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econd Life as an Idol RAW novel - Chapter 246
246
너를 알고 싶어. (4)
“선생님… 팔에 감각이 없어요….”
“안무와 의상이 영 좋지 않은 곳을 건드렸어요.”
“으아아아!”
연습하다 지쳐 쓰러진 멤버들이 눈을 감았다. 수면 시간이 부족하니 다들 나사가 빠져 있었다.
아위는 컨셉 방향을 정하고, 스타일리스트에게 부탁해 대충 만든 무대 의상을 받아 왔다. 탈춤을 모티브로 한 소매가 긴 의상이었는데, 문제가 있었다.
“우리 데뷔 초만 해도 이 정도 연습은 간단하지 않았냐?”
“나이가 든 거지.”
“늙었어 늙었어.”
소매가 길다 보니 동작을 작게 하면 소매가 안 예쁘게 퍼지고, 팔에 둘둘 감겨 엉키는 문제였다. 그래서 팔을 크게 휘젓거나 뻗어야 했는데, 동작이 커지니 자연스레 팔과 어깨에 부담이 갔다.
“괜히 이런 거 하자고 했나?”
“아냐 이제 무를 수 없어. 우리 안무에 쓴 돈이 장난 아니래.”
“진짜? 어쩐지 장난 아니더라.”
월드 투어를 돌고 바로 시작하는 활동 준비, 멤버들의 건강도 건강이지만 시간이 없어서 이번만큼은 해외 유명 안무가에게 안무를 의뢰했는데, 안무에 쏟은 돈만 억 소리가 날 정도였다.
“블랙러시 형들 쇼케는 언제 한대?”
“다음 주. 근데 우리도 바빠서 놀러 못 갈걸?”
“까비.”
블랙러시는 컴백을 앞두고 있었고, 오랜만의 컴백이라 음악방송 활동도 4주를 꽉 채운다. 그리고 그 뒤에 아위가 컴백한다.
멤버들이 잠시 눈을 붙였을 때, 어디선가 핸드폰 알람음이 울렸다.
“이거 누구 알람이야?”
“이안이 형이요.”
“쟤 죽은 거 아니지?”
좀 쉬라는 멤버들의 배려로 연습실 구석 간이침대에 누워서 쪽잠을 자던 이안이 화들짝 일어나 핸드폰을 들었다.
“깼어? 미안.”
“아니. 괜찮은데.”
“으어억….”
이안이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기지개를 켰다. 목을 돌리니 뿌득뿌득 소리가 났다. 간이침대다 보니 몸이 뻐근했는데,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 촬영 다녀올게.”
“다녀와.”
두 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지만, 졸린 눈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겉옷을 챙겨 입은 이안이 비틀거리면서 연습실 문밖으로 나갔다.
연습실에 남은 멤버들은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한마디씩 했다.
“어떡하냐.”
“저 이안이 형 저렇게 얼굴 어두워진 거 처음이지 않아요?”
“어, 맞아 역대급인데?”
바쁜 스케줄에도 늘 형광등 켜 놓은 것처럼 하얗고 반질반질했던 이안의 안색이 드디어 어두워졌다.
“쟤도 사람이구나. 하도 멀쩡해서 로봇인 줄 알았어.”
“근데 어떻게 된 게 저런 얼굴도 인간미 있어 보이냐.”
“최이안이 최이안 한 거지.”
당연히 이안만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었다. 다른 멤버들도 단독 잡지 화보를 찍거나, 일일 MC 등 활동 준비 중에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 근데 제안 들어온 거 할 거야?”
“근데 같은 멤버가 카메오로 나오면 몰입 깰 거 같은데….”
“카메오 출연 정도면 괜찮지 않아? 해 보자.”
아이돌 출신 배우를 대중이 무시하는 것은 옛말이었다. 제작사에서도 선호하는 편이었고, 그중 덕질을 모르는 일명 ‘머글’에게서의 인지도도 높고 해외 팬도 잡은 아위는 이안과 조태웅처럼 연기 멤버가 아님에도 7명 전부 꾸준히 대본이 들어올 정도였다.
“아, 몰라. 태웅이 너도 이번 주에 촬영 들어가지 않아?”
“어. 벌써 무섭다.”
조태웅도 미니 시리즈에 투톱 주연으로 캐스팅되어서 곧 촬영에 들어간다. 그래서 조태웅은 평소처럼 이안을 놀릴 수 없었다.
“아 바쁜 거 싫은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물이 그냥 물이 아니라 무슨 해일이 밀려오는 거 같은데.”
