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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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될 줄 몰랐는데.
역시 녹화 시간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한 경기를 시작할 때마다 몇십 분씩 미뤄지더니 팬들의 야식까지 나눠 줘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한 것이다.
“오늘 12시 넘겠지?”
“백 프로 넘겠지.”
“우리 팬들 막차는 어떻게 타?”
“어? 그러게.”
마지막 한 경기를 앞두고 또 녹화 대기 시간이 걸려 버린 아위 멤버들은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아위의 팬석에는 이탈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따 오면서 팬석 들러야겠네.’
그렇게 생각한 이안은 잠시 경기장을 빠져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그가 손을 씻는 사이, 화장실에 들어온 누군가가 입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아.”
이안은 무심결에 고개를 들어 거울에 비친 누군가를 바라봤다.
“지환 씨 오랜만이네요.”
“…네.”
엄지환은 자연스레 말을 거는 이안이 불편한 듯 목석처럼 서 있다가 ‘내가 왜 쟤를 피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 이안의 옆 세면대에 섰다.
“우리 드라마 공개된 거 봤어요?”
“아뇨, 아직….”
“박 감독님이 신경 많이 쓴 거 같던데요. 아, ‘우연의 일치’도 잘 봤어요.”
그의 말이 불편한 듯 엄지환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과거, 김용민이 엄지환에 밀려 들어가지 못했던 드라마 ‘우연의 일치’는 시청률과 수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작품이었다.
[이상하네…. ‘우연의 일치’ 흥행은 예견된 일이었을 텐데. 배우가 바뀐 것도 아니고.]‘그러게…. 내 영향인가?’
[그게 가장 높지.]하지만 이안의 시간대에서는 달랐다. 전개가 고조되는 지점에 갑자기 감독이 교체되고, 시청률 1% 정도로 마무리되는 극단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이 변화는 최이안이라는 변수가 있어서 생겨난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였다.
“지금 나 비웃는 거죠?”
가뜩이나 시청률도 저조하게 끝났는데, 그다음 작품도 흥행에 실패해서 꼬리표가 붙는 마당이었다.
‘지환 씨, 이렇게 밀어줬는데도 못 받아먹으면 어떡해요.’
‘요즘 애들이 말하는 푸쉬 분쇄기가 따로 없네.’
비웃는 듯 말하는 양 기자, 그리고 소속사 대표. 어떻게든 다음은 뜨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이 상황에 이안까지 저렇게 말하니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물론 이안은 부드럽게 말을 건넨 것이었지만, 어질러진 엄지환의 마음이 그의 말을 아니꼽게 해석했다.
“그게 그렇게 들리나요? 저는 진짜 재밌게 봤는데.”
이안은 스케줄이 비는 틈틈이 다른 드라마를 모니터하곤 했었다. ‘우연의 일치’는 전생에도 그리고 지금도 꾸준히 모니터링을 했던 드라마였다.
그리고 드라마에 들어가는 모든 배우와 스태프의 노고를 알기에 쉽게 비웃을 수가 없었다.
“헛짓거리하지 말라면서요.”
“그랬죠.”
“근데 왜 친한 척해?”
이안이 벽에 기대고 팔짱을 꼈다.
“그때는 그쪽이 먼저 시비 털었고. 친한 척하는 거도 아니고.”
우리 그룹을, 멤버를 건드렸는데 좋은 말이 나올 걸 기대한 건 아니겠지? 이안은 자신을 노려보는 엄지환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나는 동업자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거지. 그쪽처럼 개무시하려는 게 아니라.”
엄지환이 제 입술을 깨물었다. 꼭 이안보다는 유명해지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잠시였다. 이미 이안과 아위는 엄지환이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멀리 가 버렸다.
“아, 지환 씨.”
이안은 밖으로 나서려다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오지랖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한마디 정도 충고는 해 주고 싶었다.
“요즘도 양인준 기자랑 연락해요?”
“…….”
“그 사람이랑 가까이하지 마세요.”
이안의 발걸음이 멀어지고 있을 때, 화장실에 홀로 남은 엄지환이 주먹을 꽈악 쥐었다.
이제 와 멀리하기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 * *
K-좀비 열풍이 분다 ‘Z-Day’의 흥행에 세계도 들썩
‘Z-Day’ 엠플릭스 공개 하루 만에 글로벌 드라마 차트 3위
-좀비 장르 좋아하는데, 한국에서 차원이 다른 좀비 드라마가 나왔어.
