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20
20
너 그냥 홈마 아니었지?
29일 K사 연말무대에서 아위는 따로 사전녹화를 해 두지 않고 생방송으로 진행한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음방처럼 새벽에 출근해 드라이 리허설을 하고, 무한 대기 신세다.
조태웅이 문을 벌컥 열었다.
“오오. 우리도 짬 차면 이런 데 쓰려나?”
대기실
아위 / 마이킷
방송사 측에도 급히 섭외된 게 미안했는지, 파티션 대기실이 아닌 각각 대기실에 두 그룹이 쓰게끔 배려해 줬다. 나름 대기실 중앙에는 천막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우리가 첫빠네.”
“동수 형! 저희 몇 시에 또 나가요?”
트레이닝복 차림의 멤버들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의자 쿠션이 딱딱한 게 오래 앉을 의자는 못 됐다.
‘근데 마이킷은 처음 들어본다?’
[너네보다 6개월쯤 먼저 데뷔. 한국에선 소소하게 반응 왔었나? 아마 내년쯤 일본 갈걸?]‘몇 번 활동하고 일본 가는 건 어딜 가나 똑같네.’
[잘만 활동하면 거기가 돈은 되거든. 걔네도 거기서 지하돌 생활하면서 돈은 좀 만져.]한국 아이돌 대부분이 일본은 꼭 가서 활동한다. 음반을 많이 사 주고, 대부분의 팬들이 한 그룹을 오래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안의 소속사도 지금부터 일본어 교육을 시키는 거 보니, 아위도 내년이나 내후년쯤엔 일본에서 활동할 것이다.
‘성격은?’
[다들 무난무난해. 요즘 아이돌들 인성교육은 똑바로 시키니까. 한 놈이 좀 맛탱이가 가긴했는데….]‘너 걔네 성격은 어떻게 아냐? 걔네 홈마도 했었나 봐?’
[어?]자신이 아는 걸 뽐내고 싶어 하는 진의 성격상 이렇게 불시에 질문하면 걸려들 줄 알았다. 이안이 의심스런 눈으로 진을 쳐다보았다.
‘너 그냥 홈마 아니었지?’
[…아, 걔네 홈마한테 들은 거야. 이 판 뛰고 있으면 다른 그룹 홈마도 만나서 얘기하고 그래.]‘그러기엔 너무 술술 나오는데? 마치 가수랑 직접 얘기해 본 것처럼?’
이안의 되물음에도 대답 없는 진이었다. 뭐가 걸리는 게 있어서 과거를 숨기나?
진이 몇 번 셔터를 찰칵거리다가 스륵 사라졌다. 어딜 도망가. 이안이 다시 진을 부르려 했으나 대기실의 문이 열리는 게 빨랐다.
“어? 먼저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샛노란 머리의 남자가 붙임성 있게 말을 걸었다. 아위를 비롯한 6명의 멤버들이 벌떡 일어나 폴더인사를 했다.
마이킷은 머쓱해하면서도 선배 대접을 받았다는 것에 기분 좋게 인사를 받았다.
“선배님은 무슨, 연차 어차피 비슷할 텐데요.”
그러면서도 말을 편하게 하라는 얘기는 안 한다. 인사가 오가니 처음 보는 사람 특유의 어색한 분위기에 마이킷은 반대쪽 공간으로 물 흐르듯 들어갔다.
잠이 부족했던 이안과 멤버들은 의자를 구석에 치워 버리고 바닥에 돗자리를 깔아 부족한 잠을 채웠다.
“얘들아 일어나자!”
4시간을 내리 푹 잔 멤버들이 매니저의 목소리에 하나 둘 일어났다. 매니저의 지시에 돗자리를 접고 의자와 탁상까지 세팅하자, 회사 직원들이 하나둘 들어와 부피가 큰 박스를 하나씩 멤버들의 앞에 놓았다.
“이게 뭐예요?”
“너네 식사 서포트 들어왔다?”
매니저는 마치 자신이 식사를 준비한 것마냥 의기양양했다. 스티로폼 상자 위에는 ‘첫 연말무대 축하해!’라는 문구와 함께 각자 이름이 프린트 된 스티커가 붙어져 있었다.
“진짜요?”
“어, 스탭들 것도 따로 준비해 줬다고 하니까, 우린 상관 말고 너네 많이 먹어.”
멤버들이 스티로폼 상자를 거의 쥐어뜯듯이 열었다. 이안도 상자를 열어 보니, 예쁜 생화 장식과 함께 짤막한 문구가 쓰인 엽서가 먼저 그를 반겼다.
‘앞으로 너희들의 앞날에 꽃길만 있기를.’
-아위 홈마스터 연합.
밑에는 조그만 글씨로 각자의 홈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중 이안의 눈에 띄는 ‘아이언하트’는 그의 사인을 첫 번째로 받았던 바로 그 팬이었다.
“와 전복 봐, 나 전복 개좋아하는데.”
“전복? 난 조개류 알레르기 있는데… 어? 나는 없네?”
