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74
174
Z―Day (9)
“감독님, 드디어 ‘그 장면’이네요.”
“이 작가, 나 손 떨리는 거 보여요?”
‘Z―Day’의 엔딩이자 하이라이트인 좀비 쇼크를 찍는 순간이었다. 박 감독과 이 작가가 카메라 화면으로 동선을 확인하는 이안을 쳐다봤다.
“1시즌용으로 쓰기에는 아까운 배우인데, 이 작가는 어떻게 생각해요?”
“그래서 김준희 생사를 모호하게 했잖아요. 나중에 반응 터지면 다음 시즌에도 등장시키죠.”
“근데 다음 시즌도 이안 씨가 할까요? 지금도 이안 씨 매니저가 우리 뒤통수를 뚫을 거 같은데….”
박 감독과 이 작가가 뒤를 흘끔 쳐다보았다. 박동수는 팔짱을 낀 채 눈을 부릅뜨고 이안이 혹시 다칠까 봐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게 적당히 하지 그러셨어요. 스턴트도 거의 안 썼던데.”
“이안 씨가 너무 잘하길래…. 자기도 하고 싶어 했고.”
박 감독이 우물쭈물했다. 그는 박동수의 눈치를 봐도 할 말 없었다.
“그리고 감독님, 다음 시즌 확정이면 엠플릭스가 제작비를 따블로 주지 않을까요?”
“그거 좋네요.”
출연료를 많이 준다면 거절할 소속사 없다. 박 감독은 다음 시즌에도 이안을 촬영할 수 있도록 소망하면서 닳도록 만지작거렸던 콘티를 소중히 내려놓았다.
“엠플릭스가 우리 시즌 2 때도 지원 많이 해 줘야 할 텐데….”
“우리 이 작가님 벌써 시즌 2 생각하는 거야?”
“왜요? 하면 안 돼요? 제 대본이랑 감독님이면 시즌 10 정도까지 가야죠.”
그녀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박 감독이 하하 웃었다.
“에이, 시즌 10까지는 솔직히 불가능하죠.”
* * *
스튜디오에서 몇몇 추가 촬영이 있겠지만 공식적인 촬영은 이번 씬을 끝으로 끝난다.
“이번에 찍을 장면은 제가 대본을 썼을 때 많이 고민하던 장면이에요.”
“저도 개인적으로 찍고 싶어 했던 장면입니다. 다들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랍니다.”
현장에서의 마지막 촬영이기 때문에 박 감독과 이 작가의 촬영 전 짧은 연설 시간을 가졌다.
“여러분과 함께해서 영광입니다. 마지막 촬영도 힘내서 끝내 봅시다.”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이안은 짧게 심호흡을 하면서 긴장을 풀었다. 대규모 좀비 전투씬, 이안은 그 중심을 잘 잡아야 했다.
“큐!”
새벽녘, 김준희는 뜻이 맞는 좀비들과 함께 화운 제약의 백신 보관소에 잠입해 좀비 백신을 식염수로 바꿔치기하기로 한다.
“꼭 이래야겠어?”
“그러면, 우신 씨는 왜 이래요?”
“…나는 너처럼 살기 싫어.”
정부에 잡혀서 실험체 노릇을 하다가 기껏 풀려났더니 좀비의 우두머리가 되어서 쫓기는 인생, 이게 삶이라 할 수 있겠는가.
대의와 양심을 집어던진 채 자신만을 위해 살기로 마음먹은 나우신은 김준희 편에 서기로 결정한다.
“이제 어떻게 하려고요?”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낙관적인 생각을 해 봤자 달라지지 않을걸요? 좀비는 이제 종말 때처럼 이성을 잃을 거고 정부는 우신 씨를 이용만 하다 버릴 거에요.”
“앞으로 일어날 일은 너도나도 몰라. 하지만, 희망적이길 바라야겠지. 나는 내 삶을 개척할 거야.”
김준희는 희망을 품은 자의 눈빛을 봤다. 그 눈빛을 보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처럼 살기 싫다라….”
나우신은 그 장소를 먼저 빠져나갔고 남겨진 김준희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들이 백신을 바꿔 치기 한 다음 날이 되었다. 김준희와 나우신이 무슨 일을 벌인 건지는 꿈에도 상상 못 한 인간들은 평화로운 출근길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 저 아저씨 봐 봐!”
입마개를 한 채 거리를 청소하던 좀비에게 유치원 가방을 멘 한 아이가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에 의해 양어깨를 잡힌다.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잖아!”
“근데… 진짜 이상한데.”
