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211
211
너 요즘은 어떠냐?
이현아의 목소리에 조태웅과 김주영이 우당탕 소리 내며 일어났다. 그들이 헐레벌떡 주위를 정리하고서는 나란히 서서 이현아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덜 마른 조태웅의 머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작업은 어떻게 돼 가고 있어요?”
“그게….”
“잘 안 되시죠?”
아까 둘이 다투던 것이 생각난 이현아가 조태웅이 마련해 준 의자에 앉고서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가 들을 곡은 있죠? 한 번 들어 볼게요.”
“넵.”
김주영은 멘토의 의견이 절실한 두 번째 곡을 재생했다. 이현아가 말없이 듣더니, 음악을 끄라고 손짓했다.
다 듣지도 않고 바로 꺼 버리다니. 좋은 소리는 나올 거 같지 않아 김주영과 조태웅이 침을 꿀꺽 삼켰다.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넵.”
“무난한 댄스곡 같아요.”
김주영과 조태웅이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근데, 곡의 주제는 뭐예요? 장르라거나.”
“사실… 그냥 손 가는 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구나.”
이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 가는 대로 만들어서 이 정도면 그래도 잘한 편이었다.
“아까도 엎을까 말까 하셨던 거랑 지금 곡을 듣고 느낀 게 있는데…. 곡에 확신이 없는 거 같아요.”
김주영이 정곡을 찔린 듯 숨을 들이 삼켰다.
“곡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게 없나요?”
“말 하고 싶은 것…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팬들에 대한 헌정 곡이라거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라거나. 그런 것을 노래로 풀면 좋을 거 같거든요.”
아직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이현아가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경험만큼 좋은 소재가 없어요. 정 떠오르는 게 없으면 가사부터 쓰고 가사에 음악을 맞추는 방법도 있어요.”
그녀는 이 서바이벌이 타이틀곡을 뽑는 것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본질은 타이틀 만큼 좋은 음악을 작곡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타이틀, 중요하죠. 하지만 사람들이 듣기 좋은 노래부터 만드는 게 우선이에요.”
“…….”
“그리고 좋은 노래는 당연히 타이틀이 되겠죠. 우선 타이틀 생각 말고 하고 싶은 걸 하세요.”
김주영이 눈을 반짝 빛냈다.
‘그렇다면 퍼포먼스를 조금 빼도 되지 않을까?’
아위는 강력한 퍼포먼스 위주의 댄스곡이 대부분이라서 더욱 댄스곡 위주로만 생각했었다.
‘너무 타이틀 신경을 썼나….’
블루믹의 샘플링 곡은 타이틀 후보에서 제외됐으니, 마지막 남은 곡은 무조건 타이틀에 어울릴 만한 곡을 써야겠다고 집착한 경향이 있었다.
“어떻게, 해답이 나올 거 같나요?”
“…네.”
뭔가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그들을 보며 이현아가 흐뭇하게 웃었다.
* * *
다음은 박진혁과 박서담의 차례였다.
“되게… 기네요.”
이현아는 7분 43초짜리 음원을 들어 보고 입을 멍하니 벌렸다.
“정말 하고 싶은 거 다 때려 넣은 느낌이에요. 이 곡은 제가 뭐라고 조언 드릴 게 없네요.”
사실 조언할 수도 없었다. 난해한 변주와는 다르게 묘하게 귀에 착 감기는 것이 신기한 음악이었다. 게다가 곡 길이가 워낙 길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박진혁과 박서담이 헤헤 웃었다.
“다음 곡도 있나요?”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곡을 재생했다. 경쾌한 금관 악기 소리가 도입부를 장식하고, 8비트 사운드가 배경으로 깔리면서 경쾌한 피아노 선율이 흘렀다.
“아까 곡이랑 분위기가 되게 다르네요?”
이현아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이 곡은 어떤 걸 주제로 잡았나요?”
“저희 막내, 서담이의 음색에 맞춘 곡입니다. 서담아, 보여 드려.”
“크흠, 큼.”
박서담이 목을 가다듬고 마이크를 들었다. 이윽고 그가 음악에 맞춰 소리를 입혔다.
새벽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상태에서 신들린 듯 불렀던 스캣이었다.
“와….”
