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237
237
자체 프로듀싱은 이게 문제라니까.
“그래서, 지금은 괜찮대?”
(병원 측에서는 반깁스해도 된다고 하는데, 제가 불안해서 일단 깁스시켰어요.)
“그래, 잘했고.”
김명진의 통화를 받은 박동수가 손으로 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그래도 손목이라서 다행인 건가. 그래도 무대에 올라갈 수는 있으니. 생각하던 그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혹시 후유증 남으면 어떡하지? 얘는 연기도 해야 하는데.’
아니, 애초에 이런 부상이 없었어야 했다. 대행사가 부실시공을 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박동수는 갑자기 화가 부글부글 끓었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일단 그쪽 대행사는 우리가 대응할게. 신경 쓰지 말고. 다른 애들은? 괜찮대? 무대 할 수 있겠어?”
(무대는 애들 다 하고 싶다고 우겨서… 저도 애들이 그렇게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하아… 일단 알겠어. 이런 일 또 있으면 시차 상관없이 연락하고.”
(연락할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말이죠. 그쪽은 새벽 시간이죠? 이만 끊을게요.)
통화를 끊은 박동수가 한숨을 푸욱 쉬었다. 새벽에 전화가 온 게 심상치 않더라니. 또 부상 소식이었다.
전화벨 소리에 덩달아 잠에서 깬 서수련이 불안한 표정으로 박동수에게 다가갔다.
“깼어요? 들어가 자.”
“…이번엔 누구야?”
박동수의 표정만으로도 이젠 어느 그룹에 문제가 터진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이안이.”
“어쩌다가… 많이 다치진 않았대?”
“리허설 도중에 무대가 꺼졌대. 손목이 아프대서 병원 가서 처치했고. 많이 다치지는 않았어. 그쪽은 부실시공 인정했고.”
많이 다친 건 아니라니 서수련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는 옷을 챙겨 입는 박동수를 따라 옷장 문을 열었다.
“나도 갈게.”
“아냐. 혼자서 할 수 있어. 더 자요.”
새벽, 박동수는 그렇게 씻지도 않고 집 밖을 나서 회사로 향했다.
몇 시간 채 되지 않아서 아위의 공식 SNS에 글이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BHL엔터테인먼트입니다.
-알림 뜬거봤어? 공지 뭐야?
-제목 PTSD온다
-소속사 인사로 시작하는 제목 제일 싫은데
-헐 이안이 부상
-병원 목격담이 찐이었어???
아위(AWY), 이안 투어 리허설 도중 추락 사고… 현지 대행사 측 부실시공 인정
아위 이안, 손목 부상에 소속사 측 “가벼운 부상일 뿐… 공연 일정은 변동 없다”
-아오 ㅅㅂ 소속사 미쳤니?
-무대에서 추락했는데 공연을 한다고?
-애들 케어를 하는거야 마는거야
-이래서 머형아닌 개ㅈ소는 안된다니까 탈소속사ㅅㅊ
아무리 대행사 측 실수라고 해도, 팬들의 화살은 당연히 소속사를 향했다.
* * *
김명진과 함께 병원에 다녀온 이안은 제 오른손에 둘러싸인 깁스를 보며 멋쩍게 웃었다. 이렇게 호들갑 떨 정도로 아픈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형,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요.”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불편해도 참아.”
김명진의 말도 맞다. 당장 마이크는 왼손으로 쥘 수 있었지만, 이안은 연기도 병행하고 있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후유증이 남으면 곤란했다.
‘하긴,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Z-Day’의 성공으로 이안에게 들어오는 배역이 쌓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았던 것은 액션 배역이었는데, 이안도 액션 연기는 또 해 보고 싶었으니 지금부터 몸 관리를 잘해야 했다.
“방으로 안 가고?”
“주혁이 형 방에서 다 모이기로 했어요.”
“…그래. 내일 공연도 있는데 너무 늦게까지 있지는 말고.”
“넵.”
이안이 이주혁의 방에 노크하려는 순간, 방문이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은 박진혁이었다.
“뭐야? 어떻게 알았어?”
“왠지 이쯤 되면 올 거 같아서.”
그 예리한 촉이 아직도 살아 있었나. 이안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각자 놀고 있던 멤버들이 벌떡 일어났다.
“헐. 깁스했다.”
“미친. 많이 다친 거야?”
손목이 많이 붓지도 않았고, 이안 본인이 괜찮다며 멤버들을 안심시키길래 괜찮은 줄 알았다.
기껏해야 박진혁처럼 보호대나 차고 올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두툼한 깁스에 멤버들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심각한 건 아니고. 원래 반깁스해도 된댔는데 명진이 형이 깁스하자 해서 한 거야.”