아이 엄마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와 시선을 맞췄다. 아이와 아이 엄마의 얼굴이 화면에 한가득 잡힌다.
“저런 입마개를 쓴 사람한테 엄마가 어떻게 하라고 했지?”
“가까이 가지 말고, 건들지 말라고 했어!”
화면에서는 그들의 얼굴만 클로즈업되어서 그들의 얼굴을 번갈아 보여 준다.
“그렇지. 저런 괴물들은 조심해야 해. 언제 우리 은지를 해칠지 몰라. 알았니?”
순간, 어느 기점에서 화면 구도가 바뀐다. 갑자기 얼굴에서 멀어진 카메라가 아이의 상체, 그리고 뒷배경을 보여 준다. 아이의 뒤쪽에서는 아이가 지목했던 좀비가 몸을 뒤틀고 있는 모습이 보이게 된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시선을 맞추느라 그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봐. 저런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저 사람들이 어떻게 한다고 했지?”
“어흥 한다고 했어! 어ㅎ….”
아이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몸을 뒤틀던 좀비가 입마개를 벗어 우그러뜨리고는 아이의 목덜미를 물어 버렸기 때문이다.
“꺄아아아아악!”
아이의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힘없이 털썩 쓰러지는 아이를 부여잡고 오열하고, 아이의 살점을 씹은 좀비는 몸을 움찔움찔 뒤틀면서 어눌한 말투로 대사를 말한다.
“컥, 커으헉. 어, 죄송합, 니다. 왜, 이러, 지….”
“아아아악! 은지야!”
“백신 맞았는, 데… 컥… 억….”
결국,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좀비는 아이를 부여잡은 엄마에게 달려들어 살점을 뜯는다.
“뭐야!”
“도망쳐!”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된 도로, 그리고 모두가 기피 하는 구역에서 좀비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노역을 하던 좀비들도 바뀐 백신 탓에 이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살려 주세요!”
“빨리 신고해! 들어가, 저기로 들어가!”
모녀의 처참한 시체 위에 이성을 잃은 다른 좀비들이 달려가고, 시간이 지나 아이와 아이 엄마도 좀비로 돌변해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선다.
그 난장판인 현장 속에서 유유히 김준희는 제 얼굴을 감싸는 입마개를 뜯어 버리듯이 거칠게 벗어 허공에 던졌다.
“K, K다!”
“도망쳐!”
좀비에게 쫓기면서도 김준희의 가면을 보게 된 인간들이 그를 피해 간다.
그들의 외침에 김준희가 발걸음을 멈췄다. 이제 K의 상징인 가면도 필요 없다. 그는 가면도 벗어 던지고는 하늘을 바라본다.
‘나는 내 삶을 개척할 거야.’
김준희의 뇌리에 불현듯 어제 들었던 나우신의 말이 떠오른다.
‘나도 내 삶을 개척 중인 건가?’
이주희 작가가 신경을 썼다는 지문 구간이었다. 김준희는 해방감에 양팔을 들어 올려 그에게로 쏟아지는 햇볕을 맛본다.
“하하!”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 웃다가 인상을 찌푸리고 우는 듯 웃는 얼굴을 만들어 낸다.
그 와중에 좀비 특유의 근육이 경직된 듯한 느낌까지 줘야 했다.
좀비들은 김준희를 공격하지 않았다. 멈춰 선 김준희의 양옆으로 좀비들이 지나쳐 간다.
“와, 이건….”
“대박….”
김준희는 인간들을 향한 증오, 이용당했던 자신에 대한 연민과 좀비 무리의 우두머리격이 되어 보상 없이 의무만 계속되는 삶을 내려놓고서야 찾아온 자유에 기뻐한다.
짧은 순간 안에 복잡한 감정을 표현한 이안의 연기에 지켜보던 스태프들이 멍하니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건 된다.’
박 감독이 주먹을 꽈악 쥐었다.
지금 이 타이밍에 촬영을 잠시 끊어가고 이안의 허리에 와이어를 달아야 했지만 끊고 싶지 않았다.
촬영 전 감독이 말해준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감정 연기를 하고 있었지만, 이안은 완전히 배역에 몰입되어 감독이 왜 컷 사인을 안 주는지에 대한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언제 끝나지?’
‘계속해야 하나?’
오히려 이안의 주변에서 인간을 먹는 연기를 하는 중인 단역 배우들이 감독의 컷 사인을 기다릴 정도였다.
“…컷!”
박 감독이 외치자, 단역 배우들이 벌떡 일어나 다른 배우들과 교대하려 발걸음을 움직였다. 하지만 이안은 평소처럼 모니터를 하러 감독 곁으로 오지 않았다.