이현아가 감탄했다. 박서담이 음을 입히니, 정말 박서담의 음색에 어울리는 곡이라는 게 실감 났다.
“한 사람만을 위한 노래, 좋네요. 근데 이 곡은 일곱 명 전원이 부르는 곡인 것 알고 있죠?”
“넵.”
“다른 멤버들의 장점도 생각해서 넣어 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이현아는 그들의 숙소에서 나가기 전에 뒤돌아서 한마디를 건넸다.
“이 팀이 제일 완성도가 높아요. 곡 완성 기대할게요.”
그녀의 말에 박진혁과 박서담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 * *
그리고 다음은 이주혁과 이안, 김 현의 차례였다. 그녀는 이주혁이 주도적으로 프로듀싱한 곡을 들어보고는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역시 잘하네요. 제가 더 보탤 건 없어요.”
“감사합니다.”
“다음 곡도 들려주겠어요?”
그녀의 눈빛이 기대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주혁은 이안과 김 현이 작곡한 곡을 재생시켰다.
눈을 감고 듣고 있던 이현아가 곡이 끝나고서는 바로 입을 열었다.
“처음 클래식 기타에서 베이스, 그리고 전자기타 순으로 가면서 벅차오르는 느낌이 되게 좋네요. 이건 누가 주로 작업했어요? 주혁 씨가 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이주혁이 이안과 김 현을 가리켰다.
“두 분이 같이하신 거예요?”
“쟁쟁한 선배님들 멘토로 오시는데 최대한 빼먹어야죠.”
“좋아요.”
김 현의 말에 이현아가 씨익 웃었다. 선생님의 입장이 되어 버린 그녀는 열정적인 학생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근데 이 곡은 뭐랄까….”
“…….”
“우리 콘서트 하면 밴드 버전으로 편곡 많이 하잖아요?”
“네.”
“이 곡이 그런 느낌이에요.”
이안이 되물었다.
“오리지널 곡 같지는 않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여기서 특별한 멜로디가 필요할 거 같아요.”
“…….”
생각에 잠긴 이안과 김 현을 바라본 이현아가 말했다.
“두 분은 아직 곡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거죠?”
“네.”
그녀는 처음 자신의 자작곡을 작업했을 때가 떠올랐다. 이런 곡을 누가 들어줄까? 이 곡이 세상에 나올 곡이 맞나? 별생각이 다 들었었다.
하지만 우려는 잠시였다. 몇 년 후인 지금도 그녀의 첫 자작곡은 평론가와 대중, 팬들을 사로잡았고 그녀가 작곡했던 곡 중 가장 좋은 곡이라는 평가가 자자했다.
“서툴러도 괜찮아요. 서투른 것 자체로 완성되는 게 있거든요.”
* * *
모든 팀의 곡을 들어 본 이현아가 마당으로 나왔다. 이 피디가 씨익 웃고서는 말했다.
“어때요? 가장 기대되는 팀이 생겼나요?”
“네, 박진혁 씨 팀이요. 두 곡 다 가장 컨셉이 확고하고 완성도가 높았어요.”
이현아는 한 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다른 팀은 왜 아닌가요?”
“일단 김주영 씨는 아직 갈피를 못 잡은 거 같아서 평가할 게 없다는 점이고 이주혁 씨 팀도 한 곡은 애매해서요.”
이현아가 말끝을 흐렸다. 그녀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글쎄요, 다음 멘토분이 어떻게 조언해 주시냐에 따라서 달라질 거 같아요.”
“주혁이 팀인지 진혁이 팀인지요?”
“네.”
* * *
이현아가 다녀간 뒤 이안과 김 현이 앓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싸맸다.
“으아 콘서트 편곡 버전이라니까 진짜 그렇게 들리잖아.”
“특별한 멜로디가 뭔데? 여기서 어떻게 뭘 추가해?”
이주혁이 그들을 보며 작게 웃었다. 그가 쓰고 있는 노트에는 문장이 빼곡히 차 있었다.
“얘들아 화이팅. 지금 잘하고 있어.”
“형! 도와줘!”
김 현이 바닥을 기듯이 걸어가 이주혁의 바지 끝을 붙잡았다. 뒤따라온 이안이 김 현의 손을 찰싹 쳤다.