“…그래?”
이안이 안심시키듯 웃으며 말했지만, 멤버들의 찌푸린 미간은 풀리지 않았다.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한 건 조태웅이었다.
“…매직펜 혹시 있어?”
“야 너는 이 상황에 저기다 낙서를 하고 싶냐?”
“심각한 거 아니라며.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떻게 해.”
“하긴 그래.”
그 말에 수긍한 멤버들이 두리번거리면서 매직펜을 찾았다.
“근데 여기에 펜이 있긴 있어요? 매니저 형들도 안 가지고 있을 거 같은데요.”
“나 있는데?”
이주혁이 여행 가방을 뒤적이더니 매직펜을 찾아서 내밀었다. 얼떨결에 그 펜을 받은 김 현이 넌지시 물었다.
“그게 왜 형 가방에서 나와?”
“혹시 필요할까 봐.”
“무슨 보부상이야?”
그 말에 멤버들이 어라? 싶은 표정으로 이주혁을 바라봤다.
어쩐지 뭔가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매니저 아니면 자연스레 이주혁을 찾긴 했었다. 있냐고 물어보면 항상 있다고 손에 쥐여 주기까지 했었다.
“근데 이안이 오른손잡이 아니야? 밥 먹을 때 힘들겠네.”
김 현이 이안의 깁스에 무언가를 적고서는 김주영에게 펜을 넘겼다.
“밥? 먹여 줄까?”
“미쳤어?”
김주영이 숟가락을 내밀고, 그 앞에서 입 벌리고 있는 상상에 이안이 소름이 돋았다. 김주영에 이어서 펜을 잡은 건 조태웅이었다.
“아 돌았냐고.”
이안은 조태웅이 쓴 글자에 얼굴을 팍 찌푸렸다. 조태웅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 내 웃었다.
“우리가 여친 사귈 일이 어디 있냐. 폰여친으로 만족해.”
이안이 극심한 혐오를 담은 표정으로 조태웅을 노려봤다. 조태웅이 쓴 글자는 ‘자기야 빨리 나아!’였다.
“야 이거 단단하다? 뒤통수 조심해라.”
“헐. 주혁이 형! 쟤 살인예고 하는 거 봐!”
이안이 제 깁스를 가리키자 조태웅이 어깨를 움츠렸다.
“이거로 여친 논란 나면 되게 웃기겠다.”
“글씨가 너무 조태웅인데.”
“형! 그림 그려도 돼요?”
이안이 자포자기한 듯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멤버들도 매직펜을 돌려쓰면서 무언가를 적었다. 이안의 오른손 깁스가 순식간에 검은 매직펜으로 뒤덮였다.
“야 됐다.”
“재밌었다. 이제 자러 갈까?”
그들의 목적은 이안의 무사함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깁스에 장난질 치려는 것이 우선인 것 같았다. 마치 퀘스트를 완료한 것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난 멤버들을 잡은 건 이주혁이었다.
“얘들아 가기 전에 이거 한 번만 들어 봐.”
“오, 우리 신곡이야?”
“아직 그건 아니고… 너네 의견이 필요해.”
멤버들이 침대 위에 쪼르륵 앉아서 이주혁이 들려주는 음악을 들었다.
“되게… 잔잔하다?”
“팝스럽지 않아?”
“맞아. 비트는 중독적인데.”
“나는 좀 지루한 거 같아.”
그루비하면서 심플한 트랩 비트가 돋보이는 곡이었다. 스페이스 바를 눌러 곡을 멈춘 이주혁이 입을 열었다.
“레트로도 꾸준히 인기 있는 거 같지만, 요즘 트렌드는 심플함 같더라고.”
음악을 듣는 것이 스트리밍이 중심이 되면서 음원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계속 틀어 놓고 듣기에는 이지리스닝 곡만 한 게 없었다.
래퍼들은 싱잉 랩으로 더 듣기 쉽게, 잔잔하면서도 중독적인 비트 반주에 마찬가지로 크게 고음을 지르지 않고 읊조리듯 부르는 보컬과 단순한 구성의 음악 같은 것 말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조태웅이 손을 들었다.
“근데 우리가 여태껏 해 온 컨셉이랑은 좀 많이 다르지 않아?”
“맞아. 갑자기 180도 바뀌면 이상할 거 같은데요.”
데뷔 초부터 꾸준히 지켜 왔던 ‘칼 군무’ 컨셉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 군무의 난이도가 쉽든 아니든 간에 그들이 발매하는 앨범마다 타이틀 곡은 군무 컨셉에 맞는 화려한 비트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아냐 우리도 이제 노선 틀어야 한다고 생각해. 난 이런 곡도 좋을 거 같아.”