그 뿐만 아니라 멤버들의 기호를 고려해 각각 메뉴가 다른 부분도 있었다. 어쩐지 팬사인회에서 좋아하는 음식이나 못 먹는 음식을 묻더니, 이런 것 때문이었나 보다.
도시락은 갈비찜, 가라아게, 월남쌈 같은 메인 음식과 과일, 요거트, 디저트, 생과일 주스 등 많은 종류의 음식이 있었다.
“와,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먹지?”
“나도.”
이안의 혼잣말에 다른 멤버들도 수긍했다. 일회용 용기에 각각 담긴 음식용기 뚜껑에도 작은 드라이플라워가 세심하게 붙여져 있었다.
“얘들아 일단 이거 다 풀어 놓고 단체사진 한번 찍고, 이 꽃들 들고 한번 찍을까?”
팬들은 자신의 선물을 인증받길 원하니까. 이주혁의 센스 있는 제안에 모두가 모여들어 사진을 찍었다.
“음식 다 식었겠다. 빨리 먹자.”
“잘 먹겠습니다!”
단체사진을 찍은 이안과 멤버들은 짧은 시간에 많은 음식을 한꺼번에 해치웠다.
이안의 말을 들은 이후 멤버들은 느끼는 게 많았는지, 만나는 모든 팬들에게 잘해 주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이 팬들에게 통해서, 첫 팬사인회 이후 팬싸컷이 점점 상승하게 되면서 총 판매량도 덩달아 늘어났다.
팬들은 그들의 팬사인회를 다녀오면서 일명 ‘혜자대응’ 썰을 풀었고, 저절로 팬들 유입이 늘어나게 됐다.
[이 정도면 백만 원 돈은 넘겠는데?]사라졌던 진이 다시 등장해 이안의 주위를 날아다녔다. 팬들의 정성에 감동해서 태블릿으로 사진을 찍던 이안이 제 앞의 진을 노려보았다.
진의 렌즈가 시선을 피하듯 옆으로 향했다. 다시 따지고 들기엔 상황이 적절치 못했다. 이안은 나중에 얘기할 상황이 오겠지 싶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게 비싸?’
[원래 스태프들 식사는 간단한 샌드위치 같은거 주는데, 아까 보니까 너네랑 비슷하게 준비했더라고. 그럼 가격 더 비싸지지. 팬들이 힘 좀 썼네.]‘그래?’
이안은 디저트로 나온 마카롱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마카롱의 맛이 유난히 달았다.
***
아위는 점심을 먹고 식곤증에 잠시 졸다가 중간 리허설에 올랐다. 그들은 다른 1세대 아이돌 커버무대를 하는 신인들과 같이 대기했다.
“다 그냥 커버만 하네?”
“우리 너무 과한 거 아니에요?”
앞서 커버무대를 하는 신인들은 그냥 목소리만 다를 뿐 그때의 곡을 그대로 들고 왔다.
그들도 자신들의 노래가 아닌 커버무대만 배정받은 터라, 그냥 예의상 연습해 온 느낌이 물씬 풍겼다.
“과한 게 아니라 준비를 많이 한 거야. 그리고 그거 싫어할 사람 없다?”
이안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가 진에게 듣기로는, 이 연말무대 피디는 소위 말하는 꼰대라서 노력하는 젊은이들을 몹시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피디는 나중에 국장까지 올라가니 지금부터 점수를 잘 따 두면 좋은 것이다.
아위는 1절은 그대로, 2절부터는 현대적으로 해석해 리믹스한 곡을 들고 왔다. 그에 맞춰 안무도 조금씩 변형해 연습했었다.
“아위, 올라오세요.”
스태프의 말에 아위가 무대 위로 올라섰다.
이 방송의 피디, 김 현식은 그들이 미리 준비해 온 AR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음악방송에서 리허설도 본방처럼 열심히 하길래 섭외했더니….
‘얘네도 똑같네.’
아무리 급하게 섭외했다지만 특색 있는 무대를 꾸민 팀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리허설도 신인답지 않게 적당히 설렁설렁 춤을 추는 팀도 있었다.
김 현식은 아위가 적혀진 종이에 엑스 자를 그었다.
‘요즘 애들은 패기가 없어. 나 때는….’
김 현식이 라떼를 소환한 바로 그 때, 2절 도입부부터 갑자기 음악이 멈춘다. 순간의 정적에 김 현식이 고개를 들어 무대를 쳐다봤다.
멤버들의 동선이 갑자기 바뀌고, 비트가 빠르게 전환되었다.
그들이 한 M.U.N.의 커버곡은 ‘나의 것’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싸우는 컨셉의 노래였다.
“오? 얘넨 좀 다르네?”
김 현식이 작게 감탄했다.
멤버들이 4 대 3으로 갈라져 서로가 짧은 댄스 배틀을 펼친다. 마지막엔 메인 댄서 두 명이서 서로의 얼굴을 가까이 맞대 기 싸움을 하는 듯한 행동을 한다. 그리고 서로의 어깨를 밀치고 물러나더니 멤버 전부 같은 동작으로 춤을 춘다.