“…이안 씨한테 와이어 달고 바로 갑시다. 흐름 끊기면 안 되니까.”
“네.”
이안의 상태를 눈치챈 박 감독이 스태프를 재촉했다.
‘완전히 몰입했군….’
흔히들 말하는 메소드 연기가 이런 경우였다. 적절한 몰입은 배우에게 있어선 강점이다. 하지만 몰입이 과할수록 배우에게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몰입하는 과정에서 배역에 잡아먹히는 경우도 있었고, 정신력도 많이 소모하는 만큼 가해지는 스트레스도 컸다.
‘빨리 찍고 넘어가야겠어.’
박 감독은 이런 과몰입 상황을 선호하지 않았다. 다만, 배역에 완전히 물들어 버린 이안을 보면 좋은 장면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도 들었다.
“바로 갑니다! 단역 분들 빨리 자리 잡으세요!”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이안의 연기를 홀린 듯 보던 박동수는 혹시 모를 사고가 있을까 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이안의 얼굴을 쳐다봤다.
‘오늘따라 유독 열심히 하네.’
박동수는 조태웅과 이안의 드라마 촬영 현장에 자주 다니면서도 자신이 담당하는 애들을 어떻게 서포트 할까에 대한 것만 생각했을 뿐이지 이렇게 몰입해서 촬영을 본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이안이 괜찮겠지?’
배우가 아닌 아이돌 매니저인 박동수는 메소드 연기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평소의 이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박동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야, 최이안.]이안은 스태프가 와이어를 다는 순간에도 멍하니 서서 허공을 응시했다. 진의 부름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야.]‘끊기면 안 돼.’
이안은 평소보다 몰입이 과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감독의 생각보다 몰입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배역에 잠식되지 않게 노력하면서도 감정선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그 말 없는 노력에 진이 말을 걸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감독은 직접 슬레이트를 들고 이안의 앞으로 향했다. 그가 조연출에게 소리쳤다.
“세팅 다 됐어?”
“네!”
“좋아, 마지막 씬. 큐!”
박 감독이 슬레이트를 치고 이안에게서 후다닥 멀어져 모니터 앞에 앉았다.
김준희는 건물에 쓰러진 인간의 가슴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불난 차에 얼굴을 가까이 대 불을 붙인다.
“여기 말고 다른 구역도 똑같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
“팀장님, 뒤!”
“뭐, 이런, 씨발!”
탕, 탕탕!
현장에 도착한 군인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의문을 표할 새도 없이 좀비들과 시가전을 펼쳤다.
“저 새낀 뭐야?”
군인들이 총을 난사하는 가운데, 김준희는 겉옷을 벗어 자신의 상체를 뒤덮은 폭탄을 보여 준다.
“포, 폭탄이다!”
“저쪽은…!”
그가 향하는 곳은 화운 제약의 모든 데이터가 잠들어 있는 화운 제약의 본사였다. 김준희는 화운 본사에 있을 자신의 데이터와 백신의 제조법 자체를 없애려는 것이다.
“어, 어떻게 합니까? 쏩니까?”
“쏴!”
“하… 하지만, 쏘면 저희들 다 죽습니다.”
군인들은 망설인다. 폭탄의 양으로 봤을 때 김준희의 몸을 뒤덮는 폭탄이 터진다면 그들을 포함한 이 일대가 쑥대밭이 될 것이다.
자신의 목숨이 아까운 군인들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씨발 빨리 안 쏘고 뭐 하는 거야! 저쪽은 화운 본사야 병신들아! 빨리 쏴!”
김준희가 씨익 웃었다. 눈빛에서는 광기가 번들거렸다. 걸음 속도를 높인 김준희가 두어 번의 도움닫기 끝에 허공을 번쩍 뛰었다. 그의 바로 앞에는 화운 제약의 건물이 있었다.
“안 돼!”
김준희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자유를 찾았다.
새로운 은신처에 홀로 남은 나우신은 건물이 폭발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Z―Day’의 첫 시즌이 마무리되었다.
“컷! 수고하셨습니다!”
박 감독의 컷 사인을 끝으로 촬영장에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박동수가 박수를 치자, 스태프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환호하고 손뼉을 쳤다.
“이안 씨? 괜찮아요?”
“네 감독님! 고생하셨습니다!”
박 감독의 우려와는 다르게 빠르게 정신을 차린 이안은 상체를 꾸벅 숙이며 스태프들에게 연신 인사했다. 박 감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작가님.”
“네.”
“우리 시즌 10까지 쭈욱 가죠.”
멍하니 말하는 박표현 감독의 말에 이주희 작가도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