“맞아 우리가 계속 빡센 춤을 출 수는 없잖아.”
메인 댄서, 김 현과 김주영은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멤버들도 나이를 한두 살씩 먹어 가고 있었고, 스케줄을 돌 일은 많은데 돌 때마다 몸에 무리가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너네쯤 됐으면 이제 팝으로 가야지. 케이팝이 아무리 날고 기어 봤자 세계에서 잘 먹히는 건 팝이잖아.]‘그런가….’
곰곰이 생각하던 이안도 입을 열었다.
“나도 괜찮을 거 같아. 우리 노래가 좀 쎈 곡이 많잖아? 그게 장벽이라는 사람들도 있었고.”
‘아이돌’스러운 과한 컨셉과 화려한 비트의 곡은, ‘덕후’들을 끌어들이기에는 쉬울지 몰라도 대중을 잡기에는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맞아. 우리 작곡 서바 했을 때 ‘추락’ 이랑 ‘Night night’ 반응 좋았잖아. 그런 거 보면 우리도 컨셉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극복한 이주혁은 곡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댄스 브레이크를 염두에 두거나, 어느 파트에서는 어떤 멤버의 보컬이 맞는지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신경 써야 할 것은 ‘트렌드’였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듣기를 바라며 만든 곡이 유행에서 많이 벗어나게 된다면, 팬들 아니면 듣지 않게 될 것이 분명했다.
‘대중 취향을 따라간다는 게 나쁘다는 소리도 아닌데…. 멘토분들이 내 색깔은 좋다고 하셨지.’
멤버들의 의견을 하나씩 듣던 이주혁이 턱을 괴고서는 생각에 잠겼다.
‘색깔을 잃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했으면 좋겠다고도 했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
굳이 트렌드를 선도해야 할 이유도 아직 못 찾겠고. 하물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곧 있으면 마이디어도 제대하는데…. 이대로 가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데뷔 초까지만 해도 마이디어는 아득히 먼 곳에 있었는데, 이제는 바짝 뒤쫓아 가고 있었다. 이쯤 되면 욕심이 생기고 저절로 견제하는 마음이 들고 있었다.
“근데 우리 팬들은 이런 게 매력이라고 생각하잖아. 이 컨셉 덕분에 팬들도 많이 생겼고.”
“그렇지.”
“이걸 버린다고? 그리고 케이팝 유행 타고 있는데 굳이 팝 쪽으로 간다? 하면 나는 잘 모르겠는데.”
박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들 따라가지 말고 우리만의 길을 계속 가는 게 낫다고 본다.”
“진혁아, 그게 어려우니까 너네 모아 두고 얘기하는 거야.”
이주혁이 한숨을 쉬었다.
“근데 진혁이 형 말도 일리는 있어요. 굳이 우리 매력을 버릴 필요가 있을까요?”
“남들 다 하는데 우리만 딴 쪽으로 튀면 사람들이 우리를 더 찾을까? 난 아닐 거 같아. 유행이 왜 있겠어.”
박서담의 말에 김 현이 대답했다.
답이 나오지 않는 논제에 멤버들이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았다.
“으으….”
“어렵다.”
대중에 맞추느냐 팬에게 맞추느냐.
그룹 색깔을 잃지 않고 계속 가느냐, 아니면 그냥 트렌드에 맞춰 가느냐.
과도기의 시작이었다.
“일단 다들 생각해 두고 있어.”
이주혁의 말에 멤버들이 벌떡 일어나서 방 밖으로 나섰다.
“자체 프로듀싱은 이게 문제라니까. 머리 아픈 일 천지야.”
박진혁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멤버들은 잘 자라는 말과 함께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이안도 자신의 방 안에 들어와 침대 위에 풀썩 누웠다. 오른 손목의 무게감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원래 아위는 어땠지?’
[계속 이런 컨셉으로 가면서 덕후들만 쓸어모았지. 그래도 나름 마이디어 다음으로 해외 인기는 많긴 했는데…. 국내 인지도는 바닥이었어. 너도 내가 알려 주기 전까지는 몰랐잖아.]‘그랬지….’
[그렇게 국내는 좀 소홀히 하고 해외 투어만 돌다가 7년 계약 만료돼서 깔끔하게 끝났지.]‘깔끔하게 끝났다고? 해체?’
[어.]요즘은 계약이 만료되어 각자 다른 소속사로 가면서도 그룹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예 해체라니.
이안은 베개에 고개를 파묻었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