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175
175
조태웅이 돌아왔다
대규모 세트장 촬영, 그리고 자잘한 스튜디오 촬영과 후시 녹음까지 마친 이안은 드디어 ‘Z―Day’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니, 형! 물풍선을 거기다 뿌리면 내가 못 들어가잖아.”
“아 뒤에 너 있었어? 니가 먼저 들어왔어야지!”
이안은 오랜만의 여유 시간에 거실에서 멤버들과 함께 늘어져서 핸드폰 게임이나 하고 있었다.
“라면 먹을 사람.”
“나나나!”
김주영의 말에 모두가 거실에 누운 채 손만 들었다. 그 모습에 김주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돼지들….”
“꿀꿀.”
그의 말에 멤버들이 단체로 돼지 흉내를 냈다. 김주영은 군말 없이 라면을 끓이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은 김주영의 차지가 되었다. 요리를 멤버들에게 맡기면 맛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직접 나선 것이다.
“주영이 자격증은 안 딴대?”
“본업에만 집중한대요.”
“그런 것도 본업에 포함되는 거 아닌가?”
“맞아. 연예인은 재주 많을수록 좋지. 어디 관찰형 예능 들어가면 주영이 날아다닐 텐데.”
김주영이 대파를 써는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멤버들이 한마디씩 덧붙였다. 이안의 옆에 누운 이주혁은 이안의 깨끗한 팔뚝을 보며 말했다.
“이안이 멍 이제 가라앉았네?”
“그래? 몰랐네.”
이안이 놀라서 제 팔뚝을 살폈다. 멍든 것이 너무 많아서 아픔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넘겼기 때문이다.
“니가 모르면 어떡해. 촬영 끝난 지가 언젠데 겁나 오래갔었잖아.”
“몸에는 아직 남아있어서.”
“진짜?”
촬영이 완전히 끝나고 한참 지난 뒤였음에도 이안의 온몸을 장식하던 푸르스름한 멍은 없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 감독님 우리 애 혹사시키지 말라고 했는데.”
“언제 그런 말을 했어?”
“상상 속으로?”
이안이 흐린 눈으로 이주혁을 바라봤다. 이주혁은 뻔뻔하게 웃었다.
결국, 이주혁도 도른자들의 그룹 아위의 멤버였다. 진지하게 말하길래 진짜 박 감독에게 말을 전달한 줄 알았다.
“근데 그렇게 액션이 많았어? 우리 가서 봤을 때보다?”
“나중에 엠플릭스 뜨면 직접 봐.”
“아 형, 스포해 줘요!”
박서담이 엎드려 누운 이안의 등에 앉아 그를 괴롭혔다.
“아! 나와, 무거워!”
“싫은데.”
박서담의 무게에 짓눌려서 이안이 소리치는 가운데 김 현과 박진혁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명진이 형이 이안이 제발 자연사해야 한다고 그랬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액션 연기하다가 사고사는 안 된다는 뜻이지.”
“미친.”
박서담에게 시달리던 이안을 구해 준 것은 김주영이었다.
“라면 다 끓였어!”
“예아.”
“킹주영! 킹주영!”
김주영이 라면을 냄비 채로 식탁 위에 올려놓자, 멤버들이 각자 젓가락과 그릇을 들고 앉았다.
순간, 삑삑 도어락 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누구 와?”
“동수 형이나 명진이 형이겠지.”
“근데 매니저 형들은 오기 전에 연락하고 오지 않아?”
“누구 스케줄 있는 사람?”
이주혁의 말에 라면을 한가득 입에 넣은 멤버들이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숙소가 보안이 철저한 아파트이기 때문에 사생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됐었다.
“뭐지? 동수형인가? 결혼 때문에 그런가?”
“결혼 때문에 우릴 왜 찾아와?”
“뭐야, 안 먹어? 내가 다 먹는다?”
“안 돼!”
매니저인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멤버들은 라면에 정신 팔려서 누가 왔는지 확인도 안 했다.
“뭐야, 나 왔는데. 아무도 안 반겨 줘?”
반가운 목소리에 멤버 전원이 미어캣처럼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려 현관 쪽을 바라봤다.
박진혁은 입에 넣으려던 라면을 주륵 뱉었다. 평소라면 그 모습을 보며 더럽다고 야유를 보냈겠지만, 그럴 새가 없었다.
“헐.”
“태웅이 형!”
조태웅이 돌아왔다.
* * *
이안이 한 시즌의 드라마 촬영을 끝내고 쉴 무렵 조태웅은 아직 할머니 댁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밭에 비료를 뿌려야 하는데….”
“내가 할 게 할머니!”