* * *
이안이 주차장으로 향하자, 이미 로드 매니저 임진우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안은 아직도 잠에 취한 눈을 거칠게 비볐다.
“형 좋은 아침.”
“잠은 좀 잤어?”
“조금요.”
“피곤하겠네. 이거, 샷 3잔 추가 맞지?”
“넵.”
이안은 진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잠을 깨려 노력했다.
아무리 이안이라도 바쁘면 주변 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어쩌다 시간이 비어도 잠을 보충해야 했다. 그룹 활동 전에 크게 아프면 곤란하니까.
-유료 팬클인데 한 멤만 안오는거 정상이야?
└주어 걔지? 요새 안보이는?
└└ㅇㅇ
└여친생긴거 아니야?ㅋㅋㅋㅋ
-쵱앉 연기한다고 바쁘시던데ㅋ 하긴 아이돌보다 배우가 낫지ㅋ
-나 맹세코 사생 아닌데 지나가다가 걔 본적있거든? 표정 썩어가지고 개무시하더라ㅋㅋㅋ ㅈㄴ싸가지없어~~
아예 안 하다가 잘하면 상관없는데, 잘하다가 한 번 못하게 되면 꾸준하지 못하다며 전자보다 심하게 까이게 되는데, 이안도 이런 사람들, 일명 ‘까빠’ 팬들의 표적이 되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을 이용해서 조직적으로 루머와 논란을 만든다. 요즘은 작정하고 만들면 대부분은 먹히는 시대였다.
“촬영 이제 얼마 안 남았지?”
“네. 피곤해 죽겠어요.”
“좀만 힘내.”
촬영장에 다 와 가면서도 이안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잠이 부족해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는데, 팬이라면 예민미 있다고 좋아하겠지만 촬영장에서 이런 태도는 좋지 않다.
“안녕하세요!”
밴에서 내린 이안은 더없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너를 알고 싶어’의 촬영은 순조로웠다. 이안은 최우진의 톱 배우 설정에 맞게 다양한 컨셉으로 촬영을 했었는데, 경호원에 이어 군인, 대학생, 의사 등의 역할을 맡는 것을 보여 주기도 했다.
‘점점 영상 화보가 되어 가는 거 같은데….’
[너한테는 좋은 일이지.]JBTC에서 밀어주는 기대작인 만큼 카메오 출연진도 화려했다. 이안은 김주영과 ‘귀촌 생활’을 같이 했던 배우들과 이안과 함께 ‘Z-Day’를 찍었던 김민재도 얼굴을 비췄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멤버들도 카메오 출연에 함께 했다. 그들은 최우진과 마주치는 신입 아이돌 그룹인 설정으로 최우진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무시당해서 뒷담을 하는 것으로 짧게 등장한다.
“와 이거 뭐야? 이거 우리 데뷔 쇼케 의상 아니야?”
“올, 역시 최이안. 알아보네?”
심지어 그들은 아위의 데뷔 쇼케이스에서 입었던 제복 의상을 그대로 입고 왔다.
“멤버분들 준비되셨어요?”
“안녕하세요!”
“아, 맞다. 저번에 커피 차 잘 마셨어요.”
멤버들이 쑥스럽게 웃었다. 아위는 블랙러시와 서포트 대결 경쟁이 붙었다. 주제는 ‘누가 이안과 김영현의 드라마에 많은 지원을 해 주느냐.’였다.
그들은 드라마 현장에 돌아가면서 커피 차와 간식 차, 심지어 뷔페까지 보냈는데 덕분에 제작진들은 촬영 내내 배가 든든한 상태였다.
“대사는 안 정했는데… 어떻게, 지금 지정을 해 드릴까요?”
“아뇨. 저희가 다 준비해 놨어요.”
“감독님은 걱정 마세요. 저희의 진심을 담았습니다.”
멤버들은 눈을 부릅뜨고 이안을 응시했다. 유성민 감독이 크게 소리 내 웃었다.
“이안 씨, 멤버분들이 벼르고 왔는데?”
“살살 해라.”
이안이 한숨을 쉬었다. 멤버들의 눈에서 장난기가 다분했다. 동선 파악 끝에 이안과 멤버들이 자리를 잡았고, 감독의 신호와 함께 카메라에 불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신인 아이돌 그룹….”
그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최우진이 미간을 찌푸린 채 그들을 지나갔다. 극 중 최우진은 자신을 ATM 취급하는 가족들에게 단단히 화가 난 상태였다. 이안은 그 감정을 어김없이 표출했고, 멤버들에게서 반응이 왔다.