파워풀한 춤을 선보이다가도 중간에 살랑살랑 유혹하는 듯한 몸짓은 마치 ‘나를 선택해’ 하며 구애를 하는 듯 보인다.
백날 한 여자 두고 지들끼리 싸워 봤자 선택은 여자가 하는 법. 그들은 기존 안무에 애절함을 추가했다.
“잘하네.”
그뿐만 아니라 세기말st 테크노 음악을 줄이고, 퓨처 하우스 느낌의 곡을 믹싱해 더 가볍고 경쾌하게 들린다.
그리고 중간중간 맛깔나게 들리는 이안의 고음은 단순 커버곡이 아닌, 마치 곡을 새롭게 재창조한 느낌이었다.
“감사합니다!”
김 현식이 멍하니 보는 사이, 그들의 리허설이 끝났다. 김 현식은 손에 들고 있던 종이 뭉치를 내려놓고 박수를 짝짝 쳤다.
옆에 있던 조연출이 놀라서 김 현식을 바라보았다. 칭찬에 인색한 그 꼰대 피디가 박수를?
“수고했고, 너무 잘 봤어요. 본방 때도 이렇게 해 줘요.”
피디의 칭찬에 땀에 절어 있던 멤버들의 얼굴이 화색이 된다. 잠도 줄여 가며 연습해 온 보람이 있었다.
피디는 무대에서 내려가는 아위의 뒷모습을 보다가, 그들 이름에 동그라미를 여러 번 그었다.
***
블랙러시도 그랬고, 그 위에 가수들도 거쳐 가는 BHL엔터의 철학은 바로 ‘본업존잘’이었다.
모든 가수들은 무대에 애착을 가지게끔 하는 게 그들의 원칙이었는데, 아위도 그 정신을 받아서인지 리허설 무대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으어 힘들어.”
본방 같은 리허설을 겪은 멤버들이 의자에 빨랫감 널듯 늘어졌다. 격한 안무에 이미 잠은 달아나 버린 지 오래였다.
“우리 이제 마지막 리허설까지 몇 시간이지?”
“5시간이요.”
박서담이 시계를 훑어보고 한숨을 쉬었다. 잠도 안 오고 핸드폰도 없다. 중간 퇴근 해 봤자 갈 데도 없고.
“우리 게임이나 할까?”
박진혁이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게임 이래 봤자 보드게임도 트럼프 카드도 없다. 가위바위보 해서 딱밤 맞추기는 자칫 승부욕이 심해지면 서로의 유혈 사태만 일어난다.
‘이럴 때는 그게 좋은데.’
이안이 제 턱을 쓸며 고민하다가 맞은편 조태웅과 눈이 마주쳤다.
‘너도?’
‘야 나두.’
그들이 서로를 검지로 가리키며 사인을 교환했다. 함께 연습한 기간은 짧으나 생각만은 잘 통하는 이안과 조태웅이였다.
마침 천막 너머 마이킷도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이안과 조태웅은 벌떡 일어나 천막을 살살 흔들었다.
“저기~ 선배님들. 잠시만요.”
“네?”
이안과 조태웅이 천막너머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마이킷도 아위와 상황은 같았는지 손에는 핸드폰도 없고 그저 수다만 떨고 있었다.
“혹시 심심하시면요….”
“같이 마피아 게임이나 하실래요?”
원래 게임은 같이 할수록 재밌는 법.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던 마이킷 멤버 5인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들은 미리 합을 맞춘 것처럼 대기실 중간의 천막을 걷어 버렸다.
* * *
“내가 볼 땐, 철민이가 마피아야 백 퍼.”
“아 아니야! 진짜 아니에요!”
이안의 눈이 예리해졌다. 마이킷의 김철민은 몸을 반쯤 일으켜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이안에게 선동당한 몇몇이 엄지척을 아래로 향했다.
“안 되겠소! 쏩시다!”
“철민이 죽이자.”
“김철민 씨를 죽이겠습니까?”
사회자를 맡은 아위의 박진혁이 비장하게 말했다. 모두가 끄덕이는 와중에 김철민은 연신 아니라고 소리쳤다.
“김철민 씨가 죽었습니다. 그는 시민이었습니다.”
“아 내가 아니라고 했죠!”
“진짜 아니네?”
김철민이 일어나 콩콩 뛰었다. 안 그래도 키가 제일 작은 김철민의 파닥거림에 모여 있던 모두가 웃었다. 이미 죽어 있던 의사 이주혁이 김철민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밤사이 마피아가 경찰을 죽였습니다. 마피아의 승리입니다.”
“마피아가 누고!”
“히히 저희들입니다! 유감!”
“와. 사회자 적폐 아니냐! 배우들을 마피아로 쓰면 우리 다 속지!”
“사회자 탄핵시키자! 촛불시위 열어!”
“사진요! 사회자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마피아 게임을 한 지 40분 째. 그들은 선후배 호칭을 떼고 서로 짱친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