할머니의 일을 도우면서 나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는 조태웅은 데이터가 잘 안 터지는 지역 덕분에 가끔 톡 방에서 대화하는 것 빼고는 습관적으로 했었던 웹서핑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그의 밤을 괴롭히던 불면증은 이제 거의 없어질 정도였다.
(박진혁3) 이안이 드라마 예고편 떴다 ― 15:22
(현현3) ㄹㅇ? ― 15:22
박진혁이 톡 방에 마이튜브 링크를 올렸다. 조태웅은 그 링크 위에서 엄지손가락을 머뭇거렸다.
‘예고편이 벌써 뜨나?’
촬영을 마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예고편이라니. 아마 이런 식의 예고편을 계속 보여 주면서 시청자들의 애를 태울 모양이었나보다.
‘어떡하지? 이런 거 보면 또 불안해질 텐데.’
하지만 불안한 것보다 호기심이 더욱 컸다. 조태웅은 결국 링크를 눌러 영상을 재생했다.
“우신 씨 눈 감으세요.”
“누, 눈? 눈은 왜….”
“비명도 지르시지 마시고.”
김준희가 나우신을 한 손으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김준희의 허리춤을 잡아 유리창 밖으로 던진다.
“야, 이….”
순식간에 7층에서부터 맨몸으로 떨어지는 나우신이 크게 소리쳤다.
“개새끼야아아아!”
장면이 전환되고 폭파되는 건물을 뒤로한 채 여유롭게 걸어가는 이안의 모습이 화면 중앙에 잡힌다. 그리고 웅장한 OST와 함께 짤막한 영상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고난이도의 액션 동작을 하는 장면과 이안과 김민재의 케미, 그리고 마지막엔 웅장한 폭발 장면이었다.
“와 대박. 장난아니네.”
조태웅이 황급히 단체 톡 방에 들어갔다. 멤버들이 이모티콘을 남발하며 톡 방을 도배하고 있었다.
(서다미2) 대박 ― 15:31
(이주혁3) 개멋있다 진짜 ― 15:32
(죠탱4) 이열 ― 15:32
(죠탱4) 간지오지고 ― 15:32
조태웅도 메시지를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잠깐, 그러고 보니.’
신나게 키보드 자판을 치던 그가 행동을 멈췄다. 무언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런 거 뜨면 조급해져서 심장부터 뛰었었는데 이젠 그런 게 없네?’
멤버들의 활동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만 아무것도 안 한다고 나는 짐 덩어리라고 자괴감에 빠져 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은 없었고 그냥 이안이 멋있다. 나도 저런 드라마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우선적으로 떠올랐다. 순수한 감탄과 열망이었다.
‘나, 많이 나아진 거 아닌가?’
자신의 변화를 체감한 조태웅이 눈을 반짝였다.
“태웅아 재료가 떨어졌는데 장에 가서 사올 수 있겠니?”
“내가 다녀올 게!”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조태웅은 사람이 많은 장날임에도 나서서 바깥으로 향했다.
“신 여사댁 손주 왔어?”
“저거, 저거 주세요. 저 근데….”
“응?”
“많이 주시면 안 돼요?”
조태웅이 우물쭈물 말하자, 가게 주인이 깔깔 웃었다.
“전에는 모자 푹 눌러쓰고 죽상이더니 오늘은 예쁘네?”
“웃으니 얼마나 잘생겼어!”
“감사합니다.”
조태웅이 웃음을 띤 채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자신감이 붙은 조태웅은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 마을 주민들의 이쁨을 받을 수 있었다.
어느새 그들이 챙겨 주는 서비스에 양손에 짐을 한가득 들고 있었다.
‘이제 난 괜찮아.’
이제 자신의 근처로 사람이 모여 있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대로 사람이 더 많은 무대 위로 올라가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언제까지 외상만 할 거야! 박 여사, 돈 좀 줘!”
“나중에 준다니까 저거 줘.”
“어휴, 진짜 죽을 때까지 이 돈 못 받으면 어째?”
“나중에 준다니까! 누굴 도둑놈으로 알고!”
양손에 짐은 많아도 발걸음이 한없이 가벼워진 조태웅은 한 가게 앞에서 언성이 벌어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저 사람은….’
외상 물건을 집어 들고 뻔뻔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박 여사. 언젠가 어린 조태웅을 붙잡고 그의 할머니와 집안을 욕하던 그 노인이었다.
조태웅은 홀린 듯이 노인의 뒤를 밟았다. 시장을 벗어나 야트막한 언덕을 지나갈 무렵, 조태웅은 노인에게 대뜸 말을 걸었다.
“어르신, 저 아시죠?”
“신 여사 댁 손주 아녀? 나는 왜 쫓아 와?”
“궁금한 게 있어서요.”