“뭐야, 재수 없어.”
“인성 장난 없다. 얼굴만 잘생기면 다냐?”
“근데 저렇게 재수 없으니까 잘난 얼굴도 좀 별로 같지 않아?”
“맞아. 그러니 정서하한테 차인 거지. 저래서 여친은 사귀겠어?”
이안이 연기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보는 사람이 기분 나쁠 정도의 혐오가 담긴 표정에 멤버들도 진짜 텐션이 나와 버렸다.
“컷! 좋습니다. 말하는 거에 감정이 담겨 있는데? 이안 씨한테 불만 많으신가 봐요.”
“너무해.”
감독의 농담에 몇몇 사람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안은 양팔로 제 가슴을 감싸고 우는 시늉을 했다.
* * *
드라마 촬영도 슬슬 중반부가 지나갔고, 주인공 사이에서도 미묘한 기류가 풍겼다.
스타일리스트로 위장한 이하나는 최우진의 일하는 모습과 인간적 모습에 점점 끌리게 된다.
처음에는 ‘이 작가의 심리를 알고 싶다. 왜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했는지. 알고 싶다.’ 같은 생각이 들어 호기심으로 접근한 최우진도 점점 이하나와 가까워진다.
“왜 그러고 살아요? 우진 씨 가족이 우진 씨한테 해 준 게 뭐예요?”
“그래도 우진 씨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아요. 뭐, 나도 한 사람이라고 치죠.”
이하나는 최우진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진 이후, 그의 답답한 구석에 화가 나면서도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나 이렇게 외출해 본 거 오랜만이에요. 항상 누가 따라붙어서. 작가님은 괜찮아요?”
“진짜요? 들키면 어떡하죠? 우진 씨야 괜찮겠지만 저는 일반인인데….”
“들키면 제가 돈으로 막아 볼게요. 나 이런 거 잘 막아요.”
“그래도….”
“어때요, 기분 전환 됐죠?”
“…네.”
드라마의 하이라이트인 한강 데이트 장면에서는 작가가 의도했던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분위기가 풍기게끔 연기해서 제작진의 감탄을 샀다.
“컷! 좋아요. 다음 씬 갑시다!”
촬영 장소는 휙휙 바뀌었다. 최우진의 집을 연출한 호텔 방에서 아픈 듯 얼굴에 혈색을 죽인 분장을 한 이안이 걸어 나왔다.
“이번 씬은 감정 소모가 심할 텐데 괜찮겠어요?”
“넵.”
이안이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극에서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장면이었다.
스케줄 때문에 앓아누운 최우진은 이하나에게 연락도 못 한 채 침대 신세를 졌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통화를 받게 되고 가족에게 사랑받고 싶었지만 앞으로 더는 사랑받지 못할 것을 깨닫고 오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최우진이 걱정돼 집에 찾아온 이하나는 그에게 연민의 감정을 품는 동시에 자신이 가진 마음이 커졌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 눈이 마주친 최우진과 이하나는 입을 맞춘다.
[캬, 키스신. 로맨스 드라마의 꽃이지. 마이튜브에서도 키스신만 조회수 쩌는 거 알지?]‘네네.’
[요즘 애들이 말하는 섹텐, 어? 섹슈얼 텐션이 터지게! 보는 사람이 막 미칠 것같이! 이러면 드라마 떡상이다.]‘알아서 잘하거든?’
훈수를 두는 진을 애써 이안은 물로 가글을 하면서 대본을 살폈다.
“지금 좀 긴장했지?”
이하나 역의 이채은이 옆으로 다가와 히죽 웃었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난기가 더 심해졌다.
“설마 키스신 때문이야? 하긴 니가 나랑 키스신 찍을 일이 얼마나 되겠니. 영광으로 알아.”
“그건 아니고… 감정이 순식간에 터지는 장면이잖아요. 이런 씬에는 약한데.”
“에이… 빈말로라도 키스신 때문이라고 해라.”
“누나, 저 빈말 못 해요.”
이안이 정색하고 대답했다. 아이돌의 우주 방어에 이채은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채은이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고 음흉하게 말했다.
“NG 많이 내라.”
“아 진짜 누나.”
결국 이안의 얼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을 웃기려는 것에 진지한 이채은이 코를 쓱 훔치고서 뿌듯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의 모습은 당연히 카메라에 담겼다. 비하인드 영상으로 마이튜브에 올라갈 것이다.
“자, 촬영 시작하러 가.”
“넵.”
이안이 숨을 크게 내뱉고는 벌떡 일어났다.