-스토리는 흔한 스토리 같은데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과 완성도 높은 그래픽, 그리고 두 주연의 연기까지. 정신 차려보니 이틀이 지나 있었어.
-K 연기 비하인드 봤어? 스턴트 없이 원테이크던데
-액션씬은 괜찮더라. 너네 K 무대위에서 노래 하는 거 봤어?
남은 드라마의 모니터를 할 새도 없이 연습실로 향한 아위 멤버들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애들아, 10분 쉬었다가 하자.”
땀 범벅인 이주혁이 비틀비틀 걸어가 음악을 끄고 푹 쓰러졌다.
“으어… 더 쉬면 안 돼?”
“안 돼.”
“저 형, 이상하게 단호해졌어.”
다른 멤버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닥 위에 쓰러졌다. 그들은 회사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열심히 콘서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무 바뀌니까 더 헷갈리는 거 같지 않아?”
“우리 진짜 다음 앨범부터는 안무 쉬운 거로 하자.”
김 현의 말에 멤버들이 허탈하게 웃었다. 일본 방송 출연에 이상한 오기가 생겨서 안무를 무리하게 진행한 탓에 콘서트 안무는 대대적인 수정을 강행해야 했다.
“형! 형들!”
쥐 죽은 듯 바닥에 쓰러진 아위 멤버들을 깨운 건 피버의 임노을이었다. 아위는 일어날 힘도 없어서 고개만 들어 임노을을 쳐다봤다.
“뭐야?”
“오늘 새 연습생들 온대요!”
“그래?”
아위 멤버들은 힘든 것도 잊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곳곳에서 끙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신난 임노을은 그제야 아위의 몰골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연습 많이 하셨나 보다….”
“어, 별거 아냐. 그냥 밤 좀 샜어.”
“진짜요?”
임노을이 괜히 귀한 시간 뺏는 거 아닌가 싶어 뒤늦게 후회하고 있을 때, 짧게 스트레칭을 마친 이주혁이 말했다.
“그럼 지금 작전 개시해?”
“형들 다 있어?”
임노을의 등 뒤로 피버의 나머지 멤버들이 우다다 뛰어왔다.
“좀 있다가요, 저희 매니저 형이 톡 보낸대요.”
“언제 매니저 형도 꼬셨어?”
“기본이죠.”
피버 멤버들이 팔짱을 끼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위 멤버들이 그들을 보며 남동생을 보듯 작게 웃었다.
‘얘네도 재밌게 노네…. 하지만 아직 멀었어.’
준비 잘했다며 호들갑을 떨 거라고 예상했는데, 아위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어… 형들 시간 괜찮은 거 맞죠?”
괜히 콘서트 준비로 바쁜데 괜히 시간을 빼앗나 싶은 피버 멤버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때, 구석에서 핸드폰만 쳐다보던 조태웅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야, 주민이 형한테 연락 왔다. 연생들 데리고 내려온대.”
“주민이 형이요?”
“신개팀 팀장님 있잖아.”
“그분까지 꼬셨어요?”
“기본이지.”
뛰는 피버 위에 나는 아위 있다. 아위는 누구보다 연습생 몰래카메라에 진심이었다.
조태웅을 필두로 한 아위 멤버들이 씨익 웃었다.
“주민이 형한테 우리 계획 다 알려 줬거든? 알아서 양념 쳐 줄 거야.”
“와….”
어두워지던 피버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졌다. 이안이 손을 허공에 내밀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 그 위에 손을 포갰다.
“애들아, 작전을 시작하자.”
“라저.”
힘들고 지친 분위기는 어디 가고 금세 극비 작전을 수행하는 듯 비장해진 분위기로 바뀐 아위를 보며 피버도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위 태웅) 형 우리 작전 개시해요 – 14:03
새로 뽑은 12명의 연습생을 데리고 회사를 구경시켜 주던 신인 개발팀 박주민이 웃음을 참았다.
“지하층에 우리 소속 가수들 연습실이랑 작업실 있는데, 너희도 쓸 공간이니까 미리 좀 볼까? 다들 시간 괜찮지?”
“네.”
“저… 팀장님.”