“안 돼. 주혁이 형 도움은 받지 않기로 했잖아.”
“아니 근데 너도 그렇고 주혁이 형도 그렇고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거야?”
김 현이 억울하게 소리쳤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진이 [맞아!]라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냥 나도 해 보고 싶었어. 할 줄 아는 거 많으면 좋잖아. 주영이 보고 자극 좀 받았거든.”
“진짜 돌겠네.”
“형 하기 싫으면 말고.”
이안의 말에 김 현이 뭐라 말을 꺼내려다가 입을 꾸욱 다물었다. 혼자만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재능충들, 짜증 나.”
김 현의 퉁명스러운 말에 이안이 피식 웃었다.
김 현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거고, 이안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아끼지 않는 것에 차이가 있는 것뿐이었다.
“솔직히 내가 재능 있는 편은 아니지.”
“형이?”
이주혁의 말에 이안과 김 현이 동시에 소리쳤다. 이게 무슨 신종 겸손인가. 어이가 없었다.
“형, 방금 그거 완전 기만이었다.”
“형이 없으면 누가 없어.”
그들이 하는 말에 이주혁이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너네도 진혁이랑 주영이랑 같이 작업하면 알게 될 거야.”
* * *
이현아가 다녀간 뒤 김주영과 조태웅도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야 안 되겠다. 엎자.”
“진짜?”
고심 끝에 결정한 김주영이 이제껏 작업했던 곡을 모조리 지웠다.
“헐.”
조태웅이 망연자실하게 모니터와 김주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김주영이 의자를 빙글 돌려 조태웅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까 현아 선배님이 하신 말이 맞아. 타이틀에 맞는 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7명이 다 같이 불러야 할 곡이기에 억지로 랩 부분을 끼워 넣고 춤을 출 수 있게끔 강력한 댄스 비트 따위는 다 집어치우기로 했다.
“이 곡으로 우리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거 좋은 거 같아.”
“그럼 가사부터 쓰는 거로?”
“어. 야 조태웅.”
무언가 결심한 김주영이 대뜸 물었다.
“너 요즘은 어떠냐?”
“뭐?”
뜬금없는 질문에 조태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냥 요즘은 괜찮은가 해서.”
“그럼 괜찮지 안 괜찮겠냐?”
김주영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눈치챘지만, 조태웅은 애써 모른 척했다.
김주영이 코웃음을 쳤다. 그런 조태웅의 속내를 김주영이 모를 리 없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너 ‘귀촌 생활’ 봤을 거 아냐. 나 솔직히 내가 왜 조장이 됐는지도 잘 모르겠어.”
김주영은 아직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조태웅은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속은 아직 몰랐다.
“나는 다 오픈했으니까 너에 대한 얘기를 좀 해 봐. 쉽게 낫지 않는다는 거 우리도 다 알고 있었어.”
“…그래?”
조태웅이 공황 장애로 팀 활동을 중단하는 동안 다른 멤버들도 상담을 받을 일이 있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교육받을 수 있었는데, 그때 들었던 말은 ‘계속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는 말이었다.
“갑자기 훅 들어오네.”
조태웅이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안색이 어두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제 속내를 밝히기 부끄러웠다.
“글쎄… 이젠 인터넷을 덜 보긴 하는데. 사실 좀 고비가 있었어.”
“진짜?”
김주영은 속으로 안도했다. 너무 대놓고 말한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올해 들어 기회가 많았잖아.”
“그랬지.”
“생각해 보니까 그 기회를 놓친 게 많았더라고.”
원래라면 올해 있어야 했던 해외 투어, 일본 앨범도 발매가 연기됐고, ‘케이든 허트 쇼’도 현지에서 진행하면서 미국 진출까지 앞두고 있었었다.
그 밖에 자잘한 공연 일정과 광고 등등 많은 일정이 있었지만 잠시 뒤로 미뤄지거나 계약이 파기된 경우도 있었다.
고작 활동 중단 몇 개월 했다고 일어난 일이었다.
“그게 다 나 때문인가 생각한 적은 있었어.”
“…지금도 그래?”
“가끔.”
김주영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뭐라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입을 다물었고, 조태웅도 쪽팔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참을 말없이 생각하던 김주영이 벌떡 일어났다.
“야. 나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