“뭔데?”
박 여사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조태웅은 가만히 멈춰 서서 노인에게 질문했다.
“예전에요, 우리 할머니 왜 욕했어요?”
“내가 느이 할머니를 왜 욕해?”
“저 어릴 때, 우리 할머니보고 남편 없는 미망인이라고 애도 못 키운다고 외모가 어떠니 고향이 어떠니 뭐라고 막 하셨었잖아요.”
“내가 무슨! 나는 그런 적이 없어!”
괜히 찔린 노인이 버럭 소리를 쳤다.
“잘못 들었겠지! 나는 평생 누구 욕 한 적 없는 사람이야!”
“제가 똑똑히 들었는데요.”
“아니라면 아닌 거야!”
그때, 조태웅이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나쁜 기억은 평생 간다고, 어린 조태웅이 지금까지 간직해 온 기억 중 하나였다.
자신의 가족을, 소중한 할머니를 욕하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어린 날이 후회됐던 순간이라서 똑똑히 기억했다.
“에잉, 쯧쯔 요즘 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
노인이 투덜거리면서 도망치듯 걸음을 빠르게 했다. 조태웅은 멍하니 서서 노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하하.”
조태웅이 허무하게 웃었다.
가해자들은 기억을 못 한다. 아니, 기억하는데 기억이 안 난다고 변명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피해자에게는 평생 트라우마를 안겨 줘 놓고서는 가해자들은 기억 안 난다며, 당신이 착각한 거 아니냐며 잡아떼면 그만인 세상이었다.
‘언제까지 피해자가 되어야 해?’
조태웅은 할머니와 자신을 이입해 생각했다.
외상으로 식료품을 얻어가고 마을 주민들은 은근히 피한다. 가족 중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 박 여사의 삶은 자신의 할머니를 비난했던 때보다 초라해진 모습이었다.
문득 저런 사람의 악의적인 악플러들의 말에 휘둘리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오늘 내가 말실수를 하지 않았나, 이거 때문에 내 가족에게 피해가 오면 어떡하나 자기 검열을 하면서 불면에 드는 밤은 이제 싫었다.
‘이제 그런 거에 끌려다니기에는….’
조태웅이 제자리에 우뚝 섰다.
‘내 존재 가치가, 흘러가 버린 내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나?’
나는 나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인데. 남들이 이상한 루머를 쓰고, 나를 질투해 쓰는 악플에 고통받기에는 나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라고.
‘그만큼 내 팬들도 많이 있잖아.’
그리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고 나를 빛나게 해 주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를 이 상황까지 몰아넣은 사람들은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들 때문에 상처받은 마음은 나 자신이 치유하지 않는 이상 나 자신은 영원히 상처받은 피해자가 될 것이다.
‘여기서 틀어박혀 있는 건 이제 그만해야겠다.’
조태웅은 결심을 굳혔다.
예전보다 조금 단단해진 기분이 들었지만, 아마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악플에 또 상처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가야 하나 낮아진 자존감에 빠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제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생각을 마친 조태웅은 곧바로 박동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태웅아. 뭐 필요한 거 있어?)
“형, 나 이제 숙소로 돌아갈래요.”
(뭐? 잠깐, 잠깐만.)
“나 데리러 올 수 있어요?”
수화기 너머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상치 못한 조태웅의 요구에 박동수가 놀라서 가구에 발을 찧어 넘어진 것이다. 박동수는 아픈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당연하지! 당장 갈게!)
조태웅이 하하 웃었다.
그렇다고 바로 오라고 하기에는 내심 미안해서 다음날 낮에 오라고 얘기한 조태웅은 할머니 몰래 자신의 짐을 정리했다.
“얘, 태웅아.”
다음날, 능선을 따라 들어 오는 거대한 연예인 밴을 본 신순자 여사는 조태웅을 불렀다.
“친구들 또 오기로 했니?”
“아니.”
짐을 다 싼 조태웅은 현관에 앉아 신발 끈을 꽉 동여맸다.
“할머니, 나 이제 서울 올라가려고.”
손에 든 짐 가방과 밝아진 손주의 모습을 보며 신순자 여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인자하게 웃었다.
“이제 괜찮은겨?”
“안 괜찮으면 뭐 어때, 그게 삶인데. 그렇지?”
“…그려.”
신순자 여사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안 괜찮아도 된다. 그게 삶이다. 언젠가 자신이 어린 손주에게 얘기했던 말이었다.
“그동안 많이 고마웠어요. 할머니.”
“우리 손주 자주 놀러 와. 친구들이랑 같이 와도 돼.”
“어, 할머니. 늦지 않게 올게.”
조태웅은 신순자를 끌어안고 환하게 웃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짓는 밝은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