한 연습생이 손을 들었다. 그는 마이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로 캐스팅 제의를 받았던 연습생이었는데, 그는 BHL 엔터의 바로 앞까지 왔음에도 ‘이거 사기 아닐까?’ 의심하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럼 소속 가수분들도 만날 수 있나요?”
“만날 수 있지, 애들 콘서트에 신곡 준비한다고 지금 연습실 쓰고 있거든. 지금쯤이면… 아위랑 피버 애들 다 있겠다.”
“진짜요?”
“소개해 줄까?”
“네!”
연습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연예인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설렘과 아직 데뷔는 못 했지만, 그 아위와 같은 소속이 될 거라는 기대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아, 근데 얘들아. 충고할 게 있는데….”
“네?”
“피버에 주환이 다들 알지?”
“네. 무서운… 아니, 래퍼같이 생기신 분….”
피버의 멤버, 송주환은 얼굴만 보면 메인 래퍼 같지만, 서브 보컬을 맡고 있었다.
짙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 높은 콧대까지 가진 그는 인상이 가장 세고 덩치도 커서 초면에 위압감을 줄 만한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걔는 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네?”
박주민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마주치면 꼭 깍듯이 90도 인사하고 그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
“…왜요?”
박주민의 의미심장한 말에 연습생들이 걸음을 멈췄다.
“왜요?!”
한국인을 가장 빡치게 만드는 것은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 박주민은 대답 없이 빠른 걸음으로 연습실 문 앞에 섰다.
연습생들이 종종걸음으로 박주민의 뒤에 바짝 붙었을 때, 연습실의 문이 쾅! 하고 열렸다.
큰 소리에 박주민과 연습생들이 놀라서 어깨를 떨었다.
“아 뭐야. 놀랐네. 진혁이 오랜만이지?”
“…네, 팀장님. 안녕하세요.”
원래라면 ‘형님! 오랜만입니다!’ 하고 장난을 걸었을 박진혁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을 보며 박주민은 벌써 웃음이 나올 뻔했다.
“얘들아, 여긴 아위의 박진혁. 다들 알지?”
“네, 안녕하세요!”
와, 진짜 연예인이야. 연습생들이 선망 가득한 눈빛으로 박진혁을 바라봤다.
박진혁이 병아리 같은 연습생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안의 연기 특훈하에 만들어 낸 ‘사연 있어 보이는 미소’였다.
“이번에 뽑은 연습생들이에요?”
“어. 어때?”
박주민이 제 팔뚝을 꼬집으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안 어울리게 무게 잡고 있으니 박주민의 눈에는 몹시 어색했지만, 연습생들은 깜빡 속고 있었다.
“다들 뭐, 잘생겼네. 하필 왜 여기 와서….”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잘못 들은 거겠지? 밝았던 연습생들의 표정이 점점 불안으로 번져 갔다.
“니들은 이런 데 오지 마라.”
“…네?”
그들은 가방에 들어 있을, 손에 쥔 연습생 계약서가 생각났다. 계약서를 미리 받아 보고, 부모님 검토 끝에 결정한 계약이었다. 독소조항은 없었을 텐데.
박진혁이 한 연습생의 품에 안긴 하얀 종이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도장 찍었구나?”
“…….”
“아쉽네,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그 말을 끝으로 박진혁이 계단을 올라갔다. 그 뒷모습을 황망히 쳐다보던 연습생들이 고개를 돌려 박주민의 얼굴을 응시했다.
“얘, 얘들아. 진혁이 말 신경 쓰지 마. 그냥 겁주는 거야.”
박주민은 웃음을 참느라 말을 더듬은 것이지만, 오히려 연습생들의 불안감에 불을 활활 지폈다.
“다른 애들 소개해 줄게! 애들 다 착해. 너희한테 텃세 안 부릴 거야.”
“…네.”
박주민이 애써 표정을 관리하고는 연습실의 문을 열었다. 연습실 안의 상황을 바라보던 연습생들이 입을 멍하니 벌렸다.
연습실 안에는 인상을 팍 찌푸린 피버의 임노을과 박재연이 아위를 갈구고 있었다.
“우리 멤버들은 그렇다고 쳐도… 형들.”
“어, 어?”
아위 멤버들이 어깨를 흠칫 떨고는 고개를 숙였다. 임노을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형들 똑바로 안 하지?”
그 상황을 지켜보던 연습생들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