나?]‘미친….’
‘우연의 일치’. 잊을 수 없는 드라마였다. 이안의 전생, 김용민이 최종 오디션까지 붙었는데 갑자기 나오지 말라고 했었던 드라마였다.
이유를 물어도 제대로 답해 주지 않았고, 결국 아쉬움만 삼킨 채 다른 작품의 오디션을 준비했다.
후에 ‘우연의 일치’가 입소문을 타면서 시청률도 잘 나오고 수출도 잘 됐을 때의 허무함이란.
‘그게 엄지환 때문이었구나….’
이안은 같은 드라마에 출연할 배우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편이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루틴 같은 것이었다.
배우끼리 스스럼없이 지내야 연기할 때도 더욱 편하게 연기를 할 수 있었으니까.
하물며 단역 배우도 챙겨 줬었는데 ‘Z―Day’의 배우 중에서 엄지환은 유독 정이 가지 않았었다. 그래서 매번 지환 씨, 지환 씨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뒀었다.
‘어쩐지….’
어차피 과거 일이고 이안은 더 이상 김용민이 아니었지만, 배역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때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 못 할 정도였으니까.
[김용민이 또?]이안의 표정을 읽은 진이 킬킬 웃었다.
분장을 끝낸 이안이 벌떡 일어나 촬영장으로 향했을 때, 김민재가 조용히 그의 옆에 다가와 나란히 복도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형.”
“안녕, 몸은 괜찮아?”
“멍이 없어질 만하면 새로 생기는데 이제 익숙해졌어요.”
액션 연기에 재미를 붙인 이안과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거침없어진 박 감독과 액션 감독은 신나게 이안을 굴렸다.
이안은 힘들긴 해도 카메라에 잘 나오니 현장에서는 신나게 촬영했지만, 촬영이 끝나고 숙소로 향하는 밴 안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을 느낄 때면 뒤늦게 후회하고의 반복이었다.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스턴트 쓰는 내가 다 눈치 보이더라.”
“원래 스턴트 쓰는 게 맞죠, 우린 몸이 재산이잖아요.”
“맞아,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적당히 해.”
“욕심이 생겨서…. 안 그래도 매니저 형 시선이 따가워서 다음에는 혼자 다 안 하려고요.”
“이번 작에서는 다 하겠다는 거네?”
이안은 대답 없이 씨익 웃었다. 김민재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그래도 쟤 덕분에 동기 부여는 확실하게 되니까.’
촬영에 열심히 임하는 이안을 보면 없던 열정도 생길 지경이었다. 김민재는 괜히 업계 사람이 앞다퉈 이안을 칭찬하는 게 아니라 생각했다.
‘배울 점이 많은 친구야.’
긴 복도를 지나 촬영 현장에 도착한 그들은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현장 세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지환 씨는 어디 있어요?”
“어디긴, 밴에 있겠지.”
김민재가 고갯짓을 했다. 멀찍이 떨어진 엄지환의 밴 쪽이었다.
초반에는 현장에 잘 나오던 엄지환은 점점 촬영장에 안 나오더니, 자신의 촬영이 있을 때만 나와서 연기를 하고 밴에 콕 박혀 있기를 반복했다. 밥도 밴에서 따로 먹을 정도였다.
덕분에 바빠진 것은 스태프들이었다. 그들은 엄지환의 촬영이 시작할 때쯤이면 부리나케 밴으로 뛰어가서 촬영 들어갈 거니 이제 준비하시라고 권유해야 했다.
“젊은 애가 벌써 저러면 안 되는데….”
“형님, 그런 얘기 하면 꼰대 소리 들어요.”
“왜, 내 말이 맞잖아. 같은 작품 하는 사람이 촬영장 전체 그림을 파악하고 있어야지 자기 연기만 하고 들어가서 코빼기도 안 보이고….”
박 감독과 많은 작품을 함께한 중견 배우들은 엄지환의 밴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안과 김민재가 촬영장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시선을 느낀 이안과 김민재는 그들에게 다가가 상체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우리 이안이랑 민재 봐, 얼마나 성실해?”
“하하, 감사합니다.”
이안과 김민재가 멋쩍게 웃으며 중견 배우들의 칭찬을 받았다.
“지환이랑 요즘 사이 별로네.”
“원래도 친한 건 아니었잖아요.”
배우 선배님들과 나란히 서서 촬영장의 분위기를 익히는 이안에게 김민재가 속삭였다. 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나 화장실에서 대화 다 듣고 있었어.”
“그래요?”
누가 듣고 있었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았다. 이런 식의 기 싸움이야 연예계에서는 흔했다. 스태프에게 패악질 부리고, 서로 멱살 잡고 싸우는 광경도 한두 번 목격할 정도였으니. 오히려 이안과 엄지환은 장난 수준이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이미 충분히 신경은 안 쓰고 있었지만, 걱정해 주는 마음이 퍽 고마워서 이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지 않아? 아직 이 은신처도 털리지 않았는데….”
“….”
“내가 특별한 면역이 있다는 걸 군인들이 너무 빨리 알아차렸잖아.”
“….”
“설마 너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김준희를 보며 그가 자신의 정보를 넘긴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나우신은 배신감을 느낀다.
“너구나.”
나우신은 그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은신처를 빠져나와 인적이 드문 골목에 멈춘 나우신이 중얼거렸다.
“아무도 믿을 수 없어.”
따지고 보면 김준희 때문에 자신은 일자리도 잃었고, 하루아침에 수배자가 됐다. 좀비들을 믿을 수도, 정부 쪽을 믿을 수도 없다.
“난 이제 어떻게 하지?”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한다. 김강혁은 계속되는 군인의 설득 끝에 배신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고, 나우신은 김준희를 점점 불신하게 된다.
“K는 믿을 수 없어. 나와 같이 정부 쪽으로 가자.”
“정부 쪽에 간다고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 거 같아? 이건 배신이야.”
“이건 배신이 아니야, 옳은 자리를 찾아가는 거지.”
김강혁은 그런 나우신에게 밑 작업을 한다.
그 상황을 다 알고 있었던 김준희는 마지막 테러를 하기 위한 결심을 굳히게 된다.
나우신이 점점 김강혁 쪽으로 마음이 기울 때, 나우신은 김준희의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저 녀석은….’
주기적으로 맞아야 하는 백신을 맞은 적이 없었고, 인간의 시체를 먹은 적이 없었다.
“너….”
나 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고 했었다. 설마.
나우신의 표정에서 그의 생각을 읽은 김준희가 웃었다.
“딱 한 명 있었다고 했죠? 그게 나예요.”
“뭐?”
“완벽한 우신 씨와는 살짝 달라요. 변이종이라고 하죠.”
“근데 왜….”
“그들이 원하는 백신이 지금까지 안 나온 걸 보면 나는 적합하지 않았나 보죠.”
‘발견 즉시 생포’였던 K의 지명 수배지는 나우신이 2급 지명 수배자가 되고부터 ‘발견 즉시 사살’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K가 없어도 나우신이라는 대체품이 생겼으니까.
“김강혁이 정부 쪽으로 붙자고 했죠?”
“그… 그걸 어떻게….”
“이걸 보고도 정부에 몸을 의탁하고 싶어요?”
김준희는 피가 얼룩진 파일철을 나우신에게 던진다. 얼떨결에 받은 나우신은 파일철의 자료를 살펴본다. 무언가의 실험 기록, 그리고 연구실에서 온몸을 결박당한 채 피를 뽑히는 김준희의 모습이 사진으로 담겨 있었다.
“이건….”
“우신 씨의 미래죠.”
김준희는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방벽 밖을 떠돌던, 종말을 함께 했던 좀비였다. 밖에서 떠돌던 세월이 길었던지라 인간에게 잡혀 와 감정을 깨닫고 삶에 대한 열망을 얻었을 때가 있었다.
“그들은 우신 씨를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을 거예요. 쓸모 있는 가축 정도로 보겠지.”
그리고 인간들에 의해 연구실로 끌려와 피를 뽑히며 실험을 당하는 장면이 차례로 비추어진다.
‘우리가 원하는 백신을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폐기해.’
그의 처우를 두고 속삭이는 목소리들, 이대로 있다가는 죽겠다 싶은 김준희는 연구실에 있던 다른 좀비들과 함께 연구실을 탈출하고, 연구실은 불길에 휩싸인다.
“우신 씨의 DNA는 백신에 적합해야 할 텐데.”
김준희는 나우신이 나타나기 전까지 자신의 피로 백신 연구를 했었다. 그는 그 데이터가 담긴 USB를 나우신에게 건넸다.
“우신 씨, 아무도 믿지 마세요.”
“대체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글쎄요…. 나도 잘 모르겠네.”
어쩌면 동병상련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에게도 조력자가 있었다면 하는 바람도 섞여 있었을지도.
좀비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면서 간헐적으로 테러를 저지르고 곳곳에 퍼져 있는 화운 제약의 연구실을 털어 백신의 실마리를 찾으면서 자유 없이 의무감에 묶여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뿐이다.
“우신 씨가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일을 하세요.”
그는 나우신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K는, 김준희는 이제 지쳤다.
“컷! 좋습니다!”
서로 마주 보고 있던 이안과 김민재가 표정을 풀었다. 그들은 감독과 함께 촬영 모니터를 하고 한 번 더 재촬영한 뒤 스태프들이 다음 씬을 준비하는 동안 휴식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많은 단역들은 처음이다.’
[역시 자본이 빵빵하면 이게 좋다니까.]좀비로 분장한 단역 배우들이 촬영장 구석에 모여 있었다. 이안은 전생까지 포함해서 많은 촬영장을 돌아다녔었지만, 역대급 인원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 헉!”
이안은 단역 배우들이 모인 곳에 다가가 상체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대기하고 있던 단역 배우들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미친!”
“팬이에요!”
이안의 곁으로 사람들이 몰리자, 박동수가 긴장한 표정으로 이안의 옆에 붙었다.
“그래요? 촬영 들어가기까지 아직 시간 있는데, 사진 찍어 드릴까요?”
“진짜요?”
“대기하느라 심심하시잖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단역 배우들은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오랜 시간 동안 대기하는 일이 많았다. 촬영 시간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계속 버스 안에서 대기하는 지루함의 연속 속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굳이 이럴 필요 있어?]‘왜? 다들 좋아하시잖아.’
김용민이었으면 이렇게 사람이 몰리지도 않았겠지. 이안은 즐거운 마음으로 팬서비스를 하기로 했다.
“이안아….”
“미안해요, 형.”
한숨 쉬며 말하는 박동수를 보며 이안이 멋쩍게 웃었다.
‘저것도 다 가식이지.’
밴 안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엄지환은 이안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저렇게 이미지 관리 한다고 